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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a Scriptura Tota Scriptura
고린도후서 5장 21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본문의 전후 맥락을 보면 고린도후서 5장 20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말씀합니다. 특히 이 말씀으로 권면하는 대상이 교회라고 할 때 주의 몸 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하는 것은 지상의 교회가 전투하는 교회로서 죄와의 싸움을 싸우고 있다는 것이고, 그런 죄와의 싸움에서 넘어지는 일이 자주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고린도후서 6장 1절도 보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지상의 교회가 전투하는 교회로서 죄와의 싸움을 싸우고 있지만 하나님은 계속해서 은혜를 베푸시고 있다는 것이고, 그런 은혜 가운데서도 넘어지는 일이 있다는 것은 너희가 그 은혜를 헛되이 받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 사이에 오늘 본문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핵심은 후반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b)는 데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나타내고자 하신 바는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인데, 누구 안에서 그렇게 하고자 하시는가? ‘그 안에서’입니다. 이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인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너희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하는가? 또 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지 받지 말아야 하는가? 너희를 통해 목적하신 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도록 부르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목적을 알리시기에 앞서 오늘 본문은 먼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고후5:21a) 이렇게 말씀합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 즉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셨는데,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해서는 죄가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 그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단 우리와 관련해서 먼저 생각해 보자면 우리는 누구도 예외 없이 죄인으로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류는 인류의 첫 부모인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함께 타락한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수요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내용을 통해 살핀 바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행위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창세기 2장 16절과 17절이 그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먹지 말라하신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먹게 된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창세기 3장 5절의 유혹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단이 이렇게 유혹합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즉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금지 명령인 선악과를 먹은 이면에서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한 교만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선악과 금지 명령 자체가 하나님은 창조주요 아담과 하와는 그분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아담과 하와는 그 사실이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이런 교만은 오늘날 모든 사람 안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편 2편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시2:2-3) 사람의 본성은 하나님에게 매여 있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 마음이 얼마나 강한지 하나님이 아니라면 하나님 자리에 다른 무엇을 대체하더라도 괜찮다고 여길 정도입니다. 로마서 1장 23절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는 말씀은 이런 인간의 본성을 잘 드러낸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아담의 첫 범죄로 말미암아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가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 안에서는 이 사실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펠라기우스),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에 따라 죽음이 있다는 것은 죄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무엇보다 성경은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고 말씀합니다. 한 사람, 즉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오게 되었는데, 아담의 죄는 단순히 그 한 사람의 죄가 아니라 모두의 죄이기 때문에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이런 죄에 대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6장은 원죄와 자범죄를 구분하여 설명하는데, 3항에서 죄책과 부패를, 4항에서 부패로 말미암아 자범죄를 설명합니다. 먼저 3항입니다. “모든 인류의 뿌리인 그들은 일반적 출생에 의해 그들로부터 내려오는 그들의 모든 후손에 이르기까지(시51:5, 창5:3, 욥14:4, 15:14) 이 죄책이 전가되었고(창1:27,28, 2:16,17, 행17:26, 롬5:12,15-19, 고전15:21,22,45,49) 죄 가운데 동일한 죽음과 부패된 본성이 전달되었습니다.” 계속해서 4항입니다. “이 원래의 부패로부터 모든 자범죄들이 나오는데(약1:14,15, 엡2:2,3, 마15:19), 그 부패에 의해 우리는 전적으로 모든 선을 싫어하고, 행할 수 없고, 대적하며(롬5:6, 8:7, 7:18, 골1:21), 그리고 모든 악을 향해 전적으로 기울어집니다(창6:5, 8:21, 롬3:10-12).” 그러니까 이런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기 때문에 죄인인 사람은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죽음에 대해서도 성경은 영적인 죽음과 육체적인 죽음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먹고 난 뒤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을 때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는 여호와 하나님의 낮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던 것입니다(창3:8). 영적 죽음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에베소서 2장 1절인데,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에베소서 2장 2절과 3절은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영적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영적 죽음의 경우 곧바로 실행되었지만 육체적인 죽음은 서서히 이루어지게 되는데, 우리는 이 사실을 창세기 5장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기 보면 아담의 계보가 나오는데, 하나같이 오늘날과 비교할 때 오래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담은 930년을 살았습니다(창5:5). 아담의 아들인 셋은 912세를 살았습니다(창5:8). 창세기 5장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므두셀라인데, 그는 969세를 살았습니다(창5:27). 그러나 그렇게 오래 살았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래 살았지만 그들 모두가 죽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죽음은 죄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죽음을 말하고 있는 창세기 5장에서 죽음이라고 표현되지 않는 한 사람을 기록하는데, 그가 에녹입니다. 그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5:24)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지만, 그리고 그런 인생의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아 영적이며 일시적이며 영원한 모든 비참함과 함께 죽음에 종노릇할 수밖에 없지만(제6장 6항), 다시 말해 죄의 삯은 사망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지만(롬6:23),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하신 은혜가 이미 있었다는 것을 여기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무엇인가? 우리가 복음이라고 하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복음(福音)이란 무엇입니까? 복된 소식, 다시 말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을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장 1절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이 구절에 대한 매튜 풀 주석은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불리는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출생과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복음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마1:1)이라고 부름으로써, 그리스도가 진정으로 인간이었고, 태생적인 유대인으로서, 왕가에서 태어나셨으며, 메시야에 관한 약속이 주어진 두 가문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해 준다. 또한 마가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름으로써, 그가 단순한 인간 이상의 존재였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해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드러내실 수 있으셨고, 모세의 법을 권세 있게 해석하시고 가르칠 수 있으셨으며, 새로운 예배방식을 도입하실 수 있으셨고, 일부 개인들을 제외하고는 만대와 만세로부터 감추어졌던 구원의 신비를 널리 선포하실 수 있으셨다.
이처럼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마가복음의 증거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막1:1). 그러나 하나님이신 분이 마태복음의 증거처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마1:1). 하나님이신 분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인간이 되셨느냐에 있는데,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죄 없으신 분으로 보내어 죄인 된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이렇게 말씀합니다(고후5:21a).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알지 못합니다. 그에게는 죄가 전혀 없으십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인류가 죄인으로 태어나지만, 예수님의 출생은 일반적인 출생과는 다릅니다. 그분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처녀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죄 없는 인간으로 보내신 것은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 5장 에녹에게서 보이신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 된 우리가 함께 하고 동행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오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으로 오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 7장 26절에서는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고도 말씀합니다. 사도 베드로 역시 베드로전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 합니다. 1장 19절입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즉 예수 그리스도만이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과 같다는 것입니다. 2장 22절에서는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라고 증거 합니다.
여러분,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때 하나님이신 분이 죄 없으신 인간으로 오셨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실이 믿음의 내용으로 있지 않는 이상 우리는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전가된 것처럼 우리의 죄가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가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죄인인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사실도 말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구절이 로마서 4장 25절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 가운데 내어준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왜 살아나셨는가? 그가 이루신 공로를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로마서 4장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로마서 5장 12절 이하 21절을 통해서도 더욱 분명히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죄인처럼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여 하나님과 함께 하고 동행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분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런 사실은 의식법의 모형 가운데서도 나타날 뿐만 아니라, 선지자들을 통해서도 증거가 되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나타난 예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레위기 16장 21절과 22절입니다.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즉 이미 구약에서부터 죄에 대한 전가가 증거 되었습니다. 선지서에 나타난 예 한 가지도 언급하자면, 이사야 53장에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4절과 5절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10절에서 12절은 이렇게 증거 하기도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정리하자면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인류가 타락하여 죄인이 되었다는 것, 이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이신 성자께서 사람이 되시되 죄 없는 사람으로 오셔서 죄인의 죄를 짊어지시고 죄에 대한 고난과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공의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할 때 값없는 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편에서 볼 때 값없는 은혜이지,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세운 법을 반드시 실행하셔야 합니다. 창세기 2장 17절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다면 죄의 결과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 전가시키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는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고후5:21a)이라는 말씀이 그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기꺼이 우리를 위하여 오셨지만, 그 일은 적어도 오늘 본문에서 볼 때 성자와 구별되신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를 보내신 것이고, 죄를 알지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의 것으로 간주하셨다는 것이고,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 일의 주체자로 계셨는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 즉 죽음을 그리스도께서 받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의 공의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만족하셨다는 것입니다. 만족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이사야 53장 11절을 언급했지만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겼다고 할 때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했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과 구원을 받게 되는 데는 이런 하나님의 공의의 만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되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데, 오늘 본문은 그 은혜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b) 우리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가하여 우리 대신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 받으시고 죽으신 것이 하나님의 공의라면,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고 의로운 사람으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면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1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것은 이런 목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너희의 모습은 그러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와 함께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일어난 일임도 놓치지 마셔야 합니다. 주체가 누구냐?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본문에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았다고 할 때 성자와는 구별된 성부의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분리되지 않는 한 하나님이십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의 주체로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도 우리의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우리의 죄 됨과 관련하여 모든 사람이 원죄를 가지고 태어날 뿐만 아니라, 원죄의 구성 요소인 부패로 말미암아 자범죄를 짓는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6장 4항 후반부에서는 이 부패로 말미암아 우리는 전적으로 모든 선을 싫어하고, 행할 수 없고, 대적하며, 그리고 모든 악을 향해 전적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것도 고백합니다. 정확하게 로마서 3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이런 모습 가운데 있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의 필요성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한 직후 행위언약(창2:17) 외에 은혜언약을 베푸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서 여자의 후손이 누군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가복음 1장에서 증거 하는 것처럼 그분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시며(막1:1), 때가 차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마1:1). 그리고 죄인 된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필요를 느끼지도 못하는 우리를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고, 나아가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의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을 수 있도록 까지 해 주셨습니다(겔36:26). 여기에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주권은 소위 우리가 예정론이라고 부르는 내용에서 더욱 잘 드러나는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3장 3항은 인격적 피조물과 관련해 두 부류를 정하셨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 그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어떤 사람들과 천사들은(딤전5:21, 마25:41) 영생으로 예정되었고, 다른 사람들과 천사들은 영원한 사망으로 예정되었습니다(롬9:22,23, 엡1:5,6, 잠16:4).” 그러면서 5항과 6항은 생명으로 예정된 사람들에 대하여 설명하고 7장은 나머지 사람들에 대하여 설명하는데, 오늘 본문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고 할 때 ‘우리’는 누구냐? 생명으로 예정된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누구를 위한 고난과 죽음인가? 생명으로 예정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신 사람들은 누군가? 모두가 아닙니다. 생명으로 예정된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로 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지만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데, 영생을 얻는 자들이 누군가? 생명으로 예정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획득하신 의를 받아 누리는 모든 것은 이런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불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선택은 견인의 은총을 보장합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의 말씀처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찬을 행하는데, 성찬을 통해 증거 하는 것도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지난주 수요일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96문을 다시 한번 살폈지만, 주의 성찬은 그리스도의 정하심을 따라 떡과 포도주를 주고받음으로 그의 죽으심이 증거 되는 성례입니다. 여기서 죽음이 있다는 것은 죄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의 죄냐? 예수 그리스도의 죄가 아닙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십니다.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님의 공의가 있으며, 공의가 있는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은혜는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생명으로 예정된 사람들만의 것입니다. 성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금 생각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리스도의 정하심을 따라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지만, 우리는 믿음으로써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예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예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든 은택들을 우리가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으면서 은혜 가운데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하자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면서 살아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혹 세례를 받았지만 성찬 참여를 위하여 공적인 신앙고백을 하지 못한 분도 있지만, 성찬 자체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말씀과 상관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리고 그 믿음이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고난 받으시고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거기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이 있으며,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면서 살아가는 자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된 믿음 안에서 의롭다 함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면서 사는 자가 되도록 자신을 더욱 살펴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