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오백년’
“한 많은 이 세상 ……, 한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흔히 즐겨 듣는 민요 <한오백년>이다.
여러 참고자료에서, <한오백년>은 <강원도아리랑>과 <정선아리랑>에 강원도 산간지방의 특유한 정서가 가미되어 만들어진 민요라고 한다. 강원도 토속민요 <강원도아리랑>은 본래 노동요(勞動謠)로서, 그 역사가 오래라서 다른 <아리랑>들의 뿌리라고 한다. 토속민요이기 때문에 그 속에는 자연과 어울어지는 사람들의 맑고 고고하고 순박한 인정 등의 사연이 섞여 있으며, 강원도의 향토성이 소박하게 그려져 있다. 정선의 토속민요 <정선아라리>는 정선 뿐 아니라 강원도 산간 지역에서 두루 불리는데, 가사도 많고 그 변형 또한 많다. 토속적인 민요 가사가 그렇듯이 간결하면서도 애절한 민중들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
<한오백년>은 일제강점기에 위의 두 아리랑의 요소들이 어울어져 만들어진 신민요로, 강원도의 대표적인 통속민요이지만, 지금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따라 부르고 싶은 노래이다.
문헌들의 해설에, 이 민요는 ‘삶의 한(恨)’을 슬픈 가락으로 읊으면서도 그 속에는 흥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렇듯 ‘슬픈’ 가락에 ‘흥겨움’이 담겨 있는 이 민요 ‘한오백년’의 ‘참뜻’이 무엇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글짜대로라면 ‘오백 년쯤의 한(恨)’일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무슨 한(恨)이 그리도 깊어서 500년씩이나 가슴에 그런 ‘한’을 품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한(恨)’의 어의(語義)는 “억울하거나 원통하거나 원망스러운 생각이 깊이 맺혀 응어리진 마음”이라고 한다. ‘한’은 어떤 이유에서든 자기의 욕구나 의지가 좌절되어 마음속에 깊은 상처로 남게 된 감정이어서, 이를 치유해서 풀어버리지 못하면, 분하고 억울하고 원통한 감정이 저주나 앙갚음 등 ‘원한(怨恨)’이 된다.
어떤 분은 “우리 민족은 한(恨)이 많은 민족”이라고 자칭하면서, 이를 ‘한의 정서’라고까지 표현한다. 이 말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민예운동을 이끈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년)의 조선예술 ‘비애미’론(悲哀美論)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예술의 구성요소를 형태, 색체, 선으로 나누어서, 중국은 강대하므로 ‘힘’이 있는 ‘형태의 예술’이고, 일본은 아름다운 자연의 혜택을 보장받고 있으니 ‘즐거움’을 표현한 ‘색체의 예술’이며,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문화적으로 ‘한(恨)의 정서’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서, 슬픔을 표현하는, ‘길고 가느다란 곡선’이 주조를 이루는 ‘선의 예술’이라고 하여, 한국의 미(美)를 ‘비애의 미(悲哀美)’라는 미학적 개념으로 정리했다. 그 ‘선의 미’는 “즐거움이 허용되지 않고 슬픔이나 괴로움이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역사 속에서 만들어져 “그 역사는 슬픈 운명이며, 억압을 받으며 3천 년의 세월을 거듭해온” 것으로, 그것이 그대로 예술에 반영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恨)’이 한국인의 성정(性情)을 가리키는 단어가 된 것이라며, 한국문화의 특성을 ‘한(恨)의 문화’라고 정의한 것이다. 일제의 한(恨)이 아니라면, 겉으로 보기에는 꽤나 그럴듯한 이론처럼 느껴진다.
한국인의 한(恨)은 먼 옛날부터 혼란의 역사를 겪으면서 마치 ‘문화적 유전자’처럼 전해오는 ‘정서’일 뿐이지 ‘일제강점기’의 유산이 아니라는 데 역점을 둔, 일제강점 옹호론으로서의 ‘비애미(悲哀美)’론(論)을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여러 다른 민요의 가사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진짜 한(恨)은 ‘시집살이’의 한이 그 첫째이고, 그 다음이 ‘임’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이고, 굶주림의 원천인 ‘가난’과 또한 가난해서 ‘배울 기회’가 없었던 이들의 ‘한’이다.
인류의 역사는, 지금도 그렇듯이, 사실상 끊임없는 ‘전쟁의 역사’이다. 따라서 전쟁을 겪지 않은 민족은 없고, 크고 작은 차이는 있어도 인간은 누구나 ‘한(恨)’이 없을 수도 없는데, 유독 우리 민족만이 ‘한의 정서’를 당연시해야 하는 ‘한 많은 민족’이라고 자처할 것까지는 없다.
옛 기록에서 보듯이,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어떤 고난에도 좌절한 적이 없고, 술과 노래와 춤을 즐기던 민족, 풍류를 즐기는 민족, 흥(興)이 많은 민족이다. 우리가 국악에서 즐겨 부르는 단가(短歌)마다 그 끝말은 “슬프도다”가 아니라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세”나 “헐 일을 허면서 놀아보세”이다.
‘한오백년’이 강원도 아리랑과 정선아리랑의 ‘한’을 함께 표현한 민요라서 ‘한’의 결정체라고 하는데, 무엇이 그토록 ‘한’을 맺히게 했는지 그 해답을 그 가사의 내용에서 찾아봄직 하다. 지면관계상 각기 15절씩만 싣는다.
1. 강원도아리랑(15절)
*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01. 아주까리 동백아 열지 마라 누구를 괴자고 머리에 기름
02. 산중의 귀물은 머루나 다래 인간의 귀물은 나 하나라
03. 감 꽃을 주우며 헤어진 사랑 그 감이 익을 땐 오마던 사랑
04. 만나보세 만나보세 만나보세 아주까리 정자(亭子)로 만나보세
05. 영창에 비친 달 다 지도록 온다던 그 임은 왜 아니 오나
06. 풀벌레 구슬피 우는 밤에 다듬이 소리도 처량하다
07. 열라는 콩 팥은 왜 아니 열고, 아주까리 동백은 왜 여는가
08. 아주까리 정자는 구경자리 살구나무 정자로만 만나보세
09. 아리랑 고개다 주막집을 짓고 정든 임 오기만 기다린다
10. 아주까리 정자는 구경자리 살구나무 정자로만 만나보세
11. 머나먼 천리길 찾아왔건만 보고도 본체만체 돈담무심(頓淡無心)
12. 울 넘어 담 넘어 임 숨겨놓고 호박잎이 난들난들 날 속였소
13. 붉게 핀 동백꽃 보기도 좋고 수줍은 처녀의 정열도 같네
14. 흙물에 연꽃은 곱기만 하다 세상이 흐려도 나 살탓이지
15. 풀벌래 구슬피 우는 밤에 다듬이 소리도 처량하구나
2. 정선아라리(토속민요 15절)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넘겨주게
01.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02. 명사십리가 아니라면은 해당화는 왜 피며 모춘삼월(暮春三月)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우나
03.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04.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싸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05. 부모동기 이별할 때는 눈물이 짤금 나더니 그대 당신을 이별하자니 하늘이 팽팽 돈다네
06. 정선읍내 물레방아는 물살을 안고 도는데 우리 집에 서방님은 날 안고 돌줄 몰라
07. 당신은 나를 알기를 흑싸리 껍질로 알아도 나는야 당신을 알기를 공산명월로 알아요
08. 정선같이 살기 좋은 곳 놀러 한번 오세요 검은 산 물밑이라도 해당화가 핍니다
09. 오라버니 장가는 명년에나 가시고 검둥 송아지 툭툭 팔아서 날 시집 보내주
10. 한치 뒷산에 곤드레 딱주기 임의 맛만 같다면 올 같은 흉년에도 봄 한철 살지
11. 유전자(有錢者) 무전자(無錢者) 사람 괄세 말아라 인간 세계 부귀영화는 돌고 돈다
12. 맨드라미 봉숭아는 토담이 붉어 좋고요 앞 남산 철쭉꽃은 강산이 붉어 좋다
13. 무릉도원 삼삼오수에 도화는 만발했는데 짝을 잃은 외기러기 갈 곳이 없구나
14. 앞 남산에 뻐꾸기는 초성(初聲)도 좋다 세살 적 듣던 목소리 변치도 않았네
15. 오능촉단 능라주로 날 감지 마시고 대장부 기나긴 팔로 날 감아주게
3. 한오백년(15절)
※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한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01.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임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02. 백사장 세모래밭에 칠성단을 무고 임 생겨 달라고 비나이다
03. 청춘에 짓밟힌 애끓는 사랑 눈물을 흘리며 어디로 가리
04. 한 많은 이 세상 냉정한 세상 동정심 없어서 나는 못 살겠네
05. 꽃답던 내 청춘 절로 늙어 남은 반생을 어느 곳에다 뜻 붙일고
06. 살살 바람에 달빛은 밝아도 그리는 마음은 어제가 오늘
07. 내리는 눈이 산천을 뒤덮듯 정든 임 사랑으로 이 몸을 덮으소
08. 지척에 둔 임을 그려 살지 말고 차라리 내가 죽어 잊어나 볼까
09. 으스름 달밤에 홀로 일어 안 오는 임 기다리다 새벽달이 지샜네
10. 고목에 육화분분(六花粉粉) 송이송이 피어도 꺾으면 떨어지는 임자 없는 꽃일세
11. 여름밤 등불 아래 모여드는 불나비 화패(禍敗)를 자취(自取)함이 어리석구나
12. 으스름 달밤에 기러기 소리 가뜩이나 아픈 마음 더욱 설레네
13. 청명한 달밤에 홀로 거닐며 가슴속 만단수심(萬端愁心) 달래나 볼까
14. 만산편야(滿山遍野) 넓은 들에 꽃이 피어도 임 여읜 이 가슴엔 수심만 가득
15.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런가 왜 이다지도 앞날이 암담한가.
위의 가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강원도아리랑>이나 <정선아리랑>이나 <한오백년>이나, 가사의 내용에는 ‘민족적으로 가슴에 응어리진 한(恨)’은 보이지 않는다. <한오백년>의 첫 구절 “01. 한 많은 이 세상 약속한 임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에서 “한 많은”은 ‘역사적 민족적인 한’이 아니라 “정을 주고 떠난 임” 때문에 마음속 깊이 응어리진 ‘설움’이며, 후렴구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한 오백 년 사자는데 웬 성화요.”를 풀어봐도 ‘한이 맺힌 오백 년’을 안고 살자는 것이 아니라 ‘함께 오순도순 즐겁게 살아보고 싶다’는 뜻이 드러나 보인다. ‘한오백년’의 ‘한’은 ‘한(恨)’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떤 분은 이르기를, 판소리에서 ‘한’을 표현하는 소리는 광대들이 오랜 수련을 통해서 쉰 듯한 목소리인 ‘수리성’을 얻어, 애절한 발성에 슬픈 계면조(界面調) 가락을 가미해서 판소리를 불렀기에 그 소리에 담긴 ‘한’의 표현은 매우 깊게 들린다고 했다. 가사 자체보다는 가락 자체가 ‘한’을 품은 듯한 ‘슬픈 곡조’라는 말이다.
부사(副詞)로 쓰이는 ‘한’은 ‘적당히 헤아려 보아서’나 ‘대략 …쯤’ 또는 ‘…정도’를 말할 때 쓰인다. 따라서 ‘한오백년’은 ‘대략 오백 년쯤’으로 새기는 쪽이 더 바르다. 그러면 ‘대략 오백 년쯤 살자는데 웬 성화요.’가 되는데, 인생 100년도 어려운데 500년씩이나 살자는 내용은 비약이 지나치다. 논리상으로는 ‘한오백년’은 ‘한 백 년’이라야 옳다.
1971년에 박영진이 부른 ‘한백년’(고향 작사, 남국인 작사) 이라는 가요가 있다. 그 1절을 인용하면 이렇다.
한백년 (1절)
이왕에 만났으니 한 백 년을 살고 갑시다
장미가 곱다 해도 청춘이 곱다 해도 시들면 다시는 보지 못해요
만약에 당신이 가신다면 나 혼자 외로워서 어이 살란 말이오
사랑해요 사랑해요 당신만을 사랑해요
한 백 년 살고 갑시다
여기서 ‘한백년’은 ‘대략 100년쯤’일 것으로 보아 ‘맺힌 한(恨)’의 요소는 없고 ‘사랑’ 타령만 보인다. ‘한오백년’의 본뜻에 맞게 옮겨놓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민요<한오백년>에서 왜 굳이 ‘오백 년’을 붙여 넣었을까?
꽤 오랜 세월 머릿속에 맴돌던 그 의구심은 수집한 자료에서 풀렸다. 전북대학교 김병기 명예교수의 [시론](2022.8.4.중앙일보)에서 ‘한오백년’은 ‘恨五百年’이 아니라 ‘한어백년(限於百年)’ 또는 ‘한우백년(限于百年)’인데, 이를 구전하는 과정에서 ‘한오백년’으로 와전됐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백 년토록 함께 살자는데 웬 불만이며 하소연이란 말이요”라는 의미가 된다고 했다.
사실, 민요는 물론이고, 단가나 판소리에서도, 소리를 듣고 배우는 이가, 원문은 접하지도 않고, 부르는 이의 가사를 귀에 들리는 대로 외워서 목소리를 익힌다. 훗날 내놓은 가사 자료들에는 그 뜻을 모르는 말들이 숱하게 나타난다. 자료를 찾아 이를 대조해 보면, 원래는 한문 구절이거나, 우리의 옛말인데, 듣는 이가 저마다 귀에 들리는 대로 익혀서 부르기 때문에 부르는 이에 따라 가사가 다르게 전해지는 이본(異本)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오백년’은 ‘한어백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견해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다만, 지금에 와서 ‘한어(限於)’라는 한자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더더구나 어울리지 않는다. 굳어진 옛 가사를 고쳐 적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만약 고친다면, 한문투가 아닌, 그냥 ‘한 백 년’이라야 할 것이다. <한오백년>은 그 곡이 비록 ‘한’스러운 가락일지라도 그 가사 내용은 조금도 ‘한(恨)의 정서(情緖)’를 뒷받침해 주는 <恨五百年>은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