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또를 잃어버린 사연...
땅끝 5차. 계라리에서 오소재 구간입니다.
금요일 밤.
네비에 "계라리"를 설정하고, 2번국도를 달리는데 보성을 지날 때 쯤부터 눈발이 날립니다
그 때가 9시쯤 되었을 겁니다. 집에서 TV보던 마눌로 부터 전화가 옵니다
"9시 뉴스에... 전라도 일대에 폭설주의보가 내려...휴교령이 내리고 하니... 엥간하면 돌아오라..."
"우리가 엥간한 사람들이 아니거등요~... "
아스팔트가 하얗습니다. 2차선 도로 한가운데로 차 지나간 바퀴자국따라 속력을 최대한 낮추고 슬슬 깁니다
장흥 지날 무렵에는 눈의 두께가 더해집니다. 기어를 2단으로 내리고, 시속 40키로 알로..
그나마 다행인것은 남도의 2번국도에는 높은 고갯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약간의 경사가 있는 고갯길은 L로 기어를 더 내립니다. 벌벌 깁니다
강진에서 18번 국도로 내려서는 2번도로 교차로의 나들목 경사는 아슬아슬할 지경입니다.
시간이 배로 걸려, 계라리의 귀라마을회관에 '체크인'한 시각이 23시 10분.
회관의 방은 이미 마감이 되었고, 옆의 자재창고나마 우리에겐 감지덕지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다행히 눈은 엇저녁 내린 그대로 멈추었네요
스스로 알아서 '체크아웃'하고 살며시 빠져 나옵니다
계라리 해남윤씨영모당 입구에 차를 대놓고 행장을 채립니다
고개 아래 주유소는 '개나리주유소'이고, 어제 묵은 마을은 '귀라마을'입니다
행정명은 계라리가 맞습니다.
오예.. 계라리 히어~,
한 영어 하는 대매이는, 외국인 택시를 부를 때, Get out of here..라 하는데,
이거 발음을 '겟아웃드오브히어..' 가 아니라, '계라리히어~'라 해야 한답니다
계라리 고개에도 눈이 두텁게 쌓였네요
아직은, 산행걱정보다 그저 기분이 좋기만 합니다
강세이도 폴짝 뛰며 난립니다. 지 몸이 다 빠져 거진 헤엄치는 수준인데도...
어쨌든, 개나 사람이나 신이 나기는 마찬가집니다.
어서 가자고 난리네요.
산행경력이 얼맙니까. 길 찾는건 이제 일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저놈 뒤만 졸졸 따라가면 됩니다.
온 천지가 하얗게 변했습니다.
아무도 밟지않은 산길에 발도장 팍팍 찍으며 나갑니다
산길에는 눈이 더 내렸는지, 장단지까지 잠깁니다.
한 봉우리 넘고 숨이 가빠질 때쯤에야 문제점이 도출됩니다
스패츠는 고사하고, 아이젠도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 뿐인 아이젠, 둘이서 하나씩 농갈라 왼발 오른발에 한짝씩 찹니다.
깊은데 디디면 발목으로 눈이 들어옵니다
북덕산을 거의 다 오른 지점.
산토끼 발자국이 있습니다. 처음엔 사람 발자국인줄 알았는데, 잡목 덤불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걸 보니 사람은 아닙니다.
무심코 오르는중, 마루금따라 가던 산토끼 발자국이 왼쪽으로 갈라집니다
갑자기 벤또가 그쪽을 향해 뜁니다.
아마 지 눈에 산토끼가 보였던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혹은 진한 냄새를 맡았던건지도 모르지요
마구잡이로 뛰기 시작합니다. 불러도 소용없습니다.
순간적인 일입니다. 벤또가 사라진 길로 멍하니 쳐다보다가, 목청껏 불러 댔지요
벤또....야~! 벤....또야~! 벤...또...오야~!
목이 쉽니다. 벤...또....야~! 야이 개 쌔...끼야~!!
한참을 기다려도 소식은 없고,
마치 맨날 쥐어패는 악랄한 주인으로부터 탈출을 한듯도 합니다.
사실 맞기도 많이 맞았거든요. 닭 몇마리, 갓 부화한 병아리 몇마리에...
닭장에 사고가 날 때마다, 유력한 용의선상에서 갖은 고문을 당했습니다.
북덕산에 올랐습니다.
여기서도 한참을 기다렸습니다만, 소식은 없습니다
지놈하고 내하고 인연이 여기까진거 같심다~
부디 조은 시골할매 만나, 안뚜디리 맞고 잘 살거라~
진주 강세이가 졸지에 강진 강세이가 되겠구마~
이렇게 벤또는 우리곁을 떠났습니다
(북덕산)
덕룡산
능선 너머로 보이는 두륜산
흑석산 가학산
학동고개
첨봉 헬기장
첨봉 (화원지맥 분기점)
두륜산 (능선너머로 대둔산 시설물이 빠꼼히 보인다)
조망도 좋긴 하지만
자꾸만 벤또가 눈에 밟힙니다
벤또와 함께 했던 지난 구간이 잔잔히 스쳐갑니다
첫구간 각수바위에서
탐진강 발원지까지 간 개새끼
온갖 난관을 뚫으며
눈에 불을 켜고 보초서는 벤또
첫구간 마치고 녹초가 되었던 벤또...
월출산에서 벤또
국사봉에서도,
땅끝기맥 주요봉우리는 하나도 안빼묵었는데...
그렇게 우리와 동고동락하며 네구간을 했고,
이제 두 구간만 더하면 함께 졸업하는데...
우짜겠습니까
모든 것은 인연따라 가는것을...
주작산 공룡능선
주작공룡
사실 저놈이 문제로 떠 오릅니다
중간에 짧은 암릉지대를 몇 지나면서,
눈이 두텁게 쌓여 어디가 바윈지 허방인지 일일이 스틱으로 짚어봐야 합니다
무작정 밟다가는 미끌리는 정도가 아니라 바위사이로 빠지면, 골절도 되기 때문입니다
주작공룡은 그 이름 그대로 암릉의 연속으로,
지체된 시간도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 넘는다는건 도저히 불가하다는 판단을 합니다
덕룡산 암봉
두륜산은,
산행 시작점인 북덕산에서 봤을 때,
저만한 거리면 오늘 중으로 넘을 만하다 했는데
막상 진행해 보니, 직선으로 길이 난것도 아닐뿐더러
대기가 깨끗해 더 가까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난재배 농장 하우스가 있는
쉬양릿재에서 올라서면, 주작공룡으로 이어집니다
쉬양릿재 내려서면 택시전화가 눈에 띕니다
오소재까지 7.3km 지금시각 14:04
시간상으로도 늦었고 길상황이, 도저히 무리라는 현명하고도 탁월한 판단을 합니다
미련없이 휴양림쪽으로 좌틀합니다.
주작산 자연휴양림
난초농장 아저씨가 불러준 택시. 난농원 바로 아래가 주작산 자연휴양림입니다
7평에 4만원부터 있답니다.
주중에는 비고, 주말에는 손님이 있다네요
도암개인택시 011-632-7753
택시타고 가면서도 혹시나 이놈이 길거리를 배회하지나 않을까
이리저리 살핍니다
북덕산 아래를 지나면서,
파출소 가서 분실신고를 해야 안되것나... 차 타고 북덕산 아랫마을을 한바퀴 돌아보자...
나름의 작전까지 짜 봅니다.
언넘 말마따나, 진주까지 찾아 오것나...?
혹시, 차에 와 있지나 않을까...?
안타까움에 뱉아보는 소립니다.
산행거리 12키로 남짓한데,
택시 거리도 12키로 정도로 비슷합니다
소석문 (작은 석문산이라) 앞을 지나며
도암초등학교가 나오는데, 바로 덕룡산 산행 들머리가 됩니다
따로 덕룡산만 타도 하루꺼리 충분하고 코스도 좋습니다
다리 좀 긴 사람은 덕룡산 다 타고,
우리가 내려온 수양릿재 난농원을 지나 주작공룡을 타고 오소재까지 간답니다
우쨌기나 오늘같이 눈이 쌓인날은 안되고,
날 조은날 골라 한바리 하면 멋진 산행이 되것네요
30여분 걸려 영모당에 도착이 되고, 택시비 12,000원을 지갑에서 꺼내며,
"저차 앞에 세워주..."
엇~, 벤또닷~!!
내차 밑에 벤또가 있는겁니다.
이산가족 상봉할 때, 심정이 이럴까요?
아니, 저 놈이 도데체 어떻게 찾아왔지...????
거리는 2키로 정도에 시간은 1시간 정도 됩니다만
지 키높이 만큼이나 눈이 덮힌 산길을
어떻게 무슨 수로 출발점으로 돌아왔는지
두어번 타긴 했지만, 저거 주인차도 아니고... 더구나 어제밤에 캄캄한 시간대에, 그것도 똥쌀까봐
박스에 주 담아서 꼼짝 못하게한 채 실고 왔는데
풀 수 없는 미스테리, "세상에 이런일이" 입니다
반갑기야 이루 말로 다 하겠습니까
이렇게 벤또와의 인연은 다시 이어졌습니다
잠시 오줌누고 오니, 앞자리로 넘어 와,
아예 같이 놀자 하네요
그래도 이쁘기만 합니다.
첫댓글 와!!!!!!!!!! 읽어내려 가면서 얼마나 슬펐는데요..근데 찾았네요 똑똑한 놈입니다...원래 "벤또"는 사냥개입니다. 영국이 원산지이지요...코카스파니엘 종입니다....
"벤또"에게 채우는 GPS수신기가 있습니다... 고려 해 보심이... 근데 "벤또"는 일본말이고 도시락이란 뜻인데 그놈 언제가는 계곡에 데리고 가서 배고플때 묵을라고 이름을 그래 지었는모양입니다...
어휴~ 넘 서운하게 잃어 버린줄 알았는데... 찾아서 다행입니다.
사냥개가 확실합니다... 그 숨어있던 본성에, 주인이고 나발이고 다 내삐리고 돌진하는... 이름은...원래 베토벤에서 성을 떼고 토벤이 되었다가, 뒤집어 벤토, 다시 벤또가 되었다는 슬픈 사연이 있고요. 아니, 회장님~! 개한테 줄 ,GPS가 오데 있심껴? 내꺼도 모지라는데요...ㅎㅎ
사냥개가 워낙 비싸서 개한테도 GPS휴대시킵니다.. 개값이 천만원이 넘는데 이자뿌면 우얄라고요... '강마에스트로'가 '강마에'가 되는것은 이해 가는데 '베토벤'이 '벤또'되는것은 너무 신기하다요...~~~
와~~ 너무 감동적이네여... 글도 참 재미잇게 썼군요,,, 긑 까지 잘 읽어엇습니다...벤또 많이 사랑해 주세여..
엄청 감동 먹었어요...............벤또 자주 보여주세요....
가슴이 아플라카다가............ 찡한 감동으로 돌아왓네요 ㅎㅎㅎㅎ 다행입니다~
그 넘의 벤또 벌 좀 주세요 ㅋㅋㅋ
조은산님,천만다행입니다. 사냥개를 위한 부착용gps는 다음"사냥견들을 위한 열린카페"를 찾아보십시오.사냥장비 난에 '위치추적기'가 있습니다.추천기종은 가민 astro220과 같이 사용하는 추적기로 astro dc-30 이 있고, 정가는 200불이지만 ebay에서는 168불에 별도 구매 가능합니다. http://cgi.ebay.com/GARMIN-DC-30-COLLAR-for-ASTRO-220-DOG-TRACKING-SYSTEM_W0QQitemZ310094564919QQcmdZViewItemQQptZGPS_Devices?hash=item310094564919&_trksid=p3286.c0.m14&_trkparms=66%3A2%7C65%3A3%7C39%3A1%7C240%3A1318 *단, 현재 개가 물에 들어갈 경우 쇼트가 나는 버그가 있어서 보완중이라고 하니 적설 산행에는 적당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글과 사진을 보며 이거 무슨말을 해야 될지 하고 끝까지 읽어나갔는데 이런 반전이 숨어있었군요 첫째 아들 이름이 도빈인데 역시 베토벤에서 토벤 하기는 그렇고 해서 도빈으로 지었는데 여긴 거꾸로 작명하셨군요 ㅎㅎㅎㅎㅎ 귀연 강아지와 멋진 설경 잘 감상했습니다~!!!!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가슴이 아파왔어요,...벤또와 같이한 시간들을 보며 벤또 생각뿐 눈덮힌 풍경들은 저멀리로~~~ 꼭 찾으시길 빈다고 꼭 찾으시라고 말하고 싶었는되 찾았다는 글을 보고 후~~~ 안심의 한슴만~~~ 다행입니다...
저도 개를 키우는데 꼭 자식같지요 하루만 어디보내고 않보여도 우리개가 먹던 밥그릇이 눈에 선하고 ... 잘 찾아왔으니 다행이네요 밴또 자주보여주세요
눈물나다 한참웃었습니다..즐감합니다
ㅋㅋㅋ 난 일제시대때 쓰던 도시락통인줄알았네요 ~ 도시락이 주인을 찼아다 ~~ 어찌보면 짐승의 기본감각은 사람보다 나은부분도 많은것 같습니다
진주 강새이 허허 반가운 말이네요
어제가 중복이었는디,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