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톱 풍경
임병식 rbs1144@hanmail.net
때로 특정한 장소가 떠오르는 때가 있다. 내 마음이 늘 가서 머물곤 하는 곳이다. 그곳은 '시작'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바닷가. 만성리 해안이다. 그곳은 밀려온 민물이 썰물이 져서 빠져나갈 때면 처음으로 맨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다. 고운 모래가 해안을 덮고 있어서 그런 정경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곳이다.
그 곳에서 썰물이 져서 바닷물이 밀려난 자리를 보면 실금의 눈금이 선명하다. 썰물이 지면서 머뭇대다가 빠져나간 흔적이다.
나는 일상이 무료해지면 그것을 보기위해 차를 몰고 만성리 바다를 향한다. 그리고선 현지에 도착하면 물결이 머물며 살랑대는 모래톱으로 내려선다. 그 평화스런 모습과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격정으로 차오르던 시름도 봄눈 녹듯이 녹아 말끔히 사라진다.
그런 광경 중에 백미는 밀물과 썰물이 정지 상태에 이르는 정조(停潮)의 순간이다. 이때는 숨이 멎을 듯한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광경은 달의 조화에 의해서 밀려온 밀물이 고점(高點)을 찍을 때도 있고 저점(低點)을 찍을 때도 있다.
썰물은 그에 따라 연동하게 된다. 하나, 그러한 순간은 잠시 잠깐 그야말로 단 몇 분에 지나지 않는다. 끊임없이 밀려온 바닷물이 그 정지의 순간을 금방 흐트려 놓고 말기 때문이다.
내가 짧은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은 무엇보다도 출발의 의미를 짚어보고 싶어서다. 멈추었던 물이 다시 바다를 향하는 때를 보고 싶은 것이다. 그걸 보면서 내 자신도 새로이 출발점에 서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를 이미 최남선은 해보았던 것일까. 그의 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보면,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하고 역동감을 주는 의성어까지 동원하여 새로운 출발을 다지는 희망을 담고 있다. 하지만 물결이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것은 마냥 바닷물이 스스로 하는 건 아니다. 달의 인력에 의해 이끌릴 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자연과학에 의한 현상으로만 치부해 버리면 신비감은 없어질 것이다. 따라서 그런 현상을 두고 꼭 과학의 잣대를 들이댈 문제는 아니다. 정서상으로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비의 세계는 신비의 영역으로 남겨놓을 필요가 있다.
바다는 신비의 투성이다. 또한 수많은 생명체를 품어 안고 있다. 모든 생명체는 바다에서 기원했다고한다.
그래서인지 모든 생명체의 주기는 달의 운행질서에 따르고 있음을 보게된다. 모든 생활의 패턴이 달에 맞춰져 있다. 그 근거와 흔적은 여성의 몸속에 각인되어 있다. 꼭 달에 한 번씩 치르는 달거리는 정확히 달의 공전 주기와 맞닿아 있다. 그래서 불리는 말도 월경(月經)이다. 이런 바다는 또한 늘 출렁이며 움직이면서 균형을 잡는다. 그러다가 태풍이라도 불면 그 징후를 미리서 해안에 알려준다.
그것은 곧바로 모래톱에 새겨지고 모든 생명체는 그것을 해독하여 대비한다.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온갖 생명체는 그 신호에 따라서 반응하며 움직인다. 이때는 이전과 전혀 다른 현상이 일어난다. 수초들은 살랑살랑 머리를 풀면서 움직이고 짙은 해무가 걷히면서 바닷물은 허연 거품을 갈기를 세워 내닫는다.
그것을 보고 바가 사람들은 미구에 닥칠 피해를 예상한다. 바닷물이 굽이치고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꿈틀대는 정도를 보고서 배를 뭍으로 끌어올리거나 단단히 묶고 어구를 갈무리 한다.
나는 직장생활 초기에 배를 부린 적이 있다. 당시 조그만 소주정(小舟艇)이라는 물자 운반선을 탔는데 그것을 관리하다보니 일기 변화에 민감하게 되었다. 바람이라도 거세지면 행여 사고가 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하루는 그렇게 신경을 쓰는데도 배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태풍이 몰려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미리 방파제 안에다 정박시켰으나 거센 파도에 닻이 뽑혀버리고 만 것이었다. 다행이 방파제 내라서 파손은 면했지만 침수된 배를 건져 올리고 물을 빼내느라 곤욕을 치렀다. 아마도 마을사람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큰 낭패를 당했을 게다.
그때 성난 바다의 거친 몸짓을 피부로 느꼈다. 또 한 번은 불의의 삼각파도를 만나 죽음과 맞닥뜨린 일도 있었다. 앞에서 큰 파도가 치는 가운데 또 다른 파도가 배를 강타하여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나 엔진이 꺼지지 않도록 물을 펴내며 맞선 끝에 간신히 목숨을 건지기도 하였다.
보기에는 한없이 너른 품을 보여주는 바다도 성을 내면 무섭게 돌변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바다를 터전으로 꾸려가는 생활이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고기잡이배를 타고 나간 가족걱정에 애를 태우며 산다.
평화로움 속에 감춰진 고통들이다. 바닷가 사람들은 섬들이 풍향계이다. 그중에서도 여는 지표가 된다. 물이 빠지면 섬이 되고 바닷물이 차오르면 암초가 되는 바위. 이것을 보고서 부근이 심한 물보라가 일어나면 일단 파도가 거세게 일고 있음을 감지한다.
그런 바다도 매양 사납게 만 굴지 않는다. 모든 것을 품어 안듯이 잔잔해 지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래톱에 고운 시간의 눈금을 새겨놓는다. 나는 그런 눈금들을 보면서 출발의 의미를 새겨 본다. 그러면서 꼭 어디를 떠나지 않더라도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본다. (2016)
첫댓글 바다와 여인의 월경이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확인 했군요. 보통 28일 정도의 주기로 반복되니
이해가 됩니다. 지구는 경도 15도에 따라 1시간의 차이가 있지요. Menses, 경수, 월후가 생각남니다.
우리 인간들이 해불양수를 생각한다면 보다 더 이해의 폭이 넓어지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다는 어떠한 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여 거대한 대양을 이루기 말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마음이 답답하면 바닷가를 달려갑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아니지만 늘 움직이며 역동성을 보여주어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게 하기 때문이지요.
고즈넉이 홀로 만나는 바다는 외로움에 잠겨있는 듯합니다.
바다는 그렇게 외롭기에 동병상련으로 외로운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바다와 만나 다시금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활력을 얻지 말입니다~~
바닷물이 쓸고 있는 바닷가에서 움직이며 활동하는 생명력을 보게됩니다. 그러면서 나도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자극을 받게 됩니다.
2016 한국수필 발표
서부크루즈를 타고 망망대해를 가로질러 항해하며 감상했던 바다가 떠오르네요. 문학인들은 바다를 인생에 비유를 하곤 하지요. 가슴이 답답할 때, 동해바다를 가서 사색을 하다보면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분주했던 삶이 정리가 되는 경험을 가끔 하곤 합니다. 이번엔 여수 앞바다를 가보려 합니다. 보고픈 사람들도 있으니 더욱 의미가 있을 거 같습니다.
여수는 3면이 바다라서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바로 바다를 구경할수 있습니다. 장소마다 특징이 있어서 힐링하기에 좋은 곳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