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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권위와 탐욕을 버린 하나님의 자녀들 원문보기 글쓴이: Daniel
제국주의와 식민지, 산업혁명으로 노동자들의 노동력이 착취당하는 것에 대하여
급진적 사상가들은 18세기에 프랑스에서 공산주의 실행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이들은 자본가와 지주들의 사유재산 폐지를 주장했는데,
모렐리라는 사람은 인간의 유일한 악은 탐욕인데,
우리의 닳고닳은 인간성을 분해해 보면 사악한 요소만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소유욕'이므로 사유재산을 패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9세기 초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인 생시몽과 푸에리도
자신들의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부자들로 하여금 재산을
포기하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과학적인 사회주의'라는 이론을 고안했습니다.
(카를 마르크스)
마르크스 주의는 1859년 진화론의 대가인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다윈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창조를 무시하고
교육계에 진화론 사상을 뿌려놓은 사탄의 도구였습니다.
다윈의 주장은 생물의 종들은 낮은 단계에서 높은단계로 진화해 가는 것이지,
하나님의 창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르크스도 이 이론을 수용하여 역사를 낮은 형태에서 높은 형태로
단계를 밟아 진보한다는 '사회 진화학'을 탄생시켰습니다.
이 주장에 의하며, 사회 진화는 다소간 늦추거나, 가속화 시킬 수는 있지만,
방향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런 사회 진화론에 따라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에 굴복하고야 만다고 주장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주장은 궁극적으로 이렇습니다.
한 집단이 필수적인 자원을 독점하는데 성공하고 주민들을 착취하고 지배하기 위하여
정치적, 법적 제도를 수립했으며,
나아가 종교, 윤리, 에술, 문화를 이용했다면서
이러한 수단들을 이용해서 지배계급들은 주민들을 착취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와 그의 친구인 엥겔스는
"사회주의 혁명이 인간의 총체적 해방이다!"라고 주창하면서
사유재산 폐지는 진정한 자유를 얻는 데 있어서 필수조건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런던에 '국제 노동자 협회'를 설립하고
무정부주의자들과 계급이 없고 국가가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공통된 목표를 공유했습니다.
그런데 무정부 주의자들은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사회주의가 가져올 독재에 대하여
이미 간파하며 노선의 방향을 틀어버렸습니다.
무정부주의자들은 앞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킬 사람들은
산업노동자들이 아니라 토지 없는 농민들과 실업자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의 도래 과정에서는 강압적인 권력을 행사하여
자본가 계급의 자본을 박탈하고 생산재를 국유화 해야 하기 때문에
지식층의 독재가 발생할 밖에 없다고 예측하였습니다.
무정부자들의 예측은 정확했습니다.
이들의 주장 이후에
러시아에서 최초로 발생한 공산주의에서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지식층인 무산(무생산)계급의 독재 치하에서
비노동자들이 노동자들과 농민들을 영구히 지배하는 독재국가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산주의의 국가 전복은 서유럽에서 시작되지 않고 왜 러시아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왜 시민혁명 후 서유럽은 마르크스의 예측대로 공산주의가 되지 않았을까요?
서유럽의 자본주의는 주기적인 위기들을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시민혁명 이후에 노동자들이 노조를 조직하고 의원 선거에서 의석을 차지하면서
사회복지 법률을 마련해 나갔기 때문에,
실업보험, 의료보험 등 몇 가지 혜택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로써 노동자들이 빈곤으로 반란을 일으킬 것을 막을 수가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이 기초생활이 되므로
사회공산주의 사상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된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이라는 책을 집필하고 있었을 때도 서유럽의 노동자들의
임금은 오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를 무시하고 자기 주장만 열심히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러시아는 서유럽 보다 문명이 한참 뒤떨어졌었습니다.
러시아가 서방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표트르대제(1689~1725년) 때부터 입니다.
표트르1세는 러시아를 계몽시키기 위해서 서유럽 각국을 여행하여 견문을 넓히고
포선과 조선술을 익혔습니다.
상트페테르브르크에 도시를 세우고 운하, 공장, 제철소, 제염소, 광산개발을 시작하였고
유럽의 장인들을 초청해서 옷감짜는 기술과 칠기 등을 러시아에 보급했습니다.
표트르 대제의 정렬적인 열성 덕분에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걸쳐 러시아는
문화, 미술, 과학 등이 활발히 발달하였지만,
그러한 문화를 누리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소수의 귀족층이었습니다.
러시아의 백성들의 4분의 3은 모두 농민들로서 서구 문화와는 전혀 접촉이 없었습니다.
러시아의 땅들은 모두 러시아의 차르(왕)의 소유로 되어있었습니다.
러시아 농민들은 농촌 공동체에서 가족 인원수대로 지분을 받아 땅을 경작하여
먹고 살았습니다.
게다가 러시아는 '조방농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조방농업'이란 자본과 농사기술을 들이지 않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자연에 의지한 채
거칠게 하는 농사를 말합니다.
농사기술도 없는데다가 날씨는 춥죠, 인구는 늘어나죠, 소출은 적죠,
그러니 농민들이 배가 고파진 것입니다.
러시아의 차르들은 완전한 독재였습니다. 절대왕정이었지요.
차르는 무한정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을 다 가지고 휘둘렀고,
러시아는 차르의 소유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르는 인적, 물적 자원을 착취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 백성들은 사회현상에 불만만 표시해도 영장 없이 체포되거나
추방되었습니다.
그런데 웃끼는 것은
차르들이 농촌에 대하여 이렇게 엄중한 통제를 하면서도
세계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할 목적으로 러시아 내에서 고등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이 고등 교육이 차르의 권위를 무너지게 한 것입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지식을 발판으로
무엇이 그릇된 것인지 분별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를 갖게 된 것입니다.
러시아의 대학들은 언론을 억압하는 것을 참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정부는 이들에게 말하기를..
"노예 처럼 귀머거리 처럼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은 죽는다!"라고
윽박질렀습니다.
이에 반발하는 비폭력 선동가들부터 극단적 테러리스트들 까지
더 많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러시아 혁명은 1870년대 서구의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자들의 원리에 의해
태어났는데, 주로 대학생들었습니다.
이들은 '인민의 당'을 결성하고 1881년에 알렉산더 2세를 암살하였습니다.
1890년대에 사회민주주의가 러시아에 수입되었고
1898년에 사회주의 노동당이 비밀리에 설립되었습니다.
이후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 노동당은 공식적으로
1903년에 런던에서 열린 회의에서 결성되었는데, 두 파로 갈라졌습니다.
그 중에 한 파가 레닌이 지도자였으며,
스스로 '볼셰비키'라고 불렀습니다.
(블라디미르 레닌)
'볼셰비키'라는 뜻은 '다수파(多數派)'라는 뜻으로
'과격한 혁명주의자' 또는 '과격파'의 뜻으로도 쓰입니다.
러시아는 농민들이 먹고 살기도 힘든데, 계속되는 전쟁이 있었습니다.
1812년에는 프랑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 있었습니다.
물론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 실패했지만,
러시아도 피해를 본 상태였습니다.
1853~1856년까지 유럽 강대국들과 크림 전쟁으로 패했고,
1904~1905년까지는 당대 제국주의로 팽창하던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배의 맛을 보았습니다.
이때 억눌린 러시아 민중들은 당시 차르였던
니콜라이 2세의 초상화와 기독교의 성상화를 들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적은 청원서와 함께 비폭력 시위를 벌였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유혈진압으로 시위자들 500~600명을 죽이고 부상자들을
수천 명을 만들었습니다.
이 시위는 정교회의 사제인 가폰이 주동하였는데,
그는 정부의 반격에 해외로 망명했다가 러시아에 귀국 후 살해당했습니다.
1914년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 무렵에는 차르에 대한 불만 세력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 이유는 니콜라이 2세가 어마어마한 궁궐에서 최고의 장식을 해놓고
최고의 음식을 먹으면서 최고의 도서관을 만들고 사서를 두 명씩이나 두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면서도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 백성들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차 세계대전 무렵에는 러시아의 군병력이 614만 명이나 있었지만,
소총은 2백만 개 밖에 없었다니 알만한 차르였습니다.
한편, 러시아 전역에서는 식량이 바닥나갔고,
1917년 3월 상트테르페부르크에서는 시민들이 빵을 배급받기 위해서 줄을 섰다가
빵이 바닥이 나서 배급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격분하기 시작했습니다.
빵과 우유를 요구하는 시위에는 같은 처지에 놓였던 러시아 시민 8만명이
가담하여 들고 일어났습니다.
이 시위자들은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들이거나,
민중 시위를 진압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일부 병사들이 참여하면서
소비에트로 단결하는 혁명이 되었고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켜,
니콜라이 2세가 권좌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 사건이 『러시아 3월 혁명』입니다.
이 혁명으로 러시아는 1918년에 끝날 '1차세계 대전'에서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니콜라이 2세는 시베리아로 보내졌고,
1차 세계대전에서 탈영한 200만 병사들은 총을 들고 러시아의 지주들을 죽이고
토지를 배앗았습니다.
이때 레닌이 이끌던 볼셰비키당이 정치를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레닌이 등장하여 부자들의 땅을 가질 권리는 농민들에게 있다고 하였기 때문에
농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사실 레닌은 가난한 사람의 편을 들려고 든 것이 아니라,
그는 러시아 국가에 대한 분노가 내재될만한 내력이 그 집안에 있었습니다.
1870년에 러시아에서 태어난 레닌은 원래 러시아 귀족의 자녀였습니다.
그는 풍요롭게 살았고 집안 형제들도 러시아 내에서 고등교육을 받았습니다.
레닌의 형은 알렉산더 2세의 암살에 가담하였다가 체포되어 처형되었고,
누이들도 사소한 일로 체포되어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레닌도 카잔대학에서 소규모 시위를 일으킨 뒤에
경찰의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처형당한 암살자의 동생으로 신분이 밝혀지자
대학으로부터 제적을 당했기 때문에 국가와 차르에 대한 원망으로
분노가 내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1891년에 볼가지방에서 기근이 일어났을 때도 레닌은
기근은 예상된 순서에 따라 일어난 것에 불과하고
기근으로 농민 경제가 붕괴되고 사회주의 터전이 마련될 것이므로
농민들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지원에 반대했던 사람입니다.
또한 볼셰비키를 창당할 때 자금을 모은 방법도 부도덕했습니다.
은행강도와 유산 횡령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금을 모았던 것입니다.
혁명에 협력했던 스투르브는 레닌이 지닌 성격의 주된 특징은 증오였다고 기술했는데,
레닌이 지닌 증오는 20세기에 막강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잠22;24
노를 품은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찌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칠까 두려움이니라
1917년 10월 '블라디미르 레닌'의 지도 하에 볼셰비키당원들이
공산주의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에 기반하여
공산주의 혁명을 최초로 일으켰습니다.
2천5백만명의 분노한 농민들과 노동자들, 병사들이 볼셰비키와 합세하여
상테페테부르크의 겨울 궁전의 정부 사무실을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공동의 이익을 위하는 당'이라는 뜻으로 볼셰비키당을
'공산당'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기독교가 엉터리라고 하며,
성베드로의 도시라는 뜻의 상트페르테부르크의 도시명을
'페트로 그라드'로 바꿔버렸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거의 무저항으로 점령당했고,
보기드문 무혈혁명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러시아 10월 혁명』이라고 합니다.
이로인해 1922년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탄생하였습니다.
'소비에트'라는 뜻은 러시아어로 '평의회'라는 뜻입니다.
'소비에트 연방'을 줄여서 '소련'이라고 합니다.
소비에트 연방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10월 혁명 이후에 러시아는 내전이 일어났습니다.
차르를 따르던 백군이 공산당에 반기를 들며 3년 동안 내전을 벌였지만,
결국 패배하고 백군 편은 150만명이 추방 명령을 받았고
명령을 따르지 않았던 사람들은 감옥에 갇히거나 처형당했습니다.
러시아 안에서는 하나의 정당만이 존재하여
권력을 잡은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레닌은 내전 후 얼마되지 않아 뇌출혈로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말입니다.
이후 러시아에는 '스탈린'이 등장합니다.
한편 중국에서도 일본과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의 제국주의들에 의해
나라가 전쟁으로 쑥대밭이 되었고 식민지화되었습니다.
중국에서도 국가를 세우기 위해 신해혁명으로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한국도 잘 알다시피 일제의 주도 하에 있었는데,
중국의 신해혁명의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던 중국의 쑨원은 소련에 가서 소련의 군대 이모저모를 배우고
소련 군사들의 도움으로 무기 지원을 받아 공산당 세력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1949년 10월 마오쩌둥(모택동)이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인민 공화국'을 선포했습니다.
공산당에 반대하는 중국의 국민당의 잔당들과 지주들
1백만 명 이상이 강제 수용소나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처럼 당대 세계는 절대왕정과 식민지에서 고통을 당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이상을 가진 선동가들에 의해 자유와 평등을
준다는 달콤한 속삭임에 휘둘릴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중우정치가 먹힐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중우정치란 무엇일까요?
아래쪽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중국의 공산당 이야기까지 가려면 이야기가 길어지니까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제 독일의 히틀러와 나치스 이야기를 잠깐 해 보겠습니다.
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에 들어갔던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스가 등장했습니다.
히틀러는 이전 글에서 설명드렸듯이 전체주의로 자신의 추종자들을 끌어모아
국가를 세우고 공포로 이탈자들을 다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
히틀러는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세 때 유대인들은 유럽에서 굉장한 미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장자된 유대인들이 비록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전 세계로 흩어져 나라를 잃고 떠돌이가 되었지만,
그들은 애굽(이집트)에서 처럼 왕성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최고의 자리에 앉아서 경제를 쥐락펴락했기 때문에
시기로 각지에서 미움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독일에는 '민족사회주의 노동당'이 있었는데,
흔히 독일어로 '나치' 또는'나치스'라고 합니다.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치스에 들어갔습니다.
나치스 정당에서는 공산당처럼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자들이 나라를 운영하는데
더 많은 힘을 가져야 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독일이 다시 부강해지려면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들 처럼 강력한 지도자가
있어야 하며, 돈만 밝히는 유대인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히틀러는 유대인들 600만명을 홀로코스트로 대학살을 했습니다.
아주 잔인한 인간이었습니다.
히틀러는 연설을 아주 잘하는 사람으로 중우정치로 사람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 둔갑해서 나타납니다.
고후11;13~15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당시까지만 해도 전세계 사람들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중우정치(衆愚政治)란?
'판단력이 부족한 어리석은 다수에 의한 정치'라는 뜻으로
언변이 뛰어난 소수의 선동가들에게 설득당하고 휘둘린
다수의 군중에 의한 잘못된 정책 결정이 내려진 정치를 말합니다.
히틀러가 독일 민족의 위대성을 외쳐 댈 땐 청중들이 열광하여 펄쩍펄쩍 뛰면서
환호성을 지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히틀러의 연설을 듣기 위해 구름떼 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가난하여 굶주리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좀 더 나은 내일을 약속하는
히틀러에게 소망을 걸고 몰려든 것입니다.
히틀러는 법치주의를 내세워 법을 악용하였습니다.
법치주의의 의미는 사람의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제한은 법에 따라 이루어져야 함을
요구하는 것이 법치 주의인데,
이때 법은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근거가 되는 동시에
정치권력의 행사를 통제하는 근거도 됩니다.
즉 법으로 권력을 통제함으로써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법치주의가 형식적인 법치주의로만 가면
법률 자체의 목적이나 내용은 문제 삼지 않고
법의 형식과 절차만 요구하게 됩니다.
형식적인 법치주의는 법의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그에 부합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형식적 법치주의는 권력자가 통치권을 강화하는데 일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결과 독일 나치, 히틀러의 '수권법' 이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1933년 히틀러는 의회의 동의 없이
(행)정부가 법률을 제정할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히틀러는 창당금지법, 편집인법, 영화법, 제국문화 설립 법령 등을 제정하여
일당 독재를 강화해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실질적 법치주의는 법의 지배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국민의 자유와 권리 보장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즉 자연법 사상에 입각하여
통치의 '합법성'과 더불어
'통치의 정당성'이 있어야 하며,
국가의 모든 통치 행위는
'헌법' 아래서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을 가지고
'인간의 존엄과 평등',
'정의의 실현'이 구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이로서 대부분의 민주국가에서는 법률의 내용이
헌법에 위반되는지를 심판하는
'위헌 법률 심판제도'
'권력분립 제도',
'탄핵심판제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
자유롭게 글 쓸수 있는 '출판의 자유',
단체를 자유롭게 조직할 수 있는 '결사의 자유',
자유롭게 시위할 수 있는 '집회의 자유'가 있습니다.
이렇게 정치권력에는 합법성과 정당성이 있어야 합니다.
정치 권력이 합법적으로 행사되었다 하더라도
권력행사의 의도가 헌법과 민주주의의 근본이념이나,
시회의 기본 가치 등에서 어긋날 때는 부당한 것으로 간주되어
국민들의 '저항권'이 실행됩니다.
여기서 이탈리아의 파시스트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서로마제국이 멸망당한 후 이탈리아 땅은 동고트, 롬바르트족,
프랑크(프랑스의 옛이름), 신성로마, 프랑스의 나폴레옹 등에 지배를 받았었습니다.
이탈리아도 매우 복잡한 혼란을 겪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유럽 지배 시대에는
이탈리아 청년들의 가슴에는 자유와 통일의 꿈이 간절했었습니다.
따라서 지배자들의 압박에 대하여 반란이 잇달아 일어났고
비밀 결사가 결성 되었습니다.
1870년 이탈리아는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었지만,
각 지방의 문화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이탈리아 사람들은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였습니다.
세계1차 대전에서 승전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자
이에 따른 경제 침체와 정치 불안이 심해지면서 이탈리아는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이 시기에 등장한 '무솔리니'는 사회주의에는 반대하면서도
러시아의 레닌의 공산당을 본보기로 하여 독재 노선을 펼치고
하나의 이념 아래 모든 사람이 복종 단결하는 '파시즘'운동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
'파시'라는 뜻은 다발로 묶은 막대에 도끼를 단 물건이라는 뜻이랍니다.
무솔리니는 저항하는 사회주의 세력과 농민 노동자들을 폭력으로 탄압하고
독일의 히틀러와 함께 제국주의와 인종주의를 내세우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전쟁은 패배로 끝나고 무솔리니도 체포되면서
파시스트당은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이때 일본도 동맹 갈아타기로 이쪽으로 붙어있다가 핵으로
완전 참패를 당했죠.
독일도 패전했고 히틀러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공산주의는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성경은 공산주의가 주장하는 평등과는 전혀 다릅니다.
성경은 돈이 악의 뿌리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악의 뿌리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필요를 버리라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필요 이상의 것에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10;22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시지
아니하시느니라
잠28;20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벼락 부자가 되려고 하는)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
잠21;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다
잠28;8
중한 변리(이자)로 자기 재산을 많아지게 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
잠22;16
이를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 질 뿐이라
잠13;22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느니라
딤전6;9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딤전6;9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서 자기를 찔렀도다
약4;2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 도다
이어서 계속...
첫댓글 -어느 신학 총장이 들은 하나님의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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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필도 목사 설교 4분 4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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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글입니다. 퍼갑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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