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내가 땅 위로 구름을 모아들일 때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나타나면, 나는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살덩어리들을 파멸시키지 못하게 하겠다. (창세9,13~15)
본문에 언급된 계약은 홍수 이전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약속한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너와는 내 계약을 세우겠다. 너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 들어가거라.'(창세6,18)
이제 그 약속이 현실이 되어 체결되고 있는 것이다(창세9,9).
이처럼 신실하신 하느님께서는 대홍수 심판 가운데서 노아와 그와 함께 한 가족들을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황폐해진 세상의 모습에서부터 다시 살아가야 할 앞날을 우려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이들에게 재차 찾아 오셔서 장래를 보장해주는 계약을 맺으신 것이다.
창세기 9장12절에 보면, '내가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하여, 나와 너희,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라는 말이 나온다.
'표징'으로 번역된 '오트'(oth)는 '징조', '기호', '증거'로도 번역되는 단어로서 누구나 알 수 있도록 객관적으로 뚜렷이 드러나는 어떤 물증을 가리킨다.
하느님께서는 계약을 맺으시되, 의심많고 변덕스러운 인간이라도 이 계약을 굳게 신뢰할 수 있도록 너무나 뚜렷한 증거물로서 무지개를 세우셨다.
그러나 '계약'(berit) 그 자체는 계약을 보증하는 '표징'(오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따라서 계약은 그 증거물에 의해 보증된다기보다는 그 자체로서 절대적 권위를 지닌다.
'무지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케쉐트'(qesheth)는 일차적으로 '활'(1사무2,4)이란 뜻도 있다.
활의 모양이 무지개와 비슷하기 때문에 동일한 단어가 활에도 사용된 것인지, 아니면 활의 모양을 본따서 동일한 이름을 무지개에 적용했는지 그 순서는 확실치 않다.
어떻든 자연의 세계와 인간의 도구의 이름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무지개가 활로 비유된 사례는 고대 근동 지방의 신화에도 나온다.
예를 들어, 아라비아 신화에는 무지개가 쿠자(kuzah)神이 사용한 무기였으며, 싸움이 끝난 뒤에 이를 구름 사이에 걸어 둔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바빌론 신화에서도 무지개는 므로닥(Marduk; 예레50,2)신(神)이 악한 신(神) 티아맛(Tiamat)을 물리치는 활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이 신화들은 무지개, 즉 활을 하늘에 걸어 둔 것은 전쟁이 없는 평화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이 세상을 다시는 홍수로 심판치 않겠다는 하느님께서 주신 평화의 선언을 확증하는 증거로서 무지개를 하늘에 두셨다는 성경 말씀이 다소 와전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구름'에 해당하는 '아난'(anan)과 '모아 들이다'(덮다)에 해당하는 '아난'(anan)은 동일한 어근이며, 다만 '구름'의 모음이 장모음이란 점만 다르다.
본문에서 '모아들이다'(덮다)로 변역된 '아난'(anan)의 어원적인 의미는 '드러내다', '나타나다'이며, 특별히 '장애물로서 개입하다'라는 뜻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동사의 주어가 '하느님'이란 사실로서 자연현상의 배후를 주관하시고 지배하시는 분이 창조주 하느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서 본문을 '하느님께서 하늘을 가리우기 위해 구름을 나타나게 하실 때'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구름을 고난과 위험을 비유적으로 나타낼 때에도 여러번 사용되었다(에제30,3.18; 32,7; 34,12).
하지만, 먹구름 속에서도 인자하신 하느님께서 평화의 무지개를 준비해 주신 것을 기억하는 신앙인은,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짙게 하늘을 덮은 구름 속에도 찬란한 무지개가 감추어져 있음을 믿으며, 난관을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15)
본문의 '기억하다'에 해당하는 '자카르'(zakar)는 원래 '새기다','표시하다'는 말에서 유래하며
마음에 깊이 새겨 절대 잊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무지개란 표징을 주신 이유가 계약에 대한 하느님 자신의 기억을 위한 것이란
사실이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기억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절대 불변하시는 하느님의 기억에 그 계약의
바탕을 둠으로써, 결단코 계약의 파기나 망각이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만천하가 다 알수 있도록 확실하게 해 준 것이다.
따라서 무지개를 볼 떄마다 인간이 기억해야 할 것은, 오늘도 잊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계약을 신실히
지켜 가시는 하느님의 모습이며, 그 약속에 따라 새 하늘과 새 땅까지 우리를 인도해 가실 그분의
강력한 의지인 것이다(2베드 3,13).
마지막으로 우리가 본문을 통해 알아야 하는 것은 이 세상에 국지적인 홍수는 발생할 수 있지만,
바로 노아 홍수와 같은 이 세상 전체를 멸하는 그러한 홍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세상에 대한 심판 자체가 없을 것이란 의미는 절대 아니다.
성경은 이 세상 마지막 날 사람들이 노아의 시대와 같이 먹고 마시며 향락에 젖어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불현듯 재림하셔서 홍수 심판보다도 훨씬 두려운 불의 심판으로써 모든 죄악된 것을
징벌하실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마태24,38.39; 2베드3,6.7).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마지막 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항상 깨어서 그 날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2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