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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 죄 / 민32:6-27
Ⅰ.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면
어떤 사람이 산 길을 걷다가 곰을 만났습니다. '예전에 곰을 만나 죽은 척 했더니 곰은 죽은 것을 안먹어 그냥 지나가더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땅에 납작 엎드려 죽은척 하고 있었지요. 곰이 성큼성큼 다가왔습니다. 이 곰은 맘씨가 너무 착한 곰이었습니다. 그냥 지나가지 않고 땅을 파고 이 사람을 묻어주었습니다.
누워있는 모습, 넘어져 있는 모습, 쓰러져 있는 모습,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참된 자화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 한복판을 달리며 정복하는 정복자들입니다. 특별히 공동체 안에서 분명한 자기 사명과 역할과 목적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의 본문은 공동체안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 공동체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은 커다란 잘못이란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만일 싸우지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민32:23)
싸움이란 결코 좋은 일일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과 화평하라고 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요"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놀라웁게도 우리를 향하여 싸움터로 나아가라고 종용합니다. 짐을 보고 어깨를 내밀 줄 모르는 사람, 사명이요 주의 명령인 줄 알면서도 달려나갈 수 없는 사람, 공동체의 아픔을 보고도 뛰어들 줄 모르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차가 처음 교통수단으로 이용될 때에도 1등석, 2등석, 3등석이 있었답니다. 1등석은 언덕을 오르나 개울을 지나나 진흙탕으로 지나도 자리에 앉아 가만히만 있으면 됩니다. 2등석은 힘든길을 지날 때면 내려서 걸어야 합니다. 3등석은 개울창을 지날때마다, 진흙탕을 지날 때마다 내려 뒤에서 마차를 밀어야 했답니다.
천국행 마차에도 1등석 2등석 3등석이 있습니다. 1등석은 교회에 힘든 일이 있어도 어려운 일이 있어도 큼직한 모임이 있어도 제자리만 지키고 은혜만 받고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2등석은 힘든 일이 있으면 내렸다 좋은일이 있으면 탔다 꾀를 부르면 됩니다. 그러나 3등석 교인은 힘든 짐은 어깨에 메고 교회가 진흙탕길에 빠지면 발을 걷어 부치고 땀흘려 밀어 줍니다. 이렇게 하여 천국문에 들어섰을 때 주님이 1등 2등 3등석 앞으로 갓! 그럴것 같습니까? 아니요. 뒤로 돌아 앞으로 갓! 천국은 3등석 교인이 1등하는 곳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몇 등석에 앉아 계십니까?
오래전 상영된 로베레 장군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 영화가운데 나치에 저항했던 많은 저항 운동가들이 감옥에서 처형당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그 수많은 저항운동가들 가운데 별로 이 운동에 깊이 관여하지도 않았고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던 한 사람이 붙들려 왔습니다. 이 사람의 사형 차례가 다가왔습니다. 이 사람은 고래 고래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나는 저항운동에 참가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돈이나 벌고 가족들이나 먹여 살리던 소시민입니다. 왜 내가 죽어야 합니까?" 그때 묶여 있던 젊은이가 이 사나이를 향하여 그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잘못이다. 당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 그것 하나로 죽어 마땅하다. 전쟁은 5년이나 계속되었다.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무참하게 피를 흘렸고 수많은 도시들이 파괴되어 버렸다. 조국과 민족이 멸망 직전에 놓여있다. 그런데 왜 당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가? 그것이 바로 당신이 죽어야 할 이유이다." 대단히 인상깊은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를 죽게 해도 마땅한 죄과라는 것입니다. 그 무서운 전쟁터에서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서 자신의 탐욕과 욕망을 위해서는 별의 별 일을 다했지만, 민족이나 정의를 위해서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이 사나이의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죽어 마땅한 이유라는 겁니다.
Ⅱ. 본문의 배경
오늘 본문 민수기 32장의 기록은 열두 지파에게 땅이 분배되기 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이 요단 동편을 정복하고 보니 그곳은 풀이 많은 목초지대였습니다. 마침 가축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던 르우벤 지파 사람들과 갓 지파 사람들이 그 땅을 보고 이곳이야말로 자신들이 살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아울러 어느 한 두 지파에게 점령지를 먼저 나누어 주는 것도 결코 잘못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르우벤과 갓 지파사람들이 모세를 찾아가 "요단 동편을 우리에게 주신다면 이 곳에서 우리를 짓고 양을 키우며 자녀를 위해서 집을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간곡하게 부탁을 합니다.
이에 대해 모세는 단호히 거절할 뿐 아니라 그들을 호되게 책망했습니다. "너희 형제들은 지금 당장 또 싸움터로 나가야 한다. 어떤 부족을 만나서 피를 흘릴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너희들만 이곳에서 편안하게, 안락하게 살겠다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겠느냐? 너희들의 행동은 이스라엘의 단결을 깨고 전쟁중 사기를 저하시킬 뿐 아니라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악한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모세의 경고와 꾸짖음을 듣고 르우벤 사람들과 갓 지파 사람들은 반항하거나 조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앞장서 싸움터로 나갈 것을 결심합니다. 물론 싸움이 끝난 나중에 요단 동편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에게 배분이 되었지요. 여기까지가 대략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을 의지하여, 특별히 23절 "너희가 만일 그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실 기독교는 "Do not! 하지 말라!" "이것도 하지 말고 저것도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Do! 하라!"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라"는 긍정적인 종교입니다. 하지 말라고 하는 계명을 어기지 않았다고 만족해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이 시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소홀히 여긴 그 무엇이 없습니까?
르우벤 지파 사람처럼 분연히 일어나 영적인 전쟁터로 나갈 수 있는 우리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갓 지파 사람들처럼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허울을 벗어버리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이고 진취적이고 활동적이고 진보적이고 능력있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Ⅲ. "이같이 하지 아니하면" 즉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는 죄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원주민 가나안의 죄이거나 이방 족속 블레셋의 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 선민 이스라엘의 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맏아들 르우벤 지파의 죄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기 세상 사람들의 죄, 하나님을 배신한 불신자들의 죄가 아니요. 하나님이 선택한 나의 죄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우리의 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마땅히 동참해야 할 책임을 피해가고자 하는 죄악입니다. 오늘 교회안에 있는 신자들이 쉽게 범할 수 있는 죄입니다. 기도해야 할 사람이 기도하지 않을 때,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지 못할 때에,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책임을 회피할 때에 주님이 책망하는 바로 그 죄입니다.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한 죄, 나라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지 못하고 민족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 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속물 크리스챤들이 범할 수 있는 죄입니다.
사명을 보고 회피하고 소명을 듣고 귀를 막았던 죄입니다. "내가 싸우지 아니하면 이 험악한 전쟁터에서, 사탄과의 싸움에서 누가 승리해야 한단 말입니까" 우리 함께 나누어지지 아니하면 역사의 아픈 고통을, 교회의 무거운 짐들은 누가 담당해야 한단 말입니까?
1.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죄 그것은 우선 나태와 방종의 죄입니다.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자녀와 가축이 있습니다. 이 좋은 목초지는 우리 가족과 가축들에겐 낙원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냇가에서 돌을 주워다 집을 짓고 가축들의 우리를 짓고 여기서 살렵니다. 우리는 피흘리며 싸우는 일엔 관심이 없습니다. 이미 바산왕 옥, 아모리왕 시혼과의 싸움으로 족합니다. 우리 르우벤 사람들은 싸우는 것보다 양치는 것이 좋고 우리 갓 지파 사람들은 전쟁터에서 칼을 가는 것보다 가슴에 새끼 양을 안고 어린 양의 젖을 짜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이것이 저들의 자세였습니다. "나라가 어떻고 민족이 어떻고 선교가 어떻고 교회가 어떻고 공동체가 어떻고 내가 고민하지 않는다 할찌라도 나는 내 개인의 문제를 가지고도 힘에 벅찬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게으른 신앙인들의 고백입니다.
또 한편에서 "우리 집은 평안합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예수를 잘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우리 집은 모든 식구들의 안락한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은 번창하고 있으며 자녀들은 모두 착한 우등생들입니다. 우리 식탁은 항상 기름지고 풍성합니다. 또한 우리 교회는 평안하고 매일같이 잘 준비된 설교를 듣고 영혼이 배부른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것이 천국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저들의 고백의 전부입니다.
예. 좋습니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러나 오늘 성경은 그것만 가지고는 모자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 생활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미 무장을 해제했고 전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봉사 생활에 나태하고 충성 생활에 방종한 사람입니다. 인생의 목표는 안일이요 쾌락의 추구입니다. 기름진 식탁과 침상엔 관심이 있으나 여호와의 밭을 갈거나 씨를 뿌리는 일엔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은혜는 받지만 교회안에서, 밖에서, 셀목장이나 공동체안에서 사역터나 싸움터를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게으름 - 그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죄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죄, 이는 크리스챤이 범할 수 있는 가장 흔하고 가장 잘못된 죄라는 것이 본문의 지적입니다. 우리의 형제들은 싸움터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데 나만이 편히 쉬겠다는 생각이 옳은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2. 르우벤과 갓지파의 태도는 형제애가 결여된 이기주의적 탐심입니다.
요단 저쪽에서는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는데 요단 이쪽에서는 안락침대에 누워 편히 쉬겠다는 것입니다. 나의 형제들은 헐벗은 몸으로 싸우고 있는데 자신들은 가축이나 돌보고 창고나 짓겠다고 하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맥스 루케이도라는 사람의 책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주님」이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날 한 중년 남자의 집에 갑자기 불이 나갔습니다. 그는 촛불을 켜기 위해 양초를 모아둔 창고로 들어가서 양초를 찾고 있었습니다. 양초 한 자루를 붙들었습니다. 그런데 양초가 말을 합니다. "주인님, 나는 아직 불을 밝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큰 빛을 밝힐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빛나는 불을 밝힐 수 있는지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그 책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 다음에 밝히시면 안되겠습니까?" "이상하다 양초가 말을 하네."
옆에 있는 양초에 손을 뻗치자 "주인님 나는 내가 불을 밝힌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내가 불을 밝힌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을 깊이 묵상하는 중입니다. 아직 묵상에서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묵상에서 깨어날 때까지 내 몸에 불을 밝히는 것을 연기하면 안되겠습니까?" "어~ 양초가 말을 하네."
문득 옆에 나란히 서 있는 4개의 양초를 발견했습니다. 그들 중 하나의 양초를 가지고 나가려 했더니 4개의 양초가 함께 소리를 지릅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 불을 밝힐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합니다. 다른 초들이 훨훨 탈때 우리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중창연습 화음 연습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작은 나의 빛 비취게 할테야.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양초도 불을 밝힐 수 없었습니다. 불 밝힐 양초가 없다고 투덜거리며 나왔습니다.
그의 아내가 왜 초를 가지고 오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얘기했습니다. 아내는 화를 내면서 "무슨 그런 양초들이 있죠. 도대체 당신은 그 양초를 어디서 사왔길래 그래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양초들은 건너 마을 문을 닫은 교회에서 사왔다는 겁니다. '아 그랬구나!' 그제서야 그 양초들이 왜 그러는지를 알았습니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주님」은 세상의 빛된 우리가 이둔 세상을 비춰주길 기대하십니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주님」은 나를 태우길 원하십니다. 나를 태우면 나도 살고 너도 살 수 있습니다.
이웃을 살리기 위하여 손을 내밀면 너도 살고 나도 삽니다. 공동체를 위하여 몸을 던질 때 나도 살고 공동체도 살릴 수 있지마는 나라야 망하든 말든 나 혼자만 살아야 겠다는 이기적인 탐심으로 살아가게 될 때 공동체는 물론 나라의 운명과 더불어서 우리 모두 망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3. 나아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분명 받은 은혜에 대한 배신의 행위라는 사실을 성경은 똑똑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보잘 것 없는 나 하나 구원하기 위해 삼위 일체 하나님이 총동원되었습니다. 열두 사도와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칼에 찔려 죽었고, 불에 타 죽었고, 맹수에 찢기어 죽었습니다. 이 땅에서도 일찍이 저기 새남터에선 수많은 성도가 순교를 당했고, 토마스 선교사님은 도끼에 맞아 강변에 피를 토하며 죽어 갔습니다.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기 생명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저들의 모든 소유를 포기한 채 고통스런 죽음을 달게 받았습니다. 저 세상에서의 아름다운 삶을 위해 세상 것을 흔쾌히 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내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들이 내 주변에 있었으며 나 하나를 위한 땀방울이 얼마였으며 내게 복음이 전달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핏방울이 내 밑에 고여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까?
성자 어거스틴은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 때문에 돌아왔습니다. 저도 어릴 때 잠시 하나님을 원망하고 교회를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시골 교회 마루바닥을 적신 어머니의 눈물어린 기도가 있었기에 나는 주님 앞으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어느 여전도사님의 40년 세월 애절한 기도가 있었기에 나는 목사가 될 수 있었으며 헌신적인 시골 교회 학교 교사들의 믿음이 있었기에 피묻은 복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여러분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 모두는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에 크게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고 교회는 어머니가 되어 우리에게 날마다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의 빚진 자들입니다. 그 빚을 갚기 위한 거룩한 전쟁을 회피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배신입니다.
주어진 일을 소홀히 다루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십시오. 주님의 피위에 세워진 이 교회는 여러분의 희생 없이는 자랄 수도 없고 발전할 수도 없으며 역사를 감당하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없음을 기억하십시요.
4.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죄 - 그것은 곧 소명에 대한 배신입니다.
신앙 생활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가슴에 빨대를 들이 대고 꿀을 빠는 것일 수 만은 없습니다. 교회 생활이 무엇입니까? 나의 행복이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이용할 가치가 있을 때 잠시 잠시 들리는 백화점 같은 곳일 수만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분명한 선언이 있습니다.
신앙 생활은 곧 사역이다. 일하는 것이다! 교회 생활은 곧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자들이 가나안 땅 - 천국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이다! 흔쾌히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자들의 몫이다!
「직업과 소명」이라고 하는 책에 보면 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막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의 얘기가 서막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소신과 말을 빌리면 "직업은 수단이요 소명은 인생의 목적이요 본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것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소명을 감당하도록 주신 기회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신앙생활 - 교회의 직분은 본업이요, 세상의 직업은 부업이라는 것입니다. 지미 카터는 대통령이 된 다음에도 그가 출석하는 교회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주일 학교 교사의 일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은퇴하고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전세계 평화와 연약한 자들을 섬기기 위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니, 한걸음 더 나아가 대통령의 직무와 하나님의 소명 즉 작게는 주일학교 교사의 직무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하나님의 소명, 주일 학교 교사의 직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세상에서 사장쯤 되면 교회 일은 눈에도 보이지 않는 사람, 세상에서 조금 유명인사가 되고 바빠지다 보면 하나님의 일 교회의 사역은 눈에도 보이지 않는 사람에 비하면 얼마나 커다란 도전을 주는 사람의 모습입니까? 얼마나 큰 위인의 모습입니까?
신앙생활은 일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짐을 서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각자의 은사를 따라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찾아 감당하는 것입니다.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곧 소명에 대한 배신이요 죄다"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다음 달이면 창립 13주년을 맞게 됩니다. 그 동안 참으로 벅찬 행진을 계속해 왔었고 하나님께서 순간 순간 가슴 벅차도록 이 교회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개척 초기는 물론 눈에 보이는 지금 이 예배당이 있기까지 돌이켜 보면 땅을 사고, 건축을 하고, 그 안에 많은 성물, 비품들을 들여다 놓고 누군가의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었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큰 돈, 목돈을 낸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재벌이나 큰 교회의 도움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온 교인들이 힘에 지나도록 헌신을 다해왔고 충성을 다해 왔습니다.
방학내내 아르바이트한 돈을 내어놓은 젊은이가 있었는가 하면, 교회건축을 위해 기도하던 노모께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보상금을 아낌없이 주의 전에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6.25때 순국하고 평생 모은 연금으로 자식들 위해서 아파트 한 채를 구입했는데 그 아파트에 이사 한 번 해보지 아니하고 그 아파트를 팔아서 주의 성전에 내어 놓은 권사님도 계십니다. 여성들이 계란 줄을, 무거운 쌀가마를 어깨에 걸머쥐고, 미역 다발을 두손에 들고 아파트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장사하여 한 푼 두 푼을 모았습니다. 손가락이 부르트고 종아리가 붓기까지 이발하고 가위질하여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장사하고 사업해서 돈이 모아 질 때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인줄 알고 주님 전에 기쁨으로 내어놓는 집사님도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코 묻은 돈으로부터 몇 년 동안 입어보지 못하고 남들이 먹는 기름진 음식 한 번 먹어보지 못하고 절약하고 헌신해서 오늘의 교회를 이루어 왔습니다. 우리교우들은 금반지 금부치를 집에 두지 아니하고 모두 성전에 드렸습니다. 그 희생의 피 위에 오늘의 교회가 서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정말 우리 생애 마지막, 한소망교회 역사상 어쩌면 마지막이 될 「한소망 비전 센타」건축을 우리는 설계하고 있습니다. 오늘밤 설계업체 선정을 위한 설명회가 있을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교회는 빌딩이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건축은 사람을 찾아 사람을 세우는 일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건축에 앞서 「한비가 축제」- 한소망 비전센타 가족찾기 축제를 벌이고 있습니다. 오늘은 내일의 가족 태신자 즉 VIP를 작정하는 날입니다. 회피할 수 없는 거룩한 전쟁입니다.
왜 VIP?
한사람도 예외없이 가슴마다 주님의 심장속에 우리가 들어있었듯이 우리속의 내일의 가족을 품고 기도하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이들을 우리는 VIP라 부릅니다. 내 생애 최고 고객들, 내가 많은 기도를 해야되지만 급박한 기도가 내게 있지만 엎드릴 때마다 그들을 위해서 먼저 기도하겠습니다. 그래서 VIP입니다. 내게 시간이 있다면 최우선순위로 그들을 위해서 내어놓겠습니다. 간식을 즐기고 외식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에 그들과 함께 이 간식을 즐기겠습니다. 내 인생의 최우선순위를 그들에게 부여하겠다. 이것이 VIP입니다. 많이 품으십시오. 그러나 모든 성도들이 3명에 집중하십시오. 창립주일 그 카드를 올려드리고 금년이 다 가기전에 이들과 더불어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겠습니다. 결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본문 민수기 32장 6절입니다.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았고자 하느냐?" 23절입니다. "너희가 만일 싸움터로 나아가지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라"
5. 특히 7절에 의하면 싸움을 회피한 르우벤과 갓 지파의 안일한 태도는 다른 사람들에게 중대한 피해와 실망을 던져 주었습니다.
저들의 소극적인 태도가 전염이 되어져서 온 이스라엘을 낙심케 했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으로 낙심케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느냐?"
낙심케 한다 - 어떤 사건을 연상케 해주는 메시지 아닙니까? 모세는 일찌기 가나안에 정탐갔던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신앙이 없는 열명 정탐꾼의 보고는 이스라엘을 낙심케 했고, 그 결과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이스라엘의 모든 장정이 광야에서 멸망받고 40년간이나 광야에서 방황해야 했던 무서운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십시오!
"형제를 낙심케 하지 말라. 가족의 뜨거운 신앙에 제동을 걸지 말라.
친구의 열심을 비웃지 말라. 교회의 활동에 찬물을 붓지 말라.
낙심케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이 되어라. 타오르는 불길에 기도의 기름을 붓는 사람이 되어라.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며 서로가 서로의 위로가 되어주는 공동체가 좋은 공동체이다. 합심해서 짐을 나누어 지라. 가나안은 합심해야 얻을 수 있는 땅이다." 이것이 모세가 외쳤던 외침이었습니다.
Ⅳ. 정복의 야성을 회복하라
사랑하는 한소망 가족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한국교회 성도들이 잃은 야성을 회복해야 할때입니다. 도시를 정복하는 정복자의 야성, 잃은 하나님의 가족을 찾아오는 하나님 나라 군사로서의 야성말입니다.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가면 사나운 맹수 호랑이, 사자들이 널려 있습니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으르렁 거리는 법도 없습니다. 왜 이토록 온순한가? 공원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이 맹수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처음 이것들이 공원에 들어왔을 때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사나운 발톱을 세우고 사냥을 즐겼다는 겁니다. 그런데 직원들이 먹이감을 - 염소나 돼지들을 이곳 저곳 풀어 놓았더니 언제나 배가 불러 있어 사냥을 포기 하더랍니다. 그 결과 그들은 결국 맹수의 야성을 잃어버린 순한 양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한국교회, 우리 성도들의 모습이 아닐는지요. 불신자 전도를 포기한 교회, 천국 가족 찾기를 포기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이동성장을 교회 성장의 전부로 받아들이고, 한국교회 기존신자들이 늘 자리를 채워 도전을 상실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과거에 사자처럼 포효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의 야성을 우리는 되찾아야 합니다. 내가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 심장에 불이 붙는 것 같아 견딜 수 없다고 외치던 사도의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내 민족을 구원할 수 없다면 차라리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울부짖던 저 전도자들의 열정을 되찾아야 합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며 일본 경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선배 신앙인들의 전도적 야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류관순 여사는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친구들에게 "얘들아 기차소리가 어떻게 들리니?" "칙칙폭폭~" 그렇게 들린다고 하자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내 귀에는「대한 독립 만세!」「대한 독립 만세!」라고 외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기 들려오는 세상 영혼들의 비명 소리가 여러분의 귓전에 들리십니까? 그의 피값을 나의 손에서 찾겠다는 하늘의 음성이 들려오고 있습니까? 독사의 입으로 빨려들어가는 개구리의 비명처럼 지옥의 블랙홀로 빠져들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의 몸부림이 여러분의 눈에 들어오고 있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이 위대한 명령을 경청하십시요.
나아가 싸우라! 나아가 정복하라! 내 백성을 구원하라!
모든 족속을 내 제자로 삼으라!
「나가 싸우라」는 모세의 명을 따라 기쁨으로 순종했던 루우벤과 갓 지파는 그들의 소원대로 요단 동편을 분배받게 됩니다. 이 땅을 복음으로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하늘 상급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워싱턴 주 타코마시에 살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토마스 주남 여사가 쓴 최근의 베스트 셀러 Heaven is so real! 「천국은 확실히 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1996년 1월 성령의 임재와 함께 천국을 다녀온 그는 그의 신앙과 삶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열일곱번이나 천국에 이끌려 천국과 지옥을 모두 보고온 그는 본대로 느낀대로 기록하고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대로 책을 썼습니다. 꽤 두꺼운 책이지만 한번 책을 손에 잡으면 끝까지 놓을 수 없는 긴장과 감동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책입니다. 이 땅에서 나태와 형식적인 신앙생활, 세속적이고 이기적이고 받는 것만 좋아하던 사람들이 천국에서 얼마나 부끄러운 구원을 얻는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천국에서 가장 영광스런 구원이 이 땅에서 영혼을 살려내려는 구원의 열정을 가슴에 끌어안고 전도하고 교회를 섬긴 사람임을 생생히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전도보다 더 큰 사랑도 없고, 전도보다 더 큰 상급도 없습니다. 전도보다 더 큰 면류관도, 전도보다 더 큰 영광스런 구원도 없습니다. 널부러져 있는 우리의 모습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이제 나가 정복하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아파트를 마을을 내게 주신 것은 거기서 밥 먹고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아가 아파트를 마을을 정복해라. 내게 직장을 주신 것은 직장에서 우리 식구 세 식구 밥 먹고 살게함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교사가 되어서 많은 젊은이들과 어린영혼들과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 학원을 복음으로 정복하라는 거룩한 주님의 명령, 선교적인 사명이 내게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한소망 비전 센타가 세워지는 것은 우리 안락이나 편안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거대한 영적인 바람이 이 북부 땅을 가로질러 저 북녘땅을 태우고 실크로드와 예루살렘 땅끝까지 위대한 성령의 바람이 위대한 부흥의 계절이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소망 비전 센타 거기에 동참하게 될 모든 성도들이 성령의 커다란 불덩어리가 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비전을 주셨습니다. 이 전략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열정을 이 시간에 부어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몸부림하며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한 나무마다 찍기를 하나님은 어쩌면 서슴치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도끼를 거두어 주십시오. 우리가 거름을 주겠습니다. 울며 가꾸겠습니다.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성령을 거두지 마시옵소서. 촛대를 옮기지 마시옵소서. 내 민족을 내게 주시옵소서. 넘어져 있는 한국교회를 일으켜 세우겠습니다. 북녘땅을 품겠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이 위대한 성령의 커다란 불덩어리가 이 땅에서 이 교회 한복판에서 내 심장속에서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심장에 불을 던져서 그 불덩어리로 이 민족, 이 땅을 태우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쓰실 줄로 믿습니다.
출처: 은혜로운 향기 글쓴이: 경이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