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와 가짜 이야기 ◈
멀쩡한 사람이라면 정치 이야기만 나와도 넌덜머리가 나고 있어요
대통령 부부, 이재명 대표 부부,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
모두 비호감(非好感) 대상이지요
추석 밥상머리에까지 굳이 끌어들여 화제로 삼을 건 없을 성싶어요
명절 화제로는 ‘옛날 옛적 한 옛날에’로 시작되는
옛 정치 이야기가 낫지요
오래전 일이니 당파(黨派)를 좇아 얼굴 붉힐 일도 없을 테고,
새겨들으면 약(藥)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지요
옛날이야기를 할 때나 들을 땐 항상 시대 변화를 감안해야 하지요
된장찌개가 99원 하던 시절과 1만원 하는 시절을
단순 비교하면 말 속에 담긴 뜻을 오해하게 될수도 있어요
도쿄에 상주(常駐)하는 미국 기자가
‘일본 정치 담당 기자들은 자기들이 보고 듣고 아는 것의
3할밖에 쓰지 않아 신문만 봐선 일본 정치를 모르겠더라’고 했지요
‘미국은 어떠하냐’라고 묻자 ‘7할은 쓴다’고 했어요
그럼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솔직히 우리나라도 기사로 쓴 것보다 쓰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더 많아요
대충 이런 이야기들이지요
어느 유능한 기자가 옛날 이야기를 썼어요
“국장 발령 받고 이틀쯤 됐을까.
청와대에서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어요.
무슨 건(件)으로 부르는지도 모르고 갔더니
대뜸 대통령 집무실로 데리고 가요.
잔뜩 움츠리고 있는 나에게
‘장관 말이 임자가 일을 야물게 한다더군.
중요한 자리니 부탁하네’이러시는 거예요.
그러시면서 ‘집이 없다던데, 사람은 집이 있어야 일도 손에 잡혀…’
하시면서 봉투를 손에 쥐여주셨어요.
독립문 근처에 방 두 칸짜리 한옥을 장만하는 비용의
3분의 1쯤 되는 돈이었어요.”
빈약한 국가 재정(財政)으론 모든 공무원의 처우를 개선하기
어려운 시대였지요
그런 시대에 대통령은 돈이 들고나는 목을 지키는 그에게
이렇게 무언(無言)으로 ‘청렴’이라는 요구 사항을 전했어요
공무원 마음을 얻고 움직이려면 엄포가 아니라 정성이 있어야 하지요
그는 대통령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평(評)을 들었지요
으스스한 느낌은 조금 가셨지만 그래도 살벌한 시대였어요
아침 일찍 울린 전화벨 너머 목소리가 ‘대통령 민정수석입니다’라고 했지요
그러더니 ‘오늘이나 내일 낮 시간을 낼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목덜미가 굳어지는 느낌이었지요
‘혹시 무슨 일로…’ 하자 ‘만나서 이야기하겠다’고 했어요
회사에 나와 이력서를 들춰보니 육사를 졸업하고
평생을 정보부에서 지낸 ‘정보맨’이었지요
“대통령을 모시려면 제대로 모셔야겠고
그러려면 민심(民心)을 직접 들어야겠다 싶어 연락했어요.
당신은 고향도 우리와 다르고(그는 영남, 기자는 호남)
글도 삐딱하게 쓴다고 해 솔직한 말을 해주지 않을까 해서…”라며
수첩을 꺼냈지요
헤어질 때 말이 기억에 남아요
‘대통령 관련 사항은 장담하지 못하지만 다른 사항은 빨리 실천할 겁니다.’
그는 훗날 대통령 직선제 수용 선언과 ‘땡’ 하면 대통령 뉴스부터
전하던 KBS·MBC 행태를 바로잡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어요
군사정권도 굴러가려면 이런 바퀴가 필요했지요
근육이 붙은 배우 유해진씨를 닮은 약간 험상궂은 청년이
편집국에 들어서더니 다가와 귀엣말을 했어요
‘’누구’를 모시는 비서입니다’라면서 메모지를 건넸지요.
그 ‘누구’는 남영동(南營洞) 대공분실의 실상을 세상에 알린 인물로
‘수배(手配)’와 ‘수배 해제’ 사이를 왔다 갔다 했어요
당시는 수배 중이었지요
메모에는 ‘근처에 있는데, 시간 낼 수 있어…’라고 적혀있었어요
그는 정국(政局)이 언제나 풀릴지 궁금해했지요
훗날 몇 차례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일찍 세상을 떴어요
진보 진영에서 민주화 운동의 상징처럼 떠받들던 그가
생전에 ‘민주화’라는 잣대로 사람을 재던 일을 본 적이 없지요
‘진짜’는 어디가 달라도 달랐어요
독립운동가 이강훈(李康勳) 선생도 ‘진짜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보여주신 분이지요
청년 시절부터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1933년 체포돼 해방되던 날까지
감옥에 있었어요
독립운동가로서 최장기(最長期) 복역 기록이지요
훗날 진짜와 가짜 독립운동가를 가려내는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을 지냈어요
이 선생을 모신 어느 점심 자리 말석에서 들은 이야기이지요
“보통 사람은 일본 놈 척지고는 35년 식민지 통치를 버티기 힘들었어.
입신양명(立身揚名)하겠다고 일확천금(一攫千金)하겠다고
친일한 인간이 나쁜 놈들이지….
잣대를 함부로 휘둘러서는 안 돼. 가장 악질이 독립운동 조직 속으로
파고든 일제(日帝) 밀정(密偵)들이야.
그놈들은 신분을 숨기고 감옥에까지 (독립운동가를) 따라왔어.
이들이 가짜 독립운동가 들이지
그 자식놈들은 국회의원도 하면서 떵떵거리고 살고 있어"
요즘은 ‘진짜’가 귀해지고 ‘가짜’가 흘러넘치는 세상이지요
명절 연휴라서 그런지
진짜의 가치를 일깨워 주던 옛날 옛적 ‘진짜’들이 그리워요
-* 언제나 변함없는 조동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