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돈이 참 좋습니다. 통장 잔고에 돈이 많을수록 저는 행복합니다. 돈이 줄어들면 행복지수도 떨어집니다. 돈은 참 놀랍습니다. 돈은 밥이 되고 책이 되고 옷이 되고 집이 됩니다.
그럼에도 받지 않아야 할 돈이 있습니다.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신23:18)”입니다. 창기가 번 돈도 따뜻한 밥이 되고, 개 같은 자의 소득으로도 예배당을 건축할 수 있지만, 받지 않아야 할 돈이요 쓰지 않아야 할 돈입니다. 차라리 굶을지언정, 차라리 예배를 드리지 못할지언정 더러운 돈은 받지도 쓰지도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니까. 하나님께서 더러운 돈으로 드리는 예배를 역겨워 하시니까요.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사1:11~13)”
Philip Medhurst, Abraham and the King of Sodom, 2000
아브람이 소돔왕의 돈을 거절합니다. 실 한 올, 끈 한 가닥도 받지 않습니다(창14:23). 소돔 왕의 재산은 나그네를 대접하지 않고 축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창19:5). 소돔 사람들은 귀인들마저 대접하지 않는 각박한 사람들이었으니, 하물며 고아와 과부 등 사회적 약자를 돌봤을 리가 없지요(창19:9). 성 내 소수 지배 계급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데에 골몰했던 소돔 왕의 돈은 ‘창기의 번 돈’이나 마찬가지요 ‘개 같은 자의 소득’과 진배없습니다.
더러운 돈을 거절하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 상급은 ‘보상(reward)'입니다. 더러운 돈을 거절한 아브람에게 하나님 자신이 보상이 되십니다. 소돔 왕은 돈으로 보상하려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존재로 보상하십니다. 소돔 왕은 돈을 주겠다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주겠다 하십니다. 돈을 받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을 받으시겠습니까?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서 디모데에게 부탁을 합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올 때에 겉옷을 가지고... 겨울 전에 어서 오라(딤후4:9~21)” 감옥에도 겨울이 닥치는데, 바울에겐 ‘겉옷’이 없습니다. 종교 귀족 바리새인이며, 당대 최고 석학 가말리엘의 제자이고,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에게 겨울을 날 겉옷이 없습니다(빌3:5;행22:3,5). 바울의 편지가 과연 디모데에게 전달되었는지, 편지를 받은 디모데가 겉옷을 갖다 주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바울은 어쩌면, 겉옷 없이 감옥에서 겨울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왜, 멀리 있는 디모데에게 도착할지 알 수 없는 편지를 쓰며 겉옷을 부탁할까요?
로마에는 바울에게 겉옷을 영치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딤후4:10,16)” 로마의 동지들이 바울을 떠났고 혹은 버렸습니다. 바울이 로마 재판정에 설 때에 모든 지인들이 바울을 모른 체 했습니다. 로마에는 바울에게 겉옷을 영치해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에겐 돈도 없고, 사람도 없습니다.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끼는 게, 바울의 현실입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에겐 돈도 없고, 동지도 없어서, 겨울을 날 겉옷도 없는데, 바울은 왜 감옥에서도 자신의 일을 멈추지 않을까요(빌3:12)? 사람을 남기는 것이 목회라면 바울의 로마 목회는 실패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왜 목회를 포기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바울에게 상급이요 보상이기 때문입니다.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겉옷도 없는 것이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가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겐 아무 것도 없지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여전히 있기 때문입니다(빌3:7~8). 무엇보다 하나님의 존재가 바울에겐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현실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돈’을 ‘똥’이라 합니다(빌3:8). 아브람은 소돔 왕의 ‘돈’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보상금으로 수납합니다. 바울과 아브람에겐, 하나님이야 말로 현실입니다. 소돔 왕의 도시는 파괴되고 맙니다(창19:24~25). ‘에덴동산’같던 소돔성은 지금 흔적도 없습니다(창13:10). ‘돈’이 현실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의 표현대로 ‘돈’은 ‘똥’이어서 현실을 웃자라게 하는 거름이 될 순 있지만, 돈은 현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현실입니다.
하나님이야말로 현실이지만 저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좋아합니다. 하나님에게 둔할 때보다 돈이 없을 때 저는 더 불행합니다. 하나님에게 민감할 때보다 돈이 많을 때 저는 더 행복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십니다(눅15:11~24). 이것이야 말로 현실 중의 현실입니다. 돈이 지배하는 것 같은 현실, 거기에 휩쓸려 사는 나, 그럼에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야말로 현실 중의 현실입니다. 나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내가 처한 가장 강력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이 참 좋습니다. 돈은 힘이 세지만, 나를 사랑하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