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수정 (자유기고가)
- 승인 2019.07.29 21:49
영화 '원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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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 (Wonder, 2017)
감독-스티븐 크보스키, 출연-제이콥 트렘블레이, 줄리아 로버츠 외 | 미국 | 드라마 | 2017.12.27 개봉 | 전체관람가 | 113분
“난 평범한 열 살 꼬마가 아니다. 뭐~ 행동은 평범하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운동도 잘 한다. 게임기로 하긴 하지만 마인크레프트랑 과학이랑 할로윈 옷을 좋아한다.” “아빠랑 광선 검 결투를 좋아하고 같이 스타워즈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평범한 애들처럼 우주에 가는 꿈을 꾼다. 난 그저 생김새가 평범하지 않을 뿐이다.”
자기 소개서 같은 내레이션에서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주인공 ‘어기’는 선천적으로 안면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10살까지 27번의 성형수술로 숨도 쉬고, 보고, 듣고, 얼굴도 조금 볼만하게 됐다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하는 아이이지만, 일련의 기념일 중 아이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크리스마스보다 자신의 얼굴을 가면과 복장으로 감추고 마음껏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할로윈을 더 좋아한다고 할 만큼 다른 외모로 인한 깊은 상처가 자리하고 있는 아이이기도 하다.
어기는 평범한 일상을 꿈꾸지만 흔히 평범함이나 정상적이라고 이야기 하는 기준에서는 외모가 다를 수밖에 없어서 늘 낯설어하거나 두려워하는 시선들과 마주쳐야만 하고, 자신을 보면 괴물이라고 놀리거나 도망치는 친구들이 두려워 우주인 헬멧으로 얼굴을 숨기고 다니는 특별한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이 아이가 세상으로 나온다는 것은 지옥 불로 뛰어드는 것만큼이나 무섭고 두려운 일이지만, 더 이상 미뤄둘 수만은 없다. 두렵고 싫지만 조심스럽게 우주인 헬멧을 벗고 가정에서 학교로, 더 나아가 사회와 세상 밖으로 이제 막 한발을 내딛는 어기.
학교에서 헬멧을 벗고 맞닥뜨린 현실은 어기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가혹했다. 힐끔 힐끔 쳐다보는 아이들의 시선, 며칠 전 학교 소개 때 만난 줄리안은 ‘괴물’이라 놀리며 집단 따돌림을 주도하고, 어기와 몸이 닿으면 전염병에 걸린다는 악질적인 루머와 체육시간에 어기에게 피구 공을 마구 집어던지는 폭력까지. 처음으로 겪는 치욕적인 모멸감과 혐오감에 좌절한다.
어기가 집에 돌아와 울면서 엄마에게 묻는다. “앞으로도 이런 식일까요?” 순간 엄마의 눈빛에는 슬픔이 가득하지만 냉정하고 솔직하게 “모르겠구나.”라고 답한다. 이 말에 더욱 두려움에 떨며 학교 안 가겠다는 어기에게 “조금은 나아질 거야.”, “널 제일 잘 아니까. 엄마 생각이 제일 중요한 거야.”. “돋보이게 태어나면 섞이기 힘든 거야.”라고 말해준다. 이 대화에서 어기가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무너지지 않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과 ‘네겐 이런 시련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고 네 뒤엔 엄마, 아빠, 누나 비아, 그리고 선생님들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어. 그러니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아이들 앞에 서도 돼.’라는 엄마가 보내는 응원과 지지가 읽혀진다.
이 마음이 어기에게 전달됐는지 금세 용기를 내 학교에 가고 싶은 이유를 술술술 말해,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만든다. 아이 스스로 자신감을 회복하고 부딪쳐보도록 유도하는 어기 엄마의 모습에서 우리는 또 하나를 깨닫는다. 아이도 답을 알고 있다. 다만 자신감을 잃어 실행하기 두려워서 부모의 응원과 지지를 구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아이들의 문제를 냉정하고 진지하게 대하며 믿어주고 공감해주는 화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엄마와 아빠, 누나 비아의 응원과 지지, 사랑은 학교친구들의 여전한 괴롭힘에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힘이 되었고, 과학을 잘 하는 어기는 자신의 쪽지시험지를 잭윌에게 보여주는 등 아이다운 방식으로 친구들에게 다가가려 한다. 이런 노력들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점점 어기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오는 잭윌과 썸머 같은 친구들도 생기고 편견 없이 대하는 브라운선생님을 비롯해 교장 선생님 덕분으로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이 모습에서 우리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는다. 편견이나 선입견에 의한 시선은 다름을 평범하고 보편적이라는 의식적 성찰이나 당당함 앞에서는 힘이 빠져서 폭삭 주저앉게 되어 있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이 과정은 순탄치 않고 시간과 고통이 따른다.
이 영화가 보다 의미 있게 기억되는 것은 장애를 가진 한 아이의 스토리에만 주목하지 않고 이 순탄치 않은 여정에서 어기가 만나고 관계 맺어지는 사람들 하나하나에 카메라앵글이 맞춰지고 그들의 사연을 클로즈업한다는 데에 있다.
우선, 우리는 동생 어기로 인해 어릴 때부터 어리광 한번을 못 부렸고, 병원도 혼자 다녀야 했던 누나 비아의 외로움과 소외감에 조우하고,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친구가 부러워 거짓말을 하고 친구에게 들킬까봐 친구를 피해 다니는 누나 비아의 절친 미란다와 어기가 좋으면서도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할까봐 뒤에서 어기가 상처 받을 말을 해 순간적으로 배신하는 잭 윌의 이야기를 만난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저마다의 삶의 무게는 같은 것이며 이런 무게들로 인해 양면적인 행동과 말들을 하게 되는 것임을 나도 모르게 수긍하게 된다. 이 후 먼저 다가가 용서를 구하고 부서진 관계를 회복하는 잭윌과 미란다의 용기 있는 모습에서, 또 이기적이고 편견 가득한 부모 사이에서도 잘못한 것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어기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낼 줄 아는 줄리안의 성숙한 모습에 옅은 미소를 짓게 되며, 따돌림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어기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썸머, 그리고 어기를 위해 함께 싸워주는 친구들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품게 된 것이 과연 나뿐일까?
이뿐인가.
첫 대면에서 긴장하는 어기를 위해 자신의 별난 이름으로 분위기를 풀어주고 줄리안과 그 부모의 잘못된 행동을 단호하게 처리하는 ‘투쉬맨’ 교장선생님, 단체 사진을 찍는데 친구들 곁에서 떨어지려는 어기를 살짝 밀어주는 브라운선생님의 모습에서도 나는 생각한다. 이들이 있기에 어기의 현재와 미래는 과거와는 다를 것임을, 아니 <원더>가 보여주는 세상이 다름으로 인해 매일 매일을 숨거나 주눅 들어 살기를 강요받는 모든 이들에게 현실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품게 된다.
‘투쉬맨’ 교장선생님의 말처럼 어기의 외모는 바뀔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선을 바꾸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현실적이지 않은가. 현실을 비현실의 시선으로 보니 평범함과 특별함,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선 긋기의 불필요한 의식들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고 선입견과 고정관념으로 다름을 대하며 차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문들을 품게 되고 의식으로 변하는 순간이 인식이 성숙해가는 시작점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이 영화가 필요하고 영화의 결말이나 어기의 주변 사람들, 그리고 상황들이 다소 비현실적이어서 괴리감이 들기도 하겠지만, 영화 속 세상에서 가상의 인물들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 의미만으로도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되지 않을까? 특히 다소 모법답안지 같은 전개가 오히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장애와 다름, 그리고 삶의 다면성에 대해 생각게 하는, 그래서 의식이 한 단계 성숙해질 수 있는 영화여서 강력 추천한다.
P.S.
‘어기’는 사실 외적으로는 부족할 것 없는 아이다. 넉넉한 가정형편과 ‘어기’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진정한 내편인 부모, 누나가 있고, 장애에 대한 인식이나 복지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인 미국의 사회제도나 교육시스템 속에서 교육받을 수 있으니 우리네 현실과 비교해 보면 하나의 모범적인 사례로 보여 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솔직히 아직 우리나라는 사회의 인식과 제도, 즉 장애 아동의 양육과 교육, 재활에 필요한 의료비와 교육비 등의 많은 부분이 부모의 몫이고, 사회와 교육현장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인식이 있어서 장애를 가진 많은 어린이들이 교육의 권리는 물론 생명권, 보호받을 권리 등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가정에 방치되거나 시설에 분리, 격리되어 살아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에 반해, 어기의 환경은 미국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더라도 최상이지 않는가.
당연히 ‘어기’의 이야기에 온전히 공감하기보다는 배부른 투정이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게 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부모에게 버려지고, 부모가 장애를 가진 자녀를 살해하거나 동반 자살한 기사를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되는 걸보면 이것이 현실이구나 싶어 착잡해진다. 그리고 기사 속 내용은 부모의 입장을 대변하고 옹호하는 듯한 기류가 흐르고 이 기사들을 읽는 대중들에게 ‘부모가 오죽했으면 이랬을까’라는 위험한 인식과 시선을 전파하지는 않을까 싶어 더 착잡해진다. 무엇보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또 어떻게 하면 이런 일들이 되풀이 되지 않을까에 대한 기사는 단 한 줄도 내보내지 않을 만큼 관심을 갖지 않는다. 언론의 태생적 목적을 망각한 채 이런 문제까지도 개인의 몫을 강조하는 프레임을 작동시켜 의도가 있든 없든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의 환경도 중요하지만 그 사회가 얼마나 이질적 것들을 다양성으로 인정해주고 보편적인 것으로 존중하는가가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이 영화가 참 좋았고, 주인공 ‘어기’의 이야기, 특히 주변 사람들이 ‘어기’를 대하는 다양한 시선과 대응하는 ‘어기’와 가족들 그리고 교육자들의 모습, 두려움을 갖고 세상에 첫걸음을 내딛는 이유들과 심리, 학교생활에서 겪게 되는 불평등과 불합리에 주목하는 시선들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어기처럼 어릴 때 놀이터를 가도, 가족들과 외식을 하러 가도. 그리고 배우고 싶어서 학교를 가도 또래아이들과 그 부모들, 심지어 학교 선생님들까지 ‘어쩌지?’, 혹은 ‘이상해.’, ‘무서워’라는 시선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내가 또래들에게 다가가면 갑자기 싸~ 해지며 어색해지는 분위기, 그리고 부모들이 달려와 ‘이곳은 니 구역이 아니야.’란 어느 드라마 대사와 제스처들을 연출하며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냈었다.
이럴 때 미안해하고 보호해주려고만 하는 가족보다는 '어기'의 가족처럼 부딪쳐보라고 격려하며 함께 나서주고,브라운 선생님이나 투쉬맨 교장선생님과 같은 어른들이 손을 잡아주었더라면, 또 잭윌과 썸머 같은 친구들을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살짝 부럽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항상 이상해하는 시선을 등에 짊어지고 ‘안 된다’와 ‘거절’을 먼저 경험하며 나에 대한 세상의 인식을 체득했던 사람으로서, ‘어기’가 10년을 왜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했을지, 그 세월을 어떤 심정으로 보냈을지, 또 그 고통의 무게는 어떠한 것인지 가늠하고도 남았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의 시선은 여전히 존재하고, 매일 매일을 낯섦과 거부, 거절의 시선에서만 주목받는 삶을 살아내고 있기에, 세상 밖으로 나오기가 두렵고 자존감이 떨어지며 위축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장애로 인해서 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잣대와 기준에서 조금 다른 외형과 내면을 가진 사람들도 겪는 삶일 것이다. 그래서 나와 어기뿐만 아니라 다르다는 이유로 편견과 차별을 덧씌운 시선을 감수하며 세상 밖으로 당당하게 나서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해야 한다.
이중에서도 특히 다수에 의해, 다수를 위해 설계된 도시와 공간의 높고 단단한 이중벽을 뚫고 세상 밖으로 나서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용기와 의지는 대단한 것이다. 무엇보다 영화를 보면서 뿌리깊이 박혀 있는 잘못된 인식으로 빚어지는 불평등과 불합리, 불의를 알리는 이들의 거리행진과 투쟁은 충분히 당위성이 있으며, 이 모습들을 그저 바라봐주고 응원과 지지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 이들의 이야기를 귀기우려 들어주는 것 등의 작은 행동들 하나하나가 세상을 바꾸는 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또한 갖게 됐다.
결국 <원더>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 하라.’는 격언을 지향하는 세상인 것이며,이는 또 우리가 가장 쉽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행동이기도 하다.
감상 포인트: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모두에게 친절 하라.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그저 바라보면 된다.’ 브라운선생님의 오늘의 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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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정 (자유기고가)
출처 : 웰페어이슈(welfareissue)(http://www.welfareissu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