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와타나베 前도요타 사장. / 블룸버그
도요타 위기 부른 '와타나베의 저주'
미국 언론들은 도요타의 가속페달 결함에 따른 리콜 규모가 북미 지역에서만 800만대에 달하며 유럽·중국 등을 포함해 전세계에서 1000만대에 이를 것이라고 29일 보도했다. 도요타의 연간 글로벌 판매대수를 넘어서는 것으로 단일 결함에 따른 리콜건으로는 자동차 역사상 최대규모다.
리콜의 진원지 미국에서는 도요타가 판매중단을 발표한 26일(현지시각) 이후 TV 방송에 혼란상태에 빠진 도요타차 소유자들이 연일 등장하고 있다. 임산부가 나와서 "어떻게 나에게 도요타 자동차를 팔 수 있느냐"고 항의하는가 하면, 잔뜩 겁에 질려 "차를 운전할 수 없다"고 울먹이고 있다. 일본차를 주로 파는 '오토렌더 리퀴데이션 센터'의 톰 니컬러스씨는 "돼지독감이 발병했을 때처럼 사람들이 겁을 잔뜩 먹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및 글로벌 자동차 업계 전문가들은 '자동차 거인' 도요타의 위기에 대해 "언젠간 터질 문제가 터진 것"이라는 반응이다. 그동안 도요타의 최대 강점으로 꼽히던 '마른 수건도 짠다'는 강력한 원가절감이 지나쳐 '결국 수건까지 망가뜨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과도한 비용절감이 부른 역풍
전임 와타나베 사장 "부품값 아끼자" 집착… 품질 경쟁력은 외면해
일본 업계는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에 대해 오랫동안 내재돼 있던 위험이 폭발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자동차의 제품 기획·구매·설계는 판매로부터 최소 3~4년 전에 이뤄지기 때문에 지금 불거진 결함문제의 근원은 2000년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때문에 자동차 산업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2005년부터 작년까지 도요타 사장을 역임한 와타나베 가쓰아키를 지목한다. 실제로 도요타 내에서는 '와타나베의 저주'라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와타나베 전임 사장은 1964년 도요타에 입사한 뒤 총무·광고·비서실·경영기획실 등 다양한 사내 직책을 거쳤다. 그가 경영진의 눈에 띈 것은 90년대 초반 부품 구매부서를 맡게 되면서부터다. 그는 도요타와 타사의 경쟁모델들을 샅샅이 분해해 나사 하나까지 가격을 비교했다. 그후 부품 수와 재료 사용량을 줄이는 식으로 제품 원가를 어떻게 낮출수 있는지에 대해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았다. 와타나베의 성과는 경영진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결국 2004년 구매 담당 부사장, 2005년 사장에 오른다.
이번 도요타의 리콜 사태로 판매가 중단된 자동차 모델들은 대부분 와타나베가 제시한 계획에 따라 부품비용 절감이 진행된 이후에 나온 것이다. 도요타가 주력차종에 대한 부품가격 인하를 가장 강력하게 밀어붙인 시기에 기획된 제품이라는 뜻이다.
도요타에서는 이번 리콜의 원인이 북미 협력업체 CTS가 납품한 가속페달 부품의 결함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계 부품업체의 한 사장은 "자동차 부품은 안전과 직결돼 있기 때문에 내구연한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1990년대 이후 도요타 본사가 의도적으로 부품의 내구연한을 위험 한계까지 밀어붙이면서 부품 업체에 가격인하를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 미국 자동차회사 노조원들의 대표단체인 전미자동차노조(UAW) 회원들이 28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의 일본 대사관 앞에서“도요타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없애고 있다”는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도요타는 작년 말에 25년 이상 GM과 합작으로 운영해 온 캘리포니아 공장을 올해 3월에 폐쇄하기로 해 4500명 이상의 직원들이 실직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요타는 작년 하반기부터 불거진 가속페달 결함 문제가 전 세계로 확산, 판매 중단 사태는 물론 ‘품질의 도요타’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추락하면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 로이터연합
◆도요타도 '대기업병'
조직은 '대기업 병'에 걸려 윗사람들 눈치보기 급급… 직원들 "NO"라고 말 못해
이번 리콜 문제가 도요타의 대기업병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품질을 해칠 수 있는 과도한 원가절감에 대해 일선 부서에서 윗분들 눈치를 보느라 '노(NO)'라고 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경영진도 비용절감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도요타의 상징인 품질경쟁력 저하를 외면했다는 분석이다.
그 결과 도요타는 차량 결함을 알고도 이를 10년 넘게 은폐했다가 일본 당국의 조사를 받고 2006년에 와타나베 사장이 공개 사죄했다. 또 작년 말에는 미국 도요타의 전직 차량사고 소송담당 변호사가 '도요타가 차량 지붕강도 부족에 따른 사고 위험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며 도요타를 제소하기도 했다.
또 도요타가 2000년 전후부터 생산대수가 폭증했는데도, 이에 따른 충분한 인원 보충을 안하는 바람에 차량 품질 유지에 실패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도요타의 리콜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미국시장 연간 판매가 200만대를 넘어서면서부터다. 2004년 도요타의 리콜 대수는 판매대수의 절반을 넘겼고, 2005년에는 리콜대수가 판매대수를 넘어섰다. 2005년 일본시장에서의 리콜도 190만대에 달해 5년 전의 40배에 달했다.
◆현대차도 똑같은 위험 겪을 수 있어
"어떻게 이런車를 파나" 美소비자들 공포에 떨어… 현대·기아車도 긴장해야
도요타차를 몰다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도요타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진행하는 등 리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또 도요타 판매딜러, 렌터카업체, 차량경매업체들이 리콜·판매중단 사태로 큰 재산피해를 입음에 따라 이후 도요타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가능성도 나온다. 미 의회도 도요타와 미 도로교통안전국에 결함에 따른 잠재적 위험과 조사 및 해결을 위한 서류 제출을 요구했다.
한편 현대·기아차의 경우 이번 도요타의 리콜이 단기적으로는 판매 호재(好材)가 될 수 있지만, 똑같은 대량리콜 사태를 겪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도요타 사태의 주된 원인들이 현대차에서도 재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 납품업체 사장은 "현대·기아차의 부품공유·단가인하에 대한 집착도 도요타에 못지않다"며 "최근 글로벌 생산이 급증하고 있지만 인력·품질 관리에 실패할 경우 도요타와 똑같은 대량리콜이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