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중마고는 2015년 정기식 교장이 부임하며 ‘학생 선택’과 ‘수업 개선’을 목표로 교사는 물론, 학부모와 학생 대표까지 참여한 ‘중마발전협의회’를 만들고 변화를 모색해왔다. 학생 참여 수업으로의 변화는 이미 교사들에게 피할 수 없는 과제였지만, 학생들 역시 진로와 적성, 희망 전공에 맞는 과목을 다양하게 이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고 싶어했다. 종전의 강의식 수업을 바꾸는 과정이 막막하게 느껴질 교사들을 위해 학교 예산으로 전 교사가 짝을 이뤄 서로 질문을 주고받으며 공부하는 하브루타 수업 연수를 받았다. 교사들은 연수를 받고 나니 어떤 유형의 학생 참여 수업도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수업을 통해 ‘함께’ 공부하는 방식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자율동아리에서 관심 있는 주제를 알아가는 것 역시 스스로, 함께할 수 있었다고 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 이어 2015 개정 교육과정, 고교학점제에 이르는 교육과정의 변화를 학교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 역시 인상적이다.취재 정애선 기자 asjung@naeil.com
전남의 동쪽 끝 광양에 위치한 중마고에 들어서니 현관 앞 동판들이 눈에 띈다. 2016년 전국 100대 교육과정 우수 학교 수상에 이어 2018학년부터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에 지정됐다는 것은 중마고가 그동안 수업과 교육과정 개선에 초점을 맞춰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기말고사가 막 끝난 지난 11일, 모둠으로 둘러앉은 학생들이 오답률이 가장 높았던 <통합과학> 문제들을 한창 복기하는 중이다. 강혜진 교사는 “오답이 많았던 문제를 뽑아서 함께 풀어보되, 모둠원 모두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발표자도 무작위로 정한다”고 설명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도입 후 중마고는 교육과정 협의회를 통해 총 시수의 50%를 학생 참여 수업으로 채워보기로 뜻을 모았다. 특히 매 학기 지필고사가 끝난 직후 일주일 동안 전 교과가 프로젝트 수업을 접목해 과정 평가를 진행하고, 이 모습은 학생부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에 기록한다.
급격한 혁신보다 점진적 변화로
시작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마발전협의회를 통해 학교 운영 방향을 정한 뒤 교사들은 정규 수업에 앞서 방과 후 학교부터 선택형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교육과정과 수업 개선을 고민하는 연수 자리마다 참석해 학교 교육의 변화 방향을 깊이 이해한 정기식 교장은 급격한 혁신보다 점진적 변화를 택했다. 방과 후 학교에서 먼저 주제를 정해 학생들이 조사와 토론, 발표 형식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 수업을 시도해보니 교사들은 정규 수업에도 접목할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답할 수 있도록 이끄는 길잡이 역할을 위해 전 교사가 하브루타 수업 연수도 받았다.
중마고에 신규 교사로 부임해 이제 3년 차라는 이누리 교사는 “임용 시험을 준비하며 수업 시연을 위해 교육과정에 나온 내용을 토대로 다양한 수업 방식을 연구했지만, 막상 평가는 정해진 틀에 맞춰 어떻게 잘 가르칠 것인지 강의식 수업을 평가하는 형태라 괴리를 느꼈던 것이 사실”이라며 “부임 후 하브루타 연수를 받으면서 어떻게든 수업에 적용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교과서 안에서 다양한 질문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수학과 김지훈 교사 역시 초기에는 학생들이 뽑아내는 질문의 수준이 교육과정상 성취 기준에 비춰 평이한 수준이라 조급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사가 미처 생각지 못한 질문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발견했다고. “정규 수업이 학생 참여형으로 자리를 잡아갈수록 교사들은 ‘예전엔 가르친 건 많은데, 학생들이 정작 배운 건 없는 것 같았다. 이제는 가르친 건 많지 않은데, 학생들이 배워가는 게 많은 것 같다’고 했고, 학생들의 수업 소감문을 받아보면 ‘예전엔 생각 없이 앉아 있을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개념을 확실히 잡을 수 있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현재 3학년을 맡고 있는 김 교사는 학생들이 학생부 종합 전형을 위한 자기소개서에도 하브루타 수업 얘기를 주로 썼다고 전했다. 이는 수업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학교들이 자연스럽게 밟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교육과정의 정상적인 운영 위해 학부모 설득 나서
현재 2학년 학생들에게 해당되는 2009 개정 교육과정은 진로에 맞는 과목을 배울 수 있도록 ‘진로 집중 과정’ 운영을 권장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교들은 인문사회 과정과 이공 과정으로 단순화해 전통적인 문·이과 구분 교육과정을 유지해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중마고는 인문사회, 상경, 자연이공, 생명자원 등 4개 과정을 최대한 세분화해 열어주려고 노력했다. 정 교장은 “상경 과정을 선택한 학생은 13명으로 적은 반면 인문사회 과정을 선택한 학생은 40명에 가까웠다. 한쪽은 학급을 구성하기에 인원이 너무 적고, 한쪽은 과밀 학급이 되는 문제가 생겼다. 운영 상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진로 집중 과정의 취지를 온전히 살리기 위해 학부모들에게 충분히 설명한 뒤 이해를 구했다. 현재 2학년들은 상경 과정이 독립적인 한 반으로 편성되어 있다”고 전했다.
다만 학급당 정원이 많은 인문사회 과정의 수업 효율성을 위해 추가 분반이 가능하도록 교육청에 교사 충원을 요청한 상태다. 교육과정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교육청 차원의 지원을 적극 이끌어낸 정 교장의 추진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교육과정 편성의 원칙, ‘원하는 학생이 있다면 개설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쳤기에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위한 준비 역시 착실하게 진행됐다. 교육과정 편성의 원칙은 ‘원하는 학생이 있다면 개설한다’로 세웠다.
1학년 학생들의 과목 선택을 돕기 위해 가장 먼저 ‘학과 계열 선정 검사’를 진행했다. 진로가 명확하지 않은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기반으로 고교학점제 담당 교사와 진로진학상담 교사가 진로 수업 시간을 활용해 학생들에게 관심 분야에 따른 과목 선택 방법을 자세히 안내했다.
교무기획부장 정용균 교사는 “상대평가에 따른 내신 등급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학생들에게 이수자 수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학생부 종합 전형은 단순한 내신 등급 수치가 아닌,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하는 의지와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을 통해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살핀다는 점을 이해시키는 데 주력했다”며 “이 과정을 거쳐 현재 1학년 학생들의 선택 과목은 최소 인원이 9명인 과목까지 개설하기로 결정한 상태”라고 전했다.
네 차례에 걸쳐 선택 과목 수요 조사를 하고, 학생들의 선택이 좀 더 다양해질 수 있도록 학기별 개방 선택형 교육과정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교육과정의 변화를 정석대로 실천해온 지난 시간의 저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전문가의 눈으로 본 중마고
"좋은 학교들은 닮았다"_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진동섭 이사
발전하는 학교는 중장기 계획을 세운다. 교육도 혁명이 필요한 분야라지만, 단위 학교가 혼자 혁명을 이루지는 못한다. 학교 구성원의 변화를 이끌어내 학교 교육을 바꾸려면 변화 방향을 공유하고, 조금씩 적용하는 단계적 접근이 때로는 유효하다.
중마고는 정기식 교장이 2015년에 부임해 ‘중마발전협의회’를 만들었다. 교사 16명, 학부모 6명, 학생대표 3명 등 총 25명이 참여한 협의회에서 수업 개선과 선택 교육과정으로의 변화에 대해 의견을 모았다. 당시 중마고에 근무하던 김선구 교사(현 전남과학고)가 하브루타 교육을 도입하는 데 앞장서서 ‘중마고는 하브루타, 하브루타는 중마고’라는 이름을 얻게 했다. 방과 후 학교도 이 무렵 선택형으로 개선됐다.
지금은 고교학점제 연구학교로, 학기별로 희망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학교 교육과정을 개방형으로 편성했다. 현재 1학년 학생들의 선택 과목 조사를 3학년 2학기까지 마쳤다고 한다. 앞서 방문했던 학교와 많이 닮았다. 좋은 학교들은 어떤 면에서 닮았다.
학생들이 말하는 중마고 교육과정_"경쟁보다 ‘함께’ 성장한다는 것의 의미 배웠어요"
중마고는 수시 지원율이 높은 학교다.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합격한 3학년 학생들은 자기소개서에 주로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궁금하다.
3학년 문용준 광운대 경영학부에 합격했다. 평소 관심이 많았던 <경제>를 선택해 배우고 나니 학교 매점에서 판매하는 상품들도 경제적 관점에서 보게 됐다. 2학년 때 학교 우유 급식을 수업 때 배운 대체재와 보완재의 관점에서 생각해봤다. 초코우유는 우유의 보완재고, ‘제티’는 대체재라 할 수 있다. 대체재인 ‘제티’의 수요 역시 높을 거라 판단했는데, 의외로 판매율이 저조하더라.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 ‘제티 배달 서비스’ 아이디어를 내고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 수익금을 굿네이버스에 기부한 적이 있다. 경제학 관점의 마케팅 기법을 실제 학교 안에서 실천해본 경험이었다. 학교가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를 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기소개서에도 이 점을 녹여냈다.
3학년 양세인 한양대 화학공학과에 합격했다. 내 경우 초등학교 교사에서 과학 교사로, 다시 공학자로 꿈이 계속 달라졌다. 중마고는 학생들의 자율동아리 활동을 적극 지원해준다. 처음엔 교직에 뜻을 둔 친구들과 동아리 활동을 했지만, 화학공학과에 관심이 생기면서 화학 동아리를 하고 싶었는데 마땅한 게 없었다. 공학에 관심 많은 친구들을 모아 동아리를 새로 만들었다. 수업을 통해 이미 익숙해진 하브루타 방식으로 공학과 관련된 주제를 우리 스스로 조사하고, 지식을 넓혀갈 수 있었다. 학교에 공동 교육과정으로 개설된 <고급생명과학> 수업을 통해 다양한 실험도 접해볼 수 있었다. 꿈은 계속 바뀌었지만, 학교 안에서 나의 열정을 어떻게 펼쳐갔는지 대학에 충분히 전달됐을 거라 생각한다.
2학년은 진로 집중 과정으로 학급이 편성되었는데, 학생들이 체감하기에는 어땠나?
2학년 조은지 2학년에 유일하게 한 반이 개설된 상경 과정 소속이다. 학급 인원이 13명으로 소수다 보니 진정한 하브루타 수업을 실현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수업 시간은 물론, 시험을 앞두고도 친구들 모두 동그랗게 모여 공부한 내용을 서로 나눴다. 이 부분에서 서술형이 나올 것 같다고 하면 꼭 시험에 출제되더라. 경쟁하기보다 다 함께 ‘윈윈’하며 성장하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언어 관련 전공을 택할 계획이지만, 경제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경제>를 배우고 싶어 상경 과정을 선택했다.
2학년 박수현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싶어 자연이공 과정을 선택했다. 2학년 때 <물리 Ⅰ> <생명과학 Ⅰ>을 배웠고, 3학년 때 <물리 Ⅱ>와 <화학 Ⅱ>를 선택해 배울 예정이다. 공동 교육과정으로 개설된 <고급물리>에도 관심이 있다. 학교에서 지원해준 프로그램 중 방학 때 했던 ‘공학스쿨’도 기억에 남는다. 조선대 교수님들이 컴퓨터공학에서 가장 중요한 알고리즘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학습 도구들과 코딩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게 해줬는데, 관심 분야다 보니 정말 재미있었다. 새 교육과정을 적용받는 1학년들은 배우고 싶은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고 들었다. 만약 내가 1학년이라면 <정보> 과목을 꼭 택했을 것이다.
선배들의 얘기처럼 1학년은 최근 2학년 이후 배울 과목들을 선택했을 것이다. 결정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1학년 김성은 중마고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고교학점제 연구학교라는 점이었다. 대학에서처럼 배우고 싶은 과목을 고를 수 있다는 데 매력을 느꼈다. 주도적으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막상 선택을 앞두니 어렵더라.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 지구과학을 택할 생각이었는데, 화학공학 쪽에도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친구들도 낯설다 보니 두려워하기도 했다.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주시긴 했지만, 결정은 내 몫이었다. 그래도 내 미래를 스스로 책임진다는 생각에 부담을 내려놓기로 했고, 나중에는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하하.
1학년 이현수 과목을 선택할 무렵, 디자인 쪽에 관심이 생겼다. 고등학교는 수학 과목 이수 단위가 워낙 커서 나처럼 예체능 쪽에 뜻을 둔 친구들에게는 부담이 컸다. 2학년 때부터는 국어나 <미술창작> <미술 감상과 비평> 등 미술 관련 과목을 주로 선택했다.
2학년 조은지 학교 기숙사에서 함께 지내는 1학년 후배가 과목 선택을 놓고 고민하기에 내가 아는 한에서 과목별로 주로 무엇을 배우는지 조언해줬는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입시를 앞두고 대학과 학과를 고민하지만, 후배들은 그 ‘시계’를 조금 더 앞당긴 셈이다. 선택의 과정이 어렵더라도, 분명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