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벌(皆伐)한 사면을 오르는 중
아무 달 아무 일
어제, 오늘, 내일도
우주 공간에 이어져 있을 뿐이다
천체의 자전으로 낮과 밤이 갈릴 뿐이다
하나의 천체에 수없이 많은 별이 있다
천체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도
어제와 오늘이 이어져 있다
--- 최명운,『한 해의 끝자락 한 해의 시작』에서
▶ 산행일시 : 2013년 1월 12일(토), 흐림
▶ 산행인원 : 11명
▶ 산행시간 : 9시간 25분
▶ 산행거리 : 도상 11.8㎞
▶ 교 통 편 : 25인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06 : 32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8 : 57 - 제천시 덕산면 선고리(仙古里) 웃말교, 산행시작
11 : 00 - 1,069m봉
11 : 55 - 매두막(鷹頭峰, 1,115m)
12 : 10 - 헬기장 지나 점심
14 : 25 - 문수봉(文繡峰, △1,161.5m)
15 : 15 - 암릉
15 : 32 - 1,083m봉
15 : 45 - 안부
16 : 05 - 954m봉 직전 북진
16 : 25 - 880m봉
17 : 25 - 826m봉
17 : 45 - 석이봉(808m) 전위봉에서 왼쪽 지능선으로 탈출
18 : 12 - 농로
18 : 22 - 제천시 덕산면 도기리(道基里) 다락골, 산행종료
1. 웃말 주변
▶ 매두막(鷹頭峰, 1,115m)
새벽녘 아파트를 나서자 가로등 불빛 아래 백설이 난분분히 군무(群舞)하고 있어 이 가경을
한참동안이나 멍하니 바라본다. 까맣던 보도는 금세 그 무수한 설편(雪片)으로 하얗게 덮인
다. 뜻하지 않은 설경의 망연(茫然)한 감상은 강변역으로 가는 버스가 오자 끝나고 설편의 군
무는 애물로 변한다. 매두막 들머리로 가는 도로가 괜찮을까?
날이 밝자 눈발 그쳤지만 하늘은 찌뿌둥하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괴산IC에서 빠져나와 살
미 충주호반 36번 국도와 덕산 성천변 534번 지방도로를 살살 달리다 간디학교 지나 웃말에
서 멈춘다. 산행복장은 차안에서 이미 다듬었던 터라 우르르 내려 바로 대천인 성천(星川)을
웃말교로 건너고 숲안말로 들어간다. 동네 개들이 궐기하여 짖는다.
숲안말 외곽으로 돌아 고추밭과 옥수수밭 가로질러 산기슭으로 접근한다. 대장(대간거사) 뒤
따르는 발걸음이 수월할 리가 없다. 멋모르고 잡목 숲 가파른 사면을 일로직등하다 뒤늦게 문
리(文理)가 트여 옆의 개벌(皆伐)한 사면으로 비켜간다. 매두막 오르는 능선이 지도에는 장쾌
하였지만 실지(實地)는 험난하다. 거기까지 3㎞. 고도차 765m. 1,069m봉에서 잠깐 멈칫할 뿐
줄기차게 오른다.
벌목한 사면에는 가시덤불이 극성이다. 가파른 설원 한 걸음을 돌아가기 싫어 들입다 무찌르
다 형극의 길임을 통감(痛感)한다. 개벌한 사면을 지나 숲속에 들자 색 바랜 산행표지기가 앞
서간다. 우리 걸음이 조금은 멋쩍다. 메표 과메기에 주력(酒力)을 얼근히 보충한다. 그래서일
까? 일직선으로 힘차게 뻗은 1급 슬로프를 오뉴월 진땀으로 범벅이 되어 오른다.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나무 끝 훑는 굉음에 지레 움츠러들어 고개 숙인다. 새해 들어 눈이 더
침침해졌는가 하고 괜히 의심했다. 바람 닿는 모든 물상에 상고대 서리꽃이 움트는 중이라 희
뿌옇게 보였다. 색 바랜 산행표지기는 우리 행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눈길에 인적
은 없다. 종종 수적(獸跡)이 반갑고 그에 따라간다.
1,069m봉. 2㎞ 오는 데 2시간이나 걸렸다. 야트막한 안부 바람 막는 사면에 들어 잠시 휴식한
다. 더덕아, 너 보이면 너 죽고 나 죽는다. 뭇 덩굴줄기마다 상고대 분칠하여 더덕의 위장을
도왔지만 초롱의 건화(乾花)는 어쩔 수 없어 그 근원을 찾아 언 땅을 바위인지 흙인지 불꽃 튀
기며 파는 데 정작 죽어나는 것은 우리다. 이후 건화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셈으로 절대 건
들지 않는다.
표고가 비슷하여 영진도엽의 매두막(△1,099.5m)을 넘어 1,115m봉까지 간다. 국토지리정보
원의 지형도는 1,115m봉이 매두막이다. 현지 주민들은 응두봉(鷹頭峰)이라고도 부른다는데
‘매’는 우리말로 쓰고, 머리는 한자 ‘두’로 썼다.
2. 매두막 가는 길, 산자락 옥수수밭을 가로질러
3. 개벌한 사면. 듬성듬성한 나무는 모수(母樹)
4. 매두막 가는 길, 뿌연 것은 상고대 눈꽃 움트는 중
5. 작업 중, 지켜보는 가자산 님과 작업하는 대간거사 님
6. 매두막 가는 길
7. 매두막 정상 주변
▶ 문수봉(文繡峰, △1,161.5m)
안개가 짙어 어디에서고 조망은 무망하다. 문수봉 가는 길. 쭉쭉 내린다. 점심 자리 펼 곳 찾
는다. 너른 헬기장 억새 숲이 그중 안온하여 둘러앉으려고 하니 바람이 심술부려 쫓아낸다.
고른 곳마다 그런다. 맞장 뜬다. 해바라기꽃 만큼이나 큰 더덕 건화 옆 난데에 퍼질러 앉아 매
운바람의 서슬을 버너 피워 눅인다.
다시 한 차례 뚝 떨어져 오두현재. 아마 조두현(鳥頭峴)을 오두현(烏頭峴)으로 착오했으리라
생각한다. 고개 이름으로 조두치를 흔히 보기 때문이다. 매두(막) 아래 고개이니 차라리 매두
현이나 응두현이 아닐 바에는 새 이름을 하필 까마귀로 특정하지 않는 조두현이라고 하는 편
이 낫지 않을까?
문수봉 오르는 길도 되다. 958m봉 오르면 널널할 줄 알았는데 웬걸 본격적인 오르막은 이제
부터 시작된다. 이 길을 기억하고서는 두 번 다시 오지 못할 데다. 등로였을 능선 마루금에는
눈이 잔뜩 쓸려 있어 감히 뚫지 못하고 양쪽 사면으로 번갈라 비켜서 잡목 헤친다. 고도 높아
상고대는 한창이다만 이에 비례하여 대기가 차디차다.
문수봉. 안개가 끼어 사방 먹먹하다. 내 적덕이 부족함을 탓해야 할까? 올 때마다 날이 궂어
아무 조망하지 못한다. 문수봉 내리는 길은 봅슬레이 코스로 닦였다. 일단의 등산객들이 문경
시 동노면 건학마을에서 올랐다가 그 길로 내렸다. 스키 타듯 미끄러져 내리니 순식간에 ┼자
갈림길 안부다. 세 사람(자연, 메아리, 가자산)이 왼쪽 도기리로 탈출한다.
눈이 깊다. 등로는 눈이 더욱 깊어 주로 사면으로 피해 간다. 1,083m봉 오르막은 완만했는데
내리막은 전혀 딴판이다. 급전직하로 떨어진다. 오르지 않고 내려가기 망정이다. 이런 가파른
데서는 앞사람의 눈길 러셀을 따르기보다 눈밭 새로이 지치는 편이 제동(制動)하기 좋다. 안
부. 절리 예리한 암릉으로 살짝 이어진다.
뒤돌아서 방금 내린 1,083m봉을 고개 젖혀 올려다보니 중천에 우뚝 솟은 첨봉이라 내 발걸음
의 자랑이다. 경상북도 도계탐사 표지기와 함께 간다. 954m봉을 150m 앞에 두고 북진한다.
한 차례 뚝 떨어졌다가 약간 올라 880m봉. 지체없이 바윗길을 급히 내리쏟는다. 선두 해마 님
은 어제 술 해장하려 막 내뺐고 그 뒤를 대간거사 님이 바짝 붙었다.
그러나 방향착오. 880m봉에서 북서진하여야 하는데 북동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 따
라 880m봉을 내리다말고 알아챈다. 그들은 육성이 닿지 않을 정도로 멀리 가버려 전화하여
그들의 발걸음을 뒤돌게 한다. 모처럼 웃을 일이 생겼다고 좋아했는데 그게 싫었는지 그 둘은
880m봉 사면을 대 트래버스 하여 711m봉 오르기 직전 안부에서 도기리로 탈출하였으니 오
히려 남은 자들이 물 먹은 셈이 되고 말았다.
880m봉에서 북서진하는 도계도 겁나게 떨어진다. 날이 우중충하여 산그늘은 더욱 어스름하
다. 왜 모녀재(毛女峙)를 가는가? 멀로리 답변으로 대신한다. 모녀재가 거기 있어 간다!
711m봉 넘어 826봉 가는 길이 멀다. 모녀재를 가지 않을 핑계를 만들어낸다. 모녀재는 534번
지방도로가 넘어가지만 해발 630m나 되는 고지의 임도여서 차량통행이 어렵다. 하물며 적설
기에는 아무리 두메 님이라도 감당하지 못할 고개다.
하여 우리도 탈출을 모의한다. 826m봉 넘고 석이봉 가기 전 왼쪽의 엷은 지능선이 적당하다.
배낭 털어 먹고 마셔 허기를 달래고 북사면 설원을 줄달음하기 시작한다. 18시. 헤드램프 점
등한다. 서로의 불빛으로 인원 파악한다. 산기슭 덤불숲 빠져나오니 묵밭이다. 이윽고 대로인
농로. 수안보 온천장 문 닫을라 잰걸음 놓는다.
8. 문수봉 가는 길
9. 문수봉에서
10. 1,083m봉
11. 가야 할 설원
12. 넘어온 1,083m봉
13. 826m봉 가는 길
14.
14. 산행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