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는 나일까요?
당신은 정말 당신인가? 나는 정말 나인가? 임이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자가 과연 얼마나 존재할까? 내가 나가 아니라면 그럼 누구라는 거냐? 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또 황당한 생각을 가질 것이다.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변신을 잘하는 카멜레온이다. 카멜레온은 모습의 색깔만 바꾸지만 사람은 표정과 모습까지 수시로 바꾼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끔씩 자아를 낯설게 생각할 때가 있다. 지금 현재의 이 모습이 과연 나란 말인가? 반문을 해보기도 하고 반성을 해보기도 한다.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에는 수없이 많은 이데아들이 존재한다. 아름다움의 이데아, 정의의 이데아, 올바름의 이데아, 인간다움의 이데아, 신성한 삶의 이데아 등 철학적 정의만을 내세운 이데아의 종류는 다 열거할 수 없다. 우리는 이데아의 세계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플라톤은 모든 이데아 중의 이데아인 " 선의 이데아 "를 말한다. 선의 이데아는 도덕적으로 우리가 흔히 선하거나 착하다고 말하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존재의 이유가 근원인 이데아란 뜻이다. " 사람의 존재의 이유 " 는 수많은 이데아 중 선의 이데아를 알고 실천하는데 있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이데아를 만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그 최고의 목표는 선의 이데아를 이루는데 있다. 미의
이데아나 진실의 이데아 조차도 선의 이데아를 앞서지 못하며, 선의 이데아를 통해서 완성된다. 선하지 않은 진실과 아름다움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이 세상의 어떤 진리와 이상과 종교적 가르침이라 하더라도 선함의 이데아는 능가할 수 없고, 선함의 이데아가 결부되지 않는 진리와 이상이라는 것들은 한낱 기만적인 사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데아 철학이다. 플라톤은 선의 이데아를 <국가론>에서 태양에 비유한다.
태양은 빛과 여양을 공급해 대상이 보이게 하고 만물을 자라게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의 이데아는 다른 많은 이데아를 만들어 내고 그 진실을 각성하게 만든다.
이데아 철학의 이론에 따르면 나의 참은 선함과의 일치로부터 가능해진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성선설을 주장했다. 성선설의 근거로서 인*의*예*지 4단과 측은지심*수오지심* 사양지심*시비지심의 4덕을 인간의 본성 속에 숨겨 놓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곧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근거로서 4단4덕을 내세웠다. 맹자는 또한 인의예지 4단을 천도天道라고 불렀다. 천도는 우주의 중심을 받들고 있는 네 기둥이며, 천도는 우주창조 이전부터 존재했던 근원적 사상이며, 천도의 사상에 의해 우주가 세상에 생겨났다. 결국 우주 창조의 원리는 4단의 선함을 근원으로 하며, 4덕의 실천이 곧 선함의 기준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우주의 창조원리가 선함의 기준인 4단4덕이라면, 인간도
우주의 분신체로서 그 존재적 기준이 4단4덕의 실행과 함께 가능해진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말과 제법무아諸法無我란 상반 되는 말이 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은 하늘과 땅, 우주 어디에도 나 홀로 존재한다는 뜻이고, 제법무아는 세상 어디에도 나라고 하는 실체는 없다는 뜻이다. 사람을 존재적으로 비유하면 천상천하유아독존이 맞고, 관계적으로 표현하면 제법무아가 맞다. 두 가지 가르침이 모두 옳다는 뜻이다. 인간을 존재적으로 설명할 때 그 가치성은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요, 자기와 일치하는 존재는 우주천하 어디에도 없다. 자기라고 하는 존재는 우주천하 어디에도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그 하나의 가치가 사라짐과 동시에 자기의 실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 자기가 자기인가? " 의 물음에 대한 뚜렷한 명분의 대답은, 나의 자아와 선함의 가치가 일치 하는가 아닌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선함의 가치란 맹자의 성선설에 준하며, 성선설의 근거로서 인*의*예*지 4단과 측은지심*수오지심* 사양지심*시비지심의 4덕에서 기인된다는 사실을 지각하면 이데아로서 나의 참됨의 진로가 분명해질 것이다.
마음의 향기香氣를 찾아서 1권 중
도선당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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