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24.6.16(일)10;40-19;06 ★코스;아산역-장재천-천안천-곡교천-풍서천-보산원삼거리-광덕리2구마을회관-광덕사천안호두나무(유턴)-보산원삼거리- 고불로-넓티고개-수칠저수지-아산 맹씨행단-고불로-설화산길-온양천-송악로-외암로1096번길-외암저수지-외암민속마을-외암천-온양천-곡교천세월교-현충사길-현충사유턴-곡교천-충무교차로-온양민속박물관-온양온천역(67km) ★참가;쉐도우수, 아스트라전, 스머프차,특별 게스트 마라톤킴 -광덕사 부속암자 안양암을 배경으로-
6월은 호국보훈의 달로 6.25가 발발한지 74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6월은 조국을 위해 목숨바친 순국선열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한편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튼튼한 안보태세를 굳건히 유지해야 한다. 정전이후 71여년이 흐르면서 6.25전쟁이 점점 잊혀지고 있다. 전후 세대는 아예 관심도 없다. 자유는 거져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순국선열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6.25전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대열잔차 전사들은 6.25을 앞두고 천안, 아산지역에서 역사문화유적지를 탐방하고 충무공 정신을 되새기는데 있다. 이번 여정에 모처럼 홍토마가 동참하지 못했다. 집안일과 겹쳤기 때문이다. 대열잔차 라이딩인데 마치 성동고 16회 라이딩하는 느낌이다. 여정의 시작은 지하철1호선 아산역이다. 대열잔차 3명의 전사와 성동고 동문 마라톤킴이 특별 게스트로 참석했다. 아산역에서 가까운 장재천으로 향한다. 장재천을 따라가면 천안천과 조우한다. 천안천은 천안시내를 가로지르는 하천으로 봉강교에서 곡교천으로 흘러든다.
곡교천은 삽교천으로 흐르는 강폭이 꽤 큰 하천이다. 곡교천을 따라가면 남관교 부근에서 풍서천을 만난다. 풍서천을 따라 광덕사 휴게소 삼거리까지 오랫동안 어깨동무하면서 달린다. 광덕사휴게소 삼거리에서 해수길과 광풍로로 갈라진다. 해수길을 타면 광덕사에 당도하고 광풍로를 타면 마곡사에 이른다. 마곡사까지는 불과 18,4km이다. 광덕사로 들어가는 봉화루 입구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신령스러운 호도나무가 있다. 고려 1290년 중국 원나라에서 류청신(1257-1329) 선생이 들어올 때 어린 호두나무와 열매를 가져와
어린나무는 광덕사에 심고 열매는 자신의 고향집 뜰에 심었다고 한다. 호두란 이름은 호도(胡桃)로 오랑캐 나라에서 온 복숭아씨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천안 호두과자가 왜 유명한지를 이제야 알았다. 광덕사는 삼국시대 신라의 자장율사가 부처님사리, 가사, 화엄경 등을 봉안해 창건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 절이다. 임진왜란으로 타버리기 전까지 충청도와 경기도 지방에서 가장 큰 절 중의 하나로 사찰 소유 토지가 광덕면 전체 이르고 89개에 달하는 부속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2개의 부속암자만 남아있다. 광덕사에는 노사나불괘불탱, 조선사경 등 보물이 있다. 광덕산 자락을 품고있는 광덕면 지장리마을에는 서울 여의도의 1/4 면적에 1만여 그루의 호두나무가 자라고 있어 단일 수종으로는 국내 최대 호두나무숲 단지이다. 고 최종현 회장은 1970년대 초 벌거숭이 광덕산에 30센치 짜리 호두나무 묘목을 심었고 그가 심은 나무들은 우량목으로 자라 매년 가을 풍성한 열매를 쏟아내고 있다. 광덕면 지장리 마을에서 광대한 호두나무 숲을 주민들에게 구역 책임제로 가꾸게 하고
거기서 나는 호두는 수확한 만큼 다 가져가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하였다. 고 최종현 SK 선대회장이 이 숲의 1대 숲지기이다. 광덕사에서 유턴하고 보산원로를 타면 넓티고개가 나온다. 넓티고개는 약 2,5km에 이르는 긴 고갯길이다. 고갯길은 언제나 아름차다. 나이가 들어 히든파워를 장착하고 달린다. 히든파워도 열이 과하면 시동이 꺼질때도 있다. 계속해서 페달링을 해주어야 한다. 넓티고개를 넘으면 고불로로 이어지고 수철저수지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어서 맹씨행단이 나온다. 맹씨행단은 청백리 맹사성(1360-1438) 집안의 고택이다.
ㄷ자형 중앙 2칸에 커다란 대청을 두고 좌우에 온돌방을 두었다. 앞마당 한쪽에 큰 은행나무가 있어 행단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맹씨행단은 최영 장군이 물려준 집이라고 한다. 맹사성(호 고불)은 최영장군의 손녀와 결혼하였다. 맹사성은 조선 초기 황희 정승과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재상이자 청백리의 상징적인 인물로 우의정 좌의정까지 지냈다. 황희는 강직하고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추진하는 인물인데 반해 맹사성은 자신의 의견을 내더라도 분명하게 개진하기보다는 우회적으로 신중하게 의견을 내는 스타일이었다.
한마디로 부드러운 성품의 호인이었지만 나쁘게 말하면 물러터진 사람이었다는 소리로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했다. 맹사성의 조부인 맹유는 고려말기의 고위 관리로 최영 장군과 친구 사이였으며, 아버지 맹희도는 정몽주의 친구였다. 맹사성은 말년에 고향인 온양에서 여생을 보냈으며 1438년 78세 일기로 사망했다. 맹사성이 한양에서 이 세상 하직하는 날 세종이 모든 국정을 뒤로한 채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문상했다고 한다. 맹씨행단 여성 문화해설사와 우연히 마주쳤다.
해설사의 말에 귀담아 들었다. 맹사성에 대한 공부를 사전에 했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것은 없었지만 맹사성이 검은 소를 타고 다니며 피리를 부는 재상이라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소리다. 맹사성은 검은 소를 즐겨 탔다고 한다. 맹사성이 죽자 소도 따라서 죽었다고 한다. 맹사성 묘소(경기 광주시 직동 산27) 인근에 흑기총(검은 소 무덤)이 있다고 한다. 문화해설사와 작별인사를 하고 외암민속마을로 향한다. 이곳에서 약 7km 거리다. 설화산(447,5m)를 사이에 두고 온양천과 금곡천이 양쪽으로 흐르며 반대편 마을이 외암리다.
고불로와 설화산길, 온양천 둑길을 따라가다가 송악로에서 외암로1096번길(농로길) 타면 외암저수지가 나온다. 외암저수지는 산속에 들어앉은 아담한 저수지다. 외암저수지에서 내려가면 외암민속마을이 등장한다. 외암민속마을은 살아있는 민속박물관으로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처럼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곳이다. 외암리마을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예안 이씨 집성촌이다. 설화산자락 남서쪽 양지 바른 곳에 마을이 들어섰고 마을 앞으로 외암천이 흐르는 배산임수 지형이다.
마을은 약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참봉을 지낸 진한평의 맡딸과 혼인한 안동의 예안 이씨 이사종이 들어와 살면서 부터다. 마을 이름은 외암 이간(1677-1737)의 호에서 유래했다. 마을에는 기와집과 초가집 등 전통한옥 60여 채가 돌담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있다.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고택은 참판댁이다. 참판댁은 이조참판을 지낸 퇴호 이정열이 고종에게 하사받은 집이다. 고종의 아들 이은(영친왕)의 스승이기도 한 퇴호 이정열은 일본의 굴욕적인 조약에 울분을 참지못하고 고종에게 상소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낙향한다.
이때 고종이 하사한 '퇴호거사' 현판이 지금도 사랑채 앞에 있다. 참판댁 연엽주가 유명하다. 누룩과 고두밥을 연잎에 싸서 따뜻한 곳에 두면 술이 된다. 참판댁에서는 직접 채취한 연잎으로 연잎주를 만들어 판매한다. 건재고택은 영암군수를 지낸 이상익(1848-1897)이 살던 집으로 외암마을을 대표하는 고택으로 가장 빼어난 조경과 건축미를 자랑한다. 외암리민속마을에 왔다하면 꼭 봐야할 곳이다. 독도법 명 교관이었던 쉐도우수는 약도를 보고 찾아갔지만 발길을 뒤돌려야만 했다. 미로와 같은 돌담길로 이어져 있어 쉽게 찾지못했다.
건재고택은 개방시간이 지나 문이 굳게 잠겨있어 실망스러웠다. 그외에 교수댁, 감찰댁, 풍덕고택 등을 둘러보았다. 외암민속마을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과 적절한 인공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옛 가옥과 정원 돌담길 등이 원형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현재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참판댁, 신창댁, 풍덕고택은 민박도 가능하다. 외암마을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조선시대에 머무르는 기분이 들어 더욱 값진 경험이다. 돌담길을 걸으면 타임머신을 타고 마치 조선시대로 여행온 기분이 든다. 고택에서 팥빙수로 지친 몸과 갈증을 해결하고 현충사로 향한다.
아스트라전이 유사하였다. 외암민속마을에서 현충사까지는 약 11,5km이다. 외암천과 온양천, 곡교천을 거쳐 현충사길을 타면 현충사가 나온다. 현충사는 임진왜란 때 혁혁한 전공을 세운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방화산(167,6m)자락에 위치해 있다. 경역면적은 16만3096평이고, 주요시설로는 본전, 구본전, 유물관,고택, 활터, 정려, 이면의 묘소가 있다. 본전은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유물관에는 난중일기, 서간첩, 임진장초, 장검, 해전도 등이 있다. 현충(顯忠)이라는 이름을 붙여 세워지게 된 시기는 숙종 32년(1706년)이다.
현충사라는 현판은 숙종이 친필 사액으로 직접 내린 것이다. 현 현충사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성역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온양온천역으로 향한다. 곡교천을 건너 충무로를 타고 온양민속박물관을 거치면 온양온천역에 당도한다. 장시간 초저녁까지 라이딩한 것은 오래간만이다. 이번 여정은 천안 아산지역의 역사문화유적지를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으며 좋은 경험을 축적한 것이 큰 소득이었다. 가느곳마다 기화요초와 산천초목들이 반겨주고 시원한 녹색 바람까지 선사해 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코스도 매우 훌륭하여 지루한 줄도 모르고 내내 기분이 상쾌하였다. 일람첩기(一覽輒記)한 쉐도우수는 오래전에 다녀간 코스이지만 기억의 편린들을 소환하여 요리조리 빈틈없이 기똥차게 안내한다. 이번 여정은 인생에 남을만한 멋진 추억으로 기록될 이다. 홍토마가 참석하지 못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홍토마는 대열잔차에 촉매제 역할을 하는 알토란 같은 자랑스런 보배다. 아스트라전은 홍토마의 사진사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대열잔차 전사들과 자전거 여행을 하면 할수록 재미가 넘쳐나고 언제나 즐거움이 가득하다. 대열잔차 브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