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머리 들어서면서,
기다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오는 봄을 우리는 그렇게
목 놓아 기다렸는지 모른다,
이 계절 산천은 곳곳마다 꽃이요,
가는 곳마다 꽃향기다,
바람이 슬쩍 뒤척거리기라도 하면 향기는 여인네의
속살 향기처럼 사방팔방(四方八方)으로 분내 되어 퍼진다,
그냥 바라만 보아도 풍덩 빠지고 싶은 풍경들이다,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화향백리(花香百里)라
꽃에 향기는 백 리를 가고 주향천리(酒香千里)라
술에 향기는 천리를 가고 인향만리(人香萬里)라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 하니
이 봄 시절 인연이 좋아 길을 나선 우리는 말 그대로
봄 소풍 나온 객이다,
오늘 함께 할 인연들은 참 많은 세월을 그렇게 살아냈고
평균 나이 일흔을 넘긴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인생고수들이다,
다만 후유증이 있다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을까 하는 푸념만 빼면 어울리기가
더 없이 좋은 나이들이다,
그렇다고 어쩌겠는가,
세월은 누구 하나를 편애하지 않고 공평무사(公平無私)
한데 다만 우리가 그것을 트집 잡을 뿐이다,
꽃잎이 떨어진다고 어찌 바람만 탓할 수가 있겠는가,
거울 속 내 모습이 변했다고 어찌 거울만 탓할 수 있으랴,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세월인데 무슨 수로 막겠는가,
새벽 6시 아직 어두움의 잔재가 가시기도 전에 동내 어귀에서
함께할 일행 중 오늘의 주인공 손위 처남 내외 와 조우했다,
올해로 팔순을 맞는 손위 처남 이시다,
오늘 소풍도 팔순 축하를 겸한 형제들의 봄 소풍 나들이다,
안 보면 안부가 그립고 만나면 반가운 얼굴들,
떼내야 떼낼 수 없는 인연이니 부모님이 맺어준 피를 나눈
끈끈한 인연들이다,
잠시 그간의 안부에 무탈함에 안도하며 차는 익숙한 동내
골목길을 빠져나와 다음 행선지로 떠난다,
도로는 바쁜 차들로 빈틈없이 차있다,
모두 바쁜 일상을 부지런히 사는 사람들이다,
산다는 건 뭔가 하지 않으면 생기가 없는 시든 삶이다,
그렇게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또 한무리가 기다리는 여주에
도착 숨차게 달려온 차는 씩씩거린다,
그곳에는 이 댁의 넷 딸 중 세 딸들이 목놓아 기다고 있다,
모두 뛰어난 미모에 좋은 호시절에 태어났으면 크게 한자리할
인물 들이지만 때를 못 만나 그저 평범하게 살 아들 가는 사람들이다,
평범하다는 건 순탄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한바탕 격한 반가움에 얼싸앉고 기쁨을 나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나이는
사람이 그리운 계절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시인 고은 선생 시 중에 올라갈 때 못 본 것을 내려올 때 보네
라는 시가 떠오른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렇게 살았는지 모른다,
사는 일이 바빠서 미처 챙기지 못하고 보낸 것들이 그렇고
한눈팔 시간조차 없어 앞만 보고 살아온 삶이 그렇다,
그러니 얼마나 고단한 삶이었던가,
그렇게 스치고 그냥 보낸 삶들이 회안 삶으로 내 앞에 섰을 때
늦었지만 남은 인생 알뜰히 살뜰히 헤프게 살지 말고
마들게 보내야 하지 않을까,
옹졸하지 말고 소심하지 말고 옹색하지도 말고
좀 더 관대하고 관용도 베풀고 숙제처럼 살지 말고 축제처럼
살다 감이 인생 잔고를 가치있게 쓰는 일이 아닐까 싶다,
각설하고
그렇게 들뜬 마음들은 풍선처럼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난다,
오늘 행선지는 강원도 삼척이다,
다시 출발 서있던 자리를 그렇게 밀어내고 차는 어느새
영동고속도로를 달린다,
가는 길마다 꽃들이 만개해 있다,
오는 동안 휴게소에 들려 숨 고르기도 하고 구비 진 대관령을
미끄러지듯 그렇게 내려온다.
저기 저기가 내 고향 강릉이다, 산 좋고 물 좋은 강릉,
나는 이곳에서 내 유년의 시절을 보냈다,
아름다운 고향 강릉 아이 러브 유,
지금부터 해안 길을 따라 삼척으로 갈 참이다,
풍 경 1,
가는 길에 오죽헌도 구경 할 참으로 신작로를 두고 지름길로
들어선다,
솔밭 길이다,
강릉이 고향이지만 구석구석 다 알 수가 없으니 이 길은 처음이다,
우리는 가끔 잘못 들어선 길에서 새로운 지도를 그리듯
낯선 길에서 귀인을 만나듯 왠지 그런 예감이 촉을 세운다,
처음이지만 낯설지가 않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곳에 구불구불 실금처럼 그어진 길이 보인다,
사철 푸른 소나무 한자리에 오래서 있어 풍경이 된 나무들이다,
너무 아름답고 정겹다,
이 풍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허공을 만지고 싶어 창문을 열었다,
상큼한 솔향기가 코끝을 진하게 걷어차고 지나간다,
코끝이 얼얼하다,
작은 새들이 그들만의 언어로 지져대며 어디론가 날아간다,
숨을 참았다 내쉬는 것처럼
숨을 참고 있는 동안 시간이 멈출 수만 있다면
몇 번이고 숨을 참아 보고 싶다,
구불구불 휘어진 길 끝자락에 물동이에 채워진 물처럼
저수지가 성큼 눈으로 들어온다,
산자락에 매달린 담수용 저수지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다,
저수지 주변에 몇 채의 집과 그 집 울타리에서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린 빨간 복사꽃이 저수지 물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향을 피운다,
소담하게 펼쳐져 있는 저수 가운데는 파란 하늘이 잠겨있다,
알을 품듯 그저 조용한 아침 풍경
시간만 허락한다면 며칠이고 자리 펴고 머물고 싶은 곳이다,
낯선 길에서 맛보는 이 신선한 풍경 오늘 내 지도에 기록한다,
언젠가 이 길을 다시 한번 더 오리라,
아쉬움이 있어야 그곳이 더 오래 기억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아랫마을에는 한옥촌이 고풍스럽게 자리하고
길가는 우리를 불러 세운다,
그 손짓에 냥 갈 수가 없어 경내를 한 바퀴 돌고 그곳에 풍경을
마음속에 담고 다시 떠난다,
참 아름다운 마을이다,
풍 경 2,
오죽헌 마당을 지나 경포로 가는 길,
강릉 하면 대표적 명소가 경포대가 아닐까,
누군가 겨울의 자식이 봄이라고 했던가,
동면을 이기고 나선 봄기운은 참으로 대단하다,
묵은 가지에서 음을 틔우고 가지마다 생기를 느끼게 하니 말이다,
길 양옆으로 줄지어 서있는 벗 나무들,
가지마다 하얀 꽃송이들이 빈틈없이 매달려있다,
누군가 불러 주지 않았을 때는 그냥 잡초였지만
누군가 이름을 지어주니 꽃이 되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는 각자의 감성을 꺼내 내 보이니 일곱 빛깔
무지개가 되어 세상 밖 풍경과 너무도 잘 어울려린다,
이걸 보지 못했다면 몰라도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은 이상
뭔가 느낌을 적어야 하지만 그 어떤 찬사로도 표현이 어려운
풍경들이다,
한마디로 그저 굳이다,
우리는 어느 한순간을 살기 위해 여러 날을 기다리기도 한다,
각진 모서리가 둥글어가는 세월을 살아내고도 둔한 느낌은
그것을 인생이라 하고 그 모든 것을 합리화하고 만다,
그만큼 산다는 건 고단한 일이고 여유마저 짓뭉개 버린다,
그런 일상에서 오늘 히루 일탈은 숨구멍이고 쉼표다,
저만치에 경포 호수가 보인다,
호수 둘레로 꽃들이 만개해 바람에 너울거린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걸어서 이 꽃길을 걸어 보고 싶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보다 이 작은 아름다움에도 가슴
풀어헤쳐 놓는 걸 보니
인생 여자는 구십을 먹어도 거울 앞에서 늙어가고
남자는 왕년에 나를 그리워하면서 산다지,
그 옛날 이곳은 내 놀이 터였는데 말이다,
풍경 3,
태초부터 파도는 단 한 번도 쉰적이 없다,
반복에 반복을 시곗바늘처럼 세월과 동행했으리라,
긴 백사장 실금처럼 그어진 길옆으로 해송이 짓 푸르다,
우리는 지금 경포대에서 해변길을 따라 삼척으로 가고 있다,
강문을 지나고 안목을 거치고 송정으로 이어지는 해변길,
참으로 낭만스럽다,
금강산도 식후경라고 했던가,
약간의 허기를 느낄 즘 이곳에 올 때마다 들리는 식당에서
한상 푸짐한 밥상을 받는다,
수다에 막걸리 한 잔도 곁들여서 풍미를 나눈다,
살면서 먹는 즐거움을 빼면 무슨 재미
아마도 바람 빠진 풍선 같을 거다,
다시 길을 나선다 안보공원 탐방 그리고 정동진을 거쳐
동해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품 나게 비싼 커피도
한 잔씩 하고 기념사진도 찍고 소풍 기분 제대로 낸다,
가는 내내 해변을 끼고 동해 황에 도착 그곳에서 횟감도 사고
대계도 푸짐하게 장보고 룰 룰 랄 랄 하며 삼척에 도착,
풍경 4,
숙소 입실을 마치고 시장 봐온 해산물로 저녁 만찬을 나눈다,
용왕님 밥상이 부럽지가 않다,
가족 모두가 자리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참으로 귀한 선물이었다,
이렇게 모인 자리가,
거울을 보듯 서로 늙어가는 세월을 함께 한다는 게 축복이 아닌가,
이 여세에 여흥을 빼 놀 수가 있으랴,
우리는 가족끼리 처음으로 노래방으로 갔다,
천정에 매달린 무드 등이 네온처럼 껌벅거린다,
나이트클럽에 가면 사회자가 흔히 하는 말
아저씨 아주머니 오늘만큼 가정을 버리시고 신나게 춤추고
신나게 놀다 갑시다,
ㅋ!~
오리 모두는 그랬다,
신나게 폼 나게,
그리고 해변의 야경을 가슴에 쓸어 담고 산책을 끝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풍경 5,
다음 날 아침 깨우지 않아도 제시간에 기상해서
시간표대로 시계처럼 움직인다,
간단한 아침식사 그리고 숙소를 나와 어제 왔던 길을 되돌아
상경했다,
각자 내일을 위해 아쉬움을 가슴에 앉은 체,
여주에서 점심을 마치고 기약 없었지만 바람만 가지고
잘 있어라 잘 가라 그렇게 1박2일 일정을 마무리했다,
즐거운 시간이었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모두 건강하고 내내 행복 하기를 손 모아 기원합니다,
2024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