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고부(古阜)는 전라북도 정읍시(井邑市)에 속한 지역으로 백제 때 고부군은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 태인현은 대시산군(大尸山郡)과 빈굴현(賓屈縣), 정읍현은 정촌현(井村縣)으로 불리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고부군으로 고쳤다. 936년(고려 태조 19)에는 영주군(瀛州郡)이라 하고 관찰사(觀察使)를 두었으며, 951년(광종 2)에는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019년(현종 10)에 고부군으로 환원되었고, 충렬왕 때에는 영광군(靈光郡)에 병합되었다가 곧 분리되었다. 1409년(태종 9)에 태산현과 인의현은 태인현으로 병합되었다. 고부군은 1894년 갑오농민전쟁의 발원지로서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가장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지역 중의 하나이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주부(全州府) 고부군이 되었다가 1896년 전라북도로 개편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고부군의 일부가 정읍군에 편입되다. 1981년에 정주읍이 정주시로 승격 분리되었으며, 1983년에 내장면 일원과 소성면의 일부, 덕천면의 일부가 정주시에 편입되었다. 1995년 정읍군과 통합하여 정읍시로 승격되었다.
성씨의 역사
고부이씨(古阜李氏) 시조 이경조(李敬祖)는 고려 문종 때 최충(崔沖)이 설립한 사학(私學)의 효시인 구재학당(九齋學堂) 출신으로 1064(문종 18) 문과에 급제한 후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에 올랐다.
그는 1071년(문종 25) 김제(金悌)와 함께 서장관(書狀官)으로 송나라에 다녀왔으며, 문종에서 숙종에 이르기까지 5대를 섬긴 공으로 추충보정공신(推忠輔靖功臣)에 녹훈되어 여산군(礪山君)에 봉해지고 벼슬이 검교첨의정승(檢校僉議政丞)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그의 전 세거지인 고부를 관향으로 삼았다.
한편 1928년 《무진보(戊辰譜)》를 작성할 때 고부의 옛 이름인 영주(瀛州)를 관향으로 삼았다. 따라서 고부이씨와 영주이씨는 동일한 씨족이다.
분적종 및 분파
집의공파(執義公派): 이백첨(李伯瞻)
부사공파(府使公派): 이승겸(李承謙)
처사공파(處士公派): 이처겸(李處謙)
군수공파(郡守公派): 이원량(李元良)
석호공파(石湖公派): 이승간(李承幹)
벽동공파(碧潼公派): 이정(李精)
설서공파(說書公派): 이거겸(李居謙)
전적공파(典籍公派): 이근(李根)
진사공파(進士公派): 이망(李望)
감사공파(監司公派): 이형즙(李亨楫)
판결사공파(判決士公派): 이아(李雅)
해남공파(海南公派): 이국(李國)
문안공파(文安公派): 이희맹(李希孟)
진원공파(珍原公派): 이희참(李希參)
부사공파(府事公派): 이춘장(李春長)
부장공파(部將公派): 이정(李貞)
참의공파(參議公派): 이운재(李雲載)
첨지공파(僉知公派)
부정공파(副正公派)
주요 세거지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일원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일원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법지리 일대
전라북도 정읍시 소성면 일원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금평리
평안남도 양덕군 쌍룡면 일원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고부이씨는 5,576가구 총 17,790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