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9편 강해 / 이레교회 새벽기도회 20170310 金曜日 정인준 목사]
사도신경 찬송가 536(326)장 ‘죄짐에 눌린 사람은 다 주께 나오라…’
통성 기도(3분) 말씀 봉독(시편 129:1-8), 설교(15분),
◈ 시편 129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열 번째 시입니다.
이 시의 주제는 ‘어제의 고난, 내일의 승리’ 또는 ‘박해자가 당할 수치’라 붙일 수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70년 만에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지난날에 겪었던 극심한 고난을 회상하며
오늘 경험하고 있는 구원, 내일 다가올 승리를 바라보는 내용입니다.
본문의 시는, 1절부터 4절까지와 5절부터 8절까지의 두 연으로 나눕니다.
앞의 1절부터 4절까지는, 이스라엘의 뼈아픈 과거 역사와 그들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그리고 5절부터 마지막 8절까지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신앙을 대적하는
원수들을 물리쳐 주십사 하고 구원을 간구하는 이른바 ‘대적기도’입니다.
◈ 1-2절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도다.
2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여기 두 차례 반복되는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다.(; 공격하였다.)”는 말씀은,
나라와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이 형성되는 초창기 시절부터,
애굽에서의 430년 종살이 시절을 거쳐,
약속의 땅 가나안에 와서는 지치지도 않고 수시로 싸움을 걸어왔던 암몬과 블레셋에게 시달리다가,
마침내는 주권을 빼앗기고 거의 모든 백성이 내 조국 땅을 떠나서
이국땅으로 끌려가야했던 바벨론과 앗수르에서의 노예 생활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무수한 고난과 고통을 당하였던 뼈저린 아픔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시작되어 늦게까지 이어진 이 괴롭힘은
이스라엘 민족이나 하나님의 교회가 모두 똑같이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마귀의 추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애가 3장 27절 말씀에,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른 후에 참으로 과거를 회상하며 좋게 말할 수 있습니다.
본문 2절 뒤쪽에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나를 괴롭혔으나 (그러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원수들이 오히려 조롱을 당합니다. 그들의 악한 의도는 다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그러나”라는 접속부사는 나팔의 팡파르와 같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9절의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의 말씀은 승리의 외침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씨름을 했고, 그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이제 누가 그들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까?
언약의 천사, 하나님의 사자를 이긴 이스라엘입니다.
다 같이 따라하십시다. “그러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왜 이기지 못했느냐 하면, 그 대답은 4절에 있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등에 밭가는 자가 고랑을 내듯 괴롭히던 세력도
하나님이 그 줄을 끊으시면 패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승리는 우리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이 고백과 선언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잠시잠깐 이방인의 박해로부터는 해방이 되었다 해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세력은 전혀 시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시온을 미워하는’,
다시 말해서 ‘시온에서 이뤄지는 이스라엘 백성의 여호와 신앙 행위’를 미워하는 원수들을 향해 저주를 선포합니다.
5절입니다.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
6절과 7절을 보면 그 저주의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집니다.
“6 그들은 지붕의 풀과 같을지어다 그것은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
7 이런 것은 베는 자의 손과 묶는 자의 품에 차지 아니하나니”
‘지붕의 풀’에 대한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팔레스타인의 가옥은 평평한 흙 지붕으로 우리네 슬라브 지붕과 비슷하죠.
흙 지붕이다 보니 꽃이나 풀, 또는 이끼가 자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풀이 제아무리 빨리 자란다 해도 흙 지붕에서 뿌리를 깊이 내리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뙤약볕을 견디지 못하고 말라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원수들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시들도록 역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행인들은 추수하는 농부들에게 인사를 하고,
농부들은 그 인사에 화답으로 축복의 인사를 건네는 좋은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 인사가 바로 본문 8절인데 악인들은 그런 인사와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8절을 함께 읽습니다. “지나가는 자들도 여호와의 복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거나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축복한다 하지 아니하느니라.”
이 아름다운 인사는 우리 택함 받은 성도들이 나누어야 마땅합니다.
따라해 보시겠습니까? “여호와의 복이 그대에게 있을지어다!”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