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효녀 심청’ 조경희 여사
한 달에 한두번 90고개를 바라보는 대학 동기들이 모임을 가져오기 어언 수십년, 고양시에서 효녀로 소문난 한솔 조경희 여사가 가끔 자리를 빛내주니 결코 우연한 인연이 아니다. 벌서 오래전에 다정한 친구 가 그녀를 소개하면서부터 즐거운 만남을 계속해 왔는데 어느 날 출근길 버스 안에서 갑자기 쓸어져 끝내 저세상으로 간 그 친구를 못 잊어 하며 동기회 고정 멤버가 되었으니 인연이란 이런건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지금 이글을 쓰는 이유는 이런 연유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녀와의 만남은 그 나름대로 샘솟는 우정으로 하여 동기생 모두가 좋아하는 사이가 됐지만 그가 당대에 보기 드문 효녀라는 사실이 존경스러워 오늘도 옷깃을 여민다.
그가 94세의 노모 병수발을 해온지 어언 10여년, 장녀로 홀어머니를 모셔오다 급기야 노환으로 호중 출입도 어려운 처지가 되니 언감생심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고 어느새 70고개를 넘어선 나이, 지금 그에게 바람이 있다면 노모의 건강 회복 밖에 다른 희망이 없어 보인다. 자력으로 식사를 못하시니 끼니때마다 세 살짜리 어린이를 대하듯 모셔야 한다. 허구한날 대소변을 받아내며 목욕까지 시켜드리는 중노동이 그의 일과다. 이런 그의 효성이 소문나면서 고양 시가 몇 해 전 효녀 상을 수여하니 현대판 효녀 심청이 따로 없다.
우리의 전통적 규범 속에서 효(孝)는 백 가지 행동과 만 가지 덕(德)의 근본이라 하여 가장 높은 덕목이었다. 공자(孔子)와 증삼(曾參)의 문답에서 효도에 관한 것들을 추려놓은 ‘효경’에 보면 “무릇 효가 덕의 근본이며, 모든 가르침은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발부(身體髮膚)를 온전히 보존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고, 스스로 입신(立身)하고 진리를 실천하여 후세에 이름을 남김으로써 부모를 영광되게 하는 것이 효도의 끝이라했다.
어버이를 극진히 섬긴 효녀의 예는 ‘삼국사기’에 전하는 ‘효녀지은 (孝女知恩)’과 ‘설씨녀 (薛氏女), ’삼국유사‘에 전하는 ’빈녀양모(貧女養母)의 이야기 등이 생각난다. 이 중에서 ’효녀지은‘ 이야기는 들을수록 심금을 울린다.
그녀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어머니를 봉양하며 나이 32세가 되어도 오히려 시집을 가지 않고 밤낮으로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집이 가난하여 잘 봉양할 수 없게 되자, 남의 일도 해주고 혹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밥을 빌어 어머니에게 드렸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곤궁함을 이기지 못하여 드디어는 부호의 집에 몸을 팔아 종이 되고 쌀 10여 석을 얻기로 하였다. 그 뒤 지은은 그 집에서 종일토록 일을 하여주고 저물어서야 집으로 돌아와서 밥을 지어 어머니를 봉양하였는데, 이와 같이 사나흘이 지나자, 어머니는 딸에게 말하기를 “지난날에는 먹는 것이 맛나더니 오늘에는 밥은 비록 좋으나 맛은 좋은 것 같지 않고 간장을 칼로 찌르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어찌된 까닭인가?” 하므로, 지은이 사실대로 알리자 어머니는 “나 때문에 네가 남의 종이 되는 것은 차라리 내가 빨리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고 소리를 내어 크게 통곡, 딸도 또한 통곡하니 길가는 사람들 모두가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 효종랑(孝宗郎)이 나와 놀다가 이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부모에게 청하여 집에 있는 조 100섬과 의복을 보내주고, 또 효녀 지은을 산 주인에게 곡물을 변상하여 양민으로 되게 하니, 이를 본 낭도(郎徒) 몇천 명도 각각 조 1섬씩을 거두어 보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벼 500섬과 집 한 채를 하사했다는 미담가화(美談佳話)다.
이 밖에도 우리 역사상에는 많은 효녀가 있었다. 이들의 효행은 조선시대 편찬된 ‘오륜행실도’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및 각 군현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고전문학의 백미로 손꼽히는 ‘심청전’의 주인공 심청은 우리나라 효녀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고 있지 않은가. 모시기 힘들다고 툭하면 요양원에 부모를 위리안치(현대판 고려장)하는 마당에 병환중인 노모를 결혼조차 포기한채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온 한솔, 그가 바로 현대판 효녀 심청이 아니던가. 만감이 교차해 밤잠을 설치니 평생동안 자식 걱정만 하다 가신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2023.7.16 성법57동기회 산행을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