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신춘> ⑦ - 「희망을 희망이라 부를 때」 / 백애송
꼭꼭 씹어 삼킨 단어들이 역류된다
우리는, 세상에 왔다간 비정규직
돌의 기운을 누르고 흙의 기운을 눌러 단단히 박힌 뿌리를 흔들 수 있을까
덜 자란 시간들이 주저앉은 마음을 다독일 수 있을까
취한 도로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사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해질녘 실그림자로 이어진다
상처주지 말아요 상처받지 말아요
버려진 반지는 수신인이 없고 오해를 이해로 바꾸기에는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른 뒤이다
주인 없는 반지가 굴러가는 밤
돌의 기운과 뿌리의 기운들이 모여 세상의 단어들을 꾹꾹 눌러 밟는다
변경된 계획은 여전히 미완성이고
- 계간 《열린시학》 2019년 봄호
☞ 비정규직 문제는 갑질, 혐오 등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다. 그들은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공공연히 차별을 당하고 설움을 겪는다. 규정을 무시한 허술한 근로환경에서 걸핏하면 끼니를 거르기 일쑤이며 사업주로부터 임금도 제때 받지 못하고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충남 당진의 철강회사가 그랬고 구의역, 생수공장, 태안화력발전소가 그랬다. 시의 화자는, 그저 ‘을’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온 사회적 약자들의 슬픔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연대한다. 오래 속으로만 “삼킨 단어들이 역류”되어 저항의 몸짓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단단히 박힌 뿌리를” 조금씩 “흔들”며 뽑아내는 행위로 형상화된다. 그런데 “돌의 기운”과 “흙의 기운”이 뿌리가 뽑히지 않도록 옆에서 교묘히 돕는다. 이러한 행태를 보며 화자는 “덜 자란 시간들이/주저앉은 마음을 다독일 수 있을까//”라며 씁쓸히 읊조린다. 그런 그의 눈에 든 비정규직들의 모습은 고단하기 이를 데 없다. 소소한 낙이자 위로인 술에 “취한” 채 “도로에” 앉거나 누워 묵혀두었던 “사연”들을 털어놓는다. “상처주지 말아요/상처받지 말아요//” 화자는 그런 그들에게 다가가 손을 건네고 또 정서적으로도 부축한다. “반지”는 우정이나 사랑의 징표이기도 하지만 다짐이나 포부의 의미이기도 해서 요즘은 대학 졸업 시 기념으로 착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들뜬 마음으로 사회에 나온 청춘들에게 사회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곳곳에 만연한 폐단과 부조리들이 그들을 짓밟고 좌절하게 한다. 구의역에서, 생수공장에서, 화력발전소에서 젊은 넋들은 그렇게 스러졌다. 그런 처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정부나 사업주들은 뒤늦게 “오해”를 표명하지만 용서하기에는 “이미/많은 시간이 흐른 뒤이다//”. 스러진 자들은 말이 없고 “주인”을 잃은 “반지가 굴러가”듯 야속하게 시간은 흐른다. 오해라는 말이 마르기도 전에 “돌의 기운”을 등에 업은 “뿌리의 기운들이 모여” “세상의 단어들을”, 뿌리에 맞서는 몸짓들을 “꾹꾹 눌러 밟는다”. “변경된 계획”이 “여전히 미완성인” 상황. 그러나 화자는 이 연대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여백을 통해 독자들에게 피력한다. 2016년 《시와 문화》, 같은 해 《시와 시학》으로 등단한 백애송 시인은 시와 평론을 오가며 활동하는, 최근 주목을 받는 시인이다. 그가 앞으로 형성할 광주전남의 새로운 문학 지형도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