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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에 대한 구부러진 잣대
2) 에베소서 4장 11-12절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많은 사람들이 사도의 사명이 성경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양 12사도와 바울이 토대적인 사도들로서 교회의 토대를 놓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은 설교와 가르침을 통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정경의 완성을 위해 부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12사도 중에도 성경을 한 권도 기록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을 볼 때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또 토대적인 사도들 외에도 바나바를 비롯해서 사도지만 정경을 기록하거나 교회의 토대를 놓는 것과 무관하게 부름받은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에바브로디도입니다.
빌립보서 2: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여기서 '사자'는 원어에 보면 '아포스톨로스' 즉 '사도'입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사도라고 칭했습니다. 그는 사도였습니다. 그러나 12사도나 바울과 같은 등급 혹은 수준에 있는 사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두 번째나 세 번째 등급의 사도 즉 토대적인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교회의 기초를 놓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늘날의 사도들이 하는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럼 이런 사도들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물론 하나님께 받은 그들 각자의 사명도 있지만, 성경은 다른 모든 사역자들과 일치되는 사도들의 사명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12절)
이것이 사도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사명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일들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1세기뿐 아니라 지금도 성도는 온전케 되어야 합니다. 1세기뿐 아니라 지금은 성도는 봉사를 위해 준비되어야 합니다. 1세기뿐 아니라 지금도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야 합니다. 이 세 가지는 현재는 물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에 필요한 사도들 역시 계속 존재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쉬운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집을 지으려면 설계사나 미장이 한 사람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기술자들이 힘을 모아야 제대로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집인 교회도 목사나 교사만으로 제대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가 모두 힘을 합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만 남겨두고 사도와 선지자는 더 이상 보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오늘날도 존재합니다.
3) 데살로니가전서 2장 7절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여기서 바울은 자신뿐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여기서 '우리'는 바울과 함께 편지를 보낸 발신자들입니다. 그들은 1장 1절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 사람을 뜻하는데, 여기서 '실루아노'는 실라입니다. 따라서 실라와 디모데도 사도입니다. 테이어(Thayer)의 『신약성경 헬라어 원어사전』(Greek-English Lexicon of the NT)은 사도의 용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바울에 따르면, 사도들은 그리스도인 교사들의 다른 다양한 지위들(교사, 복음 전도자, 선지자)과 같이 탁월하며, 또한 성령을 보다 풍성하게 수여받음으로써 성령의 특별한 은사들을 받은 자들(고전12:28; 엡4:11), 더 넓은 의미에서 그 이름(사도)은 그밖의 다른 그리스도인 교사들에 양도된다. 바나바(행14:14), 그리고 아마도 디모데와 실루아노(살전2:7)."
보십시오! 디모데와 실루아노도 사도들의 그룹에 포함시켰지요.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왜냐하면 12사도와 바울과 바나바로 사도의 계보가 끝난 것이 아니라 실라와 디모데 등 다음 세대로 계속 이어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리와 디모데를 끝으로 사도직이 끝났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은 불합리하며 전혀 증거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증거는 있는데 초대 교회의 문서들이 그것입니다. 두 가지 예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A.D. 1세기 말 - 2세기 초의 작품인 『헤르마스의 목자』입니다. 이 책은 초대 교회가 당면했던 문제들, 특히 도덕적 타락과 회개의 문제를 취급합니다. 작품성에 대해서는 일단락하고 그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당시 교 회의 직분들이 네 가지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바로 사도들, 주교들, 교사들, 집사들(이 당시 집사 직분은 오늘날 일반적인 집사 직분과 다릅니다)입니다(Hermas Vision 3 5:1 Those square white stones which fitted exactly into each other, are apostles, bishops, teachers, and deacons, who have lived in godly purity, and have acted as bishops and teachers and deacns chastely and reverently to the elect of God).
다른 하나는, 『디다케』입니다. 『디다케』를 '12사도의 교훈'이라고도 합니다. 이 작품은 A.D. 1세기 말에서 2세기 중엽 시리아 지방의 무명의 편집자에 의해 당시 교회들이 사용하던 교리문답과 규범을 묶어놓은 책입니다. 당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하고 가치 있는 자료입니다. 그런데 이 책 역시 당시 교회들 가운데 교사들, 사도들, 선지자들의 그룹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Didache 11:1 Whosoever, therefore, cometh and teacheth you all these things that have been said before, receive him. 11:2 But if the teacher himself turn and teach another doctrine to the destruction of this, hear him not; but if he teach so as to increase righteousness and the knowledge of the Lord, receive him as the Lord. 11:3 But concerning the apostles and prophets, according to the decree of the Gospel, thus do. 11:4 Let every apostle that cometh to you be received as the Lord. 11:5 But he shall not remain except one day; but if there be need, also the next; but if he remain three days, he is a false prophet. 11:6 And when the apostle goeth away, let him take nothing but bread until he lodgeth; but if he ask money, he is a false prophet).
이 문서들은 실라와 디모데 이후에도 사도들이 계속 존재했다는 것으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이처럼 역사는 사도직의 단절이 아니라 사도직의 계승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가 오늘날도 존재한다고 믿어야 합니다.
주님은 모든 시대의 교회를 위해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를 세우셨습니다(엡4:11-12).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사도와 선지자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만 인정합니다. 그래서 사도와 선지자들이 활동했던 초대 교회와 달리 교리적이고 종교적인 교회 즉 무능한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교회가 다시 초대 교회처럼 되려면 사도와 선지자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물론 오늘날 영성운동 안에 수많은 사도와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극히 일부만 참 사도와 선지자입니다. 그 안에 거짓 사도들이 너무 많고 대부분은 자칭 사도들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지만 참 사도와 선지자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럼 어떤 이들이 참 사도와 선지자일까요?
먼저, 늘 주님과 함께했고 주님의 친구들이었던 12사도들처럼(막3:14), 그리고 주님을 개인적으로 뵈었던 바울처럼(고전9:1)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주님과 친밀한 사람이 진정한 사도와 선지자입니다.
또, 모든 교회를 위해 염려했던 사도 바울처럼(고후11:28), 개교회 이기주의와 야망을 버리고 도시와 나라와 이 시대의 교회들을 가슴으로 품을 수 잇어야 진정한 사도와 선지자입니다.
또한, 교회의 토대를 놓은 토대적인 사도와 선지자들처럼(엡2:20), 진리를 옳게 분별하여 바른 진리를 알고(딤후2:15) 교리대로가 아니라 성경대로 설교하고 조금도 타협하지 않아야 진정한 사도와 선지자입니다(갈1:10).
그리고, 예수님과 12사도와 바울처럼 종교적이지 않고 성령충만하여 치유와 축사와 기적을 능히 행할 수 있는 사람(마10:1-2), 즉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고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사도와 선지자입니다(요14:12, 고후12:12).
이런 이들이 참 사도와 선지자입니다. 이런 이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초대 교회 같은 교회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것만이 점점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한국 교회와 이 시대의 교회들이 다시 부흥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믿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저와 우리 교회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는 1.구원, 2. 견인, 3. 은사, 4. 계시, 5. 사도에 대해서 다뤘습니다. 다 들어보시니 어떻습니까? 사랑하는교회가 이단입니까? 아니지요!
우리 교회의 주장은 너무나 성경적입니다. 한국의 어떤 유명한 교회나 교단보다도 훨씬 더 성경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이단이 아니라 한국 교회가 비성경적이고 문제가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제가 한 달 넘게 이 설교를 했는데 설교가 끝나갈 무렵, 과거 우리 교회에 강사로 오셨던 유명한 목사님들의 예언이 떠올랐습니다. 그 예언들이 새롭게 공감이 되고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어떤 예언들이냐고요?
먼저, '인도의 사도 바울'이라 불리는 예수 파담 목사님의 예언입니다. 그분은 예언을 잘 하지 않는 분입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에 왔을 때 이례적으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꿈을 주셨습니다. 그 꿈에 대하여 주위 사람들이 빈정대는 말을 듣지 말고 앞으로만 나아가십시오. 계속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십시오. 사람들의 말을 들을 것 없고 내 말만 들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 너무 커서 '그것이 과연 이루어질까?' 하고 생각할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 꿈꾸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는 모델 같은 교회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목사님을 그 모델로 세우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밥 존스 목사님도 뉴저지에서 같은 예언을 했습니다.
"변 목사님은 지금 '모델 교회'(Pattern Church)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모델 교회'는 기본 원형 모델이 되어서, 다른 교회들이 그대로 따라서 교호를 세워나갈 수 있는 좋은 본보기가 되는 교회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변 목사님도 그런 좋은 본보기가 되는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단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교회들이 본받아야 할 이 시대의 모델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사명의 전부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힘을 합해 모델 교회를 세울 뿐 아니라 썩고 변질된 한국 교회와 이 시대 교회를 개혁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헤시 차브다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언한 것입니다.
"사랑하는교회에서 변화의 영(Spirit of Shift), 종교개혁의 영(Spirit of Reformation)을 느꼈습니다. 지금 변 목사님과 함께 있는 이곳에서도 동일하게 종교개혁의 영(Spirit of Reformation)을 느낍니다. 형용하기 힘든 어떤 영적인 외침들이 한국 땅 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것을 듣습니다. 저는 한국 땅이 영적인 소리들, 하나님이 주신 어떤 소리들을 발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렇게 땅에서 영적인 외침이 터져 나오는 소리를 발하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전에 방문했었던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등 그 어떤 나라에서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땅 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외침에는 어떤 특별한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종교개혁(New Reformation)의 외침'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교회가 그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
종교개혁의 사명을 감당했던 사람들에게 엄청난 압박과 핍박이 쏟아졌습니다. 츠빙글리가 설교했던 교회에 가면 츠빙글리 동상이 있는데 한 손에는 성경책을 들고 한 손에는 검을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비록 그가 전쟁을 선포한 것은 아니지만, 종교개혁을 이끄는 가운데 너무나 극심한 핍박을 받아서, 그는 성도들을 보호해야 했기 때문에 손에 검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온 강사들 중 임재가 가장 좋았던 라이언 와이어트 목사님도 이와 동일한 예언을 했습니다.
"사랑하는교회는 선두주자이기 때문에 저항과 핍박이 불가피합니다. 핍박을 헤쳐 나가면서 사랑하는교회는 이 시대의 많은 교회들을 위하여 새로운 길과 흐름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진실로 믿기로는, 사랑하는교회는 하나님께서 쓰시는 영적인 창의 끝(Tip of Spear)과 같이 가장 예리한 영적 무기에 해당하는 특별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현재 사랑하는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하여, 이미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종교개혁(Reformation)과 교회개혁을 일으키시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지금 사랑하는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종교개혁(Reformation)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핍박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핍박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원래 핍박을 각오한 자만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면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것을 너무 가볍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쉽고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D. A. 카슨은 『성경 해석의 오류』라는 책에서 그것을 이렇게 꼬집었습니다.
"우리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는 우리의 경험을 그 본문에 개입시켜 읽음으로써, 류머티스 관절염, 돈이 궁한 상태, 성마른 이웃, 어리석은 반 친구, 개인적인 실패, 혹은 심지어 농담(하나님 이런 우리를 용서하십시오!)까지 우리의 십자가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에게 너무 가벼운 것을 지우고 있다. 왜냐하면 1세기 독자들에게 문자적으로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죽으라는 명령일 뿐만 아니라 그것도 아주 고통스럽고, 치욕스럽고, 굴욕적으로 죽으라는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비로마인 범죄자나 이 세상의 쓰레기 같은 사람들을 십자가에 처형했다. 만약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에게 각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따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면, 예수께서 마음에 그리고 있는 (것은) ...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죽음을 마음에 그리고 계신 것이다."
옳습니다. 우리가 져야 할 '자기 십자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소한 것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를 잃을 뿐 아니라 자기 목숨까지도 잃은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14:25-27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진지하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 교회를 모델 교회로 세우고, 이 시대 교회들을 개혁하는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를 잃게 되더라도 끝까지 돌아서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여러분의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끝까지 함께하겠습니까? 그렇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어떤 핍박과 불이익 앞에서도 즉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더라도 절대로 뒤로 물러서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잠언 27;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잠언 27:17 새번역)
쇠붙이는 쇠붙이로 쳐야 날이 날카롭게 서듯이, 사람도 친구와 부대껴야 지혜가 예리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