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형제자매(시8:1-9; 히2:5-12) 2015. 10. 4_성령강림 후 19주
추석 연휴를 잘 보내셨는지요? 직장인이나 학생들처럼 정해진 일정 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명절이나 공휴일은 마치 보너스와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바쁘게 하던 일들을 멈추고 쉬면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덤으로 생긴 것 같긴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도 이번 연휴에 푹 쉬었습니다. 잘 먹고, 잘 쉬고, 산에 올라가서 밤과 도토리를 줍기도 하고, 강아지와 산책도 했습니다. 특히 이번 추석에는 슈퍼문이 떠서 커다란 달을 바라보며 밤길을 걷는 운치를 즐길 수 있어 더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흔적을 담고 있는 자연은 도시인들의 몸과 마음에 하나님의 기운을 불어넣어줍니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서있는 우리가 우주와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하나님 안에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도록 힘이 되어줍니다.
오늘 함께 읽은 구약본문인 시편 8편을 쓴 기자도 대자연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시편 8:3을 보시면,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과 주님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내가 봅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8편의 저자인 다윗은 온 세상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별이 빛나는 찬란하고도 드넓은 하늘에 압도되어 사람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의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미약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생각해주시고, 돌보아주심에 경탄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은 내가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방향성을 갖고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일과 관련됩니다. 물질만능주의에 경도된 세상에서 살다보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생각할 때 내면의 가치보다 외적으로 이룩해놓은 경력, 업적, 기술 등으로 자신을 평가하기 쉽습니다. 내가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이, 나의 사회적 지휘나 영향력이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척도가 됩니다. 자신의 가치를 측량하고 수치화하려다보니 지금 여기에 머물지 못하고, 앞으로 이루어야 할 목표를 생각하며 계속해서 전진하도록 자신을 몰아갑니다. 여기에 만족이란 없고, 오히려 불안감, 열등감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외부에서 찾으려는 현대인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시편기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시8:4) 나라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다윗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대자연 앞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헤아리며 자신의 존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손수 만드신 세상 안에 하나님의 피조물인 내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나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존귀하고 영화로운 왕관을 씌워 주셨다”(시8:5)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에게 나의 나 된 것은 온전히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진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외적으로 과장되고 부풀려져 있는 거짓자기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내가 존귀하며 가치 있다 인정하고 받아주십니다.
시편 8편 말씀에서 인간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면, 오늘의 신약말씀 히브리서 2장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누구인지 오늘날까지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습니다만, 내용을 통해 저술동기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주후 60-70년경 기독교운동이 일어난 지 30-40년이 지나 초대교회의 초창기 멤버들은 죽고,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의 것이 되어 믿음을 잃어가고 있는 가정교회 회중을 위해 쓴 편지였습니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외부의 탄압은 계속되고 있는데 복음에 대해 믿음과 순종으로 반응하지 못하는 영적 무기력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다시 알려줌으로 믿음을 회복하도록 격려하는 글입니다.
히브리서 2장 6절은 오늘의 구약 말씀 시편 8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초월적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는데,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계획하신 영광스러운 뜻을 이루기 위해 몸소 죽음을 맛보셔야만 했습니다. 이 일은 시편 8편을 통해 미리 예견되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순종해야 하지만, 그와 더불어 영광과 존귀, 우주적 권위를 위임받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약속은 인간의 다스림 안에서는 온전히 성취되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죄와 죽음으로 좌절하고 실패합니다. 시편 8편의 말씀이 성취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낮아지신”(히2:9) 예수님의 겸손은 이후의 영광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운 계획 가운데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인간의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어놓으셨습니다.
히브리서는 시들해진 열정과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어도 반응하지 않는 이들을 위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보면서 티끌만도 못한 자신에게 존귀하고 영화로운 왕관을 씌워 주신 것을 깨달아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듯,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지극히 낮은 곳으로 가셔서 고난을 당하시고 온 인류를 영광의 자리로 올려주셨음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살면서 나란 사람이 보잘 것 없고, 하찮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남들과 나를 비교할 때, 외부에서 일어난 일들에 휘둘릴 때, 나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닥쳤는데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 때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내가 한없이 작게 여겨지고 무기력에 빠져들 때 그런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 하늘보좌에서 내려와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는 말씀이 위로가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신 것처럼 시험을 받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도우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 의지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가요?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고, 땅 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것만 같다고 여겨질 때 내가 있는 낮은 자리까지 내려오셔서 나를 일으키시고 영광의 자리로 데려가시는 분이십니다. 만물의 창조주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존귀하게 여겨주신다는 사실이 내가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내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십니다.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많은 자녀를 영광의 자리로 이끄시기 위해 고난을 통해 완전하게 하심이 당연한 일이라고 히브리서 2장 10절에서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하시는 분 예수님과 그분으로 인해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께 속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된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형제자매라고 불러주십니다. 나의 기준에서 보면 나는 한참 모자라거나,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보잘 것 없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편과 히브리서 말씀처럼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의 정체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나를 위해 고난과 수치를 겪으셨고, 이것이 당연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나는 영광의 자리에 오르게 되며, 존귀한 존재가 됩니다. 그리스도는 나를 위해 비천하게 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 나를 위해 내가 있는 곳으로 내려오신 예수님은 나를 형제자매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이렇듯 하나님께 귀한 사람입니다. 나의 가치는 외부에 있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에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밤 설교본문을 정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저를 도와주겠다고 조카가 와서 참견을 했습니다. 제가 뽑아 놓은 본문들을 읽어보더니 그중에서 시편 26편이 마음에 든다며 그것을 본문으로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어느 부분이 좋으냐고 물었더니 “주님, 나를 변호해 주십시오. 나는 올바르게 살아왔습니다. 주님만을 의지하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주님, 나를 샅샅이 살펴보시고, 시험하여 보십시오. 나의 속 깊은 곳과 마음을 달구어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늘 바라보면서 주님의 진리를 따라서 살았습니다.”(시26:1-3) 이 구절이 좋다고 했습니다. 이 구절을 선택한 이유를 물으니 자기는 사실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데, 이 말씀을 읽으면 평소에 연예인, 메이크업, 옷 같은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되고, 지금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지만, 그 말씀을 통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어서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조카의 말을 들으며 저도 많이 공감했습니다. 저도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고, 다른 생각에 빠져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존재의 중심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내 인생에서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곳까지 내려오셔서 나를 친히 주님이 계신 곳으로 이끌어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너무나도 유약하고, 유한한 존재라서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런 때에는 나를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셔서 고통을 견디시고 그 고난의 끝에 우리를 형제자매로 불러주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도, 그분의 도우심으로 이 어려움을 뚫고 나갈 수 있다고 믿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분노와 좌절감 속에서 내 삶이 바닥을 치고 있다고 생각할 때 가만히 예수님을 묵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에 빠져 헤매는 나를 위해 몸소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사람이 되셨고, 고난을 직접 겪으시며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형제자매로 불러 주시며 친히 내 안에 나와 함께 계십니다.
내 존재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어 영광의 자리로 이끌어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은 모든 고난을 이겨내셨습니다. 그 고난을 모두 겪으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나를 거룩하게 하시고, 형제자매로 불러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영광스러운 자리로 높여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나는 존귀한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여겨주시며, 형제자매로 불러주신 각 사람이 모여 살림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 존재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며,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해주시며 그 시험과 고난을 견뎌내도록 도우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우리 삶이 가장 바닥까지 내려간 것 같은 절망 중에도 소망을 버리지 않고 예수님을 통해 그 어려움들을 이겨나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