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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권위와 탐욕을 버린 하나님의 자녀들 원문보기 글쓴이: Daniel
공산주의, 나치스, 파시스트는 모두 '전체주의'입니다.
'전체주의'라는 말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자신의 파시스트 정부를 규정하는데 사용한 후에
널리 유행하게 된 단어입니다.
'전체주의 국가'는 무제한의 권력을 가진 독재자가 비밀 경찰을 두고
국가 조직체와 개인의 인생을 통제하는 국가를 말합니다.
전체주의들의 공통점은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미워하고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은 사탄이 배후에서 조종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위 세 가지 국가체제는 전체주의 국가라들이라도
추구하는 이념이 각각 다릅니다.
1917년에 10월 혁명으로 세워져 70여년 간 이어간 최초 러시아 공산주의는
계급 없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세계 전체를 목표로 하고,
중산층, 상류층과 종교를 부정합니다.
1922~1942년에 출현한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시즘은 민족주의가 중심이며,
동영상 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K3leTI33qtg
구호와 경례를 통한 힘의 집결! 이것이 얼마나 강력한 세뇌가 되는지!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tG56d9q7bkY
1932~1945년에 정권을 장악했던 독일 나치즘의 히틀러는 게르만 인종의
범세계화 인종주의가 중심축입니다.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lN5dR-bO-SQ
나치스와 파시스트들은 공산주의를 지향하지 않습니다.
나치는 개인의 재산을 용인했으나 고유한 권리가 아니라,
위탁재산으로 취급하면서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회수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지향했었습니다.
1933년에 독일 나치는 반유대주의와 반공주의를 중심으로하는
정강(정책의 큰 줄기)을 내세워 정권을 장악했는데,
그것은 바로 소련 공산주의가 독일을 점령할 수 있다고
유권자들을 위협한 것이었습니다.
나치는 공산주의의 위협을 이용해서 추종자들에게 그들의 권리를 포기하고
충성하게 만들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는 화려한 말빨로 이런 선동에 유능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전체주의의 이념이 달라 공산주의를 배격하면서도
레닌- 스탈린의 독재를 본보기로 전체주의 독재를 실행했습니다.
특히 공산주의와 나치즘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협력하는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두 이념이 협력해야만 하는 이유는 유럽에 공동의 적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나치와 파시스가 소련의 어떤 점을 본받아서 어떻게 만행을 저질렀는지,
또 소련이 세계를 어떻게 공산화시켰으며,
공산화된 나라들이 스탈린을 본보기로 삼아
얼마나 악질적인 만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러시아는 성경에 등장하는 곡의 나라 마곡입니다.
공산주의의 만행은 전세계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아마 그 시대에 살았던 크리스찬들은
공산주의가 판을 치던 그 시대가
마지막 요한 계시록의 시대가 아니였나 착각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전체주의의 만행들이 딱 요한계시록의 짐승,적그리스도스와
닮았었습니다.
이후 발발한 세계2차 대전을 겪은 크리스찬들은 당시 전쟁 상황이
요한계시록의 재앙 사건이 쏟아진 것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전쟁 무기도 발전했고, 희생도 컸엇습니다.
세계2차 대전 이전,
세계1차 대전 이후에 러시아에서는 레닌 말고는
통치불능 상태인 러시아를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볼세비키당의 반대파인 멘셰비키당과 입헌민주주의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레닌은 주저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러시아를 공산주의로
바꿔보겠다고 발벗고 나섰습니다.
적수들이 쭈뼜거릴 때 제대로 치고 들어간 것입니다.
당시 러시아 내에서 산업 노동자가 전체 인구의 1~2% 정도였고,
이 소수파 중에서도 53%의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볼셰비키를 따랐고,
볼셰비키 공산주의 이념에 주동적인 사람들은 대개가 농민들과 지식인들이었습니다.
레닌은 모든 독재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독재란 권력을 말하는 것으로 어떤 것도 권력을 제한할 수 없고,
어떤 법률로도 한정할 수 없다."
"또한 어떤 규칙으로도 권력을 금할 수 없으며, 직접적으로 억압에 의지한다."
레닌은 반대자를 위협하기 위하여 무제한의 테러를 사용했습니다.
레닌은 총체적이고 무자비한 폭력으로 사회질서를 잡아야 하고,
그런 폭력은 짧고 강력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중들은 장기간의 폭력은 참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체카'라는 비밀 경찰을 신설하였고,
이 비밀 경찰이 주도하는 '혁명재판소'를 만들어서 사법 업무를 맡겼습니다.
레닌의 정책은 도소매 거래, 교통, 서비스업, 교육기관, 공장, 토지 등
모든 물적, 인적 자원들을 국유화해서 경제를 중앙정부에 예속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레닌은 러시아의 내전이 치러지는 동안에 독립했던 우크라이나와 코카서스 등
러시아 땅덩어리와 인접한 중앙아시아의 인접지대들을 다시 점령했습니다.
이 지역들은 소비에트와 병합하여
1922부터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합'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줄여서 '소련'이라고 합니다.
'소비에트 연방 15국' 에는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자키스탄,
그루지아(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몰도바, 벨라루시, 러시아입니다.
소련은 모든 것을 국유화하고 1928년에는 공산당을 관리할 관리공무원만
무려 400만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 비노동자 계급의 관리들을 러시아의 모스크바에 본부를 둔 공산주의 정부가
신변을 보호하고 생계를 보장해 주었다고 합니다.
공산주의 관리 공무원들은 특권을 지닌 계급으로 형성했으며,
자신들의 집단 이익을 중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조직을 구성하고 나서는 공산주의 원리를 벗어나
자기들만의 이익을 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유럽,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까지 공산화시켰습니다.
그 나라들은 아래와 같습니니다.
유럽: 독일의 동독, 루마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알바니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
남미 ; 쿠바, 니카라과
중동; 아프카니스탄, 시리아, 예멘, 이라크
아시아; 북한, 중국, 몽골,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아프리카: 알제리, 앙골라, 모잠비크, 잠바브웨, 탄자니아,
세아셀, 콩고, 캄푸치아, 베냉, 에디오피아,
2차 세계대전 후, 약 33개국이 공산화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빠진 나라들은 스스로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레닌과 스탈린의 이야기로 어떻게 공산주의가 대학살을
감행하게 되었는지 그 발단을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러시아 볼셰비키 공산당들은 기업이 크면 클수록 경영이 더 잘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의 부실경영으로 생산성은 1913년 보다
5분의 1로 떨어졌고,
1921년 초 소련에는 공산주의 실현으로 각 도시들에게 부과했던
각종 문제들이 염증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페트로그라드 근처의 크론슈타트의 해군기지에서 반혁명 반란이 일어났고
이들은 국민들에게 공산당 독재를 끝내자고 호소했습니다.
동시에 페트로그라드에서는 식료품 부족으로 대규모 파업이 발생했으며,
탐보프 성에서는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레닌은 이런 반항 행위에 독가스를 살포하고 잔인한 군사적 수단으로 분쇄했습니다.
이때 소련에는 가뭄으로 촉발된 대기근이 발생해서 520만명의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기근에 소련의 인민들은 인육을 먹었답니다.
이 참혹한 상황에서 미국의 구호청이 소련에게 도움을 주어 다행히 소련의
2천5백만 명을 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위와 같은 대기근이 공산화를 한 거의 모든 나라들에서 발생했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진 소련 내에서는 생산자들과 중간 상인들 사이에서
'체카'의 단속을 피해서 개인 거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본질적 요소를 없애버리겠다고 하였지만,
자본주의는 지하로 숨어들었을 뿐 계속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얼마지나지 않아 이 자본주의 지하경제가 공산주의 경제 보다 앞서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공산정부는 의도적으로 화폐를 증대시켜서 인플레이션을 조작했습니다.
1923년에는 소련의 물가는 1917년 보다 1억배가 뛰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 놓고,
레닌은 '적의 첩자, 투기꾼, 강도, 불량배, 반혁명 선동자, 독일 첩자' 라는
광범위한 부류의 범죄자들을 만들어서 재판 없이 처형한다는
법률 초안을 만들었습니다.
또 레닌은 인민들을 먹여살린다는 구실로 교회 재산을
무자비하고 야비하게 차압하고 수천 만의 금화로 바꾸었습니다.
그렇게 차압한 교회 재산을 기근을 줄이는데 쓴 것이 아니라,
소비에트 운영 자금으로 들여보냈습니다.
감히 하나님의 교회를 팔아먹은 레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레닌은 1922년에 뇌졸증으로 쓰러졌습니다.
이때, 레닌은 건강 악화로 굉장히 예민해졌습니다.
이후부터 레닌은 자신의 독재에 거스르는 수백 명의 경제학자,
철학자, 멘세비키당, 진보당에 속한 사람들을 색출하여 서유럽으로 추방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후 스탈린 정권에 있었던 사람들에 비교하면
차라리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더욱 악랄해진 레닌은 결국 1923년 3월 다시 뇌졸증으로 쓰러져
말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8개월 후에 죽었습니다.
서기장이었던 '요제프 스탈린'이 이때를 틈타고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이 스탈린은 레닌 보다 더 악질이었지만,
자신의 가학적 성격과 편집증을 숨기고 공식적인 발표를 할 때는
온건하고 쾌활한 태도로 자신의 세력을 끌어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정적들을 하나 씩 제거해 나갔습니다.
스탈린은 그루지아(조지아) 출신으로
원래 러시아 정교회의 성직자를 꿈꾸던 사람이었으나,
공산주의 혁명에 감화되어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공산주의 운동가가 된 사람입니다.
그는 레닌에게 복종 하고 행정수완을 잘 발휘함으로써 레닌의 신임을 얻게 되었는데,
스탈린은 한 번도 레닌의 판단에 이의를 내비췬 적이 없다고 합니다.
스탈린은 높은 자리에 올라 정권을 쥐기 위해 레닌의 눈에 거스르지 않고
그저 숨죽이며, 조용히 관리들을 감독만 했습니다.
레닌은 그렇게 순종하는 스탈린을 급승진시켰고
1922년에는 당서기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이때부터 스탈린은 공산당의 핵심 간부들을 통솔하게 된 것입니다.
스탈린은 완벽히 레닌에게 복종 자세로 나가면서 자신의 발톱을 감춘었던 것입니다.
스탈린도 정권을 틀어쥔 후에는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자들만
당의 리더들이 될 수 있도록 승진시켰고 자신의 아군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공산당 행정부의 관리직에 임명하는
'노멘클라투라'라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노멘클라투라'는 라틴어로 '특권을 갖는 간부직 리스트' 입니다.
즉 권력유지와 입신출세를 지향하는 보수파 엘리트들이었던 것입니다.
노멘클라투라가 되기 위해서는 '당 기관의 지도적 간부'의 추천을 받고
'당 간부회의'에 의한 임명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노멘클라투라가 되면 높은 소득을 보장받고 특권을 누리며 고급 아파트에
별장이 주어졌고, 게다가 노후가 되면 고액의 연금수령자가 됩니다.
공산주의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계급과 사유재산이 없는 사회주의의 원칙을 깨고
노선을 이탈했습니다.
소련에서 노멘클라투라에 속하는 엘리트는 70만명으로 공산당원
1700만 명의 약 4%였다고 합니다.
노멘클라투라의 가족들까지 합치면 특권계층이 약 300만 명이 넘었답니다.
이러한 특권을 가진 노멘클라투라들 중에는 자신의 특권을 이용하여
마피아와 손을 잡고 큰 돈을 번 사람들도 있었답니다.
스탈린은 공산당의 간부들에게 특별식료품점, 병원, 휴양지, 양복점, 화장장 등의
사용권 등 각종 특권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간부들이 스탈린에게 충성을 안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개들은 먹이를 주는 사람을 주인으로 섬기고 충성하거든요.
이러한 스탈린의 특권 엘리트 정책이 행정관료 계급을 안정시킨 것이고
약 70년 간을 공산주의를 부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공산주의에 평등은 결코 없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조직을 세우려면 반드시 지도부가 있어야 하고,
그 중에 한 사람의 지도자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악한 지도자들은 정권을 쥐어틀고 독재를 하려고 합니다.
권력을 잡으면 자신의 생각을 국민들에게 관철시킬 수 있는
파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혼자 힘으로 정권을 휘어잡을 수 없겠죠?
휘하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이빨에 먹을 것을 끼워주지 않고,
돈을 손에 쥐어주지 않는데 독재자에게 충성하겠습니까?
그러니 독재자들이 휘하의 부하들에게 특권을 주는 체제로 돌리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는 지도부 없는 국가는 있을 수 가 없습니다.
모든 국가권력은 국가의 질서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국민들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전체주의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에서도 발생합니다.
이 세상 어느 국가이든 공동체의 대립은 존재하고
그 대립을 해결하는 과정이 정치입니다.
이러한 정치적 해결과정은 대립을 조정하기 위해 대화, 타협,
설득을 통한 동의를 구하기도 하지만,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행위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자신이 원하는 정책이 관철되지 않았다고 해서
분노하여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어리석은 대중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우리는 수천년 동안 개, 돼지로 살다가
시민 혁명으로 피를 흘리고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민주주의를 이룩했고,
드디어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받고, 많은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헌법을 통해
1.육체뿐 아니라, 정신적인 만족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및
행복 추구권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2. 우리는 국가의 침해를 받지 않고 개인의 자유로운 생활 영역에서
사회, 경제의 자유, 재산권을 보장 받을 수 있고,
거주, 이전, 직업, 사생활 비밀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또 적법절차의 원리, 고문금지, 묵비권, 영장제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구속적부 심사제, 자백능력 제한과 증명력 제한, 형벌 불소급의 원칙, 일사부재리의 원칙,
연좌제 금지로 신체의 자유를 가질 수 있고,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통신의 자유로 개인이 국가에 의한
간섭과 침해를 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3. 우리는 국가에 의해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지 않고,
정의의 관점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로 법 앞에서 평등,
교육의 균등 기회, 종교의 자유를 보장 받을 수 있으며
법과 국민의 권리로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습니다.(시간이 걸리더라도)
4. 우리는 주권자로서 선거권, 국민 투표권을 가지고 국가의 정치과정에 적극 참여할 수
있으며, 공무 담임권으로 국가 공무를 담당할 권리도 있습니다.
5. 우리는 환경권, 보건권을 가지며, 국가의 사회보장 의무로 최소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고 실질적인 평등을 누릴 권리가 있고, 근로권을 가지며,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 행동권)으로 부당한 처우에 궐기를 할 수 있습니다.
6. 우리는 기본권이 침해당했을 때 청원권, 재판청구권, 범죄피해자 청구권,
형사보상 청구권, 국가배상 청구권으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국가로부터
보상, 배상으로 구제받을 권리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국민의 의무로서 납세와 국방, 환경 보전,
국가의 공공 질서유지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공산주의는 어떻습니까? 살벌합니다.
공산주의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국민 기본권을 말살합니다.
계속 봅시다.
공산주의에서 자신의 조직을 탄탄히 한 스탈린은 가학적 성격을 슬슬 드러내며
감추어져있었던 날카로운 발톱을 치켜들기 시작했습니다.
소련당국은 인민들에게서 모든 재산을 빼앗아 집단 농장으로 넘겼고,
집단화된 농민들은 연간 지정된 날 수 동안에
국가가 부과한 기준 생산고를 채워야만 했습니다.
농민들은 그 댓가로 최저 임금과 곡물을 배급으로 받았고
기준 생산고를 채우지 못한 인민들은 굶주려야 했습니다.
소련 정부는 이렇게 농민들을 착취한 농산물로 빵을 만들어
수백배의 이익을 챙겼습니다.
굶주린 사람들은 도둑질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스탈린 정권은 굶주린 시민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았고
도둑질을 하면 사형이나 10년간의 중노동을 시켰습니다.
이러한 스탈린의 법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이
16개월만에 12만5천 명이나 되었고 그중에 5천4백 명이 사형당했습니다.
또 스탈린은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일어난
농민들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하여 1932~1933년에 인위적인
기근을 발생시켰습니다.
그 방법은 이 지역들에서 식료품을 모두 빼내고
굶주린 농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지 못하게 군사를 배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인위적 기근으로 600만~700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한 소련에서는 집단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중노동 수용소로 이송시키거나,
시베리아로 추방시켰습니다.
게다가 스탈린은 혁명에는 적이 필요하다는 특이한 생각을 했습니다.
사태의 진전이 있으려면 반대 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적이 없으면 일부러 적을 만들어야 하고
그래야 대대적인 투쟁을 벌여 정적들을 적출해 낼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스탈린은 1930년대에 세계 역사상 잔혹하고 무차별적 숙청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범하지도 않은 죄들을 스스로 자백하게 만들고 고문했습니다.
이런식으로 스탈린은 비밀경찰인 '체카'를 통해 자신의 맘에 안 드는
당의 최고위 간부들을 제거하려고 억지로 죄를 만들어 구속하고
때려서 피가 터진 자리를 계속 채찍으로 때리며
심리적, 물리적 공포심을 일으켰습니다.
1937~1938년에는 당원과 일반 시민들에게도 대숙청이 가해졌습니다.
공산당의 평가 기준에 비추어 봐도 죄가 없는 사람들을 간단한 심리만으로
추방, 중노동, 사형선고를 내려 150만 명이나 처벌하였습니다.
소련 공산당 정부는 경찰 당국에게 할당량까지 정해주고 각 지역에서
거주하는 몇 %를 총살시키고, 몇 %를 강제 수용소에 보낼 것인지 지시했습니다.
1937년 모스크바에서는 3만5천 명을 할당했습니다.
이들 중 5천 명은 총살시켰는데,
숙청당한 대부분이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었습니다.
잘 배운 사람들은 통제하기 어렵고, 비판적이기 때문에
골치 아프니까 제거하려고 한 것입니다.
작가들의 글도 모조리 검열을 받았고, 친공산주의 논리 외에는 어떤 간행물도
출판되거나 배포될 수 없었습니다.
소련에서의 인쇄물, 공연 작품, 영화, 방송 보도들은 현실과 다른 것들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들에 적응하기 위해 인격을 분열시켜서 사실로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하므로 소련에서는 거짓말이 생존수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회윤리는 다 무너졌고,
모두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서 아무도 신뢰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해외 여행도 제한적으로 관리들만 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인이 외국인과 접촉하는 것은 간첩죄에 해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934년에는 17차 전당 대회에서 선출 되었던 중앙 위원회의 139명의 위원들과
후보 위원들 중 70%가 처형당했습니다.
레닌과 친밀했던 지노예프나 카메네프 같은 동료들도 고문을 받고
재판에 끌려나가 거짓으로 간첩활동, 테러행위, 자본주의를 회복하려고 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할 정도였습니다.
스탈린은 단 하루만에 5천명의 명부를 작성하고
재판도 하기 전에 미리 사형집행 영장에 싸인을 해 두었다고 합니다.
고문에 거짓자백을 한 사람들은 노동수용소에 끌려갔는데,
살아서 돌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소련의 주민들은 가족과 친척, 친구들 사이에서도
서로 반동분자로 고발을 하게 했고, 고발을 하지 않으면
고발을 하지 않았다고 처형했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무심코 내뱉은 말로도 잡혀들어가 처형당했습니다.
1937~1938년에 자행된 대학살로 볼셰비키의 공산당원들은 전멸을 했고,
스탈린에게 충성하는 신입당원들로만 채워졌습니다.
레닌 사망 후, 85.5%의 당원들을 갈아치운 것입니다.
따라서 시민과 관리들은 공포와 의심 속에서 서로 불신하고
적대감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또한 같은 시기에 16만5천 명이 하나님께 예배드렸다는 이유로 체포되었고,
그들 중에 10만6천810 명이 총살당했습니다.
이렇게 '반소비에트 행위'라는 명분으로 2년간 154만8천366명을 구금하였고,
그 중에서 68만1천692 명을 총살했고, 나머지는 모두 중노동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1941년에는 수용소 관리 기구인 '굴라그'가 운영하는 전체 수용소에
235만 명이 갇혀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갇힌 수용자들은 중요한 경제적 기능을 수행했는데,
대형 건설사업, 한대 지방의 벌목에 강제로 투입되었습니다.
소련에서 대숙청을 거치면서 스탈린은 '신격화'되었습니다.
'스탈린 숭배'로 그를 전지전능하며 오류가 없다고 세뇌시켰습니다.
1953년 스탈린이 죽을 때까지 그가 오페라를 맘에 안 들어 하면
작곡가는 스탈린 앞에서 엎드려 사죄해야 했습니다.
스탈린의 손가락 하나 까딱 하는 것에 목숨이 날아갈 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스탈린의 주변에는 아첨꾼들 밖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스탈린은 점점 소련의 실상을 모르게 되었고
허상으로 제작된 영화를 보면서 착각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신의 사회주의 추종자들에게
살인하도록 지시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세계에 적합한 사람들에게 살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현 세계의 사람들은 사라져 주어야 한다."라고 말한 그들의 주장이 후대에
대학살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건 완전히 사탄의 계략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은 난징 대학살과 마루타 생체 실험으로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고,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600만의 유대인 대학살을 감행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 후에 맺어진 베르사유 조약을 깨고 비밀리에
수천, 수만명의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1백만명이 넘는 군사를 모았습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도 손을 잡고 전쟁 준비를 했습니다.
1938년 주변의 체코와 폴란드 땅을 독일에 편입시키기로 작정을 하고,
소련의 스탈린에게도 불가침 조약을 맺고 폴란드를 나누어 먹기로했습니다.
그런데 독일이 소련을 배신하고...
엡6;10~12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함이라
이어서 계속.....
첫댓글
2018년 8월 28일 흠이 없는 붉은 암송아지가 2000년 만에 태어났는데
이스라엘 역사상 10번째랍니다.
이 소는 3년이 되어야 제사에 쓸수 있답니다.
그럼 제3성전이 곧 세워지는 게 수순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7년 대환란이 시작입니다.
https://youtu.be/hQ19oY3i9C8
PLAY
2018년 5월 14일 미 대사관이 예루살렘으로 옮김.
2018년 8월 28일 붉은 암송아지가 태어남.
이 소는 3년이 되면 제사에 쓰임.(2021년 8월 28일)
그런데 3년에 임신 기간까지 계산한다는 말이 있음??
그럼 2020년 겨울쯤에 제사에 사용할 수 있다는 소리인가??
2020년 6월 세계종교통합 선언식이 있을 예정!
주소를 잘못 찾은것 같습니다.
정치방은 여기가 아닙니다^^
정치가 아니라 마지막 때를 알리는 글입니다.
그런데 정치 주소는 어딥니까?
궁금하네요.
이 카페에 정치 글 많이 올라오던데
그 분들은 어느 방으로 갑니까?
이 글은 영적인 삶 방에 맞습니다.
그 관리는 등대지기님이 하실거니까
나팔님은 적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해 전하시기 바랍니다.
적그리스도의 나라도 정치이자
요한계시록의 종말의 때
성경 기록입니다.
정치 속에 우리의 삶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권세와 주관자들에게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사소한 것으로 시비 걸지 않는게 좋습니다.
나팔님의 글을 보아 이런 일로
시비 걸 수준은 아닌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침부터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수고해서 올린 글에 겨우 그런 멘트를 날리시다니..
읽어보기나 하셨는지..
저도 이 카페에서 2015년 초부터 수백 개의 글을 올렸던 사람으로
이모저모 잘 알고 있습니다.
@곧 대환란 ㅎㅎㅎ
시비가 아닙니다.
공산당 말씀으로 나열되 있길래 정치글은 그쪽에 올리시라 말씀드린 겁니다.
불쾌하셨다면 댓글을 삭제하겠습니다 ㅎㅎ
지우는게 편하겠습니까?
@진리의 나팔 그냥 두세요. 뭐.
공산당 제목만 보지 마시고
내용도 보시는 쎈스도 부탁드립니다.
@곧 대환란 한참을 글을 내려도 정치이야기만 나오길래 ㅎㅎ
수고하십시요^^
@진리의 나팔
현 세계 정세를 생각하면서 읽으시면 달리 보이실겁니다.
그래서 댓글에 동영상도 함께 줄줄이 달아놓은거니까
한 번 봐 보세요.
독이 될 내용 없습니다.
당짓기를 하자는 내용도 아니고요.
1번 글부터 보시면 이 세상은 하나님이 통치하셔야 된다는 내용으로 쭉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연단받아라님,
제 글 어디에 한국이 제사장의 나라라고 썼습니까?
읽지도 않고 자기 생각과 추측을 먼저 댓글로 다시는군요.
조급하십니다.
@연단받아라
님의 생각이 그런 거지
내 생각이 그런 건 아니기에
나도 오해받지 않기위해 답댓을
달았습니다.
댓글이라는 게 잘못쓰면 글쓴이를 오해하게 만들거든요.
전부 사상과 이념이라구요?
적그리스도 정부와 거짓 선지자가 님을 뭘로 미혹할 것 같습니까?
바로 이념과 사상으로 미혹합니다.
성경의 말씀을 비틀고 왜곡해서 말입니다.
@곧 대환란
그래서 공산당의 만행과 앞으로 올 적그리스도 짐승의 만행이 비슷하기에 애써서 글 작성해서
올렸더니
연단님은 님의 정치적 입장으로 제목을 보시는 듯 합니다.
당짓기할 생각 없으니까
제 글은 패스하시기 바랍니다.
@곧 대환란
곧 대환란 닉을
검색해 보세요.
다 사상과 이념 글만 올렸는가?
확인 없이 "전부 그렇잖아요" 이런 추측은 옳지 않습니다.
내가 "님은 글도 안 쓰고 댓글 놀이만 하고다니잖아요."
이러면 님의 반응이 어떻겠습니까?
생각하고 댓글 답시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연단받아라
그러니까 님의 댓글이 내가 그런 글을 쓴 것처럼 오해하도록 만든다니까요.
불현 듯 생각나도
상대방이 오해하지 않도록 하는 게 좋은 거라고요.
그리고 "다 사상과 이념이잖아요"
이 댓글도 틀렸습니다.
대충 읽고 대충 말하지 마세요.
@연단받아라
나도 그 정도는 압니다.
@곧 대환란
상세하게 생각해 보셨어요?
남이 애써서 써놓은 글 돌아다니면서 훈수들며 똑똑한 척 하지마시고
님의 글을 쓰세요.
님 댓글 달고 다닌 거 보면 하루에
한 개씩은 글 쓰고도 남을 시간입니다.
남한테 연단받아라 하지 말고
님이 연단 받으면
이렇게 돌어다니며 자기 생각만이 다 인줄 알고
우물 안에 개구리 식으로 남들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곧 대환란
기본적으로 하나님 앞에 연단을 받은 사람은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남들을 가르치려고 드는 사람이 아니라,
전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 차이가 뭔 줄 아십니까?
바로 님 처럼 이 글 저글 다니면서 훈수들고 선생질하러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가만히 조용히 글이 올라오면 읽고 깊이 생각하고 성경 읽고 기도하면서
묵상 좀 해 보세요.
여기저기 판단하러 돌아다니지 마시구요.
마치 님은 뭐 다 된 사람처럼
다 모든 것을 아는 사람처럼 훈수를 들고 둘아다니시는군요.
인문학과 역사 공부가 쏙쏙 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곧 대환란 진정들 하십시요^^
@연단받아라 연단님, 제 댓글이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제 댓글이 님의 입장과는 반대가 될 것이라는 것은 예견했지만, 이 정도까진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님의 댓글은 제가 다 읽어 본것은 아니어서 내용도 모릅니다. 다만 대환란님의 격한 반응으로 보아 내용이 부정적이었나 보다라고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고소해서 댓글을 단 것이 아니라 글이 정말로 명강의를 듣는것 처럼 마음에 들어서 감사를 표한 것입니다.
이 시리즈 4번에도 제가 감사의 댓글 단적이 있습니다.
퍼가는 사람으로서 그런 예는 갖추어야 된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화를 푸시고 좋은 아침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연단받아라 글 잘 읽었습니다.
사람은 화가 나면 자제력을 잃게 되고 실수를 하게 되지요.
그래서 서로간 조심해아는데, 저도 참 말씀하셨듯이 센스가 둔한 것이 문제입니다. ㅎㅎ
저도 조심하겠습니다.
주님께서 하루 속히 은혜를 회복시켜 주시고, 평안한 길로 인도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좋은 날 되세요.
막연하고 상투적인 공격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토론은 단순한 말싸움이 아니다.
정리된 생각의 나눔이다.
토론은 당사자의 생각과 수준을 그리고 실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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