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을 하려고 생각해보니 내 머리 속을 꽉 메운건 소위 블럭버스터라고 하는 것들이 대 부분이었다. 올해에는 그래도 영화를 많이 보러 다닌 편인데 한국의 조폭 영화들이나 외국의 액션물들이 대 부분이었다.
볼 때는 신나고 재미있게 봤는데...^^~~~~
따뜻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영화를 본 적이 없던가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다.
몇 달 전 전주에서는 전주 국제 영화제가 열렸다. 그 때 정말 감동적으로 본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다...
우왕부왕하고 빵빵한 영화에 길들여져 버린 나에게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도 내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경쾌하고 따뜻하게 기억되는 영화이다.
막다른 길... 그러나 되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포스터 위에 적혀있는 말이다. 내가 영화를 보고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처음에 영화를 볼 때는 내가 좋아하는 류승범이 웨이터로 나온다기에 별 생각을 하지 않고 이끌리듯이 봤다. 하지만 영화는 내가 기대하지도 못했던 감동을 전해줬고 지금까지도 마음에 잔잔히 남아있다. 큰 충격이나 거대한 장면처럼 내 기억 속에 각인 되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되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한때 잘나가던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불경기로 인해 출장밴드를 전전하고 결국은 고향 수안보의 와이키키 호텔이라는 곳에 일 자리를 얻는다. 하지만 리더 성우는 고향인데도 불구하고 그 곳에 돌아가는 것을 꺼려한다.
난 성우가 왜 그런지 느낄 수 있었다. 소위 사람들은 고향에 성공해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가... 오랜 시간이 흘러 동창회에도 사회에서 입지를 굳히고 나서야 떳떳하게 나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더라도 멤버들과의 생활유지도 힘든데 그런 걸 신경 쓸 수 없기에 결국 고향으로 내려온다.
어렵게 결정해 내려온 고향에서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재회하지만 이미 그들에게 성우가 생각하고 있던 친구의 옛 모습은 살아지고 없었다. 첫 사랑이었고 좌중을 휘어잡는 노래실력을 지닌 인희 조차도 남편과 사별하고 트럭 야채장사를 하며 억척스럽게 생활고에 찌든 아줌마의 모습으로 성우 앞에 나타난다.
성우가 느끼는 어린 시절의 꿈과 사랑... 그리고 생활에 찌든 지금 친구들의 모습에 서글퍼하는 것을 보며 어린 시절 꿈꿔왔던 그 많은 것들을 하나씩 포기하고 잊고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이 성우와 겹쳐지면서 나도 찡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향에 내려오면 그나마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여자문제로 멤버들이 다투고 팀이 깨질 위기에 처하면서 영화는 그들이 얼마나 망가져가고 서로를 신뢰하고 있지 못하는지 보여준다.
우리에게 아직은 세상이 따뜻하고 꿈을 찾아가기에 늦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이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모든 역경을 딛고 다시 해보겠다는 인희와 함께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시스터즈'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아주 활기차고 유쾌한 음악들과 함께...
내가 생각하고 있는 좋은 영화, 아니 모든 좋은 예술이 공통적으로 지닌 힘이자 감동 가운데 하나가 그런 것 아닐까. 작고 사소한 일상과 개인의 모습에서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쳐주고 작은 기대를 큰 포부로 바꿔주는 것... 말이 너무 거창한가? ^^
희망도, 다른 위안도 없는 미래를 불안해하며,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뚜렷하게 있는 것도 아니어서 힘없는 뒷모습을 남기며 밴드를 떠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0년만에 찾아오는 고향, 미래에 대한 빛나는 설렘과 동경이 어디엔가 남아 있을 듯한 고향이기에 지금의 어정쩡한 모습으로 수안보를 찾아오기를 꺼려했던 사람이 있다.
영화 속에서 음악을 같이 하던 친구들이 성우를 보고는 그래도 음악을 지금껏 하고 있는 녀석은 너뿐이고 하고 싶은 것을 해서 좋겠다는 식으로 말을 했을 때 진정 누가 행복한 건지 아이러니 해졌다.
하고 싶었던 꿈을 접고 추억 속에 묻어놓고는 삶에 찌들었을 때 가끔 추억을 그리워하며 위안 삼아 더 삶에 충실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건지... 아니면 자신의 꿈대로 이루어졌는데 그것이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쳐 희망도 꿈도 모조리 사라진 상태에서 유지라도 하고 있는 사람이 행복한건지...
'나훈아'를 흉내 내는 것으로 무대에 오르는 '너훈아'와 또 그를 모방하는 '제2의 너훈아''이영자'를 닮은 '이엉자'... 이들은 결국 3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운명, 끝내 주류의 대열에 낄 수 없는 자들의 비애와 서글픈 좌절을 풍자하고 있는 듯 보였다. 자신의 존재는 없고 누군가의 등에 가려진 모습...
처음 기타를 배우던 시절 성우의 음악적 스승이었던 늙은 연주가, 이제는 알콜 중독으로 무대에서 몇 번씩 실수를 하고 마는, 재능도 꿈도 삶도 모두 스러져 가는 가운데 아주 먼 과거의 추억만을 되씹는 쓸쓸하고 서글픈 모습도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아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미술을 좋아하고 소질도 있었지만 공부에 매진하던 친구가 있었다. 성적도 좋아서 학교에서는 선생님들도 좋아하셨다. 그런데 고2에 갑자기 미술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었던 것을 찾겠다는 친구의 단호함에 난 부럽기도 했다. 학교나 주위의 반대를 무릎쓰고 친구는 열심히 노력해서 결국 우리 나라 최고인 홍익대에 합격했다.
나를 포함한 주위의 친구들은 모두 그래도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를 부럽다고 했지만 그 친구의 반응은 달랐다. 그냥 좋아하고 꿈꿔왔던 미술이 현실적인 문제와 맞물리고 이걸로 돈 벌고 취직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동기들과 경쟁 속에 있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그 친구의 말이 함께 떠올랐다. "하고 싶은 것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한 것만은 아니더라고..." 행복이란 것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그 누구도 탓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걷지 못할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0^~~~~~
이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재미는 무엇보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삽입된 노래를 음미하는 맛이었다. 그룹사운드 '야망'에 있었던 나로서는 음악이 그냥 들리지는 않았다. 워낙 듣는 것에 익숙해져있다 보니까... 게다가 그 노래들을 이 아마추어 밴드의 성원들이 직접, 아주 멋지게 소화해 내고 있는 것이다. 송골매의 '세상만사', 옥슨 80의 '불놀이야', 김현식의 '사랑 사랑 사랑', 신촌 블루스의 '골목길', 함중아의 '내게도 사랑이', 마지막 신의 잊을 수 없는 노래 '사랑밖엔 난 몰라'(앞으로 많은 사람들의 노래방 18번이 될 것 같은) ... 그리고 '컴백'과 '라밤바' 같은 팝송에 이르기까지...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러나 가장 좋았던 노래는 뭐니뭐니해도 지금까지 국민가요로 사랑받고 있는 밴드에 혼자 남게 된 성우가 광란의 파티장이 된 룸살롱에서 알몸으로 처연하게 부르던 '아파트'였다. 아주 신났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음 아프게 와 닿았지만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건 영화가 아니라 우리 생활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아프게도... 우리들의 삶을 진실하고도 따뜻하게 그려내려 했던 임순례의 의도도 엿보였다.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아프고 때론 웃기도 하면서 어쩌면 그게 인생이란 생각도 들었다. 울고 웃는 인생사...!!
내가 좋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혹 무거울 수도 있고 진지해져 센티멘탈 해질 수 있는 기분을 업그레이드 해준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감초는 류승범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긴장도 풀어주고 사람들이 우울해지려 할 때 웃음을 전해주었으니까...^^
'와이키키 브라더스' 가 이번에 다시 개봉됐지만 여러 흥행작에 밀려 제대로 개봉관도 못 잡았었고 사람들이 찾지 않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는 마음이 아팠다. 영화는 관객들이 평가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런 좋은 영화를 찾지 않는 것은 관객의 실수가 아닐까?...T.T....
ps. 군데요~~~ 이거 여기에 올리는 거 맞나요?
아님 레포트로 작성해서 교수님께 드려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