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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모른다 』
제목은 맞는 것 같다. 당신이 바로 나다. 내가 아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우크라이나가 소련일 때는 찍소리 못하다가 독립한 후 목소리를 내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하겠다고 하고, 21세기 들어서 있은 크림반도 전쟁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땅을 불법으로 차지한 것에 반발하면서 고토를 회복하겠다고 나서고, 이에 러시아가 군대를 동원해 자신들 쪽으로 기운 사람들을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고, 거기다가 푸틴 대통령의 야욕이 전쟁을 확산시켰고, 서방은 똘똘 뭉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함으로써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내가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이 전쟁을 뜯어보기 위해 이 책을 잡았다.
“전쟁의 책임을 러시아의 선제적 침략에만 맞춘다면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이 전쟁이 러시아 때문이고, 침략으로 빼앗아간 영토를 수복하지 않으면 협상은 없다고 공언한다. 그런데 러시아는 점령한 영토를 되돌려줄 리가 만무하다. 결국 무력으로 회복해야만 한다.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해도 러시아를 패퇴시켜 점령지에서 몰아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저명한 국제문제 패널과 저널들은 이 전쟁이 ‘동결된 전쟁(foreign war)’이 될 수밖에 없고, 결국 한국전쟁과 같은 식의 해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휴전선처럼 현 전선에서 큰 변동 없이 전투가 계속되다가 여론과 상황에 밀려 정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상대방을 악마화(프로파간다)하고 박멸해야 한다는 인식하에서는 결국 전쟁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여성평화운동단체인 ‘코드핑크’- 평화를 위한 여성 공동체 창립자이기도 한 저자인 메디아 벤저민과 전보적 활동가며 언론인인 니컬러스 데이비스는 종전과 평화를 위해서는 먼저 이 ‘전쟁의 원인과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주변의 요구를 받고, 전쟁 발발 몇 개월 뒤, 단 2개월 만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은 전쟁 초기인 2022년 상반기를 다루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의 반격 공세가 성과 없이 지지부진한 2023년 하반기 상황까지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전쟁은 베트남전, 이라크전, 아프간전과 같이 처음의 호전적 열광이 사라지고 곧 피로감이 몰려오면서 사람들은 왜 이 전쟁이 일어났는지 비로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 전쟁은 우리가 아는 2022년 2월 24일 시작한 것이 아니라, 1주일 전인 2월 18일에 이미 시작됐다고 한다. 전쟁을 만나러 가 본다.
푸틴과 오바마는 이란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 의혹을 해결하기 위해 이란 핵 합의, 즉 포괄적 공동 행동계획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상황은 악화되었고, 사건들은 우크라니아, 러시아, 미국 그리고 서방 동맹국들이 전쟁에 이르게 되는 결정적 국면을 맞았다. 우크라이나가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새롭게 시작된 냉전의 도가니가 되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동남부와 수도 키이우는 과거 수 세기 동안 러시아 영토였고, 서부는 17∼18세기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연방의 영토였다. 1793년에 이르러서야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로 분할되었으며, 1922년 통일된 우크라이나는 새로 만들어진 소련의 일부가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쟁터가 되어 독일 편에 서기도 하고, 유대인 학살과 폴란드인 인종청소에도 개입한 곳이다.
그전에도 그랬지만, 2014년 이후에도 러시아-우크라이나, 러시아-미국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고,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힘이 곧 정의’라는 논리로 유엔헌장을 짓밟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우크라이나 민중들은 무자비한 러시아의 침공과 서방의 놀라운 오만과 어리석음이라는 설상가상의 상황에 의도치 않게 끼어들고 말았다. 갈등의 한쪽에는 갈등을 유발한, 더 공세적인 미국과 나토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은 러시아가 있다. 비극적이게도 이 갈등에 대한 대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군인들, 그리고 다수의 무고한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이 치르고 있다.
이 전쟁을 평화롭게 종료할 방법은 정말 없는가? 누가, 그리고 무엇이 외교적 협상을 막고 있는가? 인류는 핵전쟁에 얼마나 더 가까워지고 있는가? 우리에게 가능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세계가 어떻게 이러한 심각한 상황에 봉착했으며 우리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이해하고 설명할 방법은 없는가? 그것을 찾던 〈OR출판사〉가 반전주의자인 저자들에게 그것에 대한 입문서를 써 달라고 했고, 저자들은 그것을 단 두 달이라는 기록적인 단기간에 완성해 냈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여러분이 이 비참하고 분별없는 전쟁을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에서 반쿠데타 시위가 퍼져나가며 크림반도 의회는 지역 행정부를 해산하고, 지역의 미래를 주민투표에 부쳤다. 3월 16일 투표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소련에서 독립할 당시보다 더 많은 97%(투표율 81%)가 우크라이나에서 분리, 러시아와의 통합을 선택했다. 유럽과 미국은 투표가 불법이었다고 비난했지만, 크림반도에 주둔한 우크라이아 병력의 절반 이상이 러시아군에 귀순했고, 3월 19일 우크라이나 군대는 군사적 충돌 없이 크림반도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돈바스 지역에서 유혈 전투가 수개월 이어지자,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평화협정이 개최되었고, 2014년 9월 5일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끝내고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민스크 의정서를 러시아, 프랑스, 독일, 유럽안보협력기구와 체결했다. 이 휴전협정은 중화기가 허용되지 않는, 30㎞ 비무장 완충지대를 설정하고 양측의 전쟁포로 석방을 명시했다.
2차 민스크 협정은 최악의 내전을 중단시키는 데 성공했다. 2014년부터 2021년 사이에 총 1만 44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최소 3400명은 민간인이었고, 4400명은 친정부 전투원이며, 6500명은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 병사들이었다. 평화적이고 영구적인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피비린내 나는 갈등으로 발전할 위험이 상존하는 ‘동결된 갈등’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비극적이게도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고, 쿠데타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유럽연합 가입 협정을 체결했지만, 당시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럽연합과의 험난한 협상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크라이나의 만연한 부패, 정치적 혼란, 지역적 분열 문제를 해소하는 데 실패한 역사로 인해 유럽연합 지도부는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 시도를 잘해야 장기적인 과제 정도로 미루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16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융커 의장은 실제로 우크라이나가 유렵연합에 가입하는 데는 20∼25년 정도가 더 걸릴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2017년 1월 버락 오바마에서 도널드 트럼프로 대통령이 바뀐 미국 정부는 중동 주변에서 계속되는 미국이 관여한 전쟁들에도 불구하고 2018년 〈국방전략서〉에서 “미국의 번영과 안보에 대한 주요 과제“로 러시아 및 중동과의 ‘장기적 전략 경쟁의 재현’을 명확히 규정하는 방향으로 미국의 군사정책을 변경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러사아의 꼭두각시로 매도하려는 민주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지원을 금지한 오바마의 정책을 뒤집었고, 영국과 프랑스 등 다른 나토 국가들도 미국의 선례를 따랐다. 그에 따라 대량 살상무기들이 우크라이나에 도착하기 시작했고, 대대에서 연대로 지원이 커졌다.
우크라이나는 2019년 대선에서 젤렌스키 현재의 대통령이 유명배우이자 코미디언으로서 당선됐다. 젤렌스키는 2015년 「인민의 종」이라는 풍자 드라마에서 우연히 대통령이 되는 교사 역할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면서 유명인이 되었는데, 그것이 현실로 바뀐 것이다. 그는 오바마가 우크라이나의 실제 대통령이라고 농담을 하거나, 나치 경례를 하는 우파들을 조롱하기도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동부와 크림반도 주민들은 러시아어를 사용합니다. … 그들의 문제에 간섭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을 그냥 그대로 놔둬야 해요. 그들에게 법적으로 러시아어를 말할 권리를 줘야 하고, 언어가 우리나라를 분열시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유대계이고, 러시아어를 쓰며, 우크라이나 시민입니다. 저는 이 나라를 사랑하고 다른 나라의 일원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고 말하면서 과반수가 넘는 지지를 받고, 결선투표에서 73:24로 포로센코를 누르고 대통령이 되었다.
바이든이 취임한 후 돈바스 지역의 내전이 격화된다는 루머가 퍼지고 젤렌스키는 2021년 3월 24일 러시아로부터 크림반도를 수복하는 것이 우크라이나 정책이라고 선언했다. 이어서 4월 3일 세르게이 랍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민스크 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무력을 사용한다면 ‘민간인 및 군인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젤렌스키에게 보고했다. 젤렌스키는 이 자문을 받아들여 새로운 휴전협정을 요청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2022년 1월 우크라이나는 트르키예제 드론 20대 보유하고는 드론 사용법 훈련을 받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우크라이나에 2억 2500만 달러 규모의 군사 지원을 했고, 2014년부터 치면 25억 달러에 이른다.
그 사이 러시아는 더 많은 병력을 국경에 배치했고, 2022년 2월 21일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을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두 나라와 친선 및 상호 원조 협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실제 실현과 상관없이 왜 중요한 위협으로 인지하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러시아는 수차례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을 부정했으나, 결국 2022년 2월 24일 침공했다. 동부의 돈바스 경계선뿐 아니라 크림반도와 경계를 이루는 실질적인 남부 국경선과 키이우, 수미, 하르키우 북부 국경선을 넘어 다방면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 침공은 불법적이었다. 자위적 차원의 행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유엔의 승인도 받지 않았다. 러시아군이 키이우와 다른 도시들로 진군해가면서 많은 여성, 아동, 노인이 고향에서 피난길에 올랐고, 우크라이나를 떠나야 했다. 7월 무렵에 550만 명이 피난 혹은 망명을 선택했고, 770만 명은 우크라이나 내의 피난민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국민 약 30%가 고향을 떠나 피난민 처지가 되었다.
전쟁 초기에는 전쟁이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러시아가 빠르게 우크라이나를 정복하고, 친러시아 정부를 수립 할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격렬한 저항으로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8년간 미국과 나토가 매년 최소 1만 명이 참여하는 각종 군사 강습과 훈련으로 정예 병력을 양산해 왔다는 사실과 나토 회원국들이 전쟁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왔다. 돈바스에서의 갈등을 이를 위한 시험장으로 사용됐다. 2021년 7월 나토와 우크라이나는 흑해에서 해군 훈련을 실시했는데, 이에 대해 러시아는 ‘흑해를 군사적 벼랑 끝 전술로 밀어 넣으려는 시도’라고 비난했지만, 호주까지 포함하여 32개국이 이 훈련에 참여했다.
전쟁의 흐름이 바뀜에 따라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러시아 침공 직후 미국은 3억 5000만 달러에 이르는 군사 지원을 했고, 5월까지 37억 달러, 2022년 말까지 670억 달러의 군사지원과 460억 달러의 기타 지원을 미 의회가 승인했다. 무기 지원은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다. 우크라이나에 홍수처럼 쏟아진 무기들은 분명 러시아군에 맞서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대다수 회사들이 전쟁의 슬럼프에 빠진 와중에도 록히드 마틴, 레이시언, 제너널 다이내믹스, 노스톱 그루먼과 같은 미국의 대형 무기 제조사들의 주식 가격은 급등했다.
나토 국가들은 단순히 무기를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밖에서 여전히 군사훈련을 제공하고 러시아 작전에 대한 실시간 군사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 전쟁이 러시아의 기대처럼 흘러가지 않고, 러시아군이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과 함께 대중이 전쟁의 실상을 목격하게 되면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른 푸틴을 처벌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거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요구가 끓어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20여 년간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전쟁은 최소 10개국에 걸쳐 광범위한 인적·물적 피해를 초래했고, 이것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현재까지 자행한 것을 능가한다. 민간인들의 희생은 부수적 피해 정도로 묘사되면서 서구의 대중에게는 전쟁의 참상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가려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가장 비극적인 아이러니는 끊임없는 확장과 적대적인 행동으로 우크라이나 갈등의 근원을 제공한 ‘나토’라는 기구를 결과적으로 더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나토의 확장은 러시아의 핑계일 뿐이라고 서방에서는 강변해 왔다. 우크라이나는 경제적, 사법적 차원의 개혁 없이 나토에 가입할 수 없었으므로, 푸틴은 단순히 우크라이나를 지배하고자 하는 자신의 제국주의적 구상에 나토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미국과 캐나다, 서유럽 10개국은 1949년 ‘나토’라는 군사동맹을 결성했다. 소련과 공산주의를 봉쇄하고 서유럽의 침탈을 저지하기 위해서 뭉친 것이다. 나토는 핵무기 동맹이기도 하다.
나토가 창설되고 얼마 뒤인 1955년 5월 소련과 그 주변의 동유럽 사회주의 7개국은 이른바 ‘바르샤바조약기구’를 창설했다. 미국과 소련은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냉전 기간 동안,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세계를 핵전쟁 벼랑으로 몰아갔던 것처럼 대리전을 통해 경쟁했다. 하지만 두 세력은 인류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핵무기를 쌓아 올렸음에도 서로 직접적인 전면전은 피해왔다. 1991년 소련의 해체와 함께 바르샤바조약기구는 공식적으로 해산됐다. 그 시점이 냉전도, 나토의 임무도 끝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러나 나토는 해산이 아니라, 최초에 12개국이었던 회원국을 30개국으로 늘렸고 호주, 콜롬비아, 이라크, 일본, 한국, 몽골, 뉴질랜드, 피키스탄과 같은 나라들을 군사적 ‘국제협력국’으로 참여시키면서 명실상부한 글로벌 군사동맹으로 변신했다. 1998년 바르샤바조약기구 가입국이었던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세 나라를 가입시켰고, 그 결과 나토는 러시아 국경과 맞닿게 되었으니 이는 이후 수차례 이어진 나토 가입 물결의 시작일 뿐이었다. 2004년 발트 3국인 에스토니아, 리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동유럽 7개국이 나토에 가입했다. 발트 3국은 과거 소련에 속한 것은 물론 차르 시기에는 러시아 제국의 일부였다. 이들이 러시아 국경으로 팽창한다면 결국 정면 대결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하는 이유가 명백하다. 만약에 나토가 평화를 유지하고 전쟁을 예방해온 역사를 가졌다면 나토의 성장이 러시아에 그렇게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토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려는 계획은 쿠치마 대통령의 실행계획에 서명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쿠치마를 이은 유셴코는 2005년 부르쉘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초청받았으나,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에 나토 가입을 위한 분명하고 즉각적인 로드맵 제공을 원했고, 독일과 프랑스가 이를 거부했다. 2010년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나토 가입 추진을 포기했지만, 2014년 쿠데타로 그가 축출된 이후 나토는 다시 우크라이나 가입을 추진했고, 2020년 젤렌스키 대통령이 나토가입을 추진하기 위해 나토와 협력국관계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하였음에도, 트럼프 정부가 오바마 정부의 무기 제공금지를 폐기함으로써 2020년 호주처럼 가장 긴밀한 여섯 개 동맹국에만 주어지는 소위 ‘확대 기회 협력국’이라는 특별 지위를 우크라이나에 부여하며 협력을 강화했다. 그러나 푸틴에게는 구소련 기둥 중 하나였고 러시아아도 강력한 역사적 관계가 있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한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금기였다.
향후 10년간 나토의 역할을 정의하기 위해 작성된 〈나토 2030〉에는 중국과 러시아는 나토 과녁에 정면으로 배치한다. 미국과 나토는 두 나라를 중요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반면, 유럽 재계는 이들을 주요 파트너로 보았다. 2020년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유럽연합의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했으며, 유럽연합에 러시아는 석유·가스의 최대 수출국이었다. 2020년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 가입 신청서를 냈고, 이는 이전까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들과 러시아와의 갈등은 1280㎞에 이르는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핀란드의 나토가입에 위협을 느낄 것이 뻔하다.
2017년 미국은 이라크의 두 번째 큰 도시 모슬을 폭격해 13만 8000호의 건물을 파괴했고, 그로 인해 4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가한 폭격보다 더 많은 것이었다. 하지만 서방의 기자들은 이라크 민중의 고통을 우크라이나인들의 고통처럼 기록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구 침략자들에 맞서 용감히 싸우는 이라크인들을 알리지도 않았고, 그들은 이라크인들을 학살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덧칠하는 미국의 선전전을 충성스럽게 반복해서 쏟아냈다.
《뉴스위크》는 러시아군이 아동들의 방과 침대 밑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우크라이나 폭발물 처리반 팀장의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보도하는가 하면 겨우 한 살짜리 남아가 두 명의 러시아 군인에 의해 강간당한 후 사망했다는 입중 되지 않은 주장이 언론 매체에 보도되는 일은 더욱 휘발성이 강한 사건이었다. 강간은 전쟁의 무법 환경에서 민간인, 특히 여성에게 가해지는 끔찍한 창상 중 하나다. 강간은 이라크에서 미군에 의한 고문 방법 중 하나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근거한 기삿거리를 퍼뜨리는 것은 그저 끊임없이 확대되는 전쟁에 대한 합의를 조작해내기 위한 저널리즘적 직무태만일 뿐이다.
2022년 5월 유럽외교협회의 조사는 유럽의 분열이 심각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압도적 다수는 분쟁의 책임이 러시아에 있고, 평화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다른 것은 응답자의 35%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영토를 양보하더라도 분쟁을 끝내길 원했고, 22%만이 전쟁이 지연되더라도 러시아가 전쟁 도발에 대한 응징을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유럽인들을 결집시키는 구호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지지문제는 점점 국가 간에도, 국내적으로도 분열을 일으키는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러시아인이라고 해서 침공에 찬성한 것은 아니다. 일부는 우크라이나로 파견되는 것을 반대했다. 러시아 군인 중 일부는 전역을 당했으나 러시아 정부는 이들을 군사법정에 세울 수 없었다. 군인들을 강제 동원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전쟁 중이어야 하는데, 러시아는 이 전쟁을 전쟁이 아니라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하여 강제로는 배치할 수 없었다. 다만 부재 중, 탈영을 명분으로 징역형을 선고받는 병사는 있었다. 분명 용기있는 비판자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러시아인은 푸틴의 무력 침공을 지지했다. 2022년 3월 러시아 국민 81%가 전쟁을 지지했고, 14%는 반대, 6%는 응답을 거부했다. 5월 조사에서는 77%로 다소 낮아지기는 했어도 역시 러시아 국민은 전쟁을 지지했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1000개 이상의 사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철수했는데, 맥도날드도 그 중 하나였다. 1990년 개장 첫날 3만 4000개를 팔며 매장을 열었던 맥도날드는 30년 후 6만 명의 직원과 850개의 매장을 두었지만, 사업을 매각하고 철수했다. 전쟁 전에 전세계 밀생산의 40%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맡았고, 러시아는 주요 비료 수출국인데다, 우크라이나는 옥수수, 보리, 해바라기씨유의 생산지라는 것을 그동안은 모르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곡물 생산과 수출은 러시아가 항구 봉쇄로 폐쇄되었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고발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항구로 가는 길목에 지뢰를 매설했다고 비난했다. 그 여파는 전세계로 퍼졌다. 특히 중동과 아프리카 23개국은 주요 식량 가운데 최소 한 품목의 절반 이상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침공 1주일 후에 유엔은 압도적으로 러시아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193개국 중 141개국이 찬성했으며, 오직 벨라루스, 북한, 에르트레아, 시리아 4개국만이 러시아 편을 들었고, 35개국은 기권했다. 그런데 기권국들이 문제였다. 아프리카의 경우 16개국이 기권했는데 이들은 러시아 반식민지 투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역사적 유대관계가 있었다. 당시 소련은 아프리카 자유의 투사들에게 군사훈련을 지원했고, 중동과 남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많은 국가는 러시아가 국제 체제에서 단절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에서의 갈등을 거리를 둬야 하는 지역적 문제로 보거나, 한쪽 편을 들 이유가 없는, 러시아와 서방 사이의 대리전으로 보았다.
인도는 미국과 폭넓은 경제 안보 관계를 맺고 있지만, 동시에 1950년대부터 모스크바 정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고 인도에게 러시아는 최대 무기 공급 국가다. 인도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고 오히려 인하된 가격으로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두 배로 늘렸다. 인도의 숙적인 파키스탄 역시 줄타기 외교를 해오고 있는데, 파키스탄은 전쟁 전 우크라이나에서 밀의 40%를 수입하고 있었고, 러시아와도 광범위한 무역 관계를 맺고 있었다.
어쨌거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핵무기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고, 결국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진다고 할 수 있다. 재등장한 트럼프는 자신이 취임하면 하루 만에 이 전쟁을 끝내겠다고 했지만, 다른 수십, 수백 가지 정책과 행정명령을 쏟아내고 있지만 아직은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가 호락호락 트럼프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전 세계 핵무기 1만 4000발 중 1만 3000발을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나토가 러시아와 벌이는 대리전은 그 어떤 전쟁과도 다를 뿐 아니라 더 위험하다. 핵전쟁은 가장 실존적 재앙이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 러시아가 핵전쟁으로 비화할지 모르는 직접적 충돌 직전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안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 나가사키를 파괴한 핵무기 이후의 냉전은 핵 교착 상태에 놓았다. 적의 공격이 감지되자마자 압도적인 반격을 개시하는 것이 미국과 소련의 기본정책이 되었고, 그로 인해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은 양측을 다시는 단 한 기의 핵무기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심지어 우발적인 핵무기 발사도 막대한 보복이 인류 문명을 끝장낼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고, 여러 차례 그러한 운명을 피해왔다. 과학자들은 수백 기의 핵폭발이 일어나는 제한적인 핵전쟁으로도 태양이 수년간 가려져 지구적인 가뭄과 기아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경고하고 있다. 그 예측은 ‘핵겨울’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고, 핵무기 사용에 대한 큰 억지력을 제공했다.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에 대해 서방의 예상은 대부분 러시아 고위 관료들의 발언에 기초한다. 그렇지만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정도로 궁지에 몰릴지는 상당 부분 서방의 정책에 달려있다. 현재까지 추구한 서방 국가들의 정책은 러시아가 그 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 러시아 지도자들을 곤경으로 몰아넣고 전술 핵무기를 사용하도록 균형추를 기울게 만들 수 있다. 미국은 오랫동안 핵무기 문제에 대해 러시아와 협력할 기회를 거부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점에 핵무기를 유엔에 이양하자는 요청에 트루먼이 거부하고, 로널드 레이건은 양국 핵무기를 모두 해체하는 조건으로 미사일 방어 시스템 배치를 포기하자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요청을 거부했으며, 클린튼 정부는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을 비준하지 않았고, 조지 부시는 1972년 탄도탄 요격미사일 조약을 탈퇴한 후 폴란드에 미사일 기지를 배치했다. 1기 트럼프 대통령은 1987년 체결된 중거리 핵전력 조약과 1992년 체결된 항공 자유화 조약에서도 탈퇴했다.
이제 핵군축 부문에서 유일하게 남은 것은 러시아와 미국이 실전 배치한 전략 핵 탄투와 운반 수단의 수를 동일하게 제한하는 내용의 새로운 전략무기 감축 협정뿐이다. 2011년 발효된 이것을 바이든 정부는 2026년까지는 연장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바이든의 정책들을 모두 거부하는 2기 트럼프는 변수가 아닐 수 없다. 그 사이 영국은 좀 더 자국의 핵 시스템 가용성을 높이기 위한 현대화를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2022년 6월스톡홀롬 국제평화연구소는 탈냉전기 핵무기 비축량 감소 경향이 끝나고 있고, 향후 핵무기 규모가 다시 한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핵무기 사용 가능성으로 인한 위기가 최고조였던 냉전 이후 그 어느 때 보다 높다고 경고한 것이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이 전쟁은 어떻게 끝날 것인가.
우리는 러시아측이 범죄성과 어리석음을, 미국측의 심각한 도발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세계를 지배하는 정치 계급의 제도화된 광기에 관한 실례다. 푸틴은 정말로 러시아의 존입이 압박한 위험에 처했고 침공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을까? 서방은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권리와 돈바스와 크림반도에서 주권을 복원할 권리가 수백만 명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고 핵전쟁을 감수할 정도로 가치 있는 명분이라고 믿을까? 서방은 우크라이나의 영토적 무결성에 관한 강경한 지지자였던 반면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정상들은 협상에 의한 종전을 기속적으로 요구하며 푸틴과 대화의 끈을 유지해왔다.
분쟁의 궁극적인 결과와 상관없이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의 심장부까지 뒤흔들어 놓았다. 한때 러시아를 유럽의 일부로 통합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러시아는 이제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점점 더 유럽에서 고립되고 있다. 유럽은 점점 미국의 종속적인 동맹으로 전락하고 있다. 마침내 나토를 해체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더 많은 무기공급을 위한 자금 투입과 핀란드가 나토 가입을 자청하고, 2023년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함으로써 나토는 오히려 더 강고해지고 있다.
*나토는 창설 74주년이던 2023년 4월 핀란드가 가입함으로써, 회원국은 31개국으로 유럽연합 27개국보다 많다. 스웨덴도 동시 가입을 추진했으나 쿠르드족 분리독립 세력에 대한 지원 문제에 반발한 트르키예의 반대로 가입이 지연되고 있다.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간에 핵무기 감축을 위한 인류의 노력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구상에서 핵무기를 영원히 금지하기 위한 진지한 국제적 노력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남아 있는 어떤 적대감도 허용될 수 없다. 러시아의 위대한 평화주의자 레프 톨스토이가 말한 것처럼 “인류의 역사 전체에서 전쟁은 단 한 번도 국가에 의해 잉태되지 않은 적이 없고, 인민의 이해관계와는 별개로 오로지 국가에 의해서만 잉태되었다. 그러나 승리하더라도 인민에게 항상 유해 한 것이 전쟁이다.”어쨌거나 전쟁은 막아야 한다. 자원과 목숨을 갈아 넣으면서 지속시키는 것은 도덕적으로 파산한, 양측의 지도자들과 그 자체가 진정한 괴물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평화 활동가 셀리 아젠코도 말했다. “우리는 어떻게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고 모든 형태의 폭력을 제한할지를 가르쳐주는 지식과 효과적인 수단을 공유할 수 있을 때 지구상의 인류는 전쟁이라는 질병에서 벗어날 면역이 생길 것이다.”저자들은 이 책에서 이 전쟁을 ‘소모전(war of attrition’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수개월 간 이어진 소모전의 대명사가 된 바흐무트는 ‘고기 분쇄기’라는 끔찍한 이름으로 불렸다. 2022년부터 전황이 교착된 상황을 보면, 1951년부터 정전협정까지의 시기별 한국전쟁 전황과도 같아 보이는데, ‘당시 시기별로 조금씩 강원도 일대에서 전선이 북진하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만을 보여준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은 2년간이나 한 뼘의 땅을 더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소중한 목숨이 사라져갔던 비극을 우리는 기억한다. 휴전협정 과정에서 북한군은 3.8선을 휴전 후의 군사분계선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유엔군은 정전협정이 조인될 당시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사 장비가 우세한 유엔군은 시간을 끌수록 많은 땅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이런 유엔군의 의도가 관철된 합의에 이르는 데만 4개월이 소모됐다. 그 동안 군인과 민간인은 전체 전쟁에서의 사상자보다 더 많았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지지한다고 한다. 제재를 통해서 푸틴을 압박하면 전쟁수행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한에 제재를 강화하는 것이 지역의 평화를 위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동의할 사람은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지정학적 사건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세계의 새로운 질서에 대해서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계기로 중국과 러시아는 연대를 강화하면서 국제사회에서 그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2023년 3월 베이징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국교 회복을 중재하는 모습에서 지정학적 판도가 바뀌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다.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에서 현재와 같은 직접적인 물리적 충돌이 종결되더라고 한반도 상황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차가운 평화(cold peace)’다. 언젠가 정전이 되겠지만 그것은 한반도에서의 3.8선과 같은 차가운 평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