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치양 (김석훈 분)
황보수, 천추태후의 일생의 연인. 신라왕족의 후손. 신라의 부흥을 꿈꾸는 남자. 그는 황보수가 평생을 걸쳐 지키고자 했던 고려를 없애고자 그녀에게 접근한 남자. 하지만, 이용하고 제거해야..
강조 (최재성 분)
천추궁의 공주 시절부터 황보수의 곁을 지켜온 남자. 마지막 죽음의 그 순간까지 황보수를 위하여 제 한 몸 갈가리 찢기는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인 남자. 그에게 사랑은 평생의 축복이자 저주였다..
다시 읽는 여인열전 / 천추태후
조선일보 / 입력 : 2002.07.23 19:11 34'
중국식 儒敎化 거부… 고려 건국 이념의 수호자
|
|
천추태후 황보(皇甫·964~1029)씨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혹시 그녀를 아는 사람들도 김치양(金致陽)이란 신하와 간통한 왕비 정도로 기억하고 있기 십상이다. 그러나 고려 다섯번째 왕인 경종(재위 975~981)과 결혼, 헌애황후가 된 그녀는 그정도로 넘어가기에는 고려 초기에 남긴 족적이 너무 큰 여인이다.
여덟 살 위의 사촌오빠와 결혼, 황후가 됐을 때만 해도 황보 소녀는 모든 것을 갖춘 행운아였다. 그녀의 친 할아버지는 태조 왕건이었다. 황보라는 성은 외가 쪽을 딴 것인데, 그녀의 외증조부 황보제공(皇甫悌恭)은 예성강 서북의 패서(浿西) 내륙 일대를 대표하던 호족이었다. 그녀의 동생도 뒤이어 경종과 결혼시켜 헌정황후로 만든 것은 그녀 외가의 위세를 잘 말해준다.
경종에겐 이미 두 명의 부인이 있었지만 그녀는 앞선 왕비들과 치열하게 경쟁, 경종의 유일한 왕자 송(誦)을 낳을 수 있었다. 비록 순서로는 세 번째지만 왕자를 낳은 그녀의 위치는 명목상의 서열을 앞질렀다. 그러나 경종이 재위 6년만인 981년 26세의 젊은 나이로 두 살짜리 왕자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남에 따라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어 버렸다. 두 살짜리가 즉위할 수는 없었기에 대신 오빠가 즉위한 것이다. 그가 바로 성종인데 그가 중국식 유학정치이념의 구현을 치세목표로 삼으면서 그녀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성종은 유학정치이념에 따라 동생들에게 평생 수절을 강요했다. 그러나 열여덟 살의 헌애왕후나 동생 헌정왕후는 수절하기에는 너무 어렸고, 또한 유학윤리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는 고려 여인이었다.
헌애왕후가 문제의 남자 김치양(金致陽)이 외가 친척이란 명목으로 승려 복장을 하고 나타났을 때 별다른 망설임 없이 그를 애인으로 삼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동생 헌정왕후도 마찬가지였다. 경종 사후 왕륜사(王輪寺) 남쪽에 거주하던 헌정왕후는 곡령(鵠嶺)에 올라서 소변보는 꿈을 꾸었다. 신라 김유신의 동생 보희의 꿈처럼 온 나라에 넘쳐흐르는 꿈이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오줌이 은(銀)바다로 변했다는 점이었다. 점쟁이는 ‘아들을 낳으면 왕이 될 꿈’이라고 풀이했으나, 그녀는 “이미 과부가 되었는데, 어찌 아들을 낳겠는가?”라고 한탄했다. 그러나 이웃에 살던 이복숙부 왕욱(王旭)이 접근하자 그녀 역시 언니처럼 감정에 충실했다.
두 여동생의 추문이 들리자 성종은 엄격한 유교윤리에 따라 김치양의 곤장을 친 후 귀양 보냈고, 욱도 멀리 경상도 사천으로 귀양 보냈다. 이미 임신 중이었던 동생 헌정왕후는 귀양 가는 욱을 바래다주고 돌아오던 중 집 앞에서 아이를 조산(早産)했는데, 산후조리에 실패해 죽고 말았다.
헌애왕후는 자신들에게 엄격한 유학이념을 강요하는 성종에게 큰 불만을 느꼈다. 그녀는 성종의 유교정책은 할아버지 왕건의 뜻과 다르다고 판단했다. 성종은 즉위하자마자 팔관회나 연등회, 선랑(仙郞)처럼 왕건이 높였던 고려의 전통 행사들을 ‘떳떳치 못하다’고 생각해 폐지했다. 대신 역대 왕들의 신주를 모시는 중국식 태묘, 토지신과 곡식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 공자를 제사하는 문묘 등을 설치하는 등 중국식 유교화에 박차를 가했다.
중국식 잣대를 들이대면 고려는 제후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는데 실제로 성종은 개국 이래 사용해오던 조서(詔書)를 교서(敎書)로 개칭했다. 조서는 황제가 사용하는 용어이고 교서는 제후의 용어다. 성종은 또 최승로같은 유학자들과 신라계 인물을 적극 등용했다. 하지만 그의 유교화 정책은 상무정신을 약화시켜 거란족의 요나라 침입 때 국토 일부를 떼어주자는 할지론(割地論)이 조정의 대세를 이루는 악영향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서희(徐熙)와 이지백(李知白) 등 항전론자들은 조정의 소수파에 불과했다. 이지백의 “경솔히 국토를 떼어주기 보다는 연등회, 팔관회, 선랑 등의 행사를 다시 거행하고 타국의 색다른 풍습을 본받지 말아 국가를 보전하자”는 주장은 고려 전통의 상무정신의 부활을 요구한 것이었다. 헌애왕후 역시 고려 전통파의 이런 주장에 깊이 공감했다.
![]() | |
| ▲ 평양성 대동문.천추태후는 북진을 실천하기 위해 평양을 중시했다. | |
천추태후는 귀양 간 김치양을 불러들여 우복야 겸 삼사사에 임명했다. 목종을 도와 고려식 전통정책을 부활하는 한편 유행간(庾行間) 이주정(李周禎) 문인위(文仁渭) 등을 등용했다. 이들은 자신의 친정 세력이었던 패서호족(浿西豪族)의 일원이었다.
그녀는 북진을 강조했던 왕건의 유훈을 실천하기 위해 목종에게 네 번이나 서경(西京:평양)에 행차하게 했다. 그때마다 산악과 주진(州鎭)의 핵심지역에 제사를 지내 전통신에게 가호를 빌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 진관사(眞觀寺)를 짓고, 목종을 위해 숭교사(崇敎寺)를, 김치양의 출신지 서흥에 성수사(星宿寺)를, 궁성 서북에 시왕사(十王寺)를 지었는데 이런 절들은 전통 행사 팔관회에서 모든 토속신앙이 어울렸던 것처럼 불교와 도교, 토속신앙이 함께 어울리는 장소였다.
천추태후의 이런 정책들은 성종의 방향이 옳았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유학자와 신라계 인물들을 반대파로 만들었다. 이들은 목종을 내쫓고 태후의 동생 헌정왕후가 숙부 욱과 사통해 낳은 순(詢)을 국왕으로 삼으려고 획책했다. 천추태후는 목종 6년(1003) 열 두 살이던 조카 순을 대량원군(大良院君)으로 삼아 우대했으나 반대파들이 그를 중심으로 모이자 1006년 그를 승려로 만들어 남경(南京:서울)의 삼각산(三角山) 신혈사(神穴寺)에 내려 보냈다. 천추태후는 자신의 정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1003년 김치양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후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수를 친 것은 반대파들이었다. 이들은 목종 재위 12년(1009) 정월 임금이 관등(觀燈)을 하는 틈을 타서 천추충에 불을 지르는 것으로 정변을 시작했다. ‘고려사’는 목종이 천추궁 화재에 충격 받아 ‘병을 얻어 정무를 보지 않았다’라면서 ‘궁내에만 있고 신하들을 만나기를 거부했다’고 적고 있으나 실제로는 쿠데타 세력에게 유폐된 것이었다.
결국 목종은 폐위 당하고 대량원군이 현종으로 추대되는 것으로 쿠데타는 성공한다. 강조는 김치양 부자와 유행간 등 천추태후 세력을 대거 살해했다. 이때 천추태후는 46세였으나 쿠데타 세력은 그녀를 죽이지는 못했다. 목종과 김치양 사이의 아들까지 모두 죽여 재기할 싹을 자른 데다 태조의 손녀이자 선왕 경종의 왕후인 그녀마저 살해하는 것에는 큰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목종이 죽은 후 그녀는 외가의 고향인 황주(黃州)에서 한을 달래며 여생을 보냈다.
◆고려 왕실의 족내혼
고려 왕실은 현재 우리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족내혼이 심했다. 족내혼이라기 보다는 근친혼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정도이다. 정종의 제1비와 제2비는 모두 견훤의 사위인 박영규(朴英規)의 딸이었다. 고려 2대 임금 혜종은 자신의 딸을 이복동생 정종에게 주었으니 정종은 조카딸과 결혼한 셈이었다. 뿐만 아니라 왕건의 셋째 아들이었던 광종의 비는 태조의 딸인 황보씨였으니 이복 남매끼리 결혼한 것이었다.
이 경우 왕비들은 친가의 성이 아니라 외가의 성을 썼다. 광종 비 황보씨는 왕건의 딸로서 왕씨라고 써야 했으나 외가성을 따른 것이다. 이는 같은 진골끼리만 결혼했던 신라 왕실의 족내혼 유풍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하지만, 왕씨끼리 혼인한 것을 감추기 위한 의도도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이덕일·역사평론가)
화보
23일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면 세트장에서 열린 KBS 새 대하드라마 '천추태후'(극본 손영목·연출 신창석) 촬영현장공개에서 배우 이채영이 카리스마 넘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채영은 ‘천추태후’에서 중성적인 매력을 과시하며 무예가 뛰어난 사일라 역을 맡았다.
채시라, 김석훈, 최재성, 이덕화, 이채영 등이 출연하는 ‘천추태후’는 강감찬과 고려시대 최고 여걸인 천추태후가 거란과 맞서 승리를 거두는 내용을 그린다.
오는 11월 22일 첫방송될 예정이다.
주인공 천추태후역의 채시라
주역인 김석훈, 채시라, 최재성
리를 거두는 내용을 그린다. 오는 11월 22일 첫방송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