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본 날
장마는 여름의 백미(白眉)라고 했다.
지금도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글을 쓴다.
반갑지도 않게 일찍 찾아와 극성을 부리던 무더위-. 주춤하자 금상첨화로 나가있던(出世) 자식들이 휴가로 집을 찾았다.
마음이 갑자기 화평해진다. 노년의 기쁨이 이보다 무엇이 부러우랴! 자식농사-. 모든 것들이 행복해 보인다. 인천서 간호사로 직장을 잡은 막내는 만천리에 오면서 문자가 터진다.
아파트 앞에 내려오라며 운전중 전화가 빗발친다.. 아내와 난 행장을 꾸리고 나간다. 새로 산 차안이 온통 선물로 가득하다. -인천 어물, 초밥, 고급 빵, 물, 내 상의,과일, 아이스크림, 초콜렛, 그리고 부모님 혈관 안에 넣어줄 공식적인 효심의 물 포도당 ㅎ 40만 청년실업에서 기필코 탈출해 월급을 타니 가족을 위한 스켓치들이 부모 마음을 기쁘게 한다. 고맙다. 어디 갈 때 사가는 선물은 예전 어머님의 가르침이었다. 빈손으로 가지 말라, 그래서 내 첫번째 수필집이 어머니의 빈손이 아니던가!
화천을 돌아보고, 구만리에서 드넓은 하천변에 구척같은 늦옥수수들의 평화스러운 물결을 본다.
고명으로 한줌씩 아욱국 위에 얹어주는 달팽이 해장국을 한 방울 남김없이 먹는다. 귀로에 만수에 가까운 소양댐을 돌아보았다.
아! 이 호수가 이렇게 차오르기 영 힘들다는 비관론을 편 물리학자를 보기좋게 따돌리고 댐은 가득 만수를 향해 출렁이며 해맑은 누나처럼 손짓한다. 아니 만수에 무동을 타고 손짓하는 여객선들-. 드높은 출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좋다! 온 식구가 돌아보는 장마 지난 산하는 그야말로 평화스럽다.
좀처럼 말을 아끼던 아내조차 내면에서 오르는 감회를 주체할 수 없는 모양으로 자꾸 서성인다.
두어배미, 다락논에 심은 옥골막국수의 연꽃(蓮荷)을 돌아보고 왔다. 탐스러운 꽃송이에 가까이 코를 벌름거리며 그 향에 취해보기도 했다. 분(粉)향이었다. 느낀다. 연향(蓮香)-. 아들 내외는 직장에서 오직 치안질서만을 위해 분골쇄신하며 틈틈히 근황을 타진해 온다. 어제 온가족 차를 세차해 준 패밀리 카닥터 아들에게 고맙다.
보라 -소양댐의 저 수위가 기준점에 육박해가고 있어 기쁨을 준다.
소녀 단발머리처럼 늘 서너뼘 아래서 찰랑거리던 호숫물이 -. 천지 이변이리라. 물 부족, 물 전쟁이란 단어가 무색해진다.
내가 입고 있는 상의를 보라! 3 교대를 하며 인내한 막내가 타향에서 받은 월급으로 달려가 백화점에서 고른 것이란다. 고르는 순간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뜨겁다. 고맙다.
강원랜드 과장으로 향학열이 높아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경기 대학원을 다니는 77년생 돼지띠 큰딸,
우리집의 모든 것들이 그의 손에서 보호되고 새롭게 태어난다.
아빠의 DNA가 행여 스며있는지 글이 지난 해에 조선일보에 게재된 적도 있다.
-남들 위해 살겠다는 새내기 소방관들의 코끝 찡한 각오(오피니언)
신차를 구입해 신이 나서 운전하는 녀석이 막내 용띠 -. 인천 고은여성병원에 정열을 쏟으며 근무하는 것이 벌써 일년이
다 되어 간다. 간호부장, 원장의 칭송 또한 높다. 제비는 작아도 강남간다란 가정교육으로 자신감을 채워주곤 했다.
행정학과 2년, 간호조무사 1년 다시 간호대 3년-, 시험준비 2년-. 그 인고를 막내는 무사히 치뤄냈다.
반포지효(反哺之孝)가 떠오른다.
연꽃은 군자이다. 흐린 물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줄기가 비어있어 욕심을 이미 내려놓았다. 한줄기 한 꽃송이를 키워낸다.
도처에 청산이 있다. 언덕 진 내고향과 같은 지내리 옥골(玉谷)-.명승지보다 아름다운 곳이 고향이라 했다.
자주 와서 전시된 내 작품들을 둘러보고 만끽한다. 제자의 따듯한 배려를 늘 전신으로 받곤한다.
조밥, 꽁보리밥 먹던 시절-. 황톳길이 여기도 있다.
바람이 텃밭 나무를 흔들던 곳도 저 마을 같고, 묵정밭에 호미로 팔목이 시도록 매던 밭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아니 여름이면 수박껍데기를 쓰고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던 참외서리 첫번째 관문 참깨밭도 저기 산기슭아래 빙그레 웃고 있다.
땅 두어뛔기 부치며 어렵게 살던 건너마을 매형이 갑자기 생각난다. 그 땅들이 이젠 배불리 연꽃을 심어 가꾸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나만의 상념-. 절대빈곤시절의 날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온 날이었다.
지난 겨울 송암동 의암호 ㅋ스카이 워크에서-.
소양강처녀상 곁에 스카이 위크는 국내 최장 174미터란다. 물결높이 7.5미터
강화유리위에 처음 서본 의암호 스카이 위크-. 결국 아내는 들어가지 못하고 혼자찍던 지난 날-.
가족의 힘이다. 가족이 글을 성숙하게 만든다. 가화만사상이다. 팔불출 나들이었다.(끝)