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리 하우스에 심은 묘목들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연초록 새 잎이 나오면 블루베리 나무의 생명줄인 실뿌리가 뻗어나간 증거라고 한다. 사랑스러운 이파리가 생명의 증표라고 생각하니 지나간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며 울컥했다.
농장에 관해 조언해 주시는 전문가가 연락을 했다. 3년생 블루베리 나무를 파내는 농장이 있으니 캐다가 심으라는 것이다.
"그 사람은 왜 나무를 캐내는데요?"
"품종을 바꿔야 한대요."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러는데요?"
자꾸만 질문이 생겼다. 우리 농장에도 좋다고 해서 심은 품종들이 자라고 있는 상황이라 더 의문이 들었다. 거기는 논에다 두둑을 만들어 심고 비닐하우스를 덮었기 때문에 물 빠짐이 좋지 않아 나무가 살기 힘들다고 한다. 지금 파내서 옮겨 심어도 우리 하우스처럼 물 빠짐에 특화된 화분재배 방식에서는 잘 살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나무의 상태가 옮겨 심어도 가능하다고 하면야 우리로서는 수확까지 1년을 벌 수 있다. 게다가 나무의 세력도 좋아서 수확량도 더 많을 터라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무실을 트럭을 구해서 나무를 캐러 갔다. 상태가 좋아 보이는 나무들이 많았다. 비닐하우스는 2중 보온처리 되어있고, 바닥의 고랑과 두둑에도 부직포를 깔아서 온갖 정성을 들여 기른 흔적이 보였다.
노심초사, 애지중지 뭐라 말할 수 없는 심정으로 3년 동안 나무를 키웠을 주인장의 마음을 생각하니 미안하고 감사했다. 나무를 캐내면서 "더 좋은 땅으로 옮겨 줄게"라고 말하며, 마치 어정쩡한 내 마음을 달래려는 듯 나무마다 속삭여주었다.
우리 큰 하우스에서 2개월 정도 자라서 새 순을 키워 올리던 나무들을 품종이 같은 종류들끼리 작은 하우스로 옮겨 심고, 새로 파 온 3년 생 나무를 심는 작업을 사흘 동안 했다. 7월 초라 한낮에는 더워서 일하기 힘들었다. 농부는 해 뜨고 해 지는 시간이 출퇴근 시간이라는 말처럼 새벽에 농장에 왔다가 점심에 집에 갔다가 오후에 다시 농장으로 향했다. 눈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작업하고 스마트폰으로 전등을 켜서 일하다 보니 밤 9시 40분에야 일이 끝났다.
새집으로 이사 한 블루베리가 잘 자라주기를 바라며 3주쯤 지났을 때, 드디어 연둣빛 새순이 나오기 시작하자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끈적이는 논땅에서 뿌리들이 힘들게 버티며 살고 있다가 고슬고슬한 흙에 심어주니 나무들에게도 다행한 일이었다.
사람에게도 내가 주고 싶은 것이 아닌, 받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 진짜 사랑이 듯 나무에게도 잘 자랄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맞춰줘야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품종이 좋다, 맛이 좋다, 나무가 잘 자란다, 습해에 강하다, 추위에 강하다... 이런 말들이 모두 맞는 말들이지만, 자신의 농장의 환경과 땅의 조건, 영양 등을 맞춰줘야 나무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편, 똑같이 화분에 같은 영양이 되도록 흙을 채워서 심었던 묘목들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어가기도 한다. 물이나 온도 등 같은 환경인데도 살아내지 못하는 나무도 있다. 3월 초 옮겨 심으면 좋다는 교육을 듣고도 화분에 흙 채우기 작업이 늦어져 5월 초에야 심었기에 묘목이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최적의 생육조건을 맞춰주는 것이 앞으로도 꾸준히 배우고 연구해야 할 일이다.
장마철엔 천창의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를 반복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지금은 출입문까지 열어서 열기가 밖으로 빠지도록 관리하고 있다. 이 무더운 여름에 열 피해 없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란다. 좋은 흙과 주기적인 물, 영양제까지 투여되고 있는 화분에서는 풀들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서 또 한 차례 화분 전체의 풀을 뽑아주었다.
사람도 나무도 풀도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있다.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풀들아! 내가 너를 키우려고 이 정성을 들이는 것이 아니란다. 네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자라렴. 이른 새벽과 늦은 오후에는 내 눈에 띄지 말기를!
* 몰래 자란 풀 한 포기.
첫댓글 몰래 자란 풀 한 포기 ㅋㅋㅋ
반전이네요
풀 느그들!
내 눈에 띠기만 해라
해놓고
잡풀 한 포기에도 푸웁~~
웃어주는 쥔님의 센스
농장의 결실이 기대가 됩니다
한 바퀴 돌아서 풀을 다 뽑고 나면, 하루 이틀 새에 또 반대쪽에서 풀이 자라고 있답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풀이 급성으로 자라고 있어요. 더위에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풀들아! 내가 너를 키우려고 이 정성을 들이는 것이 아니란다. 네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자라렴. 이른 새벽과 늦은 오후에는 내 눈에 띄지 말기를!"
그렇게 말했는데 화분에 비름나무 하나가 쏘옥 올라와 있어서 '이게 웬일? 네가 왜 여기 있어?'
유심히 처다보면서 너 대단하구나 했는데 사진 아래 설명을 보니 주인님도 벌써 발견했네요.
수고 많았어요. 농부는 무한의 시간 투자를 해야하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밖에요.
풀을 어떻게 이길까? 농사 일 하려면 그 방법부터 연구해야 할 것 같아요.
나도 우리 텃밭에 장마가 끝나서 밤늦도록 풀을 맸더니 몸살이 났어요.
어제와 오늘은 마당에 잔디를 깎느라 얼굴이 홍당무가 되도록 땀을 흘렸고요. 그래도 일하고 나면 후련하고 기분이 좋은 거 알지요?
회장님께서도 텃밭과 잔디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네요!!! 풀들은 뽑아도 또 나오고 정말 부지런한 식물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답답하다가도 후련해지는 마음 때문에 또 일을 하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내일은 주말이라 둘째 데리고 농장에 일찍 가려고 합니다. 회장님께서도 무리하지 마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