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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방선문은 '신선이 사는 곳으로 들어 가는 문' '신선이 사는 영산, 즉 한라산으로 오르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는 명소로서 영주 12경 중의 하나인 '영구춘화(瀛丘春花)로 알려진 경승지이다. 과거 조선조 선비들은 이곳의 신선의 고향 한라산을 무대 삼아 방선문(訪仙門), 환선대(喚仙臺), 우선대(遇仙臺) 그리고 등영구(登 瀛丘)의 제액을 바위에 각자함으로써 신선의 세계로 오르는 선경(仙境)의 이미지를 표현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거대하고 특이한 암석 등의 독특한 지형지질학적 특성과 주변의 식생 그리고 수계가 잘 조화된 경관지여서 옛 날부터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던 곳이며 지금도 이들이 새겨놓은 230여개가 넘는 마애명(磨崖名)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역사가 있는 문화적 명소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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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이 검고 재빛이다.
돌하루방 사이를 걸어 낭떠러지로 내려가 물길 내리는 신선이 머무는 곳 방선문이 나를 반긴다. 큰 바위굴인 들렁괴의 마애명이
바위에 새겨져 이곳 방선문에 조선시대 유배온 사람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이란다. 이어 면암(勉菴) 최익현의 유배길임을 알
수 있는 訪仙門이란 마애각도 있다고 했으나 불청객은 볼 수 없었다.
아름다운 한천(漢川)은 한라산의 왕관릉과 삼각봉에서 급하게 내려 온 물은 개미목과 탐라교를 지나 방선문을 거쳐 가다 용암포구로
스며든다.
올해 겨울은 가물어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가물어서가 아니라 제주도의 지형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하천
이 건천(乾川)이기에 그런가 보다. 건천과 작은 沼가 이어지면서 계곡의 매력을 가진 곳이다.
[방선분이라 처음 계곡으로 올라갈때는 마음이 조마조마 했습니다.. 혹시나 직벽이 나오며는 어떠나고요...자일 어깨에 메고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조금 무게가 있어서요..] 이창식님 자일이 어깨에 싣고 가시는 모습이 한라산까지 오를 작정으로 보이더군요.
준비가 철저한 모습에서 안심이 되었답니다.
[산방땜에서 구멍으로 끼여 들어 갈때는.. 그래도 몸이 맞춤형이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음에 문제없더군요.
한라산까지의 계곡을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접고.
○와흘리동굴 탐사계획을 했으나 불의의 사고로 방선문으로 횡선지가 바뀌어 진행했어도 한 번쯤 와 볼만한 곳으로 명승지답게
계곡 산행을 즐길 수 있었다.
옛날 묵객은 아니지만 불청객으로 재빛의 돌과 바위와 단애들이 어울어진 비경을 제주에서 음으로 밟아 보았다. 작고 둥근 것
은 돌이요, 크고 투박한 것은 바위요, 낭떠러지 절벽이 양쪽으로 나 있는 계곡으로 이어지는 방선문계곡을 이렇게 거슬러 올라
탐라교로 올라 섰다.
간간이 로프를 메고 절벽을 탔다고 하는 분들이 김정복 대장님, 이창식님, 동밖에님과 함께 했으나 이 세 분들은 성큼성큼 잘도 가
기에 저는 계곡을 따라가다 땅위로 올라와 걷는 내내 가시밭과 그믈망을 헤쳐가랴 애을 먹었답니다. 노루가 벌~떡 뛰는 모습이
좋았고 노루가 그물망에 걸려 죽어 있는 모습이 안스러웠습니다. 한라산(漢拏山, 1,950m)의 정상에는 직경 약 500m의 물이 고
여 화구호(火口湖: 白鹿潭)에 아직도 눈이 쌓여 있다.
탐라교에서 만나 산행은 끝이 나고 숙소로 가면서 택시기사가 추천해준 새별오름을 오를까 하다가
삼방산 근처 유채밭에 반해 그곳에서 눈요기 하다 하룻밤 묵을 숙소에 입소 했답니다.
지리산 하봉의 마가목술이 2리터, 두툼해서 먹음직한 도다리회와 이창식님이 끓인 매운탕, 동밖에님표 대봉꽂감과 과일 푸짐, 이것
저것 진상으로 만찬이 되고. 알고보니 음식솜씨가 주부10단이라니 선수입니다. 김정복 산행대장님이라 선비요, 저는 후미대장이
라 무일푼이요. 고저 입만 가지고 바라만 보았답니다.
신선이 사는 곳으로 들어가는 문이 방선문이라면 우린 풍류를 즐기는 풍류객이어라.
만리장성를 쌓았다고 하는 하룻밤이 그려지네요...와흘리에 계신 분 어서 빨리 쾌유하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잠이 들었지요......
첫댓글 한라의 계곡이 이렇게 환상적이라니 방선문
제주에 가면 가봐야지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