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해병 1사단 6.25전쟁 생환기
퇴각하면서도 '후퇴' 언급 안 한
지휘관 스미스 장군 리더십 주목
미국은 이들을 영웅으로 맞아줘
트루먼 대통령은 "역대 최고" 치하
6.25 발발 후 첫6개월 동안 전쟁의 판세를 뒤집은 상륙작전이 두 번 있었다.
인민군을 궤멸 직전까지 몰아간 인천상륙작전과 유엔군의 전면적 후퇴로 이어
진 원산상륙작전이다. 이 책은 이 중 1950년 10월 원산에 상륙해 개마고원 깊
이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포위 섬멸 작전에 걸려들었던 미 해병 1사단의 기적 같
은 생환 이야기를 담았다. 훗날 장진호 전투로 알려진 퇴각 작전에서 저자는 미
해병 1사단이 무슨 수로 자기들보다 8배나 많은 중공군이 겹겹이 친 포위망을 뚫
고 귀환할 수 있었는지 추적했다.
저자는 그 비결로 먼저 해병 1사단장인 올리버 스미스 장군의 뛰어난 리더십
을 주목한다. 그의 용병술은 함께 원산에 상륙한 10군단장 에드워드 아몬드 장군
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아몬드는 전장에서 나오는 정보에 무심했다. 그러면서도
승리에 집착했고 장병의 희생을 강요했다. 반면, 스미스 장군은 '닥치고 돌격!'
방식의 지휘를 '가짜 영웅들의 에너지 낭비'라며 혐호했다. 매일 사상자 수를 일
기장에 기록하며 희생을 줄이려 애썼다. 예리한 판단력도 더해졌다. 장병들은 적
진으로 들어갈 때 강에 교량이 있으면 반색했다. 스미스는 달랐다. 퇴각하는 적이
다리를 끊지 않은 이유를 의심했고 매복을 경계했다. 실제로 중공군 12만 대군이
장진호 주변을 에워싸고 미군이 발을 들여놓기만 기다렸다. 장진호 전체가 함정,
미군의 사지(死地)였다.
스미스는 멀리 보는 지휘관이었다. 맥아더와 아몬더의 명령을 받고 마지못해
장진호에 들어갈 때부터 퇴각에 대비했다. 중공군의 포위를 뚫을 힘은 병참에서
나온다는 판단도 정확했다. 장진호 인근 하갈우리에 병참용 수송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활주로를 건설했다. 체감온도가 영하 50도까지 곤두박질치는 추위속에
서 50cm 아래까지 꽝꽝 언 땅을 파는 악전고투였다. 아몬드는 "이런 곳에 왜 비
행장을 만드는냐?"고 스미스를 질타했다. 11월 28일 장진호 일대에서 전투가
시작되자 활주로의 가치가 빛을 발했다. 전투가 지속된 보름여 동안 수송기가 부
상자를 후방으로 실어날랐고 탄약과 식량, 강추위를 막을 솜옷을 공수해 왔다.
아몬드는 그제야 스미스가 잠도 안 자고 공사에 매달린 이유를 깨달았다.
스미스는 조직의 도전 목표를 제시할 줄 아는 탁월한 지휘관이기도 했다. 장진
호에서 흥남으로 이어지는 좁은 퇴로를 따라 내려오는 동안 그는 '후퇴' 라는 표
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이 전투를 '역방향 기동' 또는 '후방 진격'으로
규정하며 긍지를 지키려 애썼다.
스미스 리더십 못지않게 예하 부대 장교와 사병들의 헌신도 빛났다. 10배 넘는
병력에 맞서 닷새간 혈투를 벌인 폭스 중대의 덕동고개 전투는 처절했다. 중공군
이 쏜 총알에 턱을 관통당할 때 충격으로 한쪽 눈알이 튀어나온 병사는 흙 묻은 눈
알을 눈구멍에 끼워 넣고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장교들은 총탄에 골반뼈가 으스
러진 채로 참호를 기어다니며 전투를 독려했다. 100여 명밖에 남지 않은 폭스 중
대를 구출하기 위해 지원 부대가 죽음을 무릅쓰고 야간 행군을 감행하는 대목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를 보는 듯한 뭉클함까지 전한다.
미국은 사투 끝에 돌아온 군인들을 영웅으로 맞이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역
대 최고의 전투 후퇴"라고 치하했다. 사사건건 스미스와 충돌했던 아몬드도 "어
떤 전쟁에서도 이들보다 용감하게 싸운 군인은 없다"고 했다. 언론은 '역방향 공
격' '바다를 향한 전투 행군' 이란 제하의 기사를 쏟아냈다. 모두가 성공적 퇴각
을 축하했지, 중공의 꽹과리 부대 따위에 밀렸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마침 6.25전쟁 71주년이다. 책 읽는 내내 우리 현실이 겹쳐 떠올랐다. 6.25
전쟁 영웅이자 국군 창군 주역의 1주기 조차 외면하는 나라와, 천안함 폭침을 좌
초라 우기고 장병을 조롱하며 함장에겐 부하를 수장했다고 막말하는 국민은 미
해병 1사단 같은 영웅들을 가질 자격이 있는가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