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배경 시점은 2015년입니다.>
122. 쥐덫
“좋습니다. 그럼 한 개에 얼마 정도 생각하십니까? 저희도 위험부담을 상당히 안고 뛴다는 걸 고려해 주시고요.”
강철이 마약 배달 수수료인 한 개당 단가를 물으며 장유파 두목 이무계를 빤히 쳐다봤다.
“오토바이 배달 수수료가 회당 3천 원 정도밖에 안 되지요? 그 열 배면 되겠소? 개당 3만 원에 하면 어떻겠소?”
중간보스 물소가 두목 대신 가격을 제시하며 지긋이 눈썹을 내렸다.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크기의 담뱃갑만 한 물건을 한번 날라다 주는데 3만 원이나 주겠다고? 위험부담이 크기는 하지만 엄청난 수수료를 주겠다는 제안이다.
모르긴 해도 그 담뱃갑 포장 안에 든 마약의 구매자 가격이 30만 원은 된다는 말이다.
장유파가 구입하는 원가가 얼마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두 배 장사는 할 거니까, 이놈들은 가만히 앉아서 30만 원은 남겨 먹는 셈일 것이다.
마약 중독자 한 명이 한 달에 어느 정도나 주문하는 건지, 전체 수량이 얼마나 될 건지가 중요하다.
“그것보다, 전체 물량이 한 달에 얼마나 되는지부터 알려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저희도 전체 수입을 계산해 보고, 배달할 건지 말 건지 결정할 수가 있겠는데요.”
“그거야 어방배달에서 전단지를 얼마나 잘 뿌리느냐에 달린 거 아니겠소? 비싼 거라, 고객 한 명에게 1주일에 한 번씩 배달하게 될 거요. 어방배달에서 잘만 뿌려주고 붙여준다면, 한두 달 내로 고객이 최소한 수십 명은 넘지 싶소!”
고객은 주로 유흥업소의 도우미 아가씨들일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이면 한 달에 네 번, 갑당 30만 원이면 한 달에 120만 원 돈이다. 마약에 한번 중독되면 적어도 뭐 빠지게 벌어들인 돈의 절반쯤은 꼬박꼬박 마약 구입비로 탕진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놈들 말대로라면 한 두 달 후에 고객이 30명만 되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네 번 배달하니까, 120개는 배달하게 될 거고, 회당 배달 수수료가 3만 원이면 한 달에 360만 원이다.
저놈들은 3,600만 원을 그냥 꿀꺽 챙길 건데, 너무 적다! 나쁜 놈의 세키들!
“고객이 30명이 된다 해도, 우리 수수료는 고작 360만 원밖에 안 됩니다. 그거 먹자고 그런 위험한 일을 할 수는 없겠는데요? 적어도 한 달에 천만 원은 넘어야, 우리 애들 수당도 주고 저도 조금 남길 거 아닙니까? 개당 10만 원이면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강철이 수수료를 세 배 이상으로 튕겼다.
어차피 장유파와 거래하자고 만나는 건 아니다. 어젯밤에 문도, 정훈, 삼봉과 논의하면서 이놈들이 분명히 마약 거래를 제안할지 모르니까, 쥐덫을 놓고 최대한 안심시키면서 깊숙이 들어오게 유인하자고 했던 거다.
“개당 10만 원이요? 그건 너무 많지 않소?”
중간보스 물소가 난색을 보이며 두목 이무계를 돌아봤다.
“개당으로 따지면 많기는 한데, 한 달에 천만 원은 넘어야 된다는 박 사장 얘기도 일리는 있다. 첫 대면에 위험을 무릅쓰고 파트너가 되어주겠다는데, 감사의 표시로 그 정도는 받아들여야 안 되겠나? 그렇게 합시다, 박 사장!”
이무계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담뱃갑 한 개의 배달 수수료 10만 원에 선뜻 동의하는 걸로 미루어, 무슨 마약인지는 몰라도 1주일 치 한 갑당 판매가가 30만 원을 넘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이구, 사장님께서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막강한 장유파를 이끄시는 사장님을 뵌 것만도 영광인데, 이렇게 큰 일거리까지 맡겨주시니 그저 감지덕지할 뿐입니다.”
강철이 달콤한 립서비스와 함께 고개를 숙여 예의를 표했다.
“허허. 고맙소, 박 사장! 우리 앞으로 잘 좀 지내봅시다. 허허.”
강철의 유희에 말려든 이무계가 쥐덫 깊숙이 들어와 먹이를 탐내며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전단지는 모레쯤 인쇄돼 나올 겁니다. 애들 시켜 어방배달 사무실로 보내드리면 되겠지요?”
중간보스 물소도 제 역할은 제대로 했다 싶은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로만 구두계약을 해도 괜찮겠습니까?”
강철이 일부러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나중에 서로 딴소리하면 피차 곤란하니까, 뭔가 약식으로 작성한 문서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음... 그렇기는 한데, 이런 일은 계약서 작성하기도 그렇지 않아요?”
물소가 미간을 찡그리며 어쩌면 좋으냐는 얼굴로 두목을 쳐다봤다.
“이렇게 하지. 모레 전단지 갖다 줄 때 우리가 예치금으로 현금 1천만 원을 건네주겠소. 현금 보관증에 사인만 해주시오. 하고, 매달 정산해서 즉시 현금으로 결제하는 걸로 하고.”
이무계가 보증금으로 1천만 원을 맡겨두면 별문제 없지 않느냐며 통 큰 미소를 지었다.
만약에 서로 수 틀어지면 네가 떼어먹을 수도 있는 건데, 우리가 먼저 배신하지는 않겠다는 증표라는 뜻이다.
“아이구, 그렇게까지 배려해 주신다니 더 이상 할 말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철이 겸연쩍은 얼굴로 연기하며 허리를 굽실거렸다.
**
장어구이로 점심을 먹고 소주로 건배를 나눈 뒤, 강철과 짱구는 먼저 자리를 떴다.
이무계와 물소는 두레박에 남아 모처럼 단둘의 은밀한 얘기를 나눈다.
“물소 아우야, 네 덕분에 어방배달은 우리 손아귀에 들어왔다. 네 공이 크다.”
이무계가 옆에 앉은 두 살 아래 물소의 등을 토닥거리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한 동네 출신이다. 엊저녁에 물소가 제안해서 강철에게 전화를 걸었고 오늘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이고, 제가 뭐 한 일이 있습니까? 이게 다 형님이 통 크게 처리하신 결과지요. 그나저나 그 이글스파 녀석을 놓쳐서 어쩝니까?”
물소가 이때다 싶어서 화제를 얼른 쌍칼이 납치하려다 실패한 이글스파 대원으로 돌렸다.
“그러게, 말이야! 쌍칼 이 자식 오냐오냐했더니 영 엉망이 되어간다. 그 이글스파 조직원을 잡아야 진주 이병율이한테 면목이 서는데, 무슨 좋은 방법 없겠냐?”
이무계가 눈살을 찌푸리며 믿음직한 물소 아우를 들여다봤다.
엊저녁에 쌍칼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이글스파 조직원을 잡으려고 장유파 대원을 10명이나 데리고 나섰다.
그런데 김해중앙병원을 뒤지다가 이글스파 다른 조직원에 들켜서 전투를 벌였다면서, 대원 거의 전부가 얼굴과 다리에 상처를 입고 패잔 부대가 되어 돌아왔다.
쌍칼도 광대뼈에 동전을 맞고 퉁퉁 부어서 지금 꼬라지가 말이 아니다.
장유파 체면을 통째로 구긴 쌍칼이다. 한번 밉보이면 웃는 얼굴도 보기 싫을 텐데, 면상에 상처 입은 꼬락서니를 보면 얼마나 분통이 터지겠는가?
어제 낮에 진주에 가서도 쌍칼의 말만 믿고 하자는 대로 했다.
그랬는데, 쌍칼이 이글스파 진주 지부 조직원으로 보이는 한 놈을 납치하더니 남강 둔치로 끌고 내려가면서 이병율파에 전화 걸어 조직원들이 배 타고 남강을 건너오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병율파는 이글스파 대원들로 보이는 세 놈이 팔매질한 동전에 얼굴을 얻어맞아 한 명도 배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되돌아가고 말았다.
쌍칼 제 놈은 잭나이프 양손에 들고도 폼만 잡다가, 칼질 한번 제대로 못 하고 열불이 치밀어 오르게 도망쳐왔다.
오래 공들여서 진주 이병율파로부터 마약 구입 거래도 텄는데, 이제 쌍칼이 저지른 엉뚱한 일로 이병율이한테 아쉬운 소리를 하게 생겼으니, 아무리 칼질 잘하는 행동대장 쌍칼이지만, 이무계 눈 밖에 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글스파 자식이 오늘 병원을 옮겼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중상이라서 진주로 데려가지는 않았을 거고, 옮겼다 해도 아직은 김해 다른 병원에 입원해 있을 것 같은데요?”
물소가 슬슬 이무계의 아픈 심사를 더 집적거렸다.
“그렇겠지? 그럼, 오늘이라도 당장 다시 뒤져봐야 되지 않겠냐? 그런데, 우리 애들은 이제 눈에 띄어서 안 될 것 같단 말이야?”
이무계도 이제 쌍칼에게 더 이상 맡길 수 없다는 생각뿐이다.
“저기, 형님! 어방배달에 부탁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물소가 눈을 반짝 뜨고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른 표정을 지었다.
“어방배달에? 아, 병원에 짜장면 배달하러 간 척하고 병실을 뒤져보게 하자는 말이지?”
믿는 사람끼리는 상대편의 말뜻이 금세 이해가 된다.
“예, 형님. 어방배달 직원 중에 그저께 밤에 수로왕비릉에 왔던 놈들이 열댓 명은 된다지 않습니까? 그놈들은 그 이글스파 얼굴을 아니까,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물소가 자기 대원들보다 더 나을 거라며 이무계를 부추겼다.
“그래 맞아. 만약에 어방배달 박 사장이 그것도 들어준다면, 어방배달이 삼방파하고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게 분명해지겠다! 그때 배달하러 오토바이 타고 가다가 우연히 수로왕비릉 앞에서 담 넘어간 이글스파 놈을 만난 게 확실해지겠네. 아까 있을 때 얘기할걸 그랬다! 그지?”
이무계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네요. 미처 그 생각을 못 했습니다. 저기요, 형님! 서둘러야 하니까, 아까 말한 예치금 천만 원을 지금 건네준다면서 다시 만나자고 하면 어떨까요?”
우직한 물소가 다시 꾀를 내었다. 이무계의 책사가 다 되어간다.
“그럴까? 은행에 가서 현금으로 찾고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데? 두어 시간 후에 어방배달 사무실로 네가 가져다준다고 하고, 지금 박 사장한테 전화 걸어서 부탁해 보면 어떻겠냐?”
이무계도 점점 영리해진다.
“그럴까요? 알겠습니다. 지금 박 사장도 차 타고 가는 중일 테니까, 은행부터 먼저 들러서 돈 찾고 전화 거는 게 낫겠습니다.”
아둔한 이무계와 우직한 물소가 죽이 맞아서 점점 점입가경이 되어간다.
쥐덫 하나에 들어간 것도 부족해서 저 스스로 주둥이를 들이밀고 다른 쥐덫 문을 열려고 쥐새끼들처럼 찍찍거리며 합창한다.
**
그 시각 이무계와 헤어진 강철은 문도네가 기다리는, 강변장어타운에서 4km쯤 떨어진 해삼과 멍게의 숙소 빌라에 도착했다.
“이무계 만났어? 예상했던 대로야?”
“어. 역시 마약 거래하자는 제안이었어!”
적장을 만나고 온 강철이 의기양양해서 동지들의 말똥거리는 눈망울을 향해 미소를 던졌다.
“그래? 뭘 어쩌자고 했는데? 순순히 걸려들었어?”
문도가 다급하게 대표로 질문했고,
“응. 아주 덥석 물었다. 크크. 어찌 됐냐 하면···”
강철이 정훈과 멍게도 둘러보며 요점을 간추려서 차근차근 설명해 줬다.
정훈은 월요일이라, 아침에 기장 해경 안전센터에 출근해서 간략히 보고하고, 다시 김해로 왔고, 삼봉은 밤새 해삼 병실에서 보초선 멍게와 교대하러 김해중앙병원에 가고 없다.
문도네는 장유파가 다시 해삼을 찾아올지 모르지만, 오히려 오기를 기다리며 병원을 옮기지 않기로 했다.
오늘 장유파 두목 이무계가 강철을 만나서 어젯밤 병원 주차장 일을 꺼내지 않는다면, 분명히 쌍칼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벌인 일일 것으로 생각했다.
만약에 이무계의 지시로 쌍칼이 작업을 벌였다면, 강철을 만나서 아닌 척 이중 플레이 하면서 다시 해삼을 습격할 수도 있다.
그때 장유파 애들을 한 놈이라도 잡아야 나중에 장유파와 유리한 담판을 지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대신에 보초 서면서 테이저건을 쌍권총으로 차고, 여분도 열댓 개나 비치해 두었다.
“모레 전단지 건네주면서 예치금으로 1천만 원을 보관증만 받고 주겠대. 크크.”
강철이 결론까지 전달하고 질문 있냐는 듯 좌중을 둘러봤다.
“그래? 그럼, 뭐 구두계약이긴 하지만 거래는 모레부터 실시되는 거네? 녹음은 제대로 했냐?”
문도가 입꼬리를 올리며 짱구를 보고 물었다.
“예, 여기 있습니다.”
짱구가 냄새나는 양말을 벗어 내리더니 발목에 부착했던 작은 만년필 형 도청기를 흥신소 ‘배달’ 부산 지부장인 문도에게 건네줬다.
장어구이 식당 ‘두레박’ 식탁 밑에서 대화를 계속 녹음했던 모양이다.
“물증도 있고, 이제 저놈들 잡아넣는 일만 남은 건가?”
문도가 만족해하며 해경 마약 수사팀 반장인 정훈을 돌아보고 물었다.
“음.. 가격 내용으로 봐서 물건은 필로폰이지 싶네. 그런데, 도청한 녹음 내용은 법정에 증거로 제출할 수는 없어. 다만 검찰에서 정황을 판단하는 데 확실한 도움이 될 거야. 특히 우리가 장유파 덜미를 잡으려고 일부러 협상에 응했다는 증거가 되니까, 우리 면피용으로 꼭 필요한 증거물이지. 그보다는 장유파가 물건과 돈을 건네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촬영될 어방배달 사무실의 CCTV 화면이 더 확실한 물증이 될 건데...”
정훈이 침착하게 설명하고 어방배달 사무실에 CCTV가 설치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강철을 쳐다봤다.
“너네 사무실에 CCTV 설치돼 있지?”
문도가 얼른 강철에게 대신 물었다.
“야, 그딴 걸 왜 사무실에 설치해? 내가 우리 직원들 감시하는 놈으로 보이냐?”
강철이 펄쩍 뛰며 정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