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으로 이사 오기전 7번에 걸쳐 수정 보완하여 다듬은 부지이용 계획 도면이다.
때는 바야흐로 만물이 소생하는 따뜻한 봄날 ....!
5월 초순의 바람은 싱그러웠고 산과 들은 어느새 봄기운이 올라 더욱 푸르게 물이 올라 있었다.
그런대로 집을 짓기위한 준비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 되었다.
지난 겨울 평창 산림조합에서 마련하여 운반해온 양면치기 낙엽송 통나무도 마당에 가득 쌓여 있었다. 겨울 동안 준비 한다고
눈이 쌓인 이곳 산속으로 통나무를 운반 하느라 무진 애를 먹었다. 나무를 실은 산악용 나무 운반트럭도 눈이 쌓여 있는
오르막 산길 중턱에서 더는 오르지 못 하고 빌빌 거렸다. 하는 수 없이 중간 지점에서 통나무를 내동댕이 치고 트럭은 내빼 버리고 말았다. 할 수 없었다. 약 700본에 이르는 통나무를 일일이 1ton 화물트럭으로 실어 간신히 운반을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운반하여 준비한 통나무 였다.
우선 통나무의 양면치기한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의 나무 등걸을 제거 하는것이 첫번째 작업 이었다.
삼발이를 만들어 두개를 나란히 놓은후 그 위에 나무를 얹은 다음, 재래식 나무 등걸 낫으로 벗겨 나가야 했다.
장정들도 힘들어 하는 고단한 일 이었다. 하지만 하나하나 차분하게 벗겨 나갔다. 하루 평균 20본을 넘지 못 했다. 더구나 껍질을
벗긴나무를 다시 발전기를 돌려 동력을 얻은 다음 전동 샌드페퍼로 면을 맨들맨들 하게 다듬어야 하고 그 위에 오일스텐이란
특수도료를 칠 해 방충,방수에도 미리 신경을 써 두어야 했기에 많은 양을 소화 할 수가 없었다.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어 갔다.
그 사이 시간을 쪼개어 건축에 필요한 행정서식을 갖추어 나갔다.주경야독하는 식 이었다.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는 촛불을 밝히고 필요한 행정서류를 만들어 나갔다.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양식과 아울러 도면등
복잡하고 번거러운 요식 행위 였지만 꼭 필요한 서류 양식 이었다. 만들어진 서류는 동네 이장의 도장을 받아 면 사무소를 거쳐
군으로 이관되는 형식 이었다. 이 모든 행위를 위탁을 하면 되었으나 금액도 만만치 않았고 직접 해 보겠다고 마음 먹은 이상
끝까지 내 손으로 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직접 뛰어 다녔다.
최종적으로 군 행정실로 찾아가 접수를 하니 담당 공무원이 나를 다시 한번 쳐다 보았다. 왜냐하면 모든 서식이 타이핑서류가
아닌 볼펜으로 직접 작성한 서류 였으니 그럴만도 했다. 아마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식 행위 자체에 문제가 없었으니 일단 접수는 되었다. 보름을 기다리란다.
물론 당초에 땅을 매입 할때 미리 경계측량이니 분할측량을 해 놓았기에 가능한 일 이었다.
통나무 면치기 작업은 계속 되었고 어느정도 물량이 확보가 되기에 이르렀다.
아내도 거들고 나섰다. 새벽 5시면 몰래 일어나 남자들도 힘들어 하는 통나무 껍질 벗기기를 시작 한 것이다.
하루 일과가 끝나기전 삼발이에 6개의 통나무를 올려 놓으면 아내가 새벽에 일어나 껍질을 벗겨 놓았다.
힘들다고 만류 하였지만 혼자하는 일이 안스러워 발 벗고 나선 것 이었다. 아내가 새벽에 수고하는 동안 나는 좀 더 잠을 잘 수
있었다. 몸은 초주검이 되었고 잠자리에 들면 끙끙 앓느라 잠을 설칠 정도 였다.
그래도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일어나 하루를 시작 했다.
아내 역시 힘이 들어도 잘 견디어 주었고 오히려 눈빛은 해 내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서려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기초 터파기며 기초 콘크리트 작업을 할 차례 였다.
본채는 임시 숙소인 컨테이너 하우스에서 약 25도경사지를 100여m 올라가야 한다. 그 또한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냥 맨손으로 오르기도 힘겨운 그런 비탈길 이었다. 그러나 이미 계획은 세워져 있었고 그렇다고 힘들다는 핑계로 계획을
변경 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내야만 했었다.
드디어 보름 후에는 그렇게 기다리던 건축 허가가 떨어졌다.
이제 부터는 본격적으로 집을 지으면 되는것 이었다.
집터에 횟 가루를 뿌려 위치를 정해 놓고 터파기를 시작 했다.
터파기는 02 포크레인을 임대로 작업을 하였다.온통파기와 줄기초 파기를 병행하여 하루만에 작업을 마쳤다.
그 다음은 기초 터파기 주위로 실을 띄워 대각을 맞춘 다음 합판 형틀을 대는 작업 이었다.바닥 흙의 높이를 수평되게 맞추고
형틀을 조립해 나갔다. 쉬운일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작업을 차근차근 해 나갔다. 합판 형틀 한줄을 세운뒤 철근조립도 병행 했다.처음 하는 일이니 모든것이 생소하고 신기하기 까지 했다. 철근의 이음부분은 철사 결속선으로 단단히 고정하고 다시 이어나가는식 이었다.철근 작업은 아내와 함께 해 나갔다. 철근을 철사로 묶으면 아내가 철사 결속선을 2~3개를 구부려 주었다. 그러면
그것으로 철근을 엮어 나갔다.
그럭저럭 철근작업도 끝이나고 외부 합판 형틀만 고정 시키면 일단은 콘크리트타설 준비는 끝이 나는 것 이었다.
근 일주일을 형틀 조립과 철근설치에 매달린 끝에 준비 작업이 모두 마무리가 되었다.
이제 콘크리트를 형틀속에 부어 넣기만 하면 되는 것 이었다.
그런데 그때 부터가 문제 였다.
우선 레미콘 트럭이 접근을 할 수가 없었고 산길을 오르는일 조차도 안 된다는 것 이었다.
그렇다면 손으로 콘크리트를 비벼 작업을 해야 하는데 앞길이 막막 했다. 콘크리트의 양도 만만한 양이 아니었다.
높이는 1m20cm에 두께는 22cm 였다.
우선 수작업으로 해 보았다. 대답은 못 하겠다. 였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밤을 지샛다. 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 끝에 레미컨회사 관계자를 찾아 상담을 했다. 상담 결과는 철제로 된 커다란 버켓형 비빔통을 준비하여 포크레인으로 작업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 이었다. 하지만 임대로 장비를 빌려 작업을 하자면 비싼 장비 임대료에 자갈, 모래, 시멘트에 물을 부어 과연 하루에 얼마나 많은 콘크리트를 타설 할 수 있겠느냐는 것 이었다.
또다른 조언을 들었다. 임대로 하려면 금전적 부담이 너무 크니 그렇다면 고물 포크레인을 한 대 구입 하라는 것 이었다.
귀가 솔깃하여 이곳 저곳에 고물 포크레인을 알아 보았다.
지성이면 감천 이라고 했던가... 마침 김포 돼지농장에서 쓰던 중고포크레인이 있다는 것 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급히 김포로 달려갔다. 장비는 노후되어 움직이는 것이 신통 할 정도 였다.
고물도 그런 고물이 없었다. 더구나 돼지농장에서 돼지똥 치우던 장비 였으니 그 냄새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마당에 이것 저것 가릴 여지가 없었다. 장비는 그런대로 움직여 주었고 쓸 만은 하니 바로 흥정에 들어갔다.
결국 200만원으로 합의를 보았고 다음날 운반을 해 주기로 약속을 하고 계약서를 썼다.
다음날 오후 늦은 시간 드디어 장비가 도착했다. 산속을 오르다 중간에 포크레인을 내려놓고 트럭은 떠나 버렸다.
하긴 매번 어떠한 화물차가 되었던지 그런 식 이었다. 개울에, 험한 산 길에 할 수 없다는 것 이었다.이해가 되는 부분 이었다.
별 수 없이 어제들은 작동법을 상기시켜며 겨우겨우 조종을 하여 집 앞마당에 도착 했다. 덕분에 포크레인 조정법을 이동하며
다 배워 버렸다. 한가지 불편한 것이 있었다면 한가지는 남는것도 있었다.
그나마 참 다행 이었다.
컨테이너 하우스 앞마당엔 모래,자갈이 가득 쌓였다.
모래, 자갈도 운반 당시 애를 많이도 태웠다. 덤프 트럭이 못 간다고 하여 펑크가 나면 내가 모두 변상을 할테니 한번 시도라도
해 보자고 하여 설득 끝에 간신히 모래3차,자갈3차를 앞마당에 부려 놓을 수 있었다.
드디어 새로 구입한 포크레인을 이용해 모래를 1ton 화물트럭에 가득 퍼 담았다. 그리고 경사지를 뒤(back)로 올라야 했다.
위에서는 차를 돌릴 공간이 없어 결국은 뒤로 오르고 화물칸의 짐은 모두 손으로 퍼 내려야 했다.
삽질을 하며 한참을 씩씩 거리다 보면 하늘이 노랗고 입안은 이미 바짝 마른지 오래 였다. 물 한모금으로 더위와 갈증을 푼 뒤
다시 시작되는 삽질....!
자갈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삽질로 퍼 내려 철제 비빔통에 적당량을 채웠다. 거기에 시멘트를 풀고 물을 넣으면
포크레인으로 내용물을 반죽하여 형틀에 부어 넣으면 되는 것 이었다.
일차적으로 내용물을 섞는 작업은 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형틀에 부어 넣기는 장비로는 역 부족 이었다. 할 수 없이 다시 삽질을 시작해 형틀사이에 콘크리트를 부어 넣었다. 이런 식으로 콘크리트 비벼넣기 작업은 끝이 없었다.
열심히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일을 하여도 들여다 보면 콘크리트가 채워 졌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하루 평균 3번의 콘크리트 타설이 고작 이었다. 무리하여 한번을 더 한다고 고집을 부리고 했다간 눈이 빙빙 돌고 입안에선
똥물이 올라올 정도로 힘든 일 이었다.
하루는 콘크리트 일을 하다 잠시 쉬는 시간 이었다.
아무렇게나 털썩 앉아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데, 쉭~ 쉭~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쪽을 살펴보니 주먹만한 사슴벌레가 더위에 앉아서 쉬고 있는 모습 이었다. 이런 진기한 모습을 보기는 처음 이었다.
크기나 희귀한 모습에 넋을 놓고 바라 보았다. 정말 별 천지 였다.
아마 이러한 자연 환경과 좋은 공기 덕분에 지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작업에 이골이 나기 시작 했고 곧 쓰러질듯 피곤해도 얼마든지 견딜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런 정신력도 이곳 자연에서 얻은 고귀한 선물 이었다.
벌써 6월 말이 다 되었다.
정선 산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