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한국기독교는 배금주의 종교로 전락하였다.
한국기독교는 본래 서구 자본주의사회에서 형성된 기독교의 확장으로서 전래된 종교였다. 기독교 포교의 사명을 띠고 한국에 온 서양 선교사들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의 신봉자들이었다. 가령 영미개신교는 종교개혁의 영향 하에 기독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던 종교였다. 본래 기독교는 엄격한 경제윤리를 적용하여 교회가 금권에 종속되지 않도록 하였었다. 그러나 결국 자본주의 사회경제 체제는 기독교의 물질관을 변화시키고 오염시켰다. 큰 틀에서 보면 기독교는 자본주의 사회경제 체제에 종속되게 된 것이다. 서양 선교사들의 교회 재정정책은 교회 중심적이었고 교회 설립 중심적이었다.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들은 기독교 포교를 위하여 자선사업, 의료사업, 교육사업에 상당한 투자를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는 어디까지나 포교와 개종의 미끼요 수단이었다. 기독교 신앙의 실천으로서의 사랑의 행위는 아니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 한국 기독교의 재정 정책이 교회 중심적이요, 교회 확장 중심적인 성격을 띠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한국기독교는 지난 60년대 이후 경제 성장주의에 편승하여 교회 성장주의의 경주에 진입하였고 이 경주는 현금의 극한적인 상황에까지 치닫고 있다. 한반도의 기독교 성장의 '기적'은 경제적인 한강의 기적과 대비될 것이다. 한국기독교의 성장은 기독교 인구의 증가를 의미하고 대형 교회의 형성을 의미하며 종국에는 대형 교회들의 재력으로 나타난다. 오늘날 이 대형 교회들의 재정은 각종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다. 이것은 오늘 한국의 대형 기업들이 각종 대형 비리의 온상이 된 것에 비견된다. 한국의 타락하고 부패한 경제 현실은 한국기독교 안에도 별 차이 없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타락한 자본시장의 양태를 보여주는 종교시장의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불의하고 타락한 재정 구조를 가진 한국기독교는 한국 사회에서 경제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였다. 이것은 단순히 교회 헌금의 몇%가 사회에 환원되느냐 하는 지엽적 문제가 아니다. 보다 근원적으로 한국기독교는 돈을 숭배하는 배금주의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기독교의 수입은 교인들의 헌금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헌금 구조는 지극히 타락한 종교적 형태를 가지고 있다. 헌금의 배후에는 교인들의 옳고 그른 경제활동이 있다. 교회는 수입을 증가하기 위하여 강압적 방법을 적용한다. 헌금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개발한 논리들은 다양하고 그 동기가 불순하다. 한국기독교는 수입을 증가하기 위하여 종교를 상품화한다. 이것은 중세 가톨릭 교회가 판 면죄부와 다름이 없다. 교회의 수입을 증가하기 위하여 교회직과 돈을 교환하기도 하며, 교회 건축이나 대형 선교사업을 하기 위하여 종교를 수단으로 교인들의 호주머니를 쥐어짠다. 이런 식으로 많은 가난한 교인들이 착취를 당하고 있다. 구원이라는 종교적 상품이 이처럼 매매 되는데, 그 수입은 교회 지도층의 물욕, 성공욕, 명예욕, 권력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쓰인다. 이런 과정에서 대형 교회들은 가끔 개인이나 소 이권집단에 의하여 사유화 된다. 이것은 기독교의 이름으로 경영되는 사업들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 집단에서 경영하는 많은 교육사업, 의료사업, 자선사업 등 각종 사업들이 이처럼 타락한 기독교 지도자들에 의해 경영되는 것들이다. 이 기관들은 기독교 공교회의 공공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사적 이권을 노리는 기독교 사업가들에 의하여 거의 사유화되고 있다. 이 기독교 공공 사업들은 투명한 감사가 결여된 상태에서 말로 서술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부정부패와 비리의 온상이 되어 있다. 청렴과 정의와 건실한 경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이것은 일반 한국사회에서 진행되는 부정부패와 비리와 그 궤도를 같이 하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 사회에서 살아가는 기독교 사업가들이나 경제학자들은 경제정의나 경세제민의 논리에 대하여는 큰 관심을 가질 수 없다. 그런 관심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있다 하여도 그들의 주장이나 소리는 배격 당할 수밖에 없다. 한국기독교는 그 자체의 경제적 이념이나 체질, 그리고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부정과 비리 때문에 민족의 경세제민에 빛의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다.
3. 한국기독교는 차별주의 종교, 가부장적 권위주의 종교이다.
한국기독교는 한국사회에 있는 모든 차별과 권위적 위계질서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고 또 그 나름대로의 별도로 체계화된 차별과 권위적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극단적인 카스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카스트주의는 차별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한다. 어떤 이는 한국기독교는 가부장제적 차별의 요새라고도 칭한다. 성직자나 고위 제직들의 일반 평신도에 대한 차별,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차별, 성인들의 청소년, 어린이들에 대한 차별, 돈 있는 기독교인의 돈 없는 자들에 대한 차별, 지식 있는 자들의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 소위 신앙이 좋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의 초신자들과 교회 생활을 열심히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 신분이 높은 기독교인들이 신분이 낮은 자들에 대한 차별, 기독교 신자들의 불신자들에 대한 차별 등은 한국교회의 차별행위들이다. 누가 이런 차별의 족쇄가 기다리고 있는 교회에 가고 거기에 속하고 싶겠는가?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 기독교 안에서 정치적 차별, 지역적 차별, 인종적 차별, 일반인들의 신체장애자들에 대한 차별, 자기 류의 가치관과 신학과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 이념적 차별, 종교적 차별 등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차별은 다 발견 될 수 있고 이 차별들은 교묘하게도 종교적으로 신학적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만약 예수가 지금 한국기독교에 나타난다면 분명히 그도 차별 당하는 대상이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국기독교의 여성 차별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차별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한다.
본래 한국사회는 유교적 가부장제의 영향을 받아 여성이 철저히 차별을 받았다. 조선사회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여자를 차별하였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여기서 논의할 주제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갈 3장)과 초기 한국기독교의 역할을 생각하면서 오늘 한국기독교의 여성 차별을 논할 필요가 있다. 한국기독교는 한국의 여성 민중과 연대하지 않는다. 이것이 한국기독교가 여성을 차별하는 가장 포괄적인 증거일 것이다.
한국기독교의 예수는 한국 여성 민중의 친구일까? 내가 아는 어떤 어머니는 노비의 삶을 살았다. 그는 일자 무식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식구가 많은 집안의 큰딸로 태어났다. 본래 이름도 없어야 했겠지만 일제의 덕(?)에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가사노동이라는 중노동이 시집가기까지 주어졌다. 지금 여성학자들이 말하는 가사노동과는 전혀 다른 노예노동 그 자체였다. 이것은 가족이라는 허울 속에서 이루어진 범죄였다. 그리고 그녀는 중매에 의하여 시집을 갔다. 노예처럼 교환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의 친정에서 하던 노동보다 더 심한 노예노동의 운명을 맞게 되었고, 남편이라는 남자의 천대 속에서 사랑도 없이 결혼이라는 제도적 요구 때문에 몸도 내주어야 했다. 그녀는 아들을 생산해야 하는 의무를 수행해야 했다. 한국기독교는 이 여인에게 아무런 해방적 가르침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기독교는 이 여인이 자기의 운명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일 것을 종용하였다. 이보다 더 차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종교가 있겠는가? 아니 모든 종교는 다 이런 것이 아닌가?
한국기독교는 과연 기독교가 아니란 말인가? 기독교란 본래 노예 해방의 종교가 아니었던가? 나는 우리 역사에 사탄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한국기독교는 개항기에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것은 초기 기독교의 문화 즉 서양문화가 조선의 문화보다 진취적이어서 여성의 역할이 인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조를 형성하는 일은 아니었다. 서구기독교가 지니고 있었던 자유주의 평등주의 정도의 가치관을 서구 선교사들을 통해서 전래 받았던 것뿐이다. 한국기독교는 평등주의적 남녀 관계를 제도화하는 데 실패하였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한국기독교 자체가 유교적 가부장제를 새로운 형태로, 즉 종교사회에 존속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이 오늘 한국기독교 사회 안에 정착된 종교적 가부장제이다.
한국기독교는 엄청난 도전에 접한다. 한국의 여성들이 일제의 성적 노예로 끌려가는 현실이 일제 후기에 발생한다. 한국의 기성사회에 사회적으로 존재하던 매매춘과는 종류를 달리하는 제국주의의 강요된 제도적 강간이라는 성폭력이 우리 역사에서 자행된 것이다. 그것도 소위 일본 천황의 신격적 권위로써 일본 황군이 자행하는 범죄적 폭력이다. 이러한 일은 전쟁 때마다 일어나는 범죄라고는 하지만 일제가 동원했던 정신대사건은 실로 사탄적(demonic)인 것이었다. 한국기독교는 일군의 성폭력에 의하여 희생당한 여자들에게 과연 진정한 이웃이 되었던가? 한국기독교는 암암리에 도덕주의적 태도로 그들을 정죄하는 자리에 있지는 않았는가? 오늘날 미군들이나 한국군들에게 강제적으로 또는 경제적인 이유로 사회적 성폭력을 당하는 여자들이 한국기독교 공동체에 자리할 곳이 있는가? 한국기독교여성연합회가 제기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상당한 사회적, 국제적 문제로 부각되었다고 하지만, 정신대의 문제를 한국기독교의 차별주의를 심판하는 표준으로 삼는 일은 아무도 하고 있지 않는 듯하다. 전쟁은 많은 여자들을 과부로 만든다. 우리는 분단시대의 비애를 말하지만 과부와 고아의 운명에서 분단의 역사적 경험을 조명하는 일은 별로 하지 않았다.
한국기독교는 한국전쟁 당시 그리고 그 이후 어느 정도의 구호사업을 통하여 과부와 고아들을 돌봄으로써 도덕적 알리바이를 삼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국사회나 한국기독교 사회의 과부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는 일을 하였다고는 할 수 없다. 한 여자가 자기 인생의 동반자를 잃은 것만 해도 한이 되는데 과부라는 낙인, 가난이라는 차별, 여자라는 차별을 이중 삼중으로 당한다. 한국기독교는 이 과부들의 진정한 친구인가? 그렇지 못 하다면 한국기독교는 이 차별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 농민, 여성 도시 빈민과의 관계에서도 명시 될 수 있다. 이들이 한국기독교의 자선의 대상이 된 것은 사실일지 모르지만 그들이 하나님나라의 주인이고 여성 해방의 주체라는 인식은 한국기독교에는 없다. 이것은 기독교 남자가 여성을 차별한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한국기독교의 대내적 그리고 대외적 차별주의를 한국역사의 차별 당한 여성들의 이야기와 결부하여 논하였다. 나는 이런 논법이 분석적 논법보다 유익한 면이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적용하여 보았다.
4. 한국기독교는 독선적이고 분열주의적 종교집단이다.
한국교회는 분열하는 종교집단이다. 한국기독교의 분열을 자연적 현상이라고 보려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지만 한국기독교의 분열이야말로 심각한 병폐라고 나는 지적하고 싶다. 한국기독교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분열상을 보여주고 있다. 장로교파 하나만 하더라도 100개의 장로교단이 있다고 조사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심각한 분열상이다. 한국기독교 개신교는 전래 당시부터 교파주의에 매이게 되었다. 이 교파란 실제로는 서양 기독교의 산물이지 한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한국 선교 역사에는 여러 번 교회일치를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한국기독교의 분열의 악순환을 막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초기 선교사들은 선교 정책을 협의하기 위한 협의체를 만든 일이 있었고 어떤 선교사는 한국 그리스도교회라는 단일교회를 제창한 일도 있었다. 일제의 강압 아래에서 한국기독교협의회, 또는 조선기독교단을 형성한 일도 있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도 조직되어 에큐메니칼 운동을 전개하여 왔다. 그러나 한국기독교 분열의 문제를 심각하게 그리고 철저하고 실효성 있게 다루어 본 적이 없었고, 한국기독교는 분열의 악순환을 차단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오늘도 분열의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해방 이후 한국기독교의 재건 과정에서 몇 개의 분열의 요인들이 작용하였다. 한국교회의 재건 과정에서 김규식 선생을 중심으로 "민족이 하나 되기 위하여 교회도 하나 되자. 교회가 하나 되어야 민족이 하나 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기존 한국교회 지도자들이나 현지에 복귀한 미국의 선교사들은 한국교회를 하나로 재건하는 일에 합의하지 않았다. 결국 서구의 교파주의와 기성교회의 교파주의적 지도자들은 한국기독교가 하나되는 길을 막았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기독교 안에는 선교사들을 지향하는 기독교 세력과 보다 자립적 성향을 가진 기독교 지도자들 사이에 긴장이 생기고 이것이 또 하나의 분열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한국기독교는 강한 반공주의적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을 나는 위에서 지적하였다. 이런 상황은 한국교회를 이념적으로, 신학적으로 갈라지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을 비롯하여 김규식 선생 등 한국기독교 정치지도자들은 좌우 합작의 통일 전선을 이룩하는 데 공헌을 하였건만 한국교회는 이를 무시하고 반공 일변도로 치우쳤다. 이것은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과 세계복음주의 운동의 두 노선과 연계되어 한국교회의 내적 분열을 심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또 이것은 교조적이고 배타적인 신학적 자세와 결부되어 한국기독교 분열의 신학적 요인을 제공하게 된다. 소위 신 신학 즉 자유주의 신학과 보수 근본주의 신학은 교회분열이 있을 때마다 형식적으로든 내용적으로든 치명적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한국기독교의 분열은 한국사회의 파편화와 갈등 등 여러 가지 요인들과 무관하지 않다. 가령 한국사회의 지역주의는 한국교회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한국기독교 집단들은 민주적으로 스스로를 통합할 수 있는 지도력과 지도체제를 가지지 못했고 여러 교파들과 연합할 수 있는 개방성과 포용성을 가진 지도력을 보유하지 못했다. 한국기독교 안에 권위주의적인 소 군웅들이 할거함으로 인해 한국교회의 분열은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고 가속화되었다. 한국 종교집단들이 분열이라는 병폐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기독교만큼 분열의 연쇄작용을 내포하고 있는 집단은 없다. 한국기독교가 스스로 분열을 극복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고 한국기독교가 하나되는 일은 절망적이다. 한국 기독 교회들은 이처럼 분열된 교파교회를 북한에 이식하려는 야망을 각기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지극히 염려스러운 일이다. 한국기독교는 교파도 해체하고 종파도 해체하는 파격적 운동을 전개하여야 비로소 한국기독교의 정체성과 통일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천민 정글 자본주의의 포로가 되어 있으면서도 그렇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그러니 뭐가 잘못인지도 모르고, 그러니 거기에서 헤어나올려고 하지도 않고,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