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220만명 안팎의 수험생들이 도전하는 국가기술자격증 575개 종목의 판도가 변하고 있다. 과거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기술자격증 대신 한식조리사, 양식조리사, 제빵, 제과 등 언제라도 ‘창업(創業)’할 수 있는 쪽으로 선호도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2005년 한국 사회를 이해하려면 자격증 시장을 들여다보면 된다.
18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국산업인력공단 서울지사 한식조리 시험장. 이른 아침 고등학생부터 50대 주부까지 80여명의 수험생들이 모여들었다. 시험은 떡산적과 탕평채 만들기. 100점 만점에 60점을 넘으면 되지만 10명 중 7명이 떨어지는 시험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산업인력공단에서 관리하는 자격증에 227만4500여명이 응시원서를 냈다. 전 국민 20명 중 1명꼴로 응시한 셈이다.
이 중 가장 많이 응시한 종목은 한식조리기능사. 20만3800여명이 지원했다. 이 종목에서 여성이 70%에 이르고, 그 중 30~40대 가정주부들이 절반을 차지했다.
한식조리사 시험은 항상 불황기일 때 북새통을 이룬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절이었던 1999년에 응시자 260만명으로 신기록을 세운 게 이를 증명한다. 이후 응시자 수가 감소하며 1위 자리를 정보처리기능사에 내줬다가 재작년부터 다시 응시자 수 1위로 올라섰다. 경기가 불황으로 접어든 탓이다.
한식조리가 인기인 이유는 창업이나 식당일을 하기가 쉬워서다. 식품위생법에 매장규모 40평 이상 음식점은 조리사를 반드시 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새롭게 부각되는 자격증
스포츠경영관리사, 인간공학기사, 유기농업기사 등 9종목이 올부터 신설된 국가기술 자격시험이다. 역시 창업할 수 있는 응용기술 분야다.
이 가운데 스포츠경영관리사는 프로스포츠구단 등 스포츠 단체의 각종 대회를 기획, 운영하는 분야다. 유기농업 관련 자격증은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 열풍과 함께 인기를 끌 것으로 전망되는 종목이다.
작년에 새로 생긴 12종목의 자격검정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끈 종목은 화훼장식기능사였다. 전국의 꽃집 종업원과 사업주들이 이 자격증을 따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한다. 작년 이 종목에는 1만365명이 몰려 인력공단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사라져 가는 자격증
전통적인 산업현장 기술분야 자격증은 통합되거나 폐지되는 국가기술자격증에 속한다. 올부터 생사기술사, 염색기능장, 지하수기사, 시계수리기능사 등 산업사회의 변화에 따라 수요가 급격히 줄어든 40종목이 폐지됐다. 대부분 연간 지원자가 10명도 되지 않는 종목이다. 또 선박설계기술사 등 총 92개 종목이 39개 종목으로 통합돼 실시될 예정이다.
이들 종목이 힘을 쓰지 못하는 까닭은 생산자동화로 기능인력 수요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기계, 금속, 전기, 전자 등에서 공통적인 현상이다.
신승식 공단 검정계획부 차장은 “자동화설비가 진행되면서 일부 자격증 수요가 줄어든 건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서비스 인력, 창의적 경영인력을 중심으로 한 수요는 더욱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