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아침가리골 이야기를 배낭에 담아오다
(기행 수필)
버스는 힘차게 아침가리골을 향해 달린다. 시원한 바람은 향기로운 공기를 싣고 와 상쾌한 아침을 만들었지만 검은 구름이 하늘을 살짝 가렸다. 구름 사이로 얼굴을 빠꼼이 내밀고 방긋 웃는 해님이 그리 반가울 수 없다. 높은 하늘엔 구름이 산도 만들고 집도 예쁘게 지어 놓고 우리를 유혹한다. 해님은 그사이를 들락날락하며 빨간 주홍색으로 예쁘게 화장을 해놓았다. 끝도 없이 파란 초원을 이룬 하늘을 바라보기만 해도 아름다운데 거기에다 해와 구름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신비롭게도 조화를 이뤄 꿈에서나 볼 수 있는 희망의 세계를 펼쳐 놓은 것이다. 신께서는 하늘을 화려하게 장식해 놓고 아침부터 즐거운 산행을 하라고 격려해준다. 차창으로 보이는 논에는 황금알을 매달은 벼 이삭이 고개를 숙였고 밭에는 빨갛게 익은 고추가 수줍은 듯 매달려 있다. 잘 익은 사과는 시집가고 싶어 얼굴을 붉히며 안달이 났다. 가을은 이렇게 농작물과 함께 익어가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하늘을 덮고 있던 구름은 산허리에 사뿐히 내려앉아 하얀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 낸다. 신께서 자연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는 장면은 신비롭고도 경이롭다. 이런 장면을 볼 때면 우리는 그저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물끄러미 바라만 본다. 10시 30분쯤 가고자 하는 방태산 아침가리골 입구에 도착했다. 마침 그때 해님은 반갑게도 구름에서 빠져나와 빙그레 웃기 시작한다. 우리가 왔다고 무척이나 반가운 모양이다. 하늘에선 해님이 반기고 땅에서는 눈에 보이는 모든 물체가 반긴다. 야생화도 반가운 듯 방긋 웃으며 환영한다. 그런데 아직 장가를 가지 못한 매미가 이곳에서 구슬프게 울어대는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우리는 산을 오르기 전에 정상헌 대장의 구호에 맞춰 가벼운 운동을 마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선두는 정상헌 대장이 맞고 후미는 김영식 대장이 맞았다. 이 두 산악 대장은 무엇이든 솔선수범하는 장점을 가진 해피의 보배이며 자랑이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가볍게 걷는 회원들은 모두 즐겁고 행복한 표정이다. 오르는 길 양옆으로는 아름드리 적송이 빼곡히 들어섰고 무엇보다 신선한 공기가 코를 호강시킨다.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에 등장하는 마타리 꽃을 비롯해 가을의 야생화가 웃는 모습도 정겹지만 그윽한 향기를 바람에 날려 산 전체가 향기롭다. 보라색을 띤 싸리꽃도 오늘따라 참으로 예쁘고 아름답다.
약 2km 정도 산을 오르니 온몸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걷기 매우 좋은 길이지만 몸에서 땀이 흐르니 역시 운동인가 보다. 아름답게 숲이 우거진 방태산은 천연 식물의 보고인 것 같다. 숲에서 내쏟는 향기로운 공기의 내음을 맡으며 새소리와 매미 소리의 아름다운 생음악에 도취해 정상까지 올라왔다. 이곳까지 거리는 896m이다. 정상에는 1박 2일이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TV에서 즐겨보는 젊은 탤런트들이 여기서도 잠시 머물며 공연의 한 장면을 촬영한 곳인 것 같다. 잠시 쉬면서 사진도 찍고 차도 한잔 마시고 무공해의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정상을 넘어 얼마쯤 걸으니 하얀 살을 들어낸 자작나무 숲이 나온다. 이 나무들은 오솔길을 더욱 정겨움을 느끼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손을 꼭 잡고 애정이 흐르는 이야기 나누며 사부작사부작 걸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어디를 가든 흔히 볼 수 있는 쑥부쟁이 꽃도 이곳에선 아름답게 보인다. 아침 가리골을 향해 내려가는 길에는 매미 소리 새소리 풀벌래소리 바람이 쉬고 있는 나뭇잎을 흔들어 대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자연의 신비로운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듯하다. 내 생전 이렇게 아름답고 향기로운 소리를 얼마나 들을 수 있을까? 정말 자연이 준 이 감미로운 소리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정상까지는 포장이 되어 별로 힘든지 모르고 자연의 신비로움을 감상하며 올라왔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살아 숨 쉬는 자연의 숲도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경쟁하는 느낌이다. 아침가리골로 내려가는 길도 아기자기하게 펼쳐 있고 풀 내 움이 진동하는 고즈넉한 오솔길이다. 조금 피곤한 상태였지만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걷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예쁜 김형옥 회원이 오늘 힘드시지요. 하며 내 팔짱을 살포시 낀다. 그러면서 기를 듬뿍 넣어준다는 말에 힘들고 짓친 몸이 원상태로 회복되는 느낌이다. 정감 어린 위로의 말 한마디가 이렇게 기분을 상쾌하게 끌어 올린다. 우리는 오손도손 이야기하며 깔깔대고 웃으며 걸었다. 김인숙 부장과 이미경 회원은 오늘도 회원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별의 별 퍼포먼스(Performance)를 벌린다. 사진 한 장면을 찍어도 가지각색의 포즈를 취하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내려가는 아늑한 길옆으론 근래에 보기 드문 오리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우리나라 6~70년대는 어느 산을 가든지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였다. 거리를 표시하기 위해 5리마다 심었다 하여 오리나무라 한다. 산기슭이나 논둑의 습지 근처에서 자라는 낙엽 활엽 수목으로 원산지는 한국이다. 오리나무 효능은 간 질환에 정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옛날 사람들이 간 경화에 걸렸는데 이 오리나무를 오랜 시간 동안 달인 물을 꾸준히 먹고 완치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오리나무 열매는 산란 촉진제로 손꼽힌다. 그러나 이 나무는 우리나라의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원인인즉 공해를 이길 수 없는 저항력을 가진 나무라 한다. 이 나무를 보았을 때 이곳은 때 묻지 않은 천혜의 청정지역임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하늘이 내려준 특혜를 받으며 아름답고 향기로운 자연의 순수한 맛을 느끼고 걷는다. 어느덧 방태산을 넘어오니 허름하게 지은 판잣집이 있고 옆으로 진동교란 다리가 있다. 판잣집 뜰을 빌려 여기에 자리를 깔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각자 집에서 싸온 음식을 펼쳐 놓으니 마치 음식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우리는 아침가리골(조경동)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초입부터 예사롭지 않은 험한 길로 느껴진다.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산적하게 깔린 위험요소가 기다리고 있다. 칼날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가 하면 뾰쪽한 송곳 바위도 있다. 발을 잘못 디디면 비거나 찔려 크게 다칠 것만 같다. 그래서 발을 디딜 때마다 조심하고 조심해야만 했다. 또 미끄러지기 쉬운 파란 이끼 낀 바위도 기다리고 있다. 이것 역시 잘못 걷다 미끄러져 넘어진다면 뇌진탕이나 엉덩뼈가 온전하지 못할 것 같다. 엉거주춤한 상태로 살얼음판 걷듯 조심조심해 걸어야 하는 길이다. 이렇게 신께서는 등반하는 것도 세심하게 계산해 만들어 놓았나 보다. 흐르는 물은 깨끗이 닦아놓은 유리알 같고, 물소리 또한 천하일품이다. 수천 년을 두고 흐르는 부드러운 물은 바위와 조약돌을 쓰다듬어 반질반질하게 만들어 놓았다. 또 그 물은 바위와 부딪쳐 요란한 소리를 내는가 하면 어느 곳은 소곤소곤 정담을 나누며 흐르기도 한다.
조금 걷다 보니 물을 건너야 했다. 이곳만 건너면 또 없겠지 생각하고 신발을 벗고 바지를 무릎까지 올리고 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일까, 얼마나 바닥이 미끄러운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실 그렸다. 막 쓰러질 찰나, 누가 옆에서 잡아주는 바람에 무사히 건넜다. 건너긴 했지만 갈 길이 까마득하다. 왜냐하면, 여기서 아침 가리골 마을까지 7km를 가야 한다고 한다. 가는 길이 대단히 험한 길이라고 다른 산악회원이 귀띔도 해준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기왕 나선 길 끝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또 등산화를 신고 걸어야지 맨발로 걸으면 단 500m도 걷지 못한다고 조언해 준다. 그래서 등산화를 다시 신었다. 또 가다 넘어지면 덜 다치기 위해 올렸던 바지도 내렸다. 트래킹 하기엔 매우 힘든 아침가리골 계곡이다. 허벅지까지 올라올 만큼 깊은 물을 수십차래 건너야만 목적지를 갈 수 있는 매우 험난한 코스라 한다. 아침 가리골 마을까지 7km에 달하는 이 코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길이라 조심해서 걸어야 하므로 약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등산복 차림에 등산화도 벗지 않고 물을 건너고 매서운 바윗길을 걸어야만 했다. 이곳은 물소리와 간혹 이름 모르는 새소리 풀벌레 소리가 고요한 계곡에 울려 퍼져 적막하고 삭막한 마음을 위로하며 달래준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길이지만 재미도 있고 스릴도 있다. 우리는 하늘이 주신 천연 그대로의 길을 만끽하며 걷고 있다.
젊은 여자 회원들은 신바람이 났다. 맑은 물에 풍덩 들어가 물장구도 치고 상대방에게 물세례를 주며 깔깔대고 웃어댄다. 즐거움을 참지 못하고 호들갑을 떨며 천진난만하게 아이들처럼 웃는 소리는 계곡을 진동시킨다. 아마 신께서도 이 즐겁고 행복하게 노는 모습을 보고 기뻐할 것 같다. 그리도 좋을까? 그렇다, 어찌 좋다 하지 않겠는가? 직장에 얽매이고 집안 살림에 얽매이다 왔는데 또 아이들 뒷바라지하고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허리가 휘도록 일하다 왔는데 어찌 좋다 하지 않겠는가? 오늘 동료들과 함께 물찬 제비가 되어보고 싶을 것이다. 그간 참고 참으며 살아 왔던 감정과 울분을 모두 폭발시켜 아침 가리골 계곡을 진동시키리라! 또 얽매였던 감정과 나도 모르게 누구를 미워했던 감정 혼자서 참지 못하고 속앓이 앓던 감정을 모두 토해내 누가 보지 않도록 나뭇잎에 돌돌 싸 맑은 계곡 물에 후련하게 띄워 보내리라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이 아름다움을 글에 담아 보고 싶어 메모하느라 동료들과 늘 떨어진다. 그런데 이승찬 부회장과 배방식 부장이 내가 염려스러운지 일행과 동행하지 않고 내 뒤에 따라온다. 나에겐 수호 천사와 같은 사람들이다. 고맙기도 하지만 미안한 생각이 앞을 가린다. 그러나 이렇게 든든한 동료가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7Km를 걸어오면서 살펴보았지만, 민가 한채도 없는 적막한 계곡이다. 이곳을 트래킹하다 소나기가 약 30분 정도 만약 퍼부어 댄다면 물이 불어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갇히고 말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이곳을 트래킹 할 때는 일기예보를 잘 보고 가야 할 곳 중 한 곳이다. 위험하고도 아름다운 계곡 길이었지만 내 삶의 큰 추억의 한편을 장식할 것만 같다. 옷이 몽땅 젖었다. 온몸에서 한기를 느낀다. 평생 감기 한번 앓이 않고 살아왔는데 혹시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지 하는 불길한 생각도 들었다.
환상적으로 아름다움이 깔린 길고도 긴 계곡을 웃고 즐기며 걷다 보니 어느덧 아침가리골(조경동)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은 집이 불과 대여섯 채 정도 보인다. 마을 앞에는 맑은 개울이 흐르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마을이다. 여름 산행지로는 톱10에 들만큼 명성있는 코스지만 오늘은 총 12km를 지옥과 천당을 다녀온 트레킹이었다. 아침가리골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배낭에 가득 담아 서울로 가져갈 것이다. 방태산의 아침가리골은 강원도 인재의 방태산 기슭에 숨어 있는 산마을을 일컫는 말이다. 방태산에 대해 몇 가지 적어본다. 삼둔은 산속에 숨은 3개의 평평한 언덕이라는 뜻이고 가리는 계곡안에 자리 잡은 밭가리 할만한 작은 땅을 말한다. 내린천을 따라 있는 살둔(생둔), 월둔, 달둔이 그곳이고 4가리는 방태산 자락에 흩어진 네 곳의 작은 경작지가 있는 곳으로 아침가리, 적가리, 연가리, 명지가리를 두고 그렇게 부른다. 옛날 정감록에는 "난을 피해 살 수 있는 곳"이라 했던 곳으로 지금도 그 오지의 모습이 만만치 않다. 6.25 전쟁 때도 이곳만큼은 군인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전쟁이 난 줄도 모르고 살았다고 하니 심산유곡의 깊이를 가늠할 만하다. 이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아침가리골이다
아침가리골(조경동 계곡)은 전국에 하나남은 오지중의 오지로 비경의 계곡이다. 아침가리란 산이 높고 험해서 아침에 잠시밭을 갈 정도의 해만 비치면 금세 져버릴 만큼 첩첩산중이라 해서 지어졌다고 한다.
해는 서산 위 소나무에 걸려 넘어가려 하고 우리네 마음도 서울 길로 향하고 있다. 오늘 몇 개월 만에 보는 진두생 의원님과 박순자 전 총무 매우 반가웠다. 또 이선형 회원과 유경준 김용관 박경진 배인자 임진규 윤영희 정미숙 김수연 회원도 반가웠다. 나를 주려고 묵을 만들어 왔다는 김옥자 회원 고맙습니다. 주차장 한쪽에 자리를 깔고 뒤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막걸리와 푸짐한 안주가 먹음직스럽다. 음식을 만들고 장만하느라 수고한 정은지 총무와 강영희 부회장 심명자 부회장께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남겨야 할 것 같다. 오늘 최고의 열정으로 구수하게 사회를 본 김용연 대장이 매우 돗보일 만큼 수고했다. 정명화 최원만 박중묵 세분 대장도 수고 많이 했다. 피로를 풀기 위해 막걸리를 한잔 마셨다. 그 맛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온몸에 행복의 전율을 안겨준다. 늘 인자 한 표정으로 회원들을 대하는 이상갑 회장이 옆으로 와 또 한 잔을 권한다. 받아 마시고 나니 배는 방실방실하고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다. 시간이 되어 모두 차에 올랐다. 흐뭇한 표정과 즐거운 표정을 짖는 회원들이 아름답다. 이상갑 회장의 인사말을 한다. 오늘 험한 산길을 한 사람도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내줘서 고맙습니다. 시월에는 더욱 아름다운 산을 찾아 행복한 산행을 계획할 것이다. 여러 회원 가정에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바란다는 말로 인사말을 맺는다
2016년 09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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