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
신 33:28-29
여러분에게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고 누군가가 물어 본다면 “예 행복합니다”라고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행복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에 다음과 같은 행복에 대한 격언이 있습니다.
“하루 행복 하려면 이발소에 가라. 일주일 행복 하려면 결혼을 하라. 한달 행복 하려면 말을 사라. 일년 행복 하려면 집을 사라. 그러나, 평생 행복 하려면 정직한 인간이 되라.”
모두가 공감하지 않은 수도 있지만 많은 의미를 주는 격언입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복은 가나안 땅에 평화롭게 들어가서 정착할 때 완성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지금 광야에서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 사람들을 향하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29).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행복을 찾을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행복은 모두가 원합니다.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는지를 알아봅시다.
본문은 모세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들을 가르쳐 주면서 마지막으로 각 지파마다 축복을 했습니다. 그 가운데 맨 나중에 아셀에게 ‘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아셀은 ‘기쁨’이란 뜻으로 야곱의 여덟 번째 아들입니다(창30:13). “아셀은 아들들 중에 더 복을 받으며 그의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의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라고 모세가 축복했습니다(24).
아셀은 야곱의 아들들 중에 더 복을 받아 형제들에게 기쁨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발이 기름에 감길 것을 축복했습니다.
후일에 아셀은 가나안 땅을 분배 받을 때 모세의 축복대로 기름진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수19:24-31).
기름진 옥토를 분배 받음으로 형제들보다 더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셀이 사는 날까지 능력이 있을 것이며 죽는 날까지 안식과 평안을 누릴 것이라고 모세는 축복했습니다.
아셀이 기름진 옥토를 가지고 죽는 날까지 건강하게 안식하며 평안을 누리는 복을 받았지만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름진 옥토를 가지고 사는 날 동안 건강하고 평안하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첫째 :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29절)
본문 말씀은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지막으로 축복한 내용입니다. 지파별로 축복하는데 마지막 아셀지파를 축복하면서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을 보면 정말 행복한 사람이었을까요?
내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떠나 40년간 광야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안정된 삶도, 집도 없었습니다. 정말 하루하루를 사는 삶이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놀리는 말을 하는 것 같이 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첫째로 ‘여호와의 구원을 얻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라고 말씀했습니다.
모세는 아셀에게 ‘너 같이 여호와의 구원을 얻은 백성이 누구냐’ 라고 하며 아셀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사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는 것, 매우 중요합니다. 돈도 중요합니다. 건강도 중요합니다.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구원이 더 중요합니다. ‘구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구원은 죄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죄로 인해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되는 것으로부터 행방되는 것입니다.
지옥불 속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할 형벌을 받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 영원히 사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죄 값으로 지옥 형벌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지옥 형벌입니다.
돈으로도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빌고 빌어도 지옥 형벌은 피할 수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구원’만이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봅시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여호와의 구원을 얻은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자손들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성도는 구원을 얻은 백성입니다.
둘째 : 너를 도우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29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하나님)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29).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도와줄 사람이 있으면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불행할 것입니다. 성도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능력있는 오른 손으로 붙들어 주시고 도와주십니다.
성도는 어려움이 있을 때 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도를 도와주십니다.
사람들은 어려울 때 온갖 노력을 다 합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떤 능력있는 존재를 찾고 그에게 도와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을 찾고 도와달라고 빌기도 합니다. 우상을 만들고 섬기며 도움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신들이나 우상은 도와주지 않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천지 만물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돕는 방패시오 칼이십니다.
26절에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수룬’이란 ‘의롭다’, ‘정직하다’는 뜻으로 ‘의인’에 대한 별명입니다. 속죄함을 받은 성도는 ‘의인’이요 ‘여수룬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을 도우시려고 하늘을 열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돕기 위해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께서 궁창을 열고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고자 대비하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돕는 방패가 되시고 영광의 칼이 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나와 여러분을 돕는 방패가 되시고 영광의 칼이 되셔서 대적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시기 때문에 불안도 있을 수 없습니다.
셋째 : 승리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29절)
싸움에서 이겨 승리하므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29).
하나님은 성도들을 도와주실 뿐 아니라 대적을 복종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 대적하는 자들을 발아래 꿇게 하십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백성에게 복종하게 하시므로 그 칼을 영광이 되게 하십니다.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아가게 하십니다.
축구 경기를 할 때 선수들은 치열하게 싸웁니다. 몸을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승리하였을 때 피곤을 느끼지 않습니다.
새로운 힘이 솟아나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서로 안고 딩굴며 좋아합니다. 그러나 패한 사람들은 땅을 치며 얼굴을 들지를 못합니다.
성도는 세상을 사는 동안 악한 사탄 마귀들과 싸웁니다. 그러나 성도의 싸움은 승리를 보장받은 싸움입니다.
“네 대적이 내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라는 말씀은 대적이 복종하게 될 것이며, ‘높은 곳을 밟을 것이라’는 말씀은 대적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힘이 있어 대적을 복종시키고 대적을 다스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돕는 방패가 되시고 칼이 되시기 때문에 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므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하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실패가 없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실패로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실패가 아니면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나안 땅을 얻을 것이기에 행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살아갈 때 복 받은 자들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