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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화천(火天) 대유(大有) | [34] 뇌천(雷天) 대장(大壯) |
大有, 元亨. | 大壯, 利貞. |
*—— [뇌천대장(雷天大壯)의 단전(彖傳)]——*
[34大壯] 彖曰, “大壯” 大者壯也, 剛以動, 故壯.
“大壯, 利貞” 大者正也. 正大而天地之情可見矣!
단(彖)에서 말했다. “대장(大壯)은 큰 것이 씩씩한 것이다. 굳세면서 움직이기 때문에 씩씩한 것이다. 크게 힘쓰는 상황에서 이롭게 하고 바르게 하는 것은 큰 것이 바르게 하기 때문이다. 바르고 크게 되면 천지의 실상을 알 수 있다.”
· ‘剛以動’에서 ‘剛’은 하괘[☰]를 두고 하는 말이요, ‘動’은 상괘[☳]을 두고 하는 말이다.
· ‘正大而天地之情’에서 ‘正大’는 ‘바르고 큰 것을 보면’, ‘情’(정)은 ‘실상, 실정’을 뜻한다.
* [강 설(講說)] ————
‘바르고 크다는 것으로 (보면) 천지의 실상(實相)을 알 수 있다.(正大而天地之情 可見矣)’에서 ‘바르고 크다’는 것은 하늘의 이치와 땅의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하늘[天理]이 크고 바르게 운행하고 땅[大地]이 크고 바르게 만물을 키운다. 비유컨대 하늘[天]은 아버지요, 땅[地]은 어머니이다. 부드러운 땅은 하늘의 강한 기운을 받아 만물을 키운다.[剛以動] 인간(人間)은 하늘과 땅의 기운(氣運)을 받아서 ‘몸’을 이루고, 하늘과 땅의 이치(理致)를 받아서 ‘마음’이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하늘의 이치가 작용하는 본성(本性)이다.『중용』에서는 이 사람의 마음을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 하고, 맹자(孟子)는 이 인간의 본연한 마음을 ‘호연지기(浩然之氣)’라 했다. 호연지기가 가득한 사람이 대인(大人)이다.
❊ [周易에서 孟子 읽기] —[34]大壯괘 彖傳 ‘正大而天地之情可見矣’ ; 맹자의 ‘大人’
대인(大人)은 어떤 사람인가? 맹자(孟子)는 『맹자(孟子)』<진심장구·하)>(제25장)에서 군자가 갖추고 있는 덕(德)을 위상에 따라 6단계로 분류하여 말하고 있다. 선인(善人), 신인(信人), 미인(美人), 대인(大人), 성인(聖人), 신인(神人)이 그것이다. 대인(大人)은, 바로 천지의 바르고 큰 이치가 마음에 꽉 차서 빛을 발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14-25-01 浩生不害問曰 樂正子何人也 孟子曰 善人也信人也
02 何謂善 何謂信
03 曰可欲之謂善
04 有諸己之謂信
05 充實之謂美
06 充實而有光輝之謂大
07 大而化之之謂聖
08 聖而不可知之之謂神
09 樂正子二之中 四之下也
01 제나라 사람 호생불해(浩生不害)가 물었다. “악정자(樂正子)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선인(善人)이며 신인(信人)이다.” / 02 “무엇을 선(善)이라 이르며 무엇을 신(信)이라 이릅니까?” / 03 “순수한 본마음이 하고자 하는 것은 선(善)이라 하고, / 04 선(善)을 자기 속에 지속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을 신(信)이라 하고, / 05 선(善)이 몸속에 가득 차는 것을 미(美)라 하고, 06 가득 차서 빛을 발하는 것을 대(大)라 하고, / 07 대(大)의 상태가 되어서 스스로 탈바꿈하는 것을 성(聖)이라 하고, / 08 성(聖)의 상태가 되어서 사람들이 파악할 수 없게 된 것을 신(神)이라 한다. / 09 악정자은 두 단계의 가운데 있고 네 단계의 아래에 있다.”
『주역강설』에서 말했다. “단에서 ‘큰 자가 씩씩하니, 굳세면서 움직이기 때문에 씩씩하다’고 한 것은 구사(九四)를 두고 한 말이다. 구사(九四)에 의한 흔들림은 결실을 위한 흔들림이다. 그것은 바른 것이다. 구사(九四)의 바르고 큰 작용은 번개 치고 천둥이 우는 천지의 실상과 같다.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우는 것은 초목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것이다.”
『역전』에서 말했다. “큰 것이 이미 長盛하면 貞正함이 이로우니, 바르고 큰 것은 道이다. 바르고 큰 이치를 지극히 하면 천지의 實相을 볼 수 있다. 천지의 道가 한결같고 오래하여 그치지 않음은 지극히 크고 지극히 바르기 때문이니, 바르고 큰 이치를 배우는 자가 묵묵히 알고 마음으로 통달하여야 한다. 大正이라고 말하지 않고 正大하고 말한 것은 한 가지 일이라고 의심할싸 두려워해서이다.”
[傳] 大者旣壯則利於貞正하니 正而大者는 道也라 極正大之理면 則天地之情을 可見矣라 天地之道 常久而不已者는 至大至正也니 正大之理를 學者黙識心通이 可也라 不云大正而云正大는 恐疑爲一事也라
*—— [뇌천대장(雷天大壯)의 상전(象傳)] ——*
[34大壯] 象曰, 雷在天上, 大壯, 君子以非禮弗履.
상(象)에서 말했다. “우레[☳]가 하늘[☰] 위에 있는 것이 대장(大壯)이니, 군자는 이 괘의 이치를 살펴서 예(禮)가 아니면 행하지 않는다.”
* [강 설(講說)] ————
· ‘非禮弗履’(비례불리)에서 ‘履’(리)의 주역코드는 진괘(震卦, ☳)인데, ‘실행하다, 이행하다’의 뜻이다. 전치사 ‘以’의 목적어[大壯]는 앞에 나왔기 때문에 생략한 것이다. 부정사 ‘弗’은 일반적으로 대명사를 포함하는 부정사이므로 ‘不履之’로 보아 해석하면 된다. ‘군자는 대장괘의 이치를 살펴서 예(禮)가 아니면 그것을 행하지 않는다.’로 해석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禮)는 ‘사람과 사람 사이가 하늘처럼 조화로운 상태’를 말한다.
❊ [주역에서 논어(論語) 읽기] —[34] 大壯괘 象傳 ‘非禮弗履’ ; 논어의 ‘克己復禮’
대장(大壯)괘의 상전에서, ‘禮가 아니면 行하지 않는다.(非禮弗履)’고 한 것은『논어(論語)』에서 말하는 ‘克己復禮’의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에 해당한다.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曰 回雖不敏 請事斯語矣’ —『論語』 12. <顔淵篇> (제1장)
안연이 인(仁)에 대해서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기를 극복하여 예(禮)에 돌아가는 것이 인(仁)이 되는 것이니 어느 날 자기를 극복하여 예(禮)로 돌아가면 천하(天下)가 인(仁)으로 돌아간다. 인(仁)을 하는 것은 자기로 말미암는 것이니 남으로 말미암는 것이겠는냐?”
안연이 말하였다. “청컨대 그 세목(細目)을 묻겠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禮)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禮)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禮)가 아니면 움직이지 마라.” / 안연이 말하였다. “제가 비록 불민(不敏)하오나 청컨대 이 말씀을 받들겠습니다.”
예(禮)는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개체적인 삶의 형태이므로 ‘자기[私慾]를 극복하여 예(禮)로 돌아간다(克己復禮)는 말은 참다운 본성을 회복하여, 전체의 입장에서 삶을 영위함으로서 조화(調和)를 이루게 된 상태를 말한다. 인(仁)은 남과 내가 구별되지 않는 본래의 상태이다. … 인(仁)을 이루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지만 그 중 요긴한 것 중의 하나가 예(禮)를 철저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데 예(禮)를 철저하게 실천하게 되면 사욕(私慾)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욕심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그 욕심은 차차 사라진다. 욕심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이 인(仁)을 터득하는 순간이다. 네 가지 덕목 중 ‘非禮勿視 非禮勿聽’은 ‘내면적’으로 덕(德)을 쌓는 일이요, ‘非禮勿言 非禮勿動’은 그 덕(德)이 ‘외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 [뇌천대장(雷天大壯)의 효사(爻辭)] ——*
‘上六, 羝羊觸藩, 不能退, 不能遂, 无攸利, 艱則吉.’ ‘六五, 喪羊于易, 无悔.’ ‘九四, 貞吉, 悔亡, 藩決不羸, 壯于大輿之輹.’ ‘九三, 小人用壯, 君子用罔, 貞厲, 羝羊觸藩, 羸其角.’ ‘九二, 貞吉.’ ‘初九, 壯于趾, 征凶, 有孚.’ |
* [뇌천대장(雷天大壯) 초구(初九)의 효사] ——
[34大壯] 初九, 壯于趾, 征凶, 有孚.
象曰, “壯於趾” 其孚窮也.
초구(初九)는 발에서 왕성(旺盛)‘하니 애써 나아가면 흉하다. 한마음[믿음]을 유지해야 한다.
상(象)에서 말했다. “밭에서 왕성하니 한마음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그렇지 않으면) 궁(窮)해지지 때문이다.”
· ‘壯于趾’에서 ‘趾’(지)는 ‘발, 발꿈치’
* [강 설(講說)] ————
초구(初九)는 힘을 쓰기 시작하는 첫 단계이다. 그런데 초구은 양(陽)의 자리에 강양(剛陽)이 왔으므로 자꾸 힘을 쓰고 싶어 한다. 그것을 몸의 아래에 있는 ‘발에 힘이 넘친다(壯于趾)’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제대로 큰 힘을 쓸 수 없다. 철없이 자꾸 앞서나가려 하고 덤비면 흉하다. 그 중(中)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황에 맞지 않는 상태에서 성숙하지 않은 힘을 함부로 쓰지 말고 정응(正應)의 관계인 구사(九四)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믿음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有孚).‘고 했다. 상(象)에서도 ‘자기 마음만 믿고 (힘을 쓰면) 막힌다(其孚窮也)’고 한 것이다.『역전』의 상에서도 이르기를 ‘가장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장성함을 써서 가면 반드시 그 막혀서 흉함을 자신할 수 있다.’고 했다.
『역전』에서 말했다. “初九는 陽剛의 乾體로 아래에 처하여 나아가기를 長盛하게 하는 자이니, 아래에 있으면서 힘을 쓰는 것은 발에 힘이 있는 것이다. 발은 아래에 있으면서 나아가 움직이는 물건이다. 初九가 아래에 있으면서 힘을 쓰고 그 中을 얻지 못했으니, 굳셈으로 壯에 처함은 비록 위에 있더라도 오히려 행할 수 없는데 하물며 아래에 있어서이겠는가. 그러므로 함부로 나아기면 凶함이 틀림없는 것이다. 부는 믿음이니, 힘만 써서 나아가면 흉함을 얻음이 틀림없음을 이른다.
[傳] 初는 陽剛乾體而處下하여 壯于進者也니 在下而用壯은 壯于趾也라 趾는 在下而進動之物이라 九在下用壯而不得其中하니 夫以剛處壯이면 雖居上이라도 猶不可行이온 況在下乎아 故征則其凶有孚라 孚는 信也니 謂以壯往則得凶可必也라.
* [뇌천대장(雷天大壯) 구이(九二)의 효사] ——
[34大壯] 九二, 貞吉.
象曰, 九二 “貞吉” 以中也.
구이(九二)는 바르게 하면 길하다.
상에서 말했다. “구이가 바르게 하면 길한 것은 중심(中心)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 [강 설(講說)] ————
구이(九二)는 하층부의 중심적 위치에 있다. 그 중(中)을 얻었지만 힘을 쓰는 일에는 아직 초반의 자리이다. 그리고 구이(九二)는 음(陰)의 자리에 양(陽)이 왔으므로 그 음(陰)의 자리에 맞게 부드럽게 힘을 써야 한다. 그러면 길(吉)하다. 구사(九四)의 경우에도 ‘貞吉’이라 했는데 구이(九夷)의 경우처럼 부드럽게 힘을 쓰면 후회(後悔)함이 없다고 했다.
『역전』에서 말했다. “구이(九二)는 비록 陽剛으로 大壯의 때를 맞았으나 부드러움에 거하고 中에 처했으니 이는 剛·柔가 中道를 얻어 지나치게 長盛하지 않아서 貞正함을 얻어 吉한 것이다. (상에서 말하기를) ‘바르게 하여 길한 까닭은 中道를 얻었기 때문이다.’이라고 했다.
[傳] 二雖以陽剛으로 當大壯之時나 然居柔而處中하니 是剛柔得中하여 不過於壯하여 得貞正而吉也라 … [象] 所以貞正而吉者는 以其得中道也라
* [뇌천대장(雷天大壯) 구삼(九三)의 효사] ——
[34大壯] 九三, 小人用壯, 君子用罔, 貞厲, 羝羊觸藩, 羸其角.
象曰, 小人用壯, 君子罔也.
구삼(九三)은 소인(小人)이면 왕성한 힘으로 나아가지만 군자(君子)는 (왕성한 힘이) 없는 것처럼 한다. 바르게(굳세게) 하다보면 위태로움이 있다.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아 그 뿔을 파리하게 만들듯이 해야 한다.
상에서 말했다. “소인이면 왕성한 힘으로 다가가고 군자는 (왕성한 힘이) 없는 것처럼 한다.”
· ‘君子用罔’에서 ‘罔’(망)은 ‘무(無)’와 통용된다. ① ‘없다’, 또 ② ‘罔’은 ‘망(網)’과 통용되어 ‘그물’의 뜻이 있다. 고기를 잡을 때 그물을 쓰는 것은 ‘지혜(智慧)’이다.
· ‘羝羊觸藩’(저양촉번)에서 ‘羝’(저)는 ‘숫양[羝羊]’이다. ‘藩’은 ‘울타리’이니, ‘觸藩’은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 받는다.’는 뜻이다. 소인(小人)이 마구 힘쓰는 것을 빗댄 말이다.
‘羊’의 주역 코드는 태괘(兌卦, ☱)이다. 3-4-5효의 외호괘를 뒤집으면 태괘가 된다. 상으로 보아 삼효(三爻)가 바로 ‘숫양의 뿔’에 해당한다.
· ‘羸其角’(리기각)에서 ‘羸’(리)는 ① ‘걸리다’. ② ‘여위다, 파리하다’의 뜻.
* [강 설(講說)] ————
구삼(九三)은 건체의 윗자리에 있으면서 양(陽)의 자리에 강양(剛陽)이 왔으므로 아주 굳세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힘을 쓰고 싶어 한다. 그러나 구삼은 그 중(中)을 얻지 못했으므로 용을 쓰면 안 된다. 상황에 맞지 않게 마구 힘을 쓰는 것은 소인(小人)이다. 군자(君子)는 힘을 쓰되 ‘힘이 없는 것’처럼 하거나 ‘지혜(智慧)를 가지고’ 힘을 쓴다. 만약에 소인(小人)처럼 굳세게만 하면 위태롭다. 마치 ‘숫양이 마구 울타리를 들이받다가 뿔이 울타리에 걸리거나 파리하게 되는’ 경우와 같다.
『역전』에서 말했다. “구삼(九三)은 剛이 陽位에 거하고 굳셈[壯]에 처했으며 또 乾體의 마지막에 해당하니, 굳셈이 지극한 것이다. 지극히 굳셈이 이와 같으니, 小人에게 있어서는 勇猛을 쓰는 것이 되고 君子에게 있어서는 蔑視함을 쓰는 것이 된다. 小人은 힘을 숭상하기 때문에 壯勇을 쓰는 것이요, 君子는 뜻이 강하기 때문에 멸시함을 쓰는 것이다. 罔은 무시함이니 멸시라는 말과 같으나 지극히 剛하여 일을 멸시해서 忌憚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 군자와 소인은 지위로써 말한 것이니, ‘君子가 勇猛만 있고 義가 없으면 亂을 일으킨다’는 것과 같다. 剛·柔가 中道를 얻으면 꺾이지 않고 굽히지 않아 천하에 베풂에 마땅하지 않음이 없고, 만일 剛함이 지나치면 和順한 德이 없어서 많이 傷하여 상대하는 이가 없으니, 貞固히 이것을 지키면 危險한 길이다.
[傳] 九三은 以剛居陽而處壯하고 又當乾體之終하니 壯之極者也라 極壯如此하니 在小人則爲用壯이요 在君子則爲用罔이라 小人尙力이라 故用其壯勇이요 君子志剛이라 故用罔하니 罔은 无也니 猶云蔑也니 以其至剛하여 蔑視於事而无所忌憚也라 君子小人은 以地言이니 如君子有勇而无義爲亂(注2)이라 剛柔得中이면 則不折不屈하여 施於天下而无不宜요 苟剛之太過면 則无和順之德하여 多傷莫與하니 貞固守此則危道也라.
❊[譯註] ‘如君子有勇而无義爲亂’ :『논어(論語)』<양화(陽貨)>에 “君子有勇而無義 爲亂 小人有勇而無義 爲盜”라고 했다.
* [뇌천대장(雷天大壯) 구사(九四)의 효사] ——
[34大壯] 九四, 貞吉, 悔亡, 藩決不羸, 壯于大輿之輹.
象曰, “藩決不羸” 尙往也.
구사(九四)는 바르게 하면 길(吉)하여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 울타리가 뚫려 (뿔이) 걸리지 않는다. 큰 수레의 당토보다도 강성하다. 상(象)에서 말했다. “울타리가 뚫려 (뿔이) 걸리지 않는 것은 여전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 ‘壯于大輿之輹’에서 ‘輹’(복)은 ‘당토. 수레의 차축과 몸체를 연결하는 부분.
· ‘尙往也’에서 ‘尙’(상)은 ‘고상하다, 숭상하다, 높이다, 아직도 ,여전히’
* [강 설(講說)] ————
구사(九四)는 굳세게 힘쓰는 것이 상층부에 올라와 대장(大壯)의 주체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상층부의 유일한 양(陽)으로 앞이 열려있어[☳] 힘을 쓰고 싶다. 그러나 구사(九四)는 중(中)을 얻지 못하였으며, 음(陰)의 자리에 양(陽)이 왔으므로 구사는 부드러운 자질[內功]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부드럽게 힘을 써야 길하다’. 그러면 ‘후회(後悔)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울타리가 열려 있어 (뿔이) 걸리지 않는다. 굳세지만 수레를 부드럽게 굴러가게 하는 (큰 수레의) 중앙축[당토]이 힘을 쓰는 것처럼 부드럽게 해야 한다. 그러나 ‘나아감을 그치지 않아야 한다(尙往).
『주역강설』에서 말했다. “구사는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주체다. 하층부의 양(陽)들이 모두 따르므로 매우 왕성하다.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아 울타리가 뚫어졌는데도 지치지 않는다. 그래서 ‘큰 수레의 당토보다도 강성하다’고 했다. 당토는. 수레의 차축과 몸체를 연결하는 부분으로 가장 튼튼한 것 가운데 하나이다. 이 경우의 구사(九四)는 마음먹은 대로 다 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는 육오(六五)를 몰아내고 자기가 그 자리에 앉고 만다.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단종을 몰아내고 임금이 된 것도 이러한 경우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 / 이런 경우 구사(九四)가 군자라면 육오(六五)와 상육(上六)을 쇄신시키기만 하고 자리를 탐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바르게 하면 길(吉)하여 후회함이 없다’고 한 것이다. 주나라 주공(周公)은 어린 성왕(成王)을 받들고 끝까지 보좌했다.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나중에 주공처럼 되지 못한 것을 후회했으나 때가 너무 늦었다.”
『역전』에서 말했다. “九四는 剛陽이 자라나 성하여 壯盛함이 이미 中을 지났으니 장성함이 심한 것이다. 그러나 四[陰]에 거하여 不正함이 되니, 君子의 道가 자라날 때를 당하여 어찌 바르지 않음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부드러우면 길하여 후회함이 없어진다.’고 경계한 것이다.… 울타리는 限隔하는 것이니, 울타리가 터져 열리면 다시는 그 健壯함을 곤궁하게 하지 않는다. 높고 큰 수레의 바퀴와 바퀴살이 强壯하니 그 나아감이 편리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큰 수레의 바퀴살이 건장하다고 말하였으니 바퀴살이 건장하면 수레가 강하다.
[傳] 四는 陽剛長盛하여 壯已過中하니 壯之甚也라 然居四하여 爲不正하니 方君子道長之時하여 豈可有不正也리오 故戒以貞則吉而悔亡이라 … 藩은 所以限隔也니 藩籬決開면 不復羸困其壯也라 高大之車는 輪輹强壯하니 其行之利를 可知라 故云壯于大輿之輹이니 輹은 輪之要處也라 車之敗는 常在折輹하니 輹壯則車强矣라. (輹은 與輻同이라)
* [뇌천대장(雷天大壯) 육오(六五)의 효사] ——
[34大壯] 六五, 喪羊于易, 无悔.
象曰, “喪羊于易” 位不當也.
육오(六五)는 양(羊)을 국경지방에서 잃어버린다면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
상에서 말했다. “양을 국경지방에서 잃어버려야 하는 것은 자리가 바르기 않기 때문이다.”
· ‘喪羊于易’(상양우역)에서 ‘易’(역)은 ‘역(埸)’과 통용, ‘국경지방’이라는 뜻. ‘喪羊于易’은 ‘국경지방에서 양을 잃어버린다’는 것인데 자존심을 버리는 것을 은유한 주역의 코드이다.
* [강 설(講說)] ————
육오(六五)는 지도자의 자리에 있으나 유약한 음(陰)의 자질을 지니고 있으므로 실제로 힘을 쓰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구사(九四)에 의해 주도하는 상황을 육오의 부드러운 음(陰)으로서 능력을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 부드러운 리더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음양(陰陽)의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특히 육오는 중(中)의 덕(德)을 지니고 있고 양(陽)의 자리에 음(陰)이 왔으므로 그 조화(調和)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능력이 부족한 자기가 나서기보다는 능력이 있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힘을 쓰도록 하는 것이다. 즉 아래의 구사(九四)가 힘쓰는 것은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자면 일단 자기의 자존감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서 ‘양(羊)을 국경지방에서 잃어버린다.’고 했다.
『역전』에서 말했다. “羊은 떼 지어 다니고 떠받기를 좋아하니, 여러 羊이 함께 나옴을 상징한 것이다. 네 羊이 막 자라나 함께 나오니, 六五가 부드러움으로 위에 거하여 만일 힘으로써 제재하려 하면 이기기 어려워 뉘우침이 있을 것이요, 오직 和易로써 대하면 여러 羊이 그 剛함을 쓸 곳이 없으니 , 이는 그 壯盛함을 和易함에 잃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뉘우침이 없을 수 있다. 六五는 地位로 말하면 正이고 德으로 말하면 中이다. 그러므로 和易의 道를 써서 여러 羊이 비록 壯盛하나 쓸 곳이 없게 한 것이다.
[傳] 羊은 群行而喜觸하니 以象諸陽竝進이라 四陽이 方長而竝進하니 五以柔居上하여 若以力制면 則難勝而有悔요 唯和易以待之면 則群陽이 无所用其剛하니 是喪其壯于和易也니 如此則可以无悔라 五以位言則正이요 以德言則中이라 故能用和易之道하여 使群陽雖壯이나 无所用也라
* [뇌천대장(雷天大壯) 상육(上六)의 효사] ——
[34大壯] 上六, 羝羊觸藩, 不能退, 不能遂, 无攸利, 艱則吉.
象曰, “不能退, 不能遂” 不詳也, “艱則吉” 咎不長也.
상육(上六)은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으면 물러나지도 못하고 나아가지도 못하여 이로울 바가 없다. 어려운 상황임을 인식하여 잘 대처해야 길하다.
상에서 말했다. “물러나지 못하고 나아가지도 못하는 것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고, 어려운 상황임을 인식하여 대처하면 길한 것은 허물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艱則吉’에서 ‘艱’(간)은 ‘어렵다, 괴로워하다’
· ‘不詳也’에서 ‘詳’(상)은 ‘상세하다, 잘 안다’
* [강 설(講說)] ————
상육(上六)은 힘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마지막 단계에 있는 자이다. 음(陰)의 자리에 음(陰)이 왔으므로 아주 부드럽게 힘을 써야 한다. 윗사람이라는 자존심(自尊心) 때문에 마구 힘을 쓰다보면 진퇴양난(進退兩難)의 곤경(困境)에 처하여 이로울 게 없다. 그래서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으면 물러나지도 못하고 나아가지도 못하여 이로울 바가 없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려운 상황임을 인식하고 잘 대처하면 길(吉)하다고 한 것이다. ‘숫양[☱]’은 윗자리의 자존심을 비유(譬喩)하는 주역 코드이다.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을 아끼고 배려하는 아량과 덕(德)을 가지고 부드럽게 힘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리더로서 구성원들의 처지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역할과 고충을 알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좋은 일을 행하는 구성원들에게는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不能退, 不能遂’는 상황을 자세히 파악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艱則吉’은 허물이 커지지 않기 때문이다.
『역전』에서 말했다. “숫양이 다만 剛壯을 씀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陰爻 또한 稱한 것이다. 上六은 陰으로 震卦의 마지막에 처하고 壯盛의 극에 당하였으니, 그 지나침을 알 수 있다. 숫양이 울타리를 떠받고 나아가면 몸이 막히고 물러가면 뿔이 방해되어 進退가 모두 불가능한 것과 같다. 재질이 원래 부드러운 陰이기 때문에 자신을 이겨 義理에 나아가지 못하니 이는 물러가지 못하는 것이요, 陰柔의 사람은 비록 剛壯을 쓰려는 마음은 지극하나 반드시 剛壯을 끝까지 마치지 못하여 꺾임이 있으면 반드시 위축되니 이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 하는 바가 이와 같으니 가는 곳마다 이로움이 없는 것이다. 만일 어려움과 곤궁함을 만나면 반드시 그 剛壯함을 잃을 것이다. 강장함을 잃으면 도리어 柔弱한 분수를 맞으니, 이는 어려우면 吉함을 얻는 것이다. 剛壯을 쓰면 불리하고 어려움을 알아 부드러움에 처하면 吉하니, 壯의 마지막에 거하여 변하는 뜻이 된다.
[傳] 羝羊은 但取其用[一无用字]壯이라 故陰爻亦稱之라 六은 以陰處震終而當壯極하니 其過可知니 如羝羊之觸藩籬하여 進則礙身하고 退則妨角하여 進退皆不可也라 才本陰柔라 故不能勝己以就義하니 是不能退也요 陰柔之人은 雖極用壯之心이나 然必不能終其壯하여 有摧必縮하니 是不能遂也라 其所爲如此하니 无所往而利也라 陰柔處壯하여 不能固其守하니 若遇艱困이면 必失其壯이니 失其壯則反得[一有其字]柔弱之分矣니 是艱則得吉也라 用壯則不利요 知艱而處柔則吉也니 居壯之終하여 有變之義也라
¶ 주역 ☞ [34] 대장괘(雷天大壯)의 괘사와 효사
[34] ‘大壯, 利貞’
‘上六, 羝羊觸藩, 不能退, 不能遂, 无攸利, 艱則吉.’
‘六五, 喪羊于易, 无悔.’
‘九四, 貞吉, 悔亡, 藩決不羸, 壯于大輿之輹.’
‘九三, 小人用壯, 君子用罔, 貞厲, 羝羊觸藩, 羸其角.’
‘九二, 貞吉.’
‘初九, 壯于趾, 征凶, 有孚.’
[31] 澤山 咸 | [32] 雷風 恒 | [33] 天山 遯 | [34] 雷天 大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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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 亨 利貞 取女吉 | 恒 亨 无咎 利貞 利有攸往 | 遯 亨 小利 貞 | 大壯 利貞 |
虛受人 | 立不易方 | 遠小人 不惡而嚴 | 非禮弗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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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역 ☞ [34] 대장괘(雷天大壯)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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