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연말에 제 삶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큰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의 절망 속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고, 하루 2시간도 채 잠들지 못하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그 시간을 견디며, 막막한 현실에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왜 자꾸 나에게는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공부를 시작하고 나는 내 마음의 고통을 잘 느껴주고 수행해가며, 조금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믿었었는데 왜 이런 내가 감당키 힘든 일이 자꾸 생길까 하는 분노와 절망, 두려움들이 사정없이 밀려들며, 그렇게 외부의 상황과 마음의 요동침을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2주가량을 보낸 후 저는 제 마음과 삶에 대한 커다란 관점의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도대체 왜 일어나는 걸까 하는 고민은 결국 버림받고 외면당한 마음이 자신의 존재를 외면한 저에게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0월 경 학교 표현예술치료 수업에서 몸 작업을 하던 중, 호흡을 크게 몰아쉬게 되던 중 몸에 큰 떨림이 생기며 호흡을 따라 가슴에 맺힌 마음의 아픔이 딸려 올라오는 것을 느꼈고, 그 마음은 저에게 "너는 도대체 어디를 보고 있는 거야? 네가 나를 안 봐주면 나는 어떡하냐고!"라고 말하는 듯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고, 그 시간을 통해 외면당했던 나의 마음의 상처와 외로움을 처음 제대로 만나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기점을 시작으로 저는 마음을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제 지난 시간이 사실은 마음 챙김의 과정을 그 마음을 수용해주는 것이 아닌, 버리고, 외면하고, 도망가기 위한 도구로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 똑똑한 기술자가 된 것이었죠.
나에게 벌어지는 현재의 큰 고통이, 그 외면당한 마음이 저에게 복수하기 위해 외부의 현실로 고통을 끌어당겨 왔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마음이 나에게 제발 자신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고, 너무 외로워 힘들고 상처받아 힘들다고 외치는 절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어떤 마음도 버려져야 하는 존재는 없었고, 내가 마주하기 싫은 마음일수록 나를 위해 애쓰고 상처 입고 피 흘려가며 버텨주었다는 걸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었고, 그 마음들은 저에게 버려져 우리가 흔히들 이야기하는 지옥이라고 하는 어둡고 외로운 공간 속에 방치되어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들에게 희망은 없었고, 자기들이 필요한 순간에만 저에게 꺼내져 더 큰 상처를 받고 다시 버려지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비참한 존재들이 또 있을까요.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인정받지는 못해도 버려지고 싶지는 않았을 텐데요. 처음부터 그 마음들도 자신들의 존재가 두려움, 수치심, 열등감으로 불리었을까요. 사랑하는 나라는 존재를 보호하기 위해 애쓰던 마음이었을 뿐 그들도 고통받기 싫었을 텐데요. 그렇게 힘든 역할을 하고 버려진 그 마음들은 저를 미워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존재를 알아주고 곁에 있어 주길 바라는 따뜻함만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 마음들은 제가 잘못되었다고 고치려 하고, 판단하고, 수치스럽다고 미워할 때 더 큰 고통을 받고 더 깊은 곳으로 숨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지장보살이 부처가 되길 포기하시고 들어간 지옥은 바로 이 외로운 영혼들의 세상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지옥에 빠져버린 아픈 마음들을 외면하지 않는 대자대비의 마음인 것입니다.
제가 이 마음들의 고통을 알아주고 받아들여 주기 시작하자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심리학 공부를 하며 자아는 무의식을 억압하는 세상에서 사회적으로 기능하게끔 하는 껍데기 정도로 취급하고 있었는데, 이 껍데기인 자아도 얼마나 아픈 존재들인가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를 파괴해버릴 것만 같은 그림자들의 짙은 공포, 수치심, 열등감의 몸부림에서 저를 보호하기 위해 이 자아들도 얼마나 분투했는지를 알게 되었고, 이 자아와 무의식의 그림자가 만나 서로의 아픔을 이해해 줄 수 있었어야 했는데, 저는 어느 한쪽을 버리거나 둘 다 버리는 방향으로 저를 파괴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림자만 자아라는 껍데기 속에서 고통받고 있던 존재가 아니라 외면의 나도 외부의 위험한 상황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겁니다.
트숨을 다녀온 기점으로 몸과 마음의 작용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호흡을 통해 몸 작업을 진행하며, 저는 몸에서 일어나는 사후 경직의 체험과 제어되지 않는 강한 경련을 느끼기 시작했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의 요동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자아의 껍데기가 위험하다고 이대로는 죽을 거 같다고 두려워 몸이 더욱 굳어가며 경련이 강하게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던 자아라는 껍데기는 감정의 분출을 느끼며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강렬한 감정과 자아가 만나 저의 통제가 무너지기 시작하며 강렬한 반응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마음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마. 우리가 알아서 할 꺼야."라고 하며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각자의 표현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고, 그 과정의 지속에서 저는 몸과 마음의 연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아와 그림자는 자신들이 살기 위해 상대를 죽여야 하는 관계가 아닌 서로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저를 보호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간화선을 다녀오며 느낀 제 가슴에 박혀있는 커다란 비수라고 표현했던 그 감정이, 실은 저를 향한 비난과 경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에 대한 비난을 멈춘 저의 마음의 비수는 그 순간 눈물이 되어 제 가슴에 쏟아져 내렸습니다. 매우 깊은 정화가 긴 시간 이어졌고, 저를 죽여가던 비난과 경멸은 세상이 아닌 제가 저 스스로에 내리던 형벌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삶에서 저에게 일어난 시련은 제 인생에서 버림받은 저를 만날 수 있게 된 축복으로 바뀌었고, 삶의 흐름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정말 완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과정을 생각해 봅니다. 얼마나 전심전력으로 제 마음에서 도망가며 살았는지요. 그렇게 도망쳐도 왜 내 인생에서 자꾸 같은 시련이 반복되는지를요. 이제는 받아들이고 제 마음과 삶과 싸워 이기기를 포기합니다. 이것이 저의 그라운딩이고, 수용이고 자비입니다. 삶의 어떤 시련이 와도 그로 인해 감당하지 못할 공포와 아픔이 밀려와도 이제는 믿습니다. 삶은 나를 벌주지 않는다는 걸,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사랑받아야 할 존재들을 만나는 삶의 안배라는 것을요.
태어나 40년의 세월을 살고 나서야 처음으로 저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 삶의 흐름을 받아들입니다. 제가 제 마음을 사랑하듯 이제 타인과 세상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 마음에서 도망가지 않고 삶과 사람을 사랑하고 살기를 원합니다. 제 마음속에도 이제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로저스 박사의 말을 이제 이해합니다. 나는 나의 모든 감정을 사랑하고 그들이 사랑받길 원합니다. 지장보살의 말을 기억합니다. “내가 지옥에 들어가지 않으면 누가 지옥에 들어가겠는가?” 스스로의 마음의 지옥에 갇혀 외로워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고, 그것이 제 소명이 되길 바랍니다.
첫댓글 부엉이 님, 피를 토하는 심정과 아픔과 그 간의 삶... 얼마나 괴로우셨을까요...극심한 자기소외 속에서.... 이제라도 출구를 발견하심에 큰 축하를 드립니다. 큰 고통과 방황은 더 큰 깨달음을 안겨주리라 믿습니다. 깊고 아픈 마음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 몰라 김명권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