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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된 지도 어느새 10여일이 흘렀다. 그러나 새로운 기운보다는 자꾸 무엇인가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럴 때는 시나브로 '자연'이 머릿속을 맴돈다. 각박한 도심을 벗어나 맑은 기운을 채울 수 있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
#절이되 절이 아니다지난 7일 오후. 겨울 햇살을 마주보며 1시간40분 남짓을 달려 찾은 경기도 안성 죽산 도솔산의 다비정사는 절이되 절이 아니었다. '떡' 하니 방문객을 기다리며 버티고 있는 잿빛 건물은 전통 사찰이 아닌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어야 할 듯한 형이상학적인 모습이었다. 손님을 맞는 '향적당(香積堂)'에 들어갔다. "사람의 몸에서는 향기가 납니다. 좋은 향이 나도록 선한 마음으로 향을 쌓으세요." 건물 2층에 자리한 종무소에서 만난 송암 스님은 한창 컴퓨터와 씨름 중이었다. "대웅전 옆에 천문대를 하나 만들 생각입니다." 천문대를? 절에? "예부터 우주는 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우주가 곧 삼라만상 아닙니까.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불교를 접하는 것이니 천문대야말로 절에 꼭 필요한 곳인 셈이죠."송암 스님과 건물 복도를 따라 선방으로 갔다. 복도는 10여m에 불과했지만 걷는 동안 건물 가득한 향에 취해 마음속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조심스러워졌다. 선방은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 곳곳에서 빛이 새어들어 불 밝힐 필요가 없었다. 선방 가득한 '향향(香香)'만 없다면 마치 영화 속 전원주택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 세상 잡념이 사그라지는 듯했다.
#그는 그곳에 있었다"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절은 어떠해야 한다' '스님은 어떠해야 한다'라는 것 말이죠. 저희 절에는 오히려 대웅전이 가건물입니다. 절을 찾는 사람들을 중요시하기 때문이죠." 송암 스님과 함께 수양관인 아라한전을 찾았다. 통로에는 유화로 그려진 아라한들이 내방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마치 서울 인사동이나 삼청동의 미술관을 거닐 듯 현대 미술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법당도 마찬가지였다. 한가지 다른 절과 같은 것이 있다면 유화로 그려진 아라한들에게 둘러싸인 석가모니의 자애로운 미소였다. 법당 안으로도 햇살이 숨쉬었다. 천장에는 성당에서나 볼 수 있는 스테인글라스로 장식된 비천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천문대는 대웅전과 아라한전 사이에 자리할 겁니다. 그저 우주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수행입니다." 내려오는 길에 들은 송암 스님의 잔잔한 목소리는 마음을 어루만졌다. 송암 스님은 다음달부터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교수를 지낸 이시우 박사의 주도하에 '어린이 천문교실'을 열어 어린이들에게 우주를 품는 법을 알려줄 계획이다. "포교만 하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단지 어린이들이 대자연을 느끼고 숨쉬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죠. 절은 의무적으로 찾는 곳이 아니라 이웃집을 찾듯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넘어서는 것은 그냥 넘어서는 것송암 스님은 사람들 가까이에 서 있었다. 이는 송암 스님의 스승인 광덕 스님의 영향이다. 광덕 스님은 불교 대중화 운동의 선구자이며, 현대 불교의 기틀을 잡은 불교계의 거목이다. 송암 스님의 절이 이처럼 파격적인 이유도 기존의 전통을 깨고 대중 앞에 다가선 광덕 스님의 영향일 수 있다. 송암 스님은 광덕 스님의 유지인 '전법지상(傳法至上·법을 전함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을 받들어 전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불교 천문대'라는 역사(役事)를 준비하고 있다. 도솔산에 다비정사가 자리한 것도 이러한 연(緣)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불교에서 '도솔(兜率)'은 서방 미륵정토를 의미한다.
산사를 내려오는 길에 송암 스님은 현대인들에게 화두를 던졌다. "자기 스스로를 되새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한 일, 못한 일은 누구에게나 있어요. 다만 자신을 돌아본 후 절대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죠. 그래야 자신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몸은 편해지지만 정신은 더욱 바빠지기에 자신을 바로 알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송암 스님은 한마디 덧붙였다. "마음의 벽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죠."기자가 물었다. "관념을 넘어서면 또 다른 관념의 벽이 버티고 있지 않나요." 스님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넘어선다는 것은 말 그대로 넘어선다는 겁니다." 차마 무지가 드러날까봐 되묻지 못했다. 바람이 얼굴을 어른다. 풍경소리가 귓전을 스친다. 산사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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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허허..그거참...
지난달에 찾아 내려 가서 대웅전 찾느라 한참을 헤맸지요. 수양관이 스테인글라스로 되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는 것 같으니까 울 아들은 기겁을 하더라구요. 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