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역사 드라마 중 가장 스릴과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는 것중 하나는 아마 세조의 왕위찬탈과 관
련된 계유정난에 얽힌 이야기일것이다. 1453년(단종 1년) 10월 무사들을 이끌고 김종서를 살해한 뒤 사
후에 왕에게 알리고 왕명으로 중신들을 소집, 영의정 황보 인, 이조판서 조극관 등 수많은 관료들을 궐문
에서 죽이고 혈족인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유배시킨 뒤 사사(賜死)한 계유정난의 제일 우두머리 수괴가
세조(수양대군)이다. 조선시대 왕 중 가장 추악한 방법으로 왕위찬탈을 위한 살육극을 벌인 인물이었고
권력을 위해 사람 목숨을 벌레처럼 짓이긴 더러운 인물이다. 잘 아는 직장 동료중 한명은 세종대왕의 친
형제인 효령대군 직계손인데, 그 친구도 이씨조선의 역사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하는 걸 자주 듣곤했
었다.
세조의 후궁에 관한 일화가 있다.
세조 11년 9월. 늦가을의 청명한 하늘 아래에서 임금의 아이까지 출산했던 후궁 덕중(德中)과 내시 2명
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여염집 부인네가 외도를 해도 돌에 맞아 죽을 중죄이거늘 만인지상의 절대 권력
자인 임금의 총애를 받은 여인이 죽음을 맞은 것이다.
세조는 수양대군시절 종이었던 덕중을 품어 아이까지 낳았다.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그
녀는 노비에서 후궁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지만 외로움은 커져만 갔다. 아이는 죽고 세조는 국
정에 바빠 그녀를 거의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물과 권세도 한창 품어져 나오는 그녀의 욕정을 풀어 주지 못했기에 준수한 외모의 내시 송중(宋重)에
게 마음을 주었다. 임금의 여자가 보내는 적극적인 애정공세에 곤란해진 송중은 세조에게 사실을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덕중의 외도를 접한 세조는 호걸이라는 평판에 어울리게 그녀를 특별상궁으로 강등 시키는 것으로 너그
럽게 마무리했다. 10대 초반 기방에 출입할 정도로 호방한 성격이었던 세조였기에 가능한 처사였다. 하
지만 덕중은 뜨거운 여자인지라 임금의 선처로 목숨을 건지고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종친인 귀성군
이준을 흠모하여 한글로 쓴 연애편지를 보냈다. 귀성군은 세조의 조카인데, 자기를 도와 왕위를 찬탈
하는데 큰 공을 세운 공신(훈구대신) 들을 제압하기 위해 종친인 자기 동생인 임영대군의 아들인 귀성군
이 무예도 출중하고 문재도 뛰어나 28세에 영의정에 임명한 인물이었다.
귀성군도 덕중의 편지를 받고 당혹스러워 세조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세조는 한창 젊은 이십대의 귀
성군을 바라보며 어느 새 오십 줄에 접어들어 덕중의 처소를 자주 찾지 못한 자신의 불찰을 곱씹으며 이
번에도 덕중에게 근신을 명하는 것으로 관대하게 처결했다. 하지만 불과 며칠 뒤 덕중이 또다시 귀성군
에게 편지를 보내자 세조는 질투심이 폭발하여 덕중에게 중형을 내리게 된다.
덕중은 하루아침에 귀한 신분이 되었지만 배움이 없었던 천민 출신이라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불행을
자초했다. 인간의 본성은 때론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로 무서운 불꽃과도 같을 때가 있다.
수양의 가장 높은 경지를 금욕이라 하는데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된 성직자를 제외하곤 성욕을 풀지 못하
면 심각한 성격이상을 보이기 마련이다. 부부생활에 불만이 쌓인 여성들이 우울증이나 쇼핑중독 등에 빠
지는 것이그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다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