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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대한민국 편지쓰기 대회 일반부 대상】 |
o 수상부문 : 지식경제부장관상
친정언니에게 신장 하나를 이식해주고 2주간의 병원생활을 마친 뒤 현관문으로 들어서는 나에게 당신께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셨죠. 저도 함께 살고 있는 시어머니와 남편, 어린 두 딸에 대한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보다는 나를 더 배려해주던 친정언니의 통통 부어오르는 손발과 볼록하게 부풀어 오르는 배를 보면서 서른아홉 그때의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신장이식 수술을 결정하면서 내 몸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그물처럼 촘촘하게 짜여 진 관계망 속에 놓여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인근에 살고 계신 시댁 친인척들의 걱정을 제게는 한마디도 옮기지 않으시고 그저 묵묵히 철없는 며느리가 건강한 몸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도하셨겠지요. 그날로부터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저도 이제 쉰 살이 되고 보니 이제야 그 무엇보다 나를 걱정하셨던 어머니께서 가졌을 마음이 돌아다 보입니다.
지난 5년간 당신은 누워만 계십니다. 겹겹이 주름진 눈꺼풀을 멍하니 뜨고서 하루 종일 누워만 계십니다. 그토록 지혜로웠던 당신에게 파킨슨이라는 병이 찾아왔고 온몸을 떠시며 겨우 화장실 걸음만 하시는 당신의 걸음은 제자리걸음을 걷는 것처럼 느립니다.
가끔 저를 응시하는 당신의 눈동자는 힘없이 흔들립니다. 이유 없이 고이는 눈물은 표면장력을 이기지 못하고 넘쳐버릴 듯 위태롭지만 차마 흘리지도 못하시는군요. 이제 감정표현도 무디어진 당신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일이 힘겨워 저도 더 이상은 눈을 맞추지 못합니다.
나사 모양을 따라 돌아가기 보다는 겉돌기만 하는 건 이제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요. 아니 어떨 때는 정점에서 넘쳐버리는 오래된 병뚜껑처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일이 다반사이지요. 그렇게 깔끔하시던 당신께서는 외출하면서 식탁에 차려놓은 식사를 혼자 하시곤 힘겹게 밥그릇을 씻어놓으시지만 어머니 몰래 제가 다시 씻어야한답니다.
식사를 하실 때 어머니의 흔들리는 손은 숟가락질을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식탁 아래로 많은 음식물을 떨어뜨리시죠.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가시고 난 뒤에 저는 항상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갑니다.
그럴 때 마다 어머니께서 저의 아이들을 키우시면서 얼마나 여러 날을 지금의 저처럼 식탁 밑으로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 바닥을 닦으셨을 지를 새삼스레 떠올린답니다.
결혼 직후에 결혼식 비디오를 보러 오신 시댁식구들이 제가 음식을 잘 못하는걸 아시고는‘국수나 삶아먹자’고 하셨었죠.
저는 국수를 어떻게 삶아야 하는지를 몰라서 바로 앞 분식집에 가서 국수를 12그릇이나 배달해 왔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불어터진 국수를 드시면서도 한마디도 뭐라 말씀이 없으셨지요. 중학교 교사인 저는 방학 때 조차도 어머니가 베란다에서 손빨래를 하실 때 나오는 새하얀 거품이 재미있다며 그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지켜만 보았습니다.
더운 여름날 다리미질을 하는 어머니 옆에서 밥상을 펼쳐놓고 영어테이프를 들으며 영어 공부를 했습니다. 어린 딸을 어머님께 맡겨두고 수십일 유럽배낭여행을 다녀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때의 저는 열심히 사는 제 모습만 보였고 철없는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해주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메주콩을 한 되 푹 삶아서 함께 찧어 넣고 항아리에 다시 담아 놓았습니다. 햇볕과 바람이 잘 드는 베란다에서 한 달 정도 익히면 맛있는 된장이 되지요.
된장을 퍼낸 뒤에는 간장을 잘 달여 유리병에 담아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두었습니다. 처음엔 붉은 색이었던 간장이 햇볕을 받을수록 검은 색으로 변해 간다는 걸 저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 결혼 직후 할 줄 아는 음식이 없어서 3주간 남편에게 시금치국만 끓여주던 제가 이제는 살림꾼이 다 되었습니다.
간장 달이는 냄새 속에서 간장의 단맛을 가늠해 볼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쓰시다가 물려주신 중간 크기의 항아리는 일 년 내내 쉴 틈이 없답니다. 초봄에는 된장 간장을 담그고, 된장을 퍼내고 나면 풋마늘 초간장 절임을 하고 그 이후엔 매실즙을 담아서 여름 내내 우리가족의 더위를 식히는 음료로 쓴답니다.
매실즙은 김치를 담글 때는 물론이고 멸치조림, 어묵볶음 등 온갖 요리에 조미료로 사용하기도 하지요. 직장과 집안일 그 중간쯤에서 늘 허덕이는 제가 김치도 직접 담그고 된장 간장도 담궈 먹는다고 제 또래 직장동료들은 신기해합니다.
어머니께서 아프시기 전에 한 번도 제게 이런 일을 시키신 적은 없었지만 저도 모르게 어머니가 소중히 여기시던 모든 것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답니다. 제게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다면 누가 이 많은 가르침을 주셨을까요? 쪼그리고 앉아서 항아리에 묻은 먼지를 닦을 때마다
일 년 내내 항아리가 숨을 쉰다고 하시며 마치 생명체처럼 귀히 여기시던 어머니의 손끝이 느껴집니다.저도 이제는 된장 간장의 맛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햇살과 바람임을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제 안에는‘어머니께 잘해드리고 싶은 나’와‘어머니께 무심히 하고 싶은 나’가 끊임없이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끄럽지만 이유를 말씀드리면 어머니 아들인 남편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제가 남편 몰래 친정오빠 빚 보증을 선 이후로 남편은 친정어머니를 비롯한 제 친정식구들 보기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떨 때는 심한 욕설을 하면서 제 가슴을 사금파리로 긁듯이 생채기를 낸답니다.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여자에게 친정식구란 제 자신과도 같은 거잖아요.
남자인 남편은 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일부러 모른 척 하는 것 같기도 해서 너무나도 얄밉습니다.
참 이상하게도 저의 이런 마음은 아무리 참으려 해도 만두 속이 터지듯이 자꾸만 삐져나옵니다. 이성적으로는 남편에 대한 미운 마음을 어머니에게로 향하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제 마음을 잘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간장 달이는 냄새만 맡고도 간장의 단내를 알아차릴 수 있는 것처럼 제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능숙해 지는 날이 오겠지요.
그런데 파킨슨을 5년이나 앓아 오신 어머니의 연세가 벌써 여든을 훌쩍 넘기고 보니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집니다. 오늘은 다시 베란다에 앉아서 새하얀 행주로 어머니가 쓰시던 장독의 먼지를 닦아내며 제 마음 속에 가라앉은 앙금을 훔쳐내 보겠습니다.
어머니! 약속해요. 제가 옛날처럼 퇴근 후에 어머니의 눈을 마주보며 다시 재잘거릴 날을 하루라도 빨리 당겨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__.))....
제발 건강하세요.
"(ㅠㅠ.)).....
2012년 5월의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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