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홍보용 LP 앨범. 가로로 흘려 쓴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앨범제목의 글씨체가 향불을 피워놓은 듯한 모습이라 나중에 검은색 바탕의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뀌었습니다. 유재하의 죽음을 예견한 듯 해서 묘한 기분이 듭니다.
유재하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Side A
1. 우리들의 사랑 2. 그대 내 품에 3. 텅빈 오늘밤 4.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5. MINUET (경음악)
Side B
1. 가리워진 길 2. 지난날 3. 우울한 편지 4. 사랑하기 때문에 5. 정화의 노래 (건전가요)
<유재하를 추모하는 앨범 1987 다시 돌아온 그대위해>
01. 다시 돌아온 그대위해 02. 지난날 03. 그대 내품에 04. 텅빈 오늘밤 05.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06. 가리워진 길 07. 우울한 편지 08. 우리들의 사랑 09. 비애 10. 그대와 영원히 11. MINUET 12. 사랑하기 때문에 13. 재하를 그리워 하며
유재하
1962년 6월6일 서울출생
1969년 은석초등학교 입학
1975년 삼선중학교 입학
1978년 대일고등학교 입학
1981년 한양대학교 작곡가 입학
1987년 8월 <사랑하기 때문에> 독집앨범 발표
1987년 11월1일 교통사고로 사망
아직도 한국 대중음악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요절한 천재 음악인 유재하의 사망 20주년을 맞아하여 그의 음악과 삶을 다루어 봅니다. 유재하의 유일한 앨범인 <사랑하기 때문에>와 <유재하를 추모하는 앨범 1987 다시 돌아온 그대위해>의 전곡을 올립니다. 곡이 많은 관계로 전곡을 이어듣기로 만든 파일만 올립니다. 모든 곡의 가사는 유재하 관련 글 아래에 있고 그 다음에 유재하의 아버지 고(故) 유일청님과 어머니의 유재하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유재하의 앨범에 있는 건전가요는 올리지 않습니다.

생전의 불운, 사후의 영광 [유재하 추모20주년] 유재하의 삶
임진모 (음악평론가)
1960년대 당대에는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미국의 루 리드(Lou Reed)라는 음악가는 30년이 흐른 1990년대에 가서야 마법처럼 부활해 제대로 된 평가와 대중의 인정을 획득했다. 그가 과거에 몸담았던 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1967년 첫 앨범을 냈을 때 비틀스와 밥 딜런의 음악도 따라가기 바빴던 그 시절의 대중은 그들의 존재를 새까맣게 몰랐어도 평단과 뮤지션은 앨범의 우수성을 알아봤다. 때문에 그 앨범을 두고 누군가가 던진 다음과 같은 한마디는 지금도 새롭다. “그 앨범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 음반을 산 사람들은 모두 밴드를 결성했다.” 만약 이 말을 우리의 음악가에 적용한다면 그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인 1987년, 스물다섯의 새파란 나이에 못다 핀 꽃 한 송이처럼 세상을 떠난 유재하라는 이름의 음악가가 될 것이다. 그는 딱 한 장의 앨범만을 남긴 채 그해 11월 1일 술 취한 친구의 차를 타고가다 택시와 충돌하는 사고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즉사했다. 그 한 장의 유작 앨범은 당시 우리가 기억할 만한 인상적인 반응을 결코 얻지 못했다. 하지만 루 리드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앨범이 그랬듯이 새로운 시도와 창의로 가득한 이 앨범의 진가를 음악가들은 즉각적으로 알았으며 또 놀라움에 넋을 잃었다. 앨범을 들은 후배 음악지망생들은 일제히 자신도 ‘유재하와 같은 음악’을 하기를 꿈꾸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앨범 뒷면에 ‘작사, 작곡, 편곡, 유재하’라고 써있는 것에 일대 충격을 받았다. 작사, 작곡을 혼자서 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가사와 멜로디를 쓰는 것 외에 그 곡을 평면적인 악보로 옮기는 실제 작업, 즉 편곡까지 혼자서 해낸 음반은 유재하 이전에는 없었다. 편곡을 스스로 한다는 것은 앨범을 완전한 자기 작품으로 빚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음악적 자주(自主)’의 완전한 실현이다. 자신의 독자적 상상력을 앨범이라는 실체로 꾸려내는 음악가에게 작사, 작곡은 물론 편곡까지 도맡아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성질의 것이 아닌, 실로 원대한 꿈이었다.

▲ 홍보용 앨범의 다지인이 좋지 못한 느낌이라 다시 내 놓은 앨범 재킷.
음악적 자주를 향한 몸부림 충격을 받은 후배음악가 중에는 훗날 최고의 발라드 가수가 된 신승훈도 끼어 있었다. 신승훈은 “그의 유작 앨범에 작사, 작곡, 편곡자가 쭉 유재하로 써있는 것을 보고 일대 충격을 받았다.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술회한다. 공교롭게도 그는 유재하가 사망한 날과 같은 1990년 11월1일에 데뷔한다. 신승훈과 같은 후배가수들, 아니 동시대에 함께 활약했던 동료가수들도 전혀 주저함이 없이 유재하를 가리켜 ‘천재’라는 말을 붙인다. 하지만 천재의 삶은 불행하다고 했던가. 그는 살아생전 천재에 걸맞은 영예를 조금도 얻지 못했다. 심지어 유일한 유작이 된 앨범을 발표했을 때 많은 방송관계자들은 “가수의 노래가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통속적인 멜로디가 없는데다 가수는 마치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힘없이 노래하는 게 의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방송사의 가수에 대한 심의에서도 떨어지는 불운을 맛봤으며 당연히 앨범이 한참 후에야, 그것도 미약한 수준의 반응이 나타나자 그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게다가 일본의 야마다 가요제에 출품한 앨범의 수록곡 ‘지난날’은 예선에서 탈락, 그를 한층 더 낙담으로 몰아갔다. 교통사고에 의한 이른 죽음은 불운과 미완으로 점철된 그의 삶에 찍은 잔인한 비수였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던 유재하는 1962년 6월 6일 광산업을 하는 아버지 유일청(1989년 작고)과 어머니 황영 씨 사이의 3남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나름의 유복한 가정환경 덕분에 삼선중학교시절 브레드(Bread), 퀸(Queen), 비틀스(Beatles), 등의 대중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바탕으로 나중에는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등 거의 모든 악기를 다룰 줄 알았다고 한다(이것이 스스로 편곡을 할 수 있는 토대였다). 가요와 팝 음악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그 시절 유재하는 클래식으로 진로를 선택했고 한양대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하게 되었다. 대학시절에 벌써 음악에 대한 빼어난 창의력이 음악계에 알려지면서 4학년 때인 1982년, 당대 최고의 가수 조용필의 백업밴드인 ‘위대한 탄생’에서 건반주자로 활약하게 된다. 비록 활동기간은 학교의 간섭으로 2개월에 그쳤지만 종래의 음악과는 패턴이 전혀 다른 그의 진보적인 곡에, 늘 앞서가고자 했던 조용필도 주목했다. 그 곡이 조용필의 7집에 수록되어 한때 라디오전파를 잠식한 ‘사랑하기 때문에’였다. 유재하는 나중에 독집의 타이틀도 ‘사랑하기 때문에’로 내건다.

▲ CD 로 나온 앨범의 재킷 사진
'유재하 사단'의 등장 대학졸업 후 군복무를 마치고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이었던 전태관이 속해있던 밴드 ‘김현식의 봄여름가을겨울’의 멤버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그는 오래지 않아 팀을 나가버렸다. 전태관은 이에 대해 “유재하가 비장의 곡이라고 여긴 여러 곡을 내놓았지만 김현식이 단 한 곡인 ‘가리워진 길’만을 채택하자 상심이 컸기 때문일 것”이라고 훗날 술회했다. 자신의 진면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에 고민한 유재하는 스스로 독집을 내는 정공법을 택했다. 그의 이상향은 곡쓰기, 편곡, 연주 등 음악의 모든 작업을 독자적으로 해내는, 말하자면 음악적 상상력을 완벽하게 앨범에 구현하는 것이었다. 실로 ‘음악적 자주’라는 야망을 좇는 힘겨운 비행이었던 셈이다. 무명의 긴 시간은 ‘지난 날’이 서서히 전파를 타고 팬들의 사랑이 살짝 보이기 시작하면서 끝날 듯 했지만 얼마 후 그는 마치 애처로운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처럼 훌쩍 우리 곁을 떠나갔다. 이른 생을 마감한 그의 불우를 대가로 우리 음악계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멜로디와 모양새의 대중음악을 접하게 되는 과분한 영광을 얻었다. 1989년부터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열려 유희열, 조규찬, 심현보 등 그의 영향을 받은 음악 인재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이외에도 유영석, 한동준, 김광진, 김동률, 나원주 등 많은 후배 음악가들을 두고 사람들은 ‘유재하사단’이라고 일컫는다. 역사적으로 우리 음악가의 이름 뒤에 사단이란 거창한 말이 붙은 사람은 신중현과 유재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남긴 발라드의 문법은 지금도 우리 음악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특히 작곡지망생들에게는 ‘필생의 로망’이다. 누군가는 “한국의 음악계는 유재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했다. 생전의 불운은 어느새 사후의 영광으로 바뀌었다. 올해 사후 20주기를 맞아 그에 대한 음악가들의 그리움을 한층 깊어질 것이다. 그리움은 1987년 11월1일에 바로 그날에 이미 시작되었다.

▲ 홍보용 LP 앨범의 뒷면
변색되지 않는 아름다움, 유재하의 음악 [유재하 추모20주년]유재하 음악
배순탁 (음악평론가)
고(故) 유재하의 음악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그 형식 미학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한다. 크게 나누어 봤을 때 유재하의 음악은 대중가요가 성립하기 위한 세 가지의 조건들을 선도(鮮度) 높게 포용해냈다. 바로 작사, 작곡, 편곡이다. 사실 누구나 이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모두를 능란하게 섭렵하기는 어려웠다. 적어도 1987년 그가 솔로 음반을 내기 전까지는 그랬다. 작사, 작곡, 편곡은 1986년까지만 해도 각각 독립된 분과로서 인식되었다. 물론 작사, 작곡을 겸비하는 싱어 송라이터의 개념은 확립되어있었지만, 편곡까지 끝마칠 수 있었던 능력의 소유자는 1980년대에 유재하가 유일했다. 이와 관련, 그를 평생의 스승으로 삼고 있는 신승훈은 “작사, 작곡, 편곡이 모두 유재하로 표기되어있는 것을 보고 일대 충격을 받았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 2001년에 재 발매된 CD '사랑하기 때문에' |
그만큼 유재하는 음악에 있어서의 ‘틀’을 중요시하는 뮤지션이었다. 애수가 배어있는 눈길로 음악의 세계를 깊이 있게 관찰한 그는 자신이 완성한 틀로써 음악의 ‘의미’를 드러내고자 했다. 그래서 그의 눈은 음악의 틀을 사랑하는 형식주의자의 눈이기도 했는데, 그 안에 감추어진 낙관주의자의 넉넉함을 통해 그는 음악이 가질 수 있는 의미소들을 가감 없이 포용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완성되었던 것은 당연히도 음악적 주체성의 온전한 실현이었다. 생전에 유재하는 ‘멀티 플레이어’였다. 피아노는 말할 것도 없고, 바이올린, 첼로, 기타까지 마스터했으며 작곡 솜씨도 뛰어났다. 악기에 능통한 덕분이었지만 앞서 말했듯 편곡까지 도맡았다는 점은 당시 상황으로서는 너무나 생경했기에 놀라움을 던져주었다. 그것은 한양대 음대 작곡과를 전공하면서 화성악을 통달했기에 가능한 결과들이었다. 또한 그는 클래식 음악의 세례를 받은 뮤지션들이 흔히 약했던 가사 쓰기에도 능란했다. 아직도 그의 레퍼토리들이 노래방에서 사랑받는 이유에는 곡이 좋았던 것이 결정타였겠지만, 이렇듯 심금을 울렸던 가사도 한몫했던 바가 크다. 앨범의 수록곡들 중 타이틀이었던 ‘사랑하기 때문에’, ‘가리워진 길’, ‘지난 날’ 등이 대표적이다.

▲ 1997년에 발매된 '유재하를 추모하는 앨범 1987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
비유하자면 작곡과 작사로 탄탄한 밑변을 그린 뒤, 그 중심 위의 꼭지에 편곡이라는 마침표를 찍었으니, 유재하의 음악은 우리 가요계에서 최초로 완성된 음악적 삼각형이라 부를 만했다. 이렇듯 대중들이 수도 없이 경험해왔던 도식적 멜로디를 기반으로 하는 재래식이 아닌, 탄탄한 음악 이론들을 거름 삼아 만들어졌기에 대중이나 평단의 처음 반응이 뚱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의 음악은 유재하 이전과 유재하 이후로 나뉜다”라며 평가의 그래프가 극점을 향해 있으니, 음악계에서도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은 추호도 과장이 아니다. 대표곡인 ‘사랑하기 때문에’는 그러한 세월의 변화무쌍함을 평가의 측면에서 증거하는 동시에 훌륭한 음악은 결코 변색되지 않음을 명증하는 지표종이었다. 어느 전문 작곡가는 “당시 곡이 발표되었을 때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후렴구 멜로디부터가 가요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독창적 선율이었다”라며 유재하 음악의 독보적 위상을 대변한다. 수작으로 평가받는 ‘가리워진 길’을 비롯해 ‘텅 빈 오늘밤’, ‘지난 날’ 등 다른 곡들도 그 전까지의 대중가요에서는 들어볼 수 없었던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천재의 작품’이라고 헌사를 보내지만, 멜로디만을 따르는 일반 음악소비자들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여러 번 듣는 인내가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 다시 내놓은 앨범재킷의 뒷면
유재하의 음악은 그러나 적어도 뮤지션들에게는 당대에 벌써 높이 평가받아 이 음반의 곡 ‘가리워진 길’은 김현식이 자신의 3집에서 먼저 노래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김현식의 백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에서 유재하와 함께 활동했던 김종진과 전태관은 “1986년 (김)현식형이 3집 녹음을 했을 때 유재하가 비장의 다섯 곡을 써냈으나 그중 하나인 ‘가리워진 길’만이 채택되자 팀을 나가고 말았다”라고 증언한다. 이렇듯 자신만의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 인기 그룹을 과감히 등졌다는 부분도 자주성의 측면에서 높게 평가되는 부분이다. 또한 ‘사랑하기 때문에’는 유재하가 조용필 밴드에서 연주했던 인연으로 당대 최고가수 조용필이 부르기도 했다.
 △ 유재하 추모음반 제작에 참여한 음악인들이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를 녹음하고 있다. |
그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지 20년째가 되는 지금, 유재하가 음악계에 얼마나 큰 자취를 남겼는가는 사망 2년 뒤인 1989년부터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개최되어 유희열, 조규찬, 심현보, 스윗 소로우 등의 음악인재들을 배출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연스럽게 ‘유재하 사단’이라는 수식도 등장했는데, 상기한 인물들은 물론 유영석, 한동준, 김광진, 김동률 등 무수한 뮤지션들이 직간접적으로 여기에 속해 있는 음악적 채무자들이다. 이들 가운데는 유재하에게 바치는 곡을 발표한 사람들도 많다.
아마도 역사적으로 우리 음악가의 이름 뒤에 사단이란 거창한 말이 붙은 사람은 신중현과 유재하 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유재하는 우리 대중음악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위대한 채권자였다. 앞서 말했듯 그에 대한 평은 상전벽해를 이루었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그의 음악의 처연한 아름다움이고, 변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내면에 충일한 자태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이제는 모두가 이것을 잘 알고 있다.

▲ 추모앨범재킷의 뒷면
사랑하기 때문에, 유재하가 남긴 발자취 [유재하 추모20주년] 추모하는 사람들
조이슬 (음악웹진 이즘 필자)
생경함이 익숙해지면 때로는 전설이 되기도 하는지 1987년,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단 한 장의 앨범이 대중 가수들에게 정형화된 패턴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채 몇 년이 걸리지 않았다. 잘 알려진 사실대로, 클래식을 전공한 그의 전통 화성학을 기초로 발라드는 물론, 재즈, 신스 팝 사운드까지의 다양한 접근, 고전주의의 형식미를 갖춘 듯한 정확한 기승전결의 구조, 현과 관악기를 끌어들인 기품 있는 편곡은 곧 국내 싱어 송 라이터들의 요체가 되었다. 그가 드럼, 기타, 건반을 모두 소화해낸 멀티 플레이어라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바로, 악기 하나하나의 음색까지 정확히 파악하여 곡 전체를 조율하고, 곡의 질감을 결정하는 비범한 ‘편곡’능력이었다. 우리가 지금에서도 ‘고급가요’라고 부르는 정통 발라드의 얼개를 사실상 이 때 형성한 것이다. 지금의 싱어 송 라이터들의 발라드 군단을 이 카테고리로 묶어놓는 것도 바로 이런 사실에서부터 출발한다.
그가 뿌려놓은 뮤지션의 미학적 고민은 라디오를 메인 스테이지로 삼은 싱어 송 라이터들이 붐을 이뤘던 1990년대 중반, 그 절정을 이룬다. 유재하의 음악을 듣고 자란 젊은 피들이 당시에 느꼈을 정서적 강도는 훨씬 높았을 터. 이는 이들이 성인이 되어 앨범을 발표한 시기였고 무엇보다도 1989년, 1회 대상이었던 조규찬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신인 뮤지션들의 요람으로 이어져 내려온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의 전성기와 정확히 맞물린 때이기도 하다. 고인의 못다 이룬 음악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유재하 음악 장학회’가 매회 주최하는 이 대회에서 국내 음반 대부분의 스트링 편곡을 담당해온 박인영(2회 금상), 모던 록에서 그 역량을 발하는 강현민(3회 은상), 토이(Toy)의 음악 작가 유희열(4회 대상), 작곡가이자 그룹 스토리(The Story)출신의 이승환(5회 은상), 여러 가수들의 ‘노래 선생님’으로 통하는 김연우(7회 금상), 대회 당일 유재하와 꼭 닮은 목소리로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했다는 자화상 출신의 정지찬(8회 대상)과 뛰어난 건반 능력으로 가요제에 또 다른 패턴을 제시한 나원주(7회 대상) 등이 바로 이 시기에 배출된 소중한 인재들이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 가수들. 유희열, 강현민, 조규찬, 오윤아(왼쪽부터)
미학적 흐름으로 무장한 음악에 현실의 결을 부여한 그의 가사처럼, 나지막한 사운드로 당대의 젊은이들의 감성을 건드렸던 멜로디처럼 그들에게 요구된 것은 단순히 가요의 형식을 따르는 것이 아닌 송 라이팅의 능력과 연주, 가사가 합일된, 참된 음악을 추구하는 뮤지션의 고고한 능력이었다. 때로는 이들이 형성한 ‘유재하식 발라드’라는 형식이 유재하 가요제라는 근엄성에 갇히기도 했지만 발라드의 일정한 문법과 탐미성에의 완성이라는 점에서는 두말할 것 없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아직도 미디 음원 사용에 제한을 두는 등 어쿠스틱한 그들만의 감성을 지향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솔로로만 제한되던 참가 자격이 시대의 요구에 맞춰 점차 넓혀지고 다양한 장르도 포용함에 따라 스윗 소로우 등의 실력 있는 보컬 팀과 허민, 임주연 등의 여성 뮤지션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유재하의 영향력이 비단 이 대회 출신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현존하는 국내 최고의 작곡가로 손꼽히는 작곡가 김형석은 영향을 준 뮤지션으로 단연 그를 꼽으며 자신을 대중음악으로 방향을 잡게 한 인물이라고 말한 바 있고, ‘푸른하늘’시절 ‘슬픈 안녕’으로 그에게 바치는 곡을 쓴 유영석도, 역시 같은 이유로 ‘너를 위로할 수가 없어’를 써냈던 김광진도 모두 그들만의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펼쳐내지만 그 서정성은 온전히 유재하에게 기반을 둔 것이었다. 유재하가 가진 클래시컬한 편곡과 플루트, 오보에의 섬세한 관악기의 터치를 그대로 전해 받아 전람회 2집에서 화려하고도 웅장한 스케일을 그려낸 김동률도 그 영향력 아래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디제이 디오씨(DJ DOC)마저 '사랑하기 때문에'의 리메이크로 그에 대한 애정을 품어왔으니 그의 음악이란 장르와 시대, 그 시대를 지배하는 어떤 트렌드라도 돌파하여 대중과 접속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가 클래식과 재즈라는 ‘퓨전 음악’을 국내에 처음 시도했던 것처럼 비 대중적 재즈 어법을 가요에 끌어들여 또 하나의 굵직한 선을 그어놓은 김현철은 그를 떠나보낸 지 10년이 된 지난 1997년, 추모앨범「1987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를 진두지휘함으로써 이 음악의 최대 수혜자임을 분명히 했다. ‘유재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화려한 면면과 함께 백 보컬로 참여한 역대 유재하 가요제 참가자들과의 하모니, 생전에 다른 가수들의 입을 통해 불려진 ‘그대와 영원히’(이문세 3집), ‘비애’(한영애 2집) 등을 각각 이소라, 한동준에게 나눠줌으로써 이 노래의 감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렸으며, 특히 지금도 리메이크의 수작으로 꼽히는 고찬용의 '우울한 편지' 역시 그의 유연한 작가정신과 탁월한 조탁감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당시, 트리뷰트의 붐에 휩쓸려 단발성 이벤트로 남는 걸 원하지 않았던 그들은 이 음반에서 트리뷰트, 헌정이라는 표현을 최대한 자제했고 단지 추모앨범이라는 순수한 의도로 남겨지기만을 원했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험성과 음악성 그리고 대중적인 균형감각을 선보인 명작’, ‘우리 가요계의 흐름을 바꾼 위대한 앨범’이라는 온갖 수식어는 여전히 유효하다. 가요의 고급화를 일궈낸 발화점은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였고, 국내의 발라드라는 문법의 체계도 역시 그에게서 완성되었다.

유재하 - 요절한 '가요계의 모차르트' 클래식을 대중음악에 접목
최규성 (가요 칼럼니스트)
17년 전인 1987년 11월 1일. 뛰어난 음악성을 지닌 젊은 신인 뮤지션이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 가요계의 모차르트’ 로 불리는 요절 가수 유재하다. 사실 한양대 음대 작곡과 출신의 순수 음악도가 대중 가수로 변신한 것도 특별했다. 그는 사망 3개월 전에 데뷔 음반 ‘ 사랑하기 때문에’ 한 장을 세상에 남겼다.
그는 단 한 장의 음반만으로 “ 대중 음악의 수준을 몇 단계 높였다”는 사후 평가를 이끌어 낸 가수다. 세월이 흐를수록 생존의 아쉬움이 더해가는 싱어 송 라이터 유재하. 그래서 그를 기리는 가요제를 통해 수많은 재능 있는 후배 가수들이 15년이 넘도록 배출되고 있다.
그는 사업가였던 부친 류일청씨와 모친 황영씨 사이에서 3남 3녀중 다섯째로 1962년 6월 6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던 정 많고 유순한 성품이었던 그는 효자로 알려져 있다. 69년 서울 은석 국민학교를 입학해 75년 삼선중, 78년 대일고를 졸업하고 81년 한양대 음대 작곡과에 진학하는 순탄한 성장기를 거쳤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 재능이 탁월했던 그는 순수 음악을 전공했지만 대중 음악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작곡 뿐 작사, 편곡 그리고 바이올린, 피아노, 기타, 키보드 등 여러 악기에 능통했던 연주가였을 만큼 다재 다능한 만능 뮤지션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84년, 그는 클래식과 재즈를 대중 가요에 접목하는 음악적 지향점을 세웠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주자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이 때 조용필은 그의 대표 곡인 ‘ 사랑하기 때문에’를 먼저 취입했다. 86년에는 김현식이 주도한 록 그룹 ‘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창립에 참여해 잠시 활동을 했다.
대단한 술꾼이었던 그는 김현식과 술 친구로 지내며 음악적 교감을 나누었다. 김현식에게는 ‘ 가리워진 길’, ‘ 그대 내 품에’ 등 2곡을 주었다. 하지만 조용필, 김현식 모두와는 추구했던 음악적 지향점이 달랐기에 탈퇴를 했다.

그는 클래식 같은 고급스럽고 편안한 대중 음악을 꿈꿨다. 인기보다는 뜨거운 음악 열정으로 자유롭고 새로운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한 그는 데뷔 음반을 발표하기 위해 언더 음악의 산실 동아기획을 찾아갔다. 이 때 한양대 음대 선배로 기악과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했던 포크 가수 이원재와 함께 데모 데이프를 제출했다.
같은 시기에 대중 가수로 출발하려는 음대 출신의 유재하, 이원재의 음악을 놓고 김영 사장은 고민했다. 그러나 독특했지만 상업적 성공이 불안했던 유재하의 음악은 탈락을 했다. 좌절을 겪은 유재하는 87년 8월 창작 곡 9곡을 수록한 데뷔 음반이자 유작앨범이 된 ‘ 사랑하기 때문에’를 서울음반을 통해 발표하는 아픔을 겪었다.
음반 발표 후 가식 없는 담백한 목소리로 노래한 타이틀 곡과 ‘ 우울한 편지’, ‘ 지난 날’등이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11월 1일 그는 느닷없이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노래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요절 소식은 관심은 증폭시켰다. 그래서 그는 사후에 더욱 알려진 가수의 대명사가 되었다.
최근 570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화제가 되었던 영화 ‘살인의 추억’에 그의 노래 ‘ 우울한 편지’가 주제가로 부활되었다. 비오는 날 살인이 벌어지기 전 살인자의 라디오 신청 곡으로 흘러 나온 그 재즈 풍의 우울한 노래는 새삼 화제가 되었다. 사랑의 연가가 살인자의 노래로 둔갑 됐던 것. 사실 그의 대부분 음악은 자신의 사랑 이야기다.
‘우울한 편지’는 대학 1학년 때 만나 첫 눈에 반했던 여인이 보낸 편지의 답장 같은 노래. 첫 만남 후 사랑 고백을 했지만 퇴짜를 맞은 유재하는 2년간 구애를 펼쳤다. 결국 열정과 순수로 가득찬 그를 받아들인 여인은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이미 비극적인 사랑의 끝을 예감했던 것일까. 편지에는 유재하에 대한 연민과 더불어 미래에 대한 그녀의 불안감이 담겨 있었다.

이처럼 그의 노래들은 그녀와의 첫 만남부터 몇 번의 헤어짐, 재회에 이르기까지의 연애일기에 다름 아니다. ‘ 그대 내 품에’는 사랑을 구애하던 시절의 애타는 마음을, ‘ 우리들의 사랑’은 사랑이 받아들여진 가슴 벅찬 기쁨을, ‘ 지난날’은 짧은 이별의 서글픔을, 대표 곡인 ‘ 사랑하기 때문에’는 다시 돌아 온 그녀를 위한 곡이었다.
80년대 말, 독특한 코드 진행으로 가요의 수준을 외국 팝 뮤직 이상으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유재하. ‘ 우울한 편지’에서 선보였던, 메이저와 마이너코드가 섞인 변형적인 코드 진행은 불협화음보다는 놀랍게도 편안함을 안겨 준다. 그의 곡이 고급스럽게 들리는 것은 기타, 베이스, 드럼, 건반 등 기존의 세션 포맷에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오보에, 클라리넷 등 클래식 악기들을 동원했기 때문.
또한 프로 세션맨으로 활동했을 만큼 탁월했던 연주능력은 밑거름이 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채 꽃피우기도 전에 저버린 그의 음악성을 기리기 위해 뜻 있는 음악인들이 ‘ 유재하 가요제’를 창설했다. 조규찬, 정혜선, 고찬용, 박인영 등이 이 가요제를 통해 배출된 대학생 싱어 송라이터들. 85년 조용필을 필두로 박진영, DJ DOC, 조규찬, 왁스, 이기찬, 룰라, 정수라 등 수많은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불렀다.
금년(2004년) 7월 안병기 감독의 ‘분신사바’ 영화제작사는 인터넷에서 ‘다시 살려내고 싶은 연예인’이라는 설문 조사를 벌였다. 유재하는 당당히 5위에 랭크되었다. 최근엔 한 영화가 그의 일대기를 영화화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며 그는 여전히 우리 곁에서 노래하고 있다.

유재하 프로필
김학선 (웹진 '가슴' 편집인)
유재하는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 작곡과에서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았다. 당시 언더그라운드 진영에는 유재하처럼 이론과 실기를 두루 겸비한 뮤지션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그의 재능은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첼로 등의 악기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던 그는 대학 시절 당대 최고의 밴드라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디스트로 처음 모습을 드러내며 각광을 받았고, 이후 김현식의 백밴드인 봄여름가을겨울 활동을 거쳐 자신의 솔로 앨범 작업을 하게 된다. 솔로 앨범을 제작하는 동안에도 그는 많은 뮤지션들에게 곡을 제공했는데 그 노래들은 지금까지도 불리고 있는 조용필의 ‘사랑하기 때문에’, 김현식의 ‘가리워진 길’, 이문세의 ‘그대와 영원히’ 같은 노래들이다. 정규 음악교육을 거치며 자연스레 체득하게 된, 클래식의 화성을 이용한 그의 작곡법은 이후 그의 음악을 규정짓는 상징적인 것이 되었는데, 이런 특성은 자신의 독집 앨범에서 극대화된다. 앨범 안에서 그는 모든 곡의 작사·작곡·편곡을 혼자 해냈으며 거의 모든 악기들의 세션까지도 혼자 담당했다. 클래식과 재즈에 기반한 감성적이며 투명한 음악은 그의 요절과 맞물리며 어떤 하나의 현상으로까지 이어졌다. (그가 사망한 날은 1987년 11월1일이었고, 정확히 3년 후 김현식도 같은 날짜에 세상을 뜬다.)
그의 단 한 장의 앨범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그의 음악을 듣고 자란 뮤지션들이 1990년대와 200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를 이끌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의 사망 후 만들어진 유재하음악경연대회를 통해 배출된 뮤지션들을 빼고는 한국대중음악에 대해서 말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유재하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Side A
1. 우리들의 사랑
작사 : 유재하 작곡 : 유재하 편곡 : 유재하
때르릉 소리 전화를 들면 들려오는 그대 목소리
보고픈 마음 가눌 수 없어 큰맘 먹고 전화했대요
햇님이 방실 달님이 빙긋 우리들의 사랑을 지켜봐 주는 것 같아요
가슴으로 느껴보세요 난 얼마만큼 그대안에 있는지 그 입술로 말해보세요 오래전부터 나를 사랑해 왔다고 말이에요
만나면 때론 조그만 일에 화를 내고 토라지지만 으레 그 다음엔 화해 해놓고 돌아서니 나혼자 웃네
새들이 소곤 꽃들이 수근 우리들의 사랑에 질투라도 하는가봐요
Piano, Synthesizer, Guitar : 유재하 Bass : 조원익 Drums : 유영수
2. 그대 내 품에
작사 : 유재하 작곡 : 유재하 편곡 : 유재하
별헤는 밤이면 들려오는 그대의 음성 하얗게 부서지는 꽃가루 되어 그대 꽃위에 앉고 싶어라
밤하늘 보면서 느껴보는 그대의 숨결 두둥실 떠가는 쪽배를 타고 그대 호수에 머물고 싶어라
만일 그대 내곁을 떠난다면 끝까지 따르리 저 끝까지 따르리 내 사랑
그대 내품에 안겨 눈을 감아요 그대 내품에 안겨 사랑의 꿈 나눠요
술잔에 비치는 어여쁜 그대의 미소 사르르 달콤한 와인이 되어 그대 입술에 닿고 싶어라
내 취한 두눈엔 너무 많은 그대의 모습 살며시 피어나는 아지랑이 되어 그대 곁에서 맴돌고 싶어라
어둠이 찾아들어 마음가득, 기댈곳이 필요할때
Piano : 유재하 Bass : 조원익 Drums : 유영수 Flute : 김애란 Strings : 친구들
3. 텅빈 오늘밤
작사 : 유재하 작곡 : 유재하 편곡 : 유재하
싸늘한 눈빛으로 한마디 말도없이 그대는 떠나가고
영문도 모르는채 그곳에 한동안 서있었네 우두커니
그게 우리의 끝이었나 사라지는 모습 바라볼 수밖에 없었나
오늘밤 그대 떠나고 쓸쓸한 오늘밤 모두 흥겨읍게 노래부르며 춤추는데 나는 어이해 홀로 외로울까 그대없는 텅빈 밤
잊으려 애를 써도 한가닥 미련이 나를 잡고 놓지 않네
행여나 돌아올까 서러운 눈물이 가득 고여 목이 메고
그게 우리의 끝이었나 초라한 눈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나
Piano, Synthesizer, Guitar : 유재하 Bass : 조원익 Drums : 안기승
4.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작사 : 유재하 작곡 : 유재하 편곡 : 유재하
붙들 수 없는 꿈의 조각들은 하나 둘 사라져가고
쳇바퀴 돌 듯 끝도 없는 방황에 오늘도 매달려 가네
거짓인줄 알면서도 겉으로 감추며 한숨섞인 말 한마디에 나만의 진실 담겨 있는 듯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보면 그만인 것을 못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마음에 비친 내모습 그려가리
엇갈림 속의 긴 잠에서 깨면 주위엔 아무도 없고
묻진 않아도 나는 알고 있는 곳 그곳에 가려고 하네
근심쌓인 순간들을 힘겹게 보내며 지워버린 그 기억들을 생각해내곤 또 잊어버리고
Synthesizer : 유재하 Bass : 조원익 Drums : 안기승
5. Minuet (경음악)
작곡 : 모짜르트
편곡 : 유재하
Violin : 유현아 Viola : 정성희 Cello : 노인경
Side B
1. 가리워진 길
작사 : 유재하 작곡 : 유재하 편곡 : 유재하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안개속에 쌓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져 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둘러 보아도 찾을 수 없네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갈까 아득하기만 한데
이끌려 가듯 떠나는 이는 제갈길을 찾았나
손을 흔들며 떠나 보낸 뒤 외로움만이 나를 감쌀 때
그대여 힘이 되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Piano : 유재하 Flute : 김애란 Strings : 친구들 Violin : 유현아 김은영 Cello : 김진연 Oboe : 임정희 Clarinet : 이광훈 Bassoon : 김유미 Horn : 이지원 2. 지난날
작사 : 유재하 작곡 : 유재하 편곡 : 유재하
지난 옛일 모두 기쁨이라고 하면서도 아픈 기억 찾아 헤메이는 건 왜일까
가슴깊이 남은 건 때늦은 후회 덧없는 듯 쓴 웃음으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네
예전처럼 돌이킬 순 없다고 하면서도 문득문득 흐뭇함에 젖는 건 왜일까
그대로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 세상사람 얘기하듯이 옛 추억이란 아름다운 것
다시 못올 지난 날을 난 꾸밈없이 영원히 간직하리 그리움을 가득 안은채 잊지못할 그 추억속에 난 우리들의 미래를 비춰보리 하루하루 더욱 새로웁게 그대와 나의 지난날
언제 어디 누가 이유라는 탓하면 뭘해 잘했었건 못했었건 간에
생각없이 헛되이 지낸다고 하지 말아요 그렇다고 변하는 것은 아닐테니까
Piano, Synthesizer, Guitar : 유재하 Bass : 조원익 Drums : 유영수 Back-Vocal : 이문세, 유재하
3. 우울한 편지
작사 : 유재하 작곡 : 유재하 편곡 : 유재하
일부러 그랬는지 잊어 버렸는지 가방안 깊숙히 넣어두었다가 헤어지려고 할 때 그제서야 내게 주려고 쓴 편지를 꺼냈네
집으로 돌아와서 천천히 펴보니 예쁜 종이 위에 써내려간 글씨 한줄 한줄 또 한줄 새기면서 나의 거짓없는 마음을 띄웠네
나를 바라볼 때 눈물 짓나요 마주친 두 눈이 눈물겹나요 그럼 아무 말도 필요없이 서로를 믿어요
어리숙하다해도 나약하다해도 강인하다해도 지혜롭다해도 그대는 아는가요 내겐 아무 관계 없다는 것을
우울한 편지는 이젠.....
Piano : 유재하 Bass : 조원익 Drums : 안기승 Flute : 김애란 Strings : 친구들
4. 사랑하기 때문에
작사 : 유재하 작곡 : 유재하 편곡 : 유재하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바보로 만들었소
내곁을 떠나가던 날 가슴에 품었던 분홍빛의 수많은 추억들이 푸르게 바래졌소
어제는 떠난 그대를 잊지 못하는 내가 미웠죠 하지만 이제 깨달아요 그대만의 나였음을
다시 돌아온 그대위해 내 모든 것 드릴테요 우리 이대로 영원히 헤어지지 않으리
나 오직 그대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커다란 그대를 향해 작아져만 가는 나이기에 그 무슨 뜻이라해도 조용히 따르리오.
Piano, Guitar : 유재하 Bass : 조원익 Drums : 유영수
Flute : 김애란 Strings : 친구들 Clarinet : 이광훈 Bassoon : 김유미 Horn : 이지원
5. 정화의 노래 (건전가요)
Credits
레코딩 스튜디오 : 서울 스튜디오 작사, 작곡, 편곡 : 유재하 사진 : 이정훈 녹음 : 최세영 (1986. 12 ~ 1987. 3. 서울 스튜디오)
* 친구들 Violin : 김은영, 박상은, 손미애, 송찬주, 우혜경, 유현아, 이영희, 조원경, 조원정, 최은미 Viola :권진영, 박혜정, 정성희 Cello : 김신범, 김진연
저의 음악이 완성되는 끝까지 관심있게 지켜봐 주신 서울 스튜디오 최세영님께 깊이 감사드리고, 바쁘신 와중에도 음악적으로 인간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신 조원익 형님께도 감사의 마음 전할 길이 앖으며, 아을러 반주를 도와주신 김애란씨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유재하를 추모하는 앨범 '1987 다시 돌아온 그대위해'
01.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
작사 : 유재하를 그리워 하는 사람들 작곡 : 유재하를 그리워 하는 사람들 편곡 : 유재하를 그리워 하는 사람들 노래 : 유재하를 그리워 하는 사람들
그대는 아는가요 이 세상을 떠나간 뒤 그대 심은 그 나무가 이처럼 자랐음을 우리느 알고 있죠 아름드리 한 그루가 우리 앞에 있었음을 고마워 할 뿐이죠 이제 그대의 작은 나무 우리에게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죠 이 노래 드릴께요 이제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
우리는 꿈을 꾸죠 다시 그대를 보는 꿈 세상이 외로워져도 변하지 않을꺼죠 이제 그대의 작은 나무 우리에게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죠 이 노래 드릴께요 이제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
우리의 기억속에서 영원히 살아있도록 우리는 기도해요 이 노래 드릴께요 이제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
이제 그대의 작은 나무 우리에게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죠 이 노래 드릴께요 이제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 02. 지난날
작사 : 유재하 작곡 : 유재하 노래 : 유영석
지난 옛일 모두 기쁨이라고 하면서도 아픈 기억 찾아 헤메이는 건 왜일까 가슴 깊이 남은건 때늦은 후회 덧없는 듯 쓴 웃음으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네 예전처럼 돌이킬 순 없다고 하면서도 문득 문득 흐뭇함에 젖는건 왜일까 그대로 그 나름대로 의마가 있어 세상사람 얘기하듯이 옛 추억이란 아름다운 것 다시 못 올 지난 날을 난 꾸밈없이 영원히 간직하리 그리움을 가득안은 채 가버린 지난 날 잊지못할 그 추억속에 난 우리들의 미래를 비춰보리 하루하루 더욱 새로웁게 그대와 나의 지난날 언제 어디 누가 이유라는 탓하면 뭘해 잘 했었건 못했었던 간에 생각없이 헛되이 지낸다고 하지 말아요 그렇다고 변하는 것은 아닐테니까
03. 그대 내 품에
작사 : 유재하 작곡 : 유재하 노래 : 나원주
별헤는 밤이면 들려오는 그대의 음성 하얗게 부서지는 꽃가루 되어 그대 꽃위에 앉고 싶어라 밤 하는 보면서 느껴보는 그대의 숨결 두둥실 떠가는 쪽배를 타고 그대 호수에 머물고 싶어라 만일 그대 내곁을 떠난다면 끝까지 따르리 저 끝까지 따르리 내 사랑 그대 내품에 안겨 눈을 감아요 그대 내품에 안겨 사랑의 꿈 나눠요 술잔에 비치는 어여쁜 그대의 미소 샤르르 달콤한 와인이 되어 그대 입술에 닿고 싶어라 내 취한 두눈에 너무 많은 그대의 모습 살며시 피어나는 아지랑이 되어 그대 곁에서 맴돌고 싶어라 어둠이 찾아들어 마음 가득 기댈곳이 필요할때
04. 텅빈 오늘밤
작사 : 유재하 작곡 : 유재하 노래 : 신해철
싸늘한 눈빛으로 한마디 말도 없이 그대는 떠나가고 영문도 모르는채 그곳에 한동안 서있었채 우두커니 그게 우리의 끝이었나 사라지는 모습 바라볼 수 밖에는 없었나 오늘 밤 그대 떠나고 쓸쓸한 오늘 밤 모두 흥겨웁게 노래부르며 춤추는데 나는 어이해 홀로 외로울까 그대 없는 텅빈 밤 잊으려 애를 써도 한가닥 미련이 나를 잡고 놓질 않네 행여나 돌아설까 서러운 눈물이 가득고여 목이 메고 그게 우리의 끝이었나 초라한 눈으로 기다릴수 밖에 없었나
05.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작사 : 유재하 작곡 : 유재하 노래 : The Classic(김광진, 박용준)
붙들수 없는 꿈의 조각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쳇바퀴 돌돗 끝이 없는 방황에 오늘도 매달려 가네 거짓인줄 알면서도 겉으로 감추며 한숨섞인 말 한마디에 나만의 진실 담겨있는 듯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보면 그만인 것을 못그린 내 빈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러가리 엇갈림속의 긴 잠에서 깨면 주위엔 아무도 없고 묻진 않아도 나는 알고 있는 곳 그곳에 가려고 하네 근심쌓인 순간들을 힘겹게 보내며 지워버린 그 기억들을 생각해내곤 또 잊어버리고
06. 가리워진 길
작사 : 유재하 작곡 : 유재하 노래 : 일기예보, 여행스케치
보일듯 말듯 가물거리는안개속에 쌓인 길 잡힐듯 말듯 멀어져 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둘러 보아도 찾을 수 없네 그대여 힘이 되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갈까 아득하기만 한데 이끌려 가듯 떠나는 이는 제 갈길을 찾았나 손을 흔들며 떠나 보낸뒤 외로움만이 나를 감쌀때 그대여 힘이 되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07. 우울한 편지
작사 : 유재하 작곡 : 유재하 노래 : 고찬용
일부러 그랬는지 잊어버렸는지 가방안 깊숙히 넣어두었다가 헤어지려고 할때 그때서야 내게 주려고 쓴 편지를 꺼넸네 집으로 돌아와서 천천히 펴보니 예쁜 종이 위에 써내려간 글씨 한줄 한줄 또 한줄 새기면서 나의 거짓 없는 마음을 띄웠네 나를 바라볼때 눈물 짓나요 마주친 두눈이 눈물 겹나요 그럼 아무 말도 필요없이 서로를 믿어요 어리숙하다 해도 나약하다 해도 그대는 아는가요 내겐 아무 관계없다는 것을 우울한 편지는 이젠...
08. 우리들의 사랑
작사 : 유재하 작곡 : 유재하 노래 : 이적, 정재형
때르릉 소리 전화를 들면 들려오는 그대 목소리 보고픈 마음 가눌수 없어 큰맘 먹고 전화했대요 햇님이 방실 달님이 방긋 우리들의 사랑을 지켜봐주는 것 같아요 가슴으로 느껴보세요 난 얼마만큼 그대안에 있는지 그 입술로 말해보세요 오래전부터 나를 사랑해왔다고 말이에요 만나면 때론 조그만 일에 화를 내고 토라지지만 으례 그 다음엔 화해해놓고 돌아서서 나혼자웃네 새들이 소곤 꽃들이 수근 우리들의 사랑에 질투라도 하는가봐요
09. 비애
작사 : 유재하 작곡 : 유재하 노래 : 한동준, 권혁진
흔들리는 촛불 사이로 꿈결처럼 오가던 그때의 그 이야기들 지금은 어디에 마음의 벽 가린다해도 순간으로 좋았던 그때의 그 추억들 지금은 어디에 기나긴 한숨의 세월은 그대를 사랑한 벌인가요 흘러버린 눈물은 어제도 오늘도 이밤을 뒤덮어 구슬피 우는 빗물소리 내 마음을 아는 듯 어깨 위로 싸늘하게 젖어들어 온다 어깨 위로 온 가슴안으로 젖어들어 온다.
10. 그대와 영원히
작사 : 유재하 작곡 : 유재하 노래 : 이소라
헝클어진 머리결 이젠 빗어봐도 말을 듣지않고 초점없는 눈동자 이젠 보려해도 볼 수가 없지만 감은 두눈 나만을 바라보며 마음과 마음을 열고 따스한 손길 쓸쓸한 내 어깨위에 포그한 안식을 주네 저 붉은 바다 해 끝까지 그대와 함께 가리 이 세상이 변한다 해도 나의 사랑 그대와 영원히
무뎌진 내 머리에 이제 어느 하나하나 느껴지질 않고 메마른 내 입술엔 이젠 아무말도 할 수가 없지만 맑은 음성 가만히 귀 기울여 행복의 소리를 듣고 고운 미소 쇠잔한 내 가슴속에 영원토록 남으리
11. MINUET
작사 : 모짜르트 아카펠라 : 인공위성
12. 사랑하기 때문에
작사 : 유재하 작곡 : 유재하 노래 : 조규찬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해 맑은 미소로 나를 바보로 만들었소 내곁을 떠나가던 날 가슴에 품었던 분홍빛의 수많은 추억들이 푸르게 바래졌소 어제는 떠난 그대를 잊지 못하는 내가 미웠죠 하지만 이제 깨달아요 그대만의 나였음을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 내 모든것을 드릴테요 우리 이대로 영원히 헤어지지 않으리 나 오직 그대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커다란 그대를 향해 작아져만 가는 나이기에 그 무슨 뜻이라도 조용히 따르리오
13. 재하를 그리워 하며
Credits
프로듀서 : 김현철 레코딩 엔지니어 : 임창덕 레코딩 스튜디오 : 베이 스튜디오 마스터링 스튜디오 : 서울 스튜디오
Produced by 김현철 Engineered by 임창덕 Assistant Engineered by 이정형, 임계환 Recorded & Mixed at Bay&Rock Studio Mastered by 고희정, 최정아 at Seoul Studio Executive Produced by 조원익 제작일 : 1997년 8월
Bass 서영도, 이태윤 Keyboard 황세준, 조현석, 유희열, 박용준 Drum 강수호, 장혁 Guitar 김세황, 손진태, 고찬용, 손무현 Percussion 박영용 Saxophone & Horn Arrangement - Ole Mathisen Trumpet - Walt Platt Trombone - Chris Washburne
Violin 이지연, 정희경, 김현남, 정지희, 김미정, 김미령, 김나정, 정지원, 손명숙, 김용화 김지연, 김명주 Viola 박수정, 박서진, 홍수정, 김수현 Cello 오현승, 이선아, 윤지나, 문지형 Oboe 이미성 Flute 신주연 Clarinet 정윤진 String Arrangement 황세준, 유희열 Orchestra Conducted by 엄기영, 황세준, 유희열 Orchestra Recorded at Universal Studio
Design 안삼열 Illustration 김상우 Photo 김형선 외 Music Video 안지혜 Management 배훈
유재하가 부럽습니다. 이세상 어느 누가 나 죽은 뒤에 이런 음반을 내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무엇보다도 이 앨범에 같이 해준 우리 음악하는 사람들, 바쁜 와중에도 작신들에 맡겨진 노래에 불만없이 참여 해주고 또 충고도 잊지 않았던 노래하는 사람들, 그리고 참가하기로 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렇지 못했던 여러분들에게도 함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이제 이번 앨범을 마치며 함께 해준 100여명의 가족과 같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수고하셧습니다.- 끝으로 부족한 저를 믿고 맡겨주신 원익 형님께 한없는 고마움을 느낍니다.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 1997.8.31 김현철
짧지만 긴 여행끝에 목적지에 온 것 같습니다. 이 앨범에 참가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재하를 대신해서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이 앨범을 만들 수 잇도록 도와주신 유재하 음악 장학회, 도레미 기획, 한나기획, White Production, 하나음악, Revolution No.9, 일기예보, 대영AV, They기획, The Classic, By기획,MIS기획, 동아기획, Ace Production, 인공위성, Warner Music Korea에 감사드립니다.
재하의 어머님, 현재자매들, 그리고 조동진, 김민기, 이문세, 조용필, 한영애, 김수철, 송홍섭, 김종진, 전태관, 조동익, 김광민, 정원영, 이훈석, 박성식, 장기호 등 재하를 사랑하는 선배, 친구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역대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참가자 여러분들. 정멀 수고햇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헌신적으로 참가해준 김현철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늘에 있는 재하가 재미있어 했으면 좋겟습니다.
- 유재하 음악 장학회 조원익

오선지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사람들의 호곡 소리도 조용히 끝났다 저녁녘 재야 방엔 적막이 잠겨든다 재야 앉든 책상에는 한 폭의 오선지 오선지 우에는 눈물만 고인다.
한밤중 바람결에 문풍지 떨어 운다 애절한 재야 노래 문틈으로 숨어든다 어디로 간 재야를 말없이 기다린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넓은 대학로엔 재야가 간다 [마로니에] 숲속으로 재야는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만이 아른거린다.
높은 대청위엔 재야가 온다 이슬 맞은 재야가 울면서 온다 울음 섞인 재야의 휘파람 소리 아버지 노래하며 재야가 온다.
일어났다가 다시 눕는다 오선지 우에는 한숨만 서린다.
1987. 11. 10일 밤... 재하를 잃고... - 고(故) 유일청님(유재하의 아버지, 유재하 음악재단 설립자)
"서럽디 서러운 가슴으로 너의 이름을 부른다." 똑같이 밝아오는 아침인데 어제와 다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인 일인지 모르겠구나. 네 방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가 오늘따라 유난히 앙상하게 보여 인생이 덧없음을 느낀다. 아들을 잃은 부모마음이야 모두 마찬가지이겠지만 아직 활짝 피지도 못하고 간 너를 생각하면 이 엄마의 가슴은 무너지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재하야. 네가 우리의 곁을 떠났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엄마는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너는 아침에 나가면서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인사를 하지 않았니. 그런 너의 모습이 마지막이 되어버렸다니. 대문의 벨소리만 울리면 금방이라도 네가 "엄마"부르며 뛰어들 것만 같아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구나.
나의 아들 재하야. 네가 떠나던 11월 1일, 새벽에 걸려온 전화에 난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전에도 "연습이 늦어져서 못 들어가요"하고 새벽에 전화를 하곤 했었지. 그런데 그날은 왜 그렇게 긴장이 되었을까. 더구나 병원이라는 말에 다리가 후들거려 어떻게 병원까지 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가면서도 내내 하나님한테 기도를 드렸었다. "하나님 어디 다리만 하나 부러진 정도로 해주세요. 하나님 팔을 약간 다친 정도로만 해주세요." 그러나 이미 너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있더구나. 엄마를 향해 웃지도 않았다. 꼭 한국에서 최고로 좋은 곡을 만들겠다던 너는 누운 채 아무 말도 없었다. 엄마가 너를 부여잡고 그렇게 흔들었건만.
아침에 다녀오겠다고 한 너는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길로 떠나버렸다. 재하야! 마지막 가는 모습조차 지켜주지 못한 부모가 원망스럽겠구나. 아버지는 너의 죽음 소식을 듣고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아버지가 널 얼마나 사랑하였는지 기억나니. 말씀은 안 하셔도 그 아픈 마음은 짐작할 수가 있겠구나. 네가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뒤에서 많은 염려와 걱정을 하셨던 분도 아버지셨고, 남몰래 너의 장래가 잘 되길 기도하신 분도 아버지셨다. 오늘 아침에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시더구나. "우리 아들 재하가 이렇게 작사솜씨가 뛰어난 줄 몰랐는데" 하루 종일 네가 만든 디스크를 바라보면서, 네가 만든 노래의 가사를 보면서 허망한 웃음을 지으셨다. 네가 세상을 떠나기 전날 아버지의 병실로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아버지는 정말 큰 충격을 받으셨을 것이다. 너의 모습을 보지 못했을 테니까. 그날 아버지의 머리맡에 앉아 "아버지 제 노래가 요즈음 반응이 좋대요. 뮤직박스 챠트 14위까지 올라갔대요"하고 좋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더욱 잘해서 1위를 할 테니 빨리 건강하시라던 너의 위로에 아버지가 얼마나 흐뭇해 하셨는지.
사랑하는 재하야! 지금도 방에 누워 있으면 네가 치는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하루 종일 치는 피아노 소리를 시끄럽다고 야단도 많이 쳤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이 그립구나. 첫 번째 디스크를 만든답시고 밤이고 낮이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던 너의 뒷모습이 눈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재하야! 그렇게 모든 것이 빨리 끝날 줄 알았다면 왜 좀 더 일찍 네가 하고 싶어 하는 음악을 하게 하지 못했나하는 생각도 든다. 네가 처음 대중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사실 식구들은 걱정이 많았단다. 혹시 너의 삶이 춥고 배고프면 어쩌랴 했던 것이지. 우리야 음악에 대해서 알지 못하니까. 그냥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너에게 도움을 주려 했는데 너의 마음이 어땠는지 모르겠다. 너의 형 말에 의하면 디스크의 반응 때문에 무척이나 잠을 설쳐가며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 너 혼자 안타까워했을 걸 생각하니 엄마는 또 마음이 아프다. 어느 날 모 잡지사와 인터뷰를 했다며 자랑스럽게 와서 얘기하더니 결국은 그 기사도 보지 못하고 가버렸구나.
보고 싶은 재하야! 네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분들이 찾아오셨다. 그들은 한결같이 너의 재능과 음악성을 아까워하며 안타까워하시더라. 사실 우리는 한집에 살면서도 우리 재하가 그렇게 뛰어난 실력자인줄 몰랐다니. 늘 입버릇처럼 "최고가 될 거예요"라고 하는 말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겼으니까. 처음임에도 마지막이 되어버린 너의 디스크를 통해 나오는 목소리는 유난히도 밝더구나. 평상시 너의 성격처럼 말이다. 어렸을 때는 너무나도 말이 없어 엄마를 불안하게 하더니 점점 활발한 아이로 자라주어 우리는 내심 흐뭇했단다. 재하야. 너의 웃는 모습이 그립다. 벽에 걸려 있는 너의 얼굴을 자주 바라보지만 너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구나. 용인에 널 잠재우고 오면서도 우리는 마치 다른 사람을 보내고 오는 듯 믿어지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져서 무척이나 쓸쓸하겠다. 아버지가 너의 비석에 네 노래 한 구절을 적어 놓으시겠다는구나. 네가 용인으로 간 후 아버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널 만나러 가셨다. 조금 덜 외롭게 말이다. 음악공부를 더 하겠다고 유학을 가고 싶다고 하더니 너는 영구유학을 가버렸다고 아버지는 내내 한탄이시다.
재하야. 네가 있는 곳에도 음악은 있겠지. 우리는 그곳에서라도 네가 하고 싶었던 음악을 계속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 엄마의 생각이 부질없는 것일까. 아들이면서도 한번도 써본 적이 없던 편지를 결국은 이제야 쓰게 되는구나. 재하야 엄마는 정말 네가 보고 싶다. 편히 잠들 거라, 내 아들 재하야
1987년 11월에 엄마가...
유재하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유재하를 추모하는 앨범 '1987 다시 돌아온 그대위해' 전곡듣기 |
첫댓글 유재하가 떠난지 20년이 되었네요. 유재하는 57사단 보충역 교육대에서 조교선임이었을 때 만나게 되었는데, 나더러 교육대 조교하라고 꼬득이던 친구였지요. 교육 중에 중대장의 권유로 "배신자"를 불러 주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1987년 소집해제교육에 가던 날 그의 사고소식을 접하고는 충격이었지요. 몇주간의 만남이었지만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친구였습니다. 오늘 다시 새롭습니다.
건강하시죠??,,,담아갑니다,,!!
아~ 그런 인연이...목사님 취향이 다양하다했더니...우울한날에 위로받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