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읽고
200912010 컴퓨터교육과 도미례
때는 전 세계가 냉전의 기운에 휩싸여 있던 1960년대, 동유럽 첩보망을 책임지고 있던 영국 정보부 요원 엘릭 리머스는 자신의 부하 카를 리메크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리메크가 나타났지만, 그는 서독 땅에 발을 내딛기 직전에 살해당하고 만다. 카를 리메크가 넘지 못한, 쓸쓸한 베를린 장벽을 조명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서독의 첩보 조직을 떠나 영국으로 돌아온 리머스. 첩보망이 괴멸당하고 임무에 실패한 그가 한직으로 밀려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다. 그런 처지를 견디지 못하고 타락하는 그의 모습에도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이렇게 그는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갔지만, 상부는 사실 그에게 극비리에 맡길 임무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동독의 1인자 문트를 처단하기 위해 그를 위장 전향시키는 것. 위험한 계획이었지만 그는 승낙한다.
제목에조차 ‘스파이’가 들어가 있는 이 소설은 어딜 봐도 완벽한 ‘스파이 스릴러’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저자 존 르카레의 첩보 활동 경력이 소설을 더욱 현실감 있고 생생하게 만들어 줄 것도 같다. 과연 엘릭 리머스가 적진 동독으로 들어가 어떤 기지와 행동력을 발휘하여 작전을 화려한 승리로 이끌 것인가. 나는 기존 스파이 스릴러의 형식을 떠올리며 관성적인 기대를 품는다. 그러나 예상 범위 내에서 흘러가는 듯하던 스토리는 별안간 20장 <사문회>에서 크게 뒤집히며 내 기대를 박살내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스파이 소설이란 흥미 본위에다가 아주 배타적인 국수주의를 기반으로 한, 한마디로 ‘저급한‘ 장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전까지 읽은 스파이 소설이라고는 007 시리즈 몇 편이 전부였으니 이런 생각은 어쩌면 편견인 듯도 싶다. 그러나 이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이하 『스파이』)의 작가인 르카레가 ’스파이 소설을 쓰면서도 본격 작가로 대우받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책 표지의 설명을 보면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또한 이것은 르카레의 소설이 기존 스파이 소설의 형식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끝까지 읽은 내 생각도 그렇다. 이 책은 어딜 보나 ’전형적‘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기존의 스파이 스릴러와 어떻게 차별되어 문학적 가치를 획득하는가? 우선 『스파이』는 흥미 본위의 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에는 화려한 액션 장면도, 극적인 탈출도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영웅적 활약상을 보여주는 것이 주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리머스는 그저 고등 훈련을 받은 스파이일 뿐 영웅은커녕 그 비슷한 존재도 아니다.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첩보 활동을 그린 것은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파이라는 이중적이고도 모순적인 직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존재, ‘더 큰 선’을 위해 수없이 많은 악을 자행해야만 하는 존재, 인간적인 감정을 거세당한 존재. 스파이에 대해 매력과 호기심을 느껴 집어 들었던 이 책은, 스파이라는 직업, 그리고 그것을 필요로 해 왔던 이 세계에 대한 환멸을 느끼며 덮게 된다. 저자 존 르카레는 지난 첩보 활동의 경험들에서 이러한 감정을 가장 강하게 느껴 온 장본인일 것이고 아마도 그것이 그가 이 책을 쓰도록 한 원동력일 것이다. 본문에서 관리관은 말한다. <우리가 불쾌한 일을 하는 것은 동서 양쪽에 사는 보통 사람들이 밤에 침대에서 안전하게 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야.>(p. 23) 언뜻 듣기에 옳은 소리로 들린다. 나 역시 이러한 생각을 옳다고 생각하며 자라왔다. 나 같은 소시민이 ‘침대에서 안전하게 잘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내가 모르는 곳에서는 수많은 비도덕이 행해지고 있을 것이며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현실적이며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이해하지 않으려 드는 태도는 지나치게 나이브한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들이 만약 내 생활에 총구를 겨누게 된다면, 그 때도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나라는 개인의 삶은 ‘더 큰 선’을 위해 희생되어도 되는 것일까. 소설은 스스로 던진 화두에 대한 대답 역시 담고 있다. 21장 <추운 바깥에서 들어오다>의 마지막 장면, 베를린 장벽을 넘어 살아남는 대신 연인인 리즈의 곁을 택한 리머스의 행동이 바로 저자의 답인 것이다.
또 한 가지의 큰 차별성은, 이 책은 결코 배타적 시각으로 서방 세계를 옹호하고 ‘적’을 단죄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은 스파이 소설인 만큼 어느정도 ‘정치적’이기는 하지만 조금도 ‘이념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갈등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20장 <사문회>에서 절정을 이룬다. 진정한 이상을 가지고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2인자 피들러는 처형당하고, 배신자 문트는 살아남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문트가 살아남아야 서방 세계에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이 철저한 이해 관계에 ‘정의’가 끼일 자리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피들러는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는 자기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당신이 그 사람을 죽였어요. 문트는 첩자에다 반역자인데, 당신은 그런 사람을 보호하고 있어요.…당신은 어느 편이에요?…」(p.246)혼란에 빠진 리즈의 외침이 우리 모두의 혼란을 대변한다. 정의가 무시되어도 좋다면, 대체 이 모든 것은 무엇 때문에 시작되었단 말인가? 이 소설은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중립’이라기보다는 그런 논쟁에 아예 관심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목적성을 잃은 채 꾸역꾸역 자라 거대한 괴물이 된, 한때는 이상을 논하며 시작되었던 이데올로기 그 자체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이 소설에서의 여성 캐릭터 역시, 제임스 본드와 관객들의 욕망 충족을 위한(덧붙이자면 본드의 남성미 과시를 위한) 본드걸의 역할과는 거리가 멀다. 리즈 골드는 특징이라면 성실하게 활동하는 공산당원이라는 것 정도가 있는, 평범한 여성이다.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평범한 시민 역할을 맡고 있는 리즈는 바로 그 평범함 덕분에 이야기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모두가 납득하는, 그 부조리 앞에서 그녀만이 현실을 부정하고 저항하려 한다. 그녀 한 사람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작고 공허하지만, 또 그래서 일견 순진하고 어리석게도 보이지만, 이 소설이 귀 기울이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그녀의 목소리이다. 그녀의 존재는 순수한 인간성 회복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또 그녀로 인해, 스파이라는 비현실적인 삶을 살아온 리머스는 평범한 일상에의 정착을 꿈꾸게 된다. 제목에서도 언급됐을 만큼 이 소설에는 ‘추운 바깥’과 ‘따뜻한 실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관리관의 표현에 따르면, ‘추운 바깥’은 리머스가 첩보 활동을 벌이고 있는 위험한 지역을 가리키며 ‘따뜻한 실내’는 첩보 활동에서 벗어난 안전한 영국 땅을 의미한다. 그리고 리즈의 존재로 인해 또다른 구분도 가능해진다. 비인간적이고 무감동한 스파이로서의 삶이 그간 리머스가 살아온 ‘추운 바깥’이라면 리즈가 기다리는 지극히 평범하고 소소한 나날들은 ‘따뜻한 실내’를 의마하는 것이다. 리머스가 가고자 했던 ‘따뜻한 실내’는 리즈의 곁을 의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비록 관리관이 보장해 준 ‘실내’로는 갈 수 없었지만 리머스는 리즈의 곁을 지킴으로써 어떤 의미에서는 추운 바깥에서 들어왔다. 비록 그 정착지가 행복한 일상은 아니지만, 그의 선택은 외로운 외침이 되어 이 차가운 세계에 ‘사랑’의 의미를 되짚어 보도록 하는 하나의 시사점을 남긴다.
물론 『스파이』는 이런 점을 모두 빼놓고 보더라도 상당히 흥미로운 소설이다. 리머스의 시점을 따라가던 독자들은 그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번 놀라고, 그의 실패가 성공으로 전복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또 한번 크게 놀라게 될 것이다. 이러한 흥미로운 반전은 잘 짜여진 플롯과 교묘한 장치로 인해 가능해졌다. 또한 시종일관 감정을 배제한 냉정하고도 무미건조한 문체는 이 소설의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데 집착해 지면을 설명에 허비하는 대신에, 독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적당히 가공된 형태로 첩보 활동을 묘사한 것도, 쓸데없는 이야기는 한 줄도 허락하지 않는 빈틈없으면서도 간결한 서술 방식도 모두 노련한 선택이다. 나무랄 데 없는 소설인 것이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스릴러로서도, 진중한 사회 비판적 텍스트로서도 모자람이 없는 존 르카레의 『스파이』는, 냉전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의 현실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스파이 스릴러 최고의 걸작이며 치열한 시대정신의 보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