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공개된 화려한 넷플릭스 시리즈 '레오파드'(이탈리아 제목 Il Gattopardo)는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가 1958년에 출간한 같은 제목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다. 버트 랭카스터와 알랭 들롱 주연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합작 영화로 1963년 제작됐는데 62년 만에 넷플릭스 이탈리아가 다시 만들었다. 사회의 결점과 위선에 대해 비판하는 일이 시들해진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슴을 치게 만든다고 영국 BBC는 5일 밝혔다.
시리즈를 보지 않고 쓴 리뷰라 한계가 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린다.
"누군가를 위해서나 뭔가를 위해 죽는 일은, 물론 완벽한 보통의 일이었다. 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은 누군가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죽어가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거나 적어도 확실히 느껴야 한다." 이것은 람페두사 소설의 앞쪽 문장 중 하나다. 작가는 일 년 뒤 암으로 세상을 접었다.
이 말들은 소설의 주인공이며 시칠리아 귀족 가문의 얼굴인 파브리치오 공작의 것이다. 그는 낙원과 같은 빌라의 레몬 나무 아래에서 알 수 없는 병사의 시신을 발견한 일을 회상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이 장면은 이 작품의 실존주의 정신, '아름다운 것을 파헤치면 썩어문드러진 것이 나온다'를 함축하는 이미지다.
람페두사는 살아 생전 출판한 적이 없었다. 그의 유일한 소설은 1861년 새로운 이탈리아 왕국의 탄생으로 이어진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사회와 정치 운동을 뜻하는 리소르지멘토( Risorgimento), 더 넓게는 유럽 혁명기를 배경으로 살리나 가문의 몰락을 그린다. 민주주의나 자유주의, 사회주의 사상이 대륙을 휩쓸고, 노동자들이 토지 소유주인 젠트리 계급에 저항하던 때다. 젠트리 계급은 노동 여건을 악화시키며 가난을 퍼뜨린 책임이 있었다. 이 시기는 1870년 이탈리아 반도에 병합됨으로써 막을 내리는데 곧 로마 장악을 통한 이탈리아 통일의 완성이다.
그런 지주의 대표적인 예가 파브리치오인데 그는 이 격동의 시기에 귀족들이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것들을 바탕으로 전략을 짜나간다. 그는 사고만 치는 외조카 탄크레디 팔코네리(사울 난니)와 신흥 부르주아 안젤리카 세다라(데바 카셀)의 결혼을 추진하는데 딸 콘체타(베네데타 포르카롤리)가 탄크레디를 흠모하고 있어 어려움을 겪는다.
이탈리아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여겨지는 이 소설은 문화사학자 루시 휴즈할렛에 의해 "이탈리아어로 쓰여진 가장 사랑 받고 존경 받는 소설"이란 극찬을 들었다.
영국 작가 E M 포스터는 람페두사의 미완성 회고록 'Places of My Infancy'(1971) 서문에 "람페두사는 내게 너무 많은 의미를 지녀 공식적으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것을 읽고 또 읽어 그곳에 살아 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길이 있는가 깨닫게 만든다"고 적었다. 소설을 각색하는 것이 이제 두 번째이며, 시리즈물로 만든 것은 첫 번째인데 새 넷플릭스 시리즈는 이 작품을 21세기에 적용하는 신선한 사례이며 루키노 비스콘티의 고전 영화가 나온 지 무려 62년 만의 일이다.
날개 돋친 듯이 팔린 히트 소설
영악하게 역사를 다루고 놀라운 러브 스토리를 깔고 있지만, 람페두사의 소설은 처음엔 이탈리아 출판사의 입맛을 당기지 못했다. 두 대형 출판사 Arnoldo Mondadori Editore와 Einaudi는 재빨리 람페두사의 1956년본 원고를 거절했다. 영향력 있는 모더니스트인 편집자 엘리오 비토리니는 당시 이탈리아 문단을 휩쓸던 실험적 아방가르드 운동과 비교했을 때 너무 전통적이라고 주장했다. 넷플릭스의 각색에 역사 자문을 한 데이비드 레이븐은 "보수주의자들은 교회에 대해 너무 무례하기 때문에 싫어했고 귀족들에 대해서도 퍽 냉소적"이라고 꼬집은 뒤 "좌파들은 보통 노동자 계급의 긍정적 관점을 전달하지 않기 때문에 싫어했다"고 지적했다.
람페두사가 사망한 뒤 그의 책은 문학 에이전트 엘레나 크로체의 손에 들어가 펠트리넬리 출판사 데스크에 놓여졌다. 이 소설은 목소리 큰 폄하자들이 있었는데 앞에 언급한 비토리니와 반파시스트 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 등으로 1943년 파시스트 지도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몰락 이후 10년이 지난 시점에도 그 소설의 보수주의라고 믿었던 것들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 레이철 도날도가 2008년 뉴욕 타임스에 적었듯이, 이 소설은 "처음에는 진기하며 반동적인 것처럼 보이며 영화의 네오리얼리즘과 모든 예술 분야의 계급 자의식이 정점에 이르던 시기에 바로크로 되돌아감"을 의미했다.
하지만 출간됐을 때 그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6개월도 채 안돼 52쇄를 찍는 기염을 토했다. 아마도 리소르지멘토 이후 잘 살아 환멸을 떨쳐낸 세대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지만,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저자 루이스 아라곤이 상층 계급들의 "무자비함"과 "좌익" 비평이라고 묘사한 일 때문일 수도 있다. 람페두사는 사후에 유명한 스트레가상을 수상했으며 그의 명성은 문단의 거인으로 묘사돼 곧 동시대 인물들을 앞질렀다.
원작을 소화하기 어렵게 만든 것 중에는 너무 많은 이들이 신랄한 어조로 떠든다는 것인데, 이탈리아 사회 모든 부문에 적용된다. 람페두사 본인이 1896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소설 에 등장한 것과 같은 대저택에서 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스스로를 놀림감으로 삼는 일을 막지는 못했다. 그의 전기를 대필한 데이비드 길모어는 '마지막 레오파드'(1988)에다 람페두사가 인생의 말년까지 글 쓰는 일을 막은 것 중 하나는 그가 자신의 계급이 중복된다고 믿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소설의 첫 몇 쪽 안에, 람페두사는 파브리치오의 아내와 세 자녀를 업신여기며 고된 일을 하는 청중에게 자신을 프란시스 1세(두 시칠리아의 제왕)라고 소개하며 얼굴을 맞댄 채 "이 왕조는 얼굴에 죽음의 흔적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를 군계일학처럼 믿게 만드는 것과 거리가 멀게, 싫증 나는 파브리치오는 약점이 있었는데 부도덕하며 가족을 속이는 일이었다. 왕조가 무너지는 가운데 환멸과 진부해짐에 대한 두려움을 담은 이 소설은 모든 이탈리아 사회의 약점과 위선을 꿰뚫고 있다.
레이븐은 "이탈리아 통일이란 위대한 신화는 아래에서 위로 오르는(bottom-up) 운동이었는데, 이탈리아인들은 갑자기 아침에 일어나 그들이 살고 있는 정권을 진정 전복하고 싶어했다"며 "시칠리아에 대해 생각하면, 민간인들이 정권 교체에 이용됐다"고 지적했다. 시칠리아는 스페인 국왕들, 사보이 가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에 이어 스페인 부르봉 왕가의 지배를 받았다. 스페인 부르봉 왕가는 나폴레옹 전쟁 후인 1816년 나폴리와 시칠리아가 합병할 때까지 이곳을 점령했다. 그들은 1848년 전복됐다가 16개월 만에 다시 권력을 잡았다.
람페두사의 소설에서, 혁명가들은 급격한 변화를 갈망했지만, 주인공은 중간 계급들이 상류 계급들을 그저 대신할 것이라고 믿었다. 겉으로만 달라졌지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는 뜻이다. 이런 사회 변화에도, 현상 유지(the status quo)는 여전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우리가 상황이 예전 그대로이길 원하면, 상황이 변해야 할 것"이다.
레이븐은 "이것은 이탈리아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라 19세기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비스마르크는 진정 독일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그는 프러시아 융커(귀족)의 이해를 지키려 했으며, 그는 타협할 준비가 돼 있었다. 영국 귀족들은 세계가 굴러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위를 유지하려면 변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설은) 우리에게 엘리트층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추구하는 방식에 대해 약간을 알려준다"고 지적했다.
레이븐에 따르면 이 소설은 약간의 부정확함을 갖고 있지만, 람페두사는 그 시대의 정수를 포착했다. 레오 톨스토이나 빅토르 위고 같은 역사소설 거장과 달리, 작가는 파브리치오의 오만한 세상을 능수능란함과 위트를 섞어 안내한다. 레이븐은 "(당신이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이만큼 두꺼운 책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면서 "여러분이 (여기) 갖고 있는 것은 경제성과 스타일을 겸비해 거의 100년 전의 순간을 사로잡아 쓸 수 있는 믿기지 않는 능력"이라고 짚었다.
소설 원작이 남긴 유업
출판 5년 뒤, 이탈리아 문단에 기념비적인 이 소설의 지위는 람페두사처럼 귀족 가문 출신의 마르크스주의자 비스콘티가 영화로 각색해 연출함으로써 더욱 확고해졌다. 파브리치오는 버트 랭카스터가, 그의 외조카 탄크레디는 알랭 들롱이 호흡을 맞췄다.
Giornale dell'Arte의 책 편집자 아라벨라 시파니에 따르면, 비스콘티의 영화도 마찬가지로 신랄함과 이탈리아 사회의 상류층에 대한 아련한 엘러지를 잘 버무렸다. 그녀는 BBC에 "비스콘티는 깊이있게 이를 이해했다"면서 "누군가는 그 책이 비스콘티가 간직하고 있던 세계관에 잘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얘기할 것이다. 비스콘티도 왕자였으며 그의 조상들은 밀라노를 100년 넘게 통치했다"고 지적했다.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25분에 이르는 화려하기 짝이 없는 무도회 장면이다. 로튼 토마토의 평론 컨센서스는 왈츠 장면이 "영화에 바쳐진 시퀀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손꼽힌다"였다. 그러나 이런 화려함 속에서 랭카스터의 파브리치오는 자신이 죽는 순간을 상상한다. 랭카스터는 비스콘티가 캐스팅한 첫 후보가 아니었지만, 람페두사의 미망인을 만나 시간을 보내고, 시칠리아 가문의 아들을 입양하는 등 열심히 심층 연구를 했다. 개봉한 1963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지만, 평론가 데이비드 웨어는 같은 해 개봉한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2분의 1'보다 대중으로부터 덜 인정받았다고 주장했다. "레오파드는 영화팬들이 거대 예산이 투입된 작품들에 몰려가는 1960년대 초반 이야기 중 하나다." 메이저 감독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 영화를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라며 "일생의 매일을 이 영화 보며 살았다"고 고백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시즈의 웅장한 작품과도 맞먹는다.
넷플릭스 시리즈의 크리에이터들에게 이 작품이 무너져가는 왕조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 매력의 핵심이었다. 작가 겸 크리에이터 리처드 월로는 통일에 반대되는 것으로 새로운 분화가 유럽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며 "내가 처음 읽었을 때 우리는 브렉시트의 초입을 통과하고 있었으며, 내겐 리소르지멘토가 정반대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BBC에 털어놓았다. "이 책은 나로 하여금 국가에 대한 생각, 섬이 된다는 것, 우리 삶의 본질은 무엇인지와 급격한 변화란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소설의 사치스러움은 제작진의 구미를 당긴 다른 요소였다. 몇몇은 벌써 '더크라운'이나 '브리저튼' 같은 엄청난 성공을 거둔 넷플릭스 시리즈에 비교하고 있다.
레이븐에 따르면 리소르지멘토와 이 소설의 사건들은 150여년 전에 일어났지만, 파생된 결과는 이탈리아 사회에서 여전히 깊게 느껴지는데, 특히 북부와 남부의 정치적, 경제적 분화에서 그렇다. 그는 "아직도 아주 의미있다는 점은 아주 명확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혁명적인 시기가 얼마 만큼 무엇이라도 바꿔놓았는가는 중앙집권화된 이탈리아를 낳은 점 말고도 논란에 열려 있다. 시파니는 이 소설의 가장 유명한 구절을 보탰다. "만약 우리가 상황이 그대로이길 바란다면, 상황이 변해야 할 것"이 계속 정치 슬로건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느낌은 람페두사의 소설처럼 시간을 잊은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