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영적소비자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11년 목회를 한 것으로 소비자들의 관심이 뭔가를 충분히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시시한 게 아니라 제가 스스로 시시해졌기 때문에 1,999년부턴 공급자에게만 관심을 쏟았습니다. 그래서 평생에 100명의 공급자만 세운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망을 갖기도 했습니다. 영적 공급자의 트레이드마크는 바로 십자가의 도에 의한 새로 지음을 받은 자신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고난도이긴 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반복 연습하면 손바닥 뒤집는 것만큼 익숙하고 편해집니다. 갈6:14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말씀 안에서 자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자랑거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 나도 세상도 각각 죽었습니다. 확실해 질 때까지 반복하세요. 세상과 육신을 이기는 길 곧 사단을 이기는 길은 이 길 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 15절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그리스도 안에서는(원문참조)...할례나 무할례가 무슨 효력이 있겠는가? 오직 새로 지음을 받은 자 곧 새로운 피조물(new creation) 밖에 없습니다. 외모보다 속사람을 극존중하는 영적 공급자입니다. 14절을 근거로 15절의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두 구절을 한 세트로 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안에서 일어난 재창조의 역사를 연결시켜 자신의 구원을 확정하고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만약 싫다면 차라리 장사나 하세요. 성령의 뒷받침이 없는 목회는 정말 지겹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지긋지긋하게 따라오는 과거의 나와 그 과거사를 완전히 청산하고 새사람을 내 세우는데 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16절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규례는 표준, 잣대 등 딱 정해 주신 영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이라는 구역을 여기서는 규례라고 표현했습니다. 시12편의 안전지대이며 하나님이 줄로 재어 주신 구역입니다. 행하는 자- 군대가 행진하듯 한 걸음 한 걸음 정연히 행진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 이스라엘입니다. 당연히 그들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습니다.
그리고 17절“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칼로 흠집 내듯이 찢지 말아다오 이 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흔적(marks, 표, 낙인)을 가졌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것이라는 확정이 있다는 말이지요. 상품으로 치면 생산자의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파악한 바울의 몸 안에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것이라는 트레이드마크가 찍혀있습니다. 바로 새 언약이며 마음의 심비에 새긴 성령의 약속입니다. 고후3장17-18절 내용인데 성령 안에서 아들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 형상의 영광을 얻어 하나님의 영광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이 바로 예수의 흔적이며 바울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첫댓글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