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혁명 직후 지금부터 7,8년 됩니다만, 그 당시 최고회의에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짜고 있을 때, 나는 전국의 산업시설을 시찰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1차 5개년계획을 세우자면, 우리나라의 산업 시설이 어떠한 산업시설이 얼마나 있고, 그 상태가 어떤가 하는 것을 알아야만 이러한 계획을 세우는데 참고가 될 것 같아서, 전국의 산업시설을 살펴보고 그 당시에 내가 느낀 소감은, 그야말로 우리나라에는 산업시설이라 할 만한 그런 시설이란 것이 별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을 그대로 이야기한다면 발전소 시설이 몇 개 있었습니다. 화천발전소, 청평발전소,
당인리화력발전소, 강원도 영월의 화력발전소, 이러한 것은 일제 때 일본 사람들이 만든 발전소입니다.
해방 이후에 정부에서 건설한 발전소가 마산에 한 5만kw 짜리 발전소가 하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경인지구나 대구, 광주 몇 개소에 방직공장, 직물공장 이러한 대부분이 일제 때 공장을 약간씩 확장을 해서 가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충주에 비료공장이 그때 하나 있었는데, 이것은 미국의 운크라 원조에 의해서 한 5, 6년 걸려서 완성이 됐는데, 5.16 혁명 그 당시에는 뭐가 잘 되어서 이 공장이 완전히 가동을 못하고, 가동을 하다가 중단을 하다가 여러가지 기술적인 검토를 하는 단계에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전라남도 나주에 호남비료공장이란 곳을 가보니까, 공장을 건설을 하다가 뭐가 잘못 되어서 중단 상태에 있고 뼈만 우뚝하게 서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나라 산업시설은 당시에 기억이 남는 것은 인천에 판초자공장이 하나 있었고, 부산에 가면 조선공사가 있고, 조선공사란 배를 만드는 공장인데, 당시에 가보니까 이름은 조선공사지만 배는 한 척도 만들지 못하고, 거기는 사장ㆍ부사장ㆍ이사들은 모두 앉아서 월급은 타먹고 있는 모양 같은데 배는 한 척도 만들지 않고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풀이 우북하게 자라 있고, 배를 만드는 조선 자재가 들어와 있긴 한데, 그것이 가져다 놓은 것이 오래 되어 뜰에다가 야적을 해서 뻘겋게 녹이 슬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내 인상에 가장 깊게 남아 있는 것이 우리나라에 있는 시멘트 공장 한 개가 비교적 충실히 가동을 하고 있었다 하는 겁니다.
당시 문경에 문경시멘트공장, 이건 대한양회입니다만 이것이 미국의 원조로써 이룩된 공장인데 약 20만톤급의 공장이 가동하고 있었고, 다음에 삼척에 동양시멘트공장이 약 60만톤 규모의 공장이 가동하고 있었고, 동양시멘트 역시 일제시대 만들어진 공장들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우리나라 시멘트가 동양시멘트와 문경시멘트를 합쳐서 한 40만톤 내지 한 50만톤의 시멘트를 우리나라에서 생산하고 있었다 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오늘 한일시멘트공장의 확장시설이 완공이 되고, 앞으로 며칠 후에 이달 말에 이 주변에 있는 성신시멘트공장이 완공됨으로써, 우리나라에는 금년에 벌써 650만톤의 시멘트를 생산하게 됐습니다.
따라서 5·16 혁명 당시와 비교를 하면 그야말로 금석지감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 7년 동안 우리나라에는 여러 가지 경제건설이 많이 되고 그야말로 건설의 붐 일어나듯 했는데, 이러한 건설이 이루어진 직접적인 원인의 하나가 우리나라에 시멘트가 많이 생산됐다 하는 것입니다.
이 650만톤이란 시멘트를 만약 우리나라에서 생산을 하지 않고 외국에서 우리가 돈을 주고 사온다면 돈이 얼마나 들겠느냐, 약 12억불 가까운 돈이 듭니다. 만약 이런 시멘트를 외국에서 우리가 달러를 써 가지고 수입을 해서 이런 공장을 짓는다고 하면, 도저히 이것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동안 1차 5개년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큰 공장, 작은 공장, 중간 규모의 공장 합쳐서 약 만여개가 섰습니다.
이런 공장들의 자재가 대부분 시멘트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큼직큼직한 댐을 많이 만들어 가지고 춘천댐이다, 의암댐이다, 섬진강댐, 요 며칠 전에 완공된 남강댐, 지금 공사중에 있는 소양강댐, 이런 데는 시멘트란 것이 무진장으로 들어갑니다. 또 우리나라에는 그동안에 많은 교량들을 만들었고, 항만의 부두시설, 또는 주택, 최근에 와서는 전신주도 옛날처럼 나무로 하는 것보다는 시멘트로 하는 것이 튼튼하고 오래 간다, 전신주도 지금 모두 시멘트로 바꾸고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아실 겁니다.
철도에 까는 침목 이것도 옛날에는 나무로 했는데, 최근에는 ‘피시 침목’이라 해서 시멘트 콩크리트로 하는 것이 훨씬 더 튼튼하고 오래 간다 해서, 우리나라의 침목을 이걸로 가지고 대체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 금년 우리 농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지하수개발사업, 가령 집수 암거나 관정 또는 보 이런데 전부 시멘트 들어갑니다. 전방에 우리 국군 장병들이 작년 금년도에 많은 진지에 보강을 하고 진지를 구축했는데, 일선 진지에 시멘트 철근이 무진장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여러분들 가정에 부엌에까지 시멘트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우리 시멘트공업이 그동안에 급속히 발전했기 때문에 이러한 건설이 이루어졌습니다, 금년에 우리가 650만톤이지만 내년 말에 가면 960만톤, 근 천만톤 가까운시멘트를 생산하게 됩니다. 71년도에 가면 천 백만톤을 훨씬 넘는 이러한 생산량을 가지게 됩니다.
오늘날 그 나라의 국민의 생활 수준, 문화의 수준을 측량하는데 여러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그 나라 국민들이 시멘트를 얼마나 쓰느냐 하는 이것을 가지고, 그 나라 국민의 생활 수준을 측정하는 하나의 척도로 하고 있다는 것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시멘트가 이렇게 많이 생산이 되고 건설에 도움이 됐다, 앞으로 보다 더 많은 시멘트를 생산할 수 있다, 하는 이것은 대단히 희망적인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원래 지하자원이 대단히 빈약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가장 다행한 일은 시멘트를 만드는 원광석 석회암만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무진장으로 있습니다.
이 한일시멘트의 원광석은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쌍용시멘트 대단위 공장 부근에 있는 그 원광석 지대는, 한 공장이 가지고 있는 원광석만 하더라도 약1억톤이 매장이 돼 있다 이겁니다.
지금 1년에 2백만톤만 생산하더라도 앞으로 500년 동안 매년 200만톤씩 파서 시멘트를 만들더라도 그야말로 무진장으로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 시멘트를 보다 더 많이 생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멘트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여러가지 부문에 건설에 이용이 되고 있지만, 농촌에도 시멘트가 점차로 들어가기 시작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농촌에 다녀 보면서 가장 하나 생각한 것은 여러분들 농민이 사는 주택입니다. 초가집 이것을 빨리 없애야 되겠습니다.
정부에서도 이것은 여러가지 연구를 하고 있는데, 나는 생각하기를 앞으로 우리 농촌의 주택 문제를 앞으로 3,4년 후가 될 것 같으면 정부의 재정 규모가 그만큼 커지기 때문에, 농촌 주택개량을 위해서 우리가 훨씬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질 것입니다.
이러한 전망과 또 한가지는 현재 우리나라에 시멘트공장이 많이 있습니다만, 이 공장들이 대부분 외국에서 차관을 해와서 외국에서 돈을 빌려와서 공장을 세웠습니다. 이 한일시멘트공장도 마찬가지로 독일에서 차관을 해와서 건설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공장들은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외국에서 꾸어온 부채를 원금과 이자로 갚아 나가야 됩니다.
원리금을 상환해야 되는데 앞으로 한 3,4년 지나면, 내 생각으로는 그동안에 빨리 건설한 공장은 외국에 돈을 다 갚는 상태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공장도 돈을 다 갚아 가는 그런 상태가 될 것 같으면, 이러한 공장들은 상당한 여유가 생길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생산한 시멘트를 우리 농촌의 농민들을 위해서 외상으로 많이 방출할 수 있는 그런 여력이 생길 것이다, 나는 이렇게 봅니다. 동시에 그 때쯤 가면 농민들의 농가의 소득도 훨씬 더 증대될 것입니다.
정부 투자를 많이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시멘트공장에서 시멘트를 농민들을 위해서 외상으로 많이 공급할 수 있는 시멘트공장 자체에서 그만큼 여유가 생기고, 농민들의 소득이 늘고, 이런 조건들이 어느 정도 성숙이 되면, 우리나라 농촌의 주택이란 것은 급속히 개량될 수 있다, 앞으로 불과 몇 년 동안에 거의가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나는 농민 여러분들이 여러분들 조상 대대 수백년 동안 오막살이 초가집에서 살아왔는데, 여러분도 보다 좀 더 노력을 하고 여러분들 농가에 소득이 좀 더 늘고, 또 정부가 이런 노력을 하고, 또 앞으로 시멘트 보급에 업계에서 농촌을 위해서 이만큼 협조를 하고 하면, 우리 농촌의 주택도 머지 않아 전부 해결이 될 수 있다, 이런 것을 농민 여러분은 아시기 바랍니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지금 정부가 농촌 주택 문제에 대해서 그다지 힘을 쓰지 않지 않느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물론 다른 것은 제쳐놓고 여기다가 중점적으로 투자를 하면 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 주택 문제보다도 보다 더 급한 일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우리는 한발 대책을 위한 농업용수개발이라든지, 농어민소득증대 사업이라든지, 또는 경지사업이라든지, 기타 농촌에 있어서 주택을 개량하는 문제보다도 앞서 할 문제가 있기 때문에, 거기 대한 투자를 뒤로 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앞으로 3,4년 후부터는 정부가 본격적으로 이 부분에 투자를 할 수 있는 전망을 내다보고있다, 하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나라에 시멘트공업협회에 있는 여러분들께서도 지금 내가 말하는 이러한 문제를 우리 정부 내에서도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만, 여러분들께서도 한번 잘 연구를 하셔가지고, 앞으로 몇 년 후에 가서 여러분들의 기업체가 대외적인 원리금의 상환이 거의 끝나고, 기업의 운영 상태가 현재보다 훨씬 더 좋아지는 그런 단계에 가서는, 우리나라의 큼직큼직한 양회협회에서 우리 농촌을 위해서, 특히 농촌의 주택 문제 해결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그런 문제를 여러분들도 많이 연구를 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이 공장은 64년도에 당시 40만톤규모의 공장이 준공됐을 때, 내가 이 자리에 다녀간 기억이 있습니다.
그동안 사장 이하 종업원 여러분들이 이 공장을 운영해서 우리나라 건설에 크게 이바지를 했고, 또 그러는 일방 이 시설의 배가를 위해서 또 여러가지 애로를 타개하고, 오늘날 백만톤 규모의 이러한 대단위 공장을 준공한데 대해서, 그동안 여러분들의 노고에 대해서 심심한 치하를 드리는 바입니다.
동시에 이 회사에 차관을 공여해준 독일의 본국 회사의 여러분들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리고, 또 이 지방 주민 여러분들이 그동안 여러가지 협조를 많이 해 주신데 대해서도 치하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