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호>
동질성/ 황다연
혹독한 계절 이겨온 네 뜨락 매화처럼
그윽한 사람 만나 온종일 나눈 얘기
강물은 강물이 안다 하고 산은 산이 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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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장미/ 류미월
향 짙은 장미일수록
가시가 많다지
절창 한 수 짓기 위해
위리안치 시켜놓고
밤새워 허물고 쌓는다
말씀의 탑 우뚝 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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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부 환영 월부라사/ 조명선
양복 안 반듯하게 이름 새긴 월부라사
눈 한번 딱 흘기고 사연을 시침하다
항변도 끌어안는다 안녕한지 묻는 듯
돌고 돈 가슴둘레 마침맞은 이음 따라
진열장 앞 그 꼬마 아빠 되어 돌아왔듯
내 진작 말 안 했던가 사라지는 건 어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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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호>
까치놀/ 이선민
파도 앞에 설 때면
날이 선 주름을
잡았다 놓았다 당겨도 보았지만
물마루
팽팽한 북은
무두질에 붉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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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새꽃/ 김진희
누가 울고 있다
얼음사이 갇혀서
세찬 비를 맞으며
얼음 깨지는 소리
문간 앞 베이비박스
눈도 못 뜬 저 꽃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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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하늘 점묘화(點描畵) 1/ 송선영
하늘길 들숨날숨 양 날개로 만리 누빈
길손 그득 떼창 만세
뒤풀이 율동 중인 겨
하늘 못
보랏빛 한마당~
손차양해 너울 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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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호>
나의 봄/ 김영숙
환한 날 꽃과 함께
유모차 밀고 간다
아무도 타지 않은
봄을 혼자 밀고 간다
외돌진 끝 간 길에서
끝물 봄을 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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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박영식
문 앞에 놓여있는 태배를 풀어 본다
개나리 머리핀과 목련브로치 들어있다
아마도 옆집 여자인 걸 잘못 두고 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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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무게- 효정(孝庭)에게/ 백이운
굽은 듯 뒤틀린 어깨 털렁대는 비틀걸음으로
너는 온다 가을낙엽처럼, 봄 아이처럼 온다
껴안은 문장의 무게, 울며 웃으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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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토마토/ 서연정
농부 눈을 벗어나 몰래 익던 토마토
땀투성이 농장에서 가끔 있던 숨바꼭질
찾았다, 술래 로봇이 한눈에 잡아낸다
명령을 입력하고 마름을 훑어볼 뿐
시세에 머리 싸맨 주인이 모르는 새
로봇의 토마토들이 붉게 붉게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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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명창/ 이광
수없이 부서지며
득음을 이룬 파도
바람의 세찬 변주
너름새로 화답한다
절창에 꼼짝도 않고
흠뻑 젖는 갯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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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표문순
하얗게 뜸이 잘든 고슬고슬 마음처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아주 낯선 내 절망에게
한 마디,
"밥 먹고 가"라고
무심하게 잡아 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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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이 은총을 당긴다/ 한분순
나비는 달의 심장
별들은 신의 군대,
신앙처럼 깊은 밤
은하수에 띄운 꽃잎
넌지시, 선한 투지들
모든 것이 부드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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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의 성분/ 권선애
밑줄을 갉아먹는데 새 이빨이 나왔다
비린 손 어두운 손 편식하지 않아서
진하게 건드릴 때는 손톱에 살이 찐다
오늘을 생략한 채로 미래로 옮겨가면
가상의 얼굴들은 손끝에서 은밀해져
때 없이 닿기만 해도 웃음이 부어오른다
나에게로 돌아오는 감정을 찾지 못해
맨몸으로 건너가 차가워진 목록들
눈 코 잎 사라지는데 감촉만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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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 체/ 서숙희
체해야만 할 것
체하고야 말 것
급하게 급조해서 채워 넣은 날것들
날뛰고 뒤집히면서 소화되길 거부하는
삭지도 않고 펄펄
명치 위에 얹힌 것들
깨끗이 토해내고 죽어서 다시 쓸 것
피 냄새 훅 솟구치는 갱생의 첫 문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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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줄/ 정두섭
눈은 눈을 못 지워서 눈 안에 눈만 있어
마당을 돌돌 말면 눈사람도 삽을 들지
길 하나 꺼내 놓는데 나절가웃 지나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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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밤/ 조경선
얼마나 급했으면
몸만 빠져나와서
뒤돌아보지 않고
빨리 걷는 나에게
이보게 정신 차리게
머리가 뜨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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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문학지 속의 한 편
표지 시조미학/ 봄부터 겨울까지/ 2024
바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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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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