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국물에 호박채 숭숭 썰어 넣고 담백하면서도 칼칼하게 우려 낸 엄마표 칼국수가 난 좋다. 집 주변에선 광명시에 있는 ‘옛진미칼국수’가 가장 비슷한 맛이어서 한달에 한두번은 꼭 들린다. 지난 토요일 점심, 칼국수에 밥까지 말아서 과식하고, 소화를 위해서 근처 유적지를 잠시 둘러 보기로 했다.
광명시에는 이원익선생 유적지가 대표적이었다. 조선시대 황희 정승과 비교될 정도의 청백리라는 정도만 막연히 기억한 채, 별 생각없이 유적지(기념관, 묘소, 종택, 서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예상보다 크고 잘 정비되어 있었음)를 관람하였다. 그러던 중 선생의 이력에서 ‘홍천’이라는 글자를 우연히 보고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선생은 1615년부터 5년동안 홍천에 유배되어 살았다고 한다 (인목대비 폐비론에 반대하여 광해군 때 홍천으로 유배됨). 선생은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웠고 충무공 이순신을 구명하였으며, 대동법을 시행하는 등 백성들로부터 크게 존경 받았던 영의정이었다고 한다. 기념관에는 선생이 남긴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특히 고려말 정몽주의 시가 많이 있었다.
귀양생활 중 아름다운 홍천강변에 앉아서, 정몽주의 단심가 처럼 “님(임금) 향한 일편단심”의 절절한 마음을 붓으로 적고 있었을 선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홍천읍에서 갈마곡리를 거쳐 동면으로 들어가기 전 검율리엔 80미터 수직절벽인 이괄바위가 있다. 이괄바위 앞에 있던 이괄장군의 묘와 말무덤은 80년대 경지정리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없어지고 바위와 민간설화와 작은 연못만 전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원익 선생은 이괄의 난 때 영의정으로 토벌대장을 맡았다고 한다.
강개와 야망이 있었던 반란군의 총대장 이괄, 문무를 겸한 당대의 국민 영웅 영의정 토벌대장 이원익, 홍천을 무대로 해서 두 사람이 얽힌 흥미진진한 역사소설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보았다. 귀양이든 반란이든 엄연한 역사이며, 역사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조명될 수 있거늘, 그 흔적들을 유적지로 잘 개발 보존하고, 재미있고 귀감이 되는 이야기로 구성해서 자연과 역사가 함께하는 소중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원익 기념관’에서.2009.12.12)
첫댓글 어머 오늘 하나배워간다.
주섭인 고향 홍천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늘 가슴에 배여 있씀을 알고도 남음이.......
고마우이.
덕분에 역사 공부하구가네.
간간히 들려주는 주섭이의 고향사랑이야기
계속
부탁드려봄다^*^
오늘도 좋은하루가^*^
마자 주섭인 고향사랑이 참 지극하다..덕분에 역사속의 고향에 대한 한가지를 더 알게 되었네..주섭아 고마왔다.
금요일날 총회 축하 못가서 정말 많이 미안하이. 나도 아쉽네 정말.
오늘의 홍천이 있기까지 수많은 사건과 변화속에
이원익님이 한몫을 담당 하셨네..
그분의 업적과 생애를 한번 더 照望할수 있도록
좋은 글 올려주심 감솨~!
주섭아 고향의 지극한사랑 박수를 보내야겠네 잘있지 좋은글 많이 올려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