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여성들이 겪은 '공포'의 순간
박가영 기자
2019.06.22 05:30
'친구하자'며 집까지 따라오고, '얼굴 보자'며 문 두드려…여성 1인 가구, 불안 일상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혼자 사는 여성들의 불안이 날로 커지고 있다. 누군가에겐 편안한 안식처인 '집'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범행의 표적이 되고 있어서다. '혼족' 여성들은 귀가할 때, 배달 음식을 주문할 때는 물론 집안에서 일상을 보낼 때조차 '공포'를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연이어 혼자 귀가하는 여성을 뒤따라가 집에 침입하려 한 사건이 발생하며 여성들의 불안이 극대화되고 있다. 22일 서울 강동경찰서에 따르면 이틀 연속으로 귀갓길 여성의 뒤를 따라간 30대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다.
30대 초반 남성 A씨는 이달 18일 오후 7시50분쯤 강동구에서 귀가 중이던 여성의 뒤를 쫓아 집 앞까지 따라갔다. 다음날인 19일 오전 5시50분쯤 또다시 인근 지역에서 귀가 중이던 여성을 쫓아 집에 침입하려 했다. A씨는 여성이 공동현관 번호키를 눌러 들어가자 따라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를 수상히 여긴 여성이 따져 묻자 도망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엔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이 발생, 여성들을 공포로 몰아 넣었다.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조모씨(30)는 지난 5월28일 오전 7시20분쯤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주택가에서 귀가하던 여성 B씨의 집에 침입을 시도했다.
B씨를 뒤따라 집에 들어가려던 조씨의 모습은 폐쇄회로(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영상에선 조씨가 B씨의 집 현관문이 닫히기 전 황급히 들어가려고 한 모습, 문고리를 잡고 문을 두드리는 모습, 휴대폰 플래시 기능을 이용해 도어락에 찍힌 지문을 확인하는 모습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영상은 '신림동 강간 미수범'이라는 제목으로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다음 날인 지난달 29일 주거침입 혐의로 조씨를 긴급 체포했다. 여기에 조씨가 10분 이상 말과 행동으로 피해자가 문을 열지 않으면 강제로 열고 들어갈 것처럼 행동한 점, 조씨의 행동으로 피해자가 공포감을 느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강간미수 혐의를 추가 적용, 서울중앙지검에 구속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앞서 지난달 14일엔 한 배달원이 혼자 사는 여성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문자를 반복적으로 보내 경찰에 붙잡혔다. 광주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배달 대행업체 직원 C씨(34)는 원룸에 혼자 거주하는 여성 D씨(25)에게 "마음에 드니 사적으로 따로 만나자" 등 공포심을 유발하는 문자를 수차례 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C씨는 앞서 배달 음식을 시킨 D씨를 눈여겨 본 후 휴대폰 번호를 유용해 연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D씨는 자신의 거주지, 얼굴, 번호 등이 노출된 것에 불안감을 느껴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1인 가구 여성을 대상으로 한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며 여성의 불안은 일상화되고 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서울시 1인 가구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울거주 1인 가구 실태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에 따르면 여성 1인 가구의 '안전'(성폭력·범죄)에 대한 불안감이 남성보다 현저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 불안감으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답한 여성 1인가 구 비율은 11.2%로 남성 1인 가구(0.8%)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청년 여성의 경우 안전 불안감을 호소하는 여성 1인 가구 비율이 21.7%까지 치솟았다.
이 같은 여성들의 불안은 근거 없는 우려가 아니다. '혼족' 여성이 주거침입과 성범죄 등 각종 범죄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2017년 주거침입 관련 범죄는 총 7만1868건이었다. 이 중 가해자가 남성인 경우는 99.8%에 이르렀다. 특히 같은 기간 '주거침입 성범죄'는 하루 1건꼴인 1310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포의 순간을 실제로 경험한 1인 가구 여성도 부지기수다. 직장인E씨(27)는 "지난해 여름, 밤 10시쯤 걸어서 귀가하던 길에 술 취한 남자가 갑자기 어깨를 잡더니 '우리 친구하자'라고 했다. 거절했더니 집까지 데려다준다며 따라왔다. 너무 무서웠다"면서 "당시 현관문에 있던 도어락이 좀 오래된 거라 문 닫혀도 몇 초 후에 잠겨서 더 불안했다. 바로 다음 날 일반 열쇠로 바꿨다"고 말했다.
대학생 F씨(22)는 "지난 4월, 이틀 연속으로 누가 현관문을 열려고 시도했다. 처음엔 비밀번호 누르길래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냥 갔다. 다음 날엔 비밀번호 누르고 문고리까지 돌렸다. 무서워서 바로 관리실에 연락했더니 그 순간부터 밖이 조용해졌다. CCTV가 복도에 없어서 누가 그랬는지 확인을 못했다. 계약 기간이 많이 남아 이사는 못 가고 집주인에게 말해 걸쇠만 달았다"고 전했다.
직장인 G씨(30)도 F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아파트에 사는데 어떤 남자가 다짜고짜 초인종을 누르더니 앞 동 사람이라며 '혼자 사시죠? 얼굴 한 번만 보고 싶어요'라고 했다"며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공포감이 느껴졌다. 혼자 사는 게 너무 싫어지는 순간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전문가들 역시 혼자 사는 여성이 범행 대상이 될 위험이 높다고 보고 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여성이 남성보다 신체적으로 취약한 데다 여성 1인 가구의 경우 가족, 동거인 등의 보호망이 없어 가해 욕구를 가진 이들의 표적이 되기 쉽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1인 가구 여성에 대한 범죄 예방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치안 차원에서 CCTV 설치를 대폭 늘리는 등 방범 활동이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1인 가구 #여성 #공포 #신림동 강간미수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9061915161558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