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112) -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사고의 위험
극심한 무더위와 기록적인 폭우가 번갈아 내습하는 여름철, 새벽부터 굵은 비가 내린다. 덩달아 접한 새로운 용어, 기상당국은 오늘 새벽 경북 안동일원에 극한호우경보를 발령하였다고. 극한직업이 낯설었는데 기상에도 극한이 등장하누나. 혹심한 무더위와 거센 장마에도 평안한 날들 누리시라.
'극한호우, 대한민국'이라는 표제를 단 언론의 폭우관련 화면
예고 없이 빈발하는 대형사고로 불안한 나날, 화성의 리튬공장 화재에 이어 서울 시청주변의 대형교통사고를 접하며 모두가 안전한 세상이기를 간구하는 마음이다. 때마침 접한 사고현장의 생생한 취재상황과 사고의 원천방지를 탐색하는 심층보도를 통하여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사고의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희원한다.
1. 시청주변 참사현장을 목도한 기자들
7월 1일, 서울 중구 시청역 뒤편 사거리에서 9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총 16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역주행 참사 현장에는 동아일보 사회부 사건 팀 기자들이 있었다. 당일 오후 9시 37분에 사건 팀 카카오톡 단체톡방에 사건팀장의 톡이 올라왔다. ‘시청역 교차로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것 같다. 쓰러진 사람이 대략 10명 정도. 심폐소생 중이나 일어나는 사람이 없다.’
참사가 일어나기 불과 몇 분 전 공교롭게도 우리 사건 팀 기자들은 그 현장에 있었다. 일을 마치고 간단한 술자리를 위해 시청역 뒤편 한 식당에 모이기로 했었다. 서로 휴대전화를 들고 지금 어디인지를 물으며 신호를 기다리던 순간 눈앞에서 그 일이 벌어졌다. 기자들은 곧바로 취재해 보고를 올렸다. 몇몇은 현장에 남았고 몇몇은 회사로 복귀했다. 대형 참사 현장을 겪은 기자들은 종종 정신적 충격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곤 한다. 사람이 죽고 다치는 사건사고를 취재하는 것이 직업이지만 한 인간으로서 겪는 고통과 여파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현장 기자들이 그렇게 일하고 있다. 현장에서 갓 돌아온 기자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참상의 여파가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거듭 취재해 사실을 확인하고 기사를 수정, 또 수정하는 일을 계속 했다. 기사 송고, 강판 등 모든 작업을 마치고 밤 12시가 넘어서야 광화문역에서 막차를 타고 귀가할 수 있었다. 젊은 기자들은 시신이 옮겨진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이날 누군가는 돌연 생을 마감했고, 누군가는 노트북과 카메라를 들고 뛰었다. 누군가는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는 참혹한 광경에 잠들지 못했으며, 그 기억과 여파는 생각보다 오래갈 것이다.(동아일보 2024. 7. 8 이은택 기자의 ‘7월 1일 그날 밤 참사현장의 기자들’에서)
2. 운수가 나빠서, 그 사고를 당한 게 아니다
지난달 24일 오전 경기 화성시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23명이 사망했다. 일주일 뒤인 지난 1일 밤 서울에서는 호텔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온 차량이 일방통행로를 역주행하다가 인도로 돌진해 9명이 사망했다. 두 사고는 피해 규모와 희생자들의 사연 등으로 인해 각별한 관심을 받고 있지만, 이와 유사한 사고들의 목록은 끝이 없다. 지난해 한국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은 598명,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2551명이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200만 명 이상이 작업장 안전 및 질병과 관련된 원인으로 사망하고 100만 명 이상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있다. 산업현장의 참사부터 도심 한복판의 교통사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일들을 사고라고 부른다. 그러나 미국 저널리스트 제시 싱어는 그의 저서 “사고는 없다”에서 불의의 사고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고는 그저 불운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당신이 사고로 죽느냐 아니냐는 당신의 권력을, 혹은 권력의 부재를 말해주는 척도다.”
이 책은 20세기 이후 미국에서 발생한 산업현장 사망사고, 교통사고, 약물중독 사고, 총기사고 관련 담론의 배후에 숨어 있는 자본과 권력의 논리를 들춰냄으로써 사고에 대한 우리의 편견에 도전한다. 인적 과실이라는 요소가 개입하지 않는 사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의 실수보다는 위험한 조건, 즉 환경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물이 고여 있는 바닥에서 미끄러져 다쳤다면 미끄러진 사람이 아니라 바닥 관리 부실이 문제라는 것이다. 피해가 사회적 약자에게 쏠리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아리셀 공장 화재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23명 중 18명이 중국·라오스 국적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이 공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동자들은 언론에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고 비상구가 어디있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이들은 폭발 위험이 있으니 배터리를 땅에 떨어뜨리지 말라는 정도의 주의 사항만 듣고 작업에 투입됐다. 이처럼 사고에 계급적·인종적 편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사고를 우연한 불행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강력한 방증이다.’(경향신문 2024. 7. 6 정원식 기자의 서평, ‘사고는 없다’에서)
지난달 24일 오전 경기 화성시 리튬전지 제조 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불이 나 연기와 불길이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